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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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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날......

-들머리 - 함양

08시 40분,
새벽바람을 가르고 달려 함양 나들목에서 일행을 만난다.
이미 태양은 산마루에 덩실하게 떠올라
산 높고 골 깊은 智異山麓 유서깊은 함양고을을 비추고 있다.
‘인간이 있어 그 本分과 道理를 깨달음이 ....’
[悟道재]를 넘는 순간
이미 저 멀리 지리주능선은
희붐하게 밝아져 확연한 空際線에 용틀임하듯 누어
회색빛 자태로 우리의 눈길을 길게 붙잡는다.
“바로 저 곳이야, 오늘내일 주파할 彼岸의 城砦같은 저 능선....“

추성골 입구에서 초암능과 국골, 그리고 허공다리골 등은
비지정등산로라는 점을 알기에 눈길만 나눠주고,
의탄의 여울소리를 차창에 비껴 날리며 마천에 들리니
[소문난 짜장면집]의 퇴색한 빈지문이 눈에 들어온다.
주인 강상길님은 遠行중이고
그 아주머니에게 ‘아직 朝飯 전이니 되는대로 달라’하여
인도차이나반도 쪽 인상의 여종업원이 들고 나온
걸죽하고 얼큰한 짬봉으로 허퉁한 아침 배를  채운다.

-산행시작....음정마을

11시 20분,
지리산록 된삐알에 자리잡은 음정마을 고샅을 돌아올라
구절양장 굽이 길에서 시작한 登行은
발아래로 버석거리는 눈길이 맞이한다.
며칠전에 연이어 내린 눈이
응달에는 아직도 깊이 남아있어 발목이 짧다하고 빠져든다.
간혹
불어지나는 샛바람이 이파리 한점 남아있지않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뒤흔든다.
휘이휘이~~
겨울바람이 몰아가는 산의 精氣가 저 나목의 가지 끝에 매달린 듯 하고,
그 너머에 회색빛으로 아스라한 산간마을은 더욱 애잔하다.
登路 전후좌우에 사람 기척이라곤 한참이나 없던 중에
문득 한 마장 쯤 앞서갔을 눈 위의 사람 발자국이 반가운데,
벽소령산장 지름길이 가까운 저 앞에
발자국의 주인공이 보인다.
자그마한 몸푸에 배낭은 큼지막한 50代가
何必 응달에 자리한 바위턱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벽소령산장

13시 50분,
작전도로를 벗어나
裸木들의 향연이 펼쳐진 지름길을 택하여 벽소령산장에 올라서니
벽소명월의 현주소- 검은 雄姿는 여전한데
둘러친 목조데크는 지나간 그리움들을 가득 안은 채
얼굴이 상기된 산객을 반겨준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공식명칭은 [대피소]라 한다지만
나는 ‘山莊’이라는 호칭이 멋있고 살거웁고 낭만적이어서 좋다.

평일이라서인지
오히려 寂寞이 감도는 산장에는
4~5명의 젊은이만이  절은 땀이 선연한 배낭을 벗어놓은 채
야외식탁에 앉아 담소하고 있고
그들의 어깨너머 남녘으로는
빗점골과 의신마을을 더 지나 흘러내린
신흥동과  화개동천이 눈 아래 아슴하다.
渴水期에 겨울가믐으로
산장은 식수가 부족하여 산 아래 일백여미터를 더 내려간 곳,
임시 식수탱크에 물을 받아놓고 있다.
하늘에는 가마귀 몇 마리가 선회하는 가운데
라면을 끓여 늦은 점심을 먹고
세석산장을 향하여 출발하는데
저 산 아래로부터 엷은 안개가 스멀거리며 퍼져오르기 시작한다.

14시50분,
산장에서 스치듯 다시 만난 그 50대에게
“한걸음 먼저 떠나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세석고원을 향하여 출발하니
때마침 고개를 넘나드는 갈가마귀 울음이 그 인사말을  삼켜버린다.

-세석산장

16시 10분,
덕평봉을 언뜻 돌아 선비샘에 당도하여
어느 누군지 마련해 놓은 플라스틱 물바가지로
물 한 모금을 나누니 그 상쾌함이란....
그러나
샘물의 위치로 보아
來往하는 산객들의 발걸음들에 오염은 안 될지 적이 걱정이다.
해는 벌써 서녘에 기우는데
칠선봉을 못 미쳐서 문득 사위가 트이는 깔딱 고개 하나를 넘는다.
‘이름을 지어주자’ 하고 [00이 고개]라 命名한다.
앙상한 겨울 나목들 사이사이로
구상나무, 주목, 가문비나무 등이  
그 푸르름을 자랑하는 사이로 이어지는 길,
저벅거리는 눈길 위에
선연하게 찍히는 발자욱들이  아름답다.

17시 00분,
낮은 구름이 산허리를 감도는데
해는 서산에 걸린 듯 - 日落西山이요.
칠선봉의 바위군마다 석양빛이 마냥 쓸쓸하다.
뒤를 돌아돌아 보며 日沒을 완상하던 중에
문득 고개를 들어 中天을 바라보니
배부른 반달이 넌지시 여유로운 웃음을 내려보낸다.

18시 00분,
四圍는 점점 어두워지는데
영신봉에 당도하니 某 회사의 단체산행을 위한
한 명의 선발대와 마주친다.
저 아래 잔돌고원(細石平原)을 내려다보며
계단을 쿵쾅거려 단숨에 내려가
오늘의 留宿地인 세석산장이다.
김이 서린 털모자를 벗어내리며 취사장에  들어서니
4~5쌍의 커플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나름대로의 만찬이 한창이다.
이곳 역시 부족한 식수는
산 아래 幾 백 미터를 내려가서 길어와
비로소 쌀로 된 밥을 짓는다.
옆자리의 젊은 커플이 굽고 있는
삼겹살 냄새가 시장기를 바싹 돋우는데
남은 고기 몇 점과 피처병으로 짊어지고 온 맥주를  한잔 권하는데
그 맛이 一味이다.
나도 의미를 갖고 짊어지고 올라간 와인을
경쾌한 소리로 개봉하여 한잔씩 권하니
산장에서  와인잔을 나누는  특별함이 있어 감동인데
‘會須一飮 三百杯‘라는 말은 한참 뒤로하고  
불과 서너 잔으로 술자리를 막음하자니 서운하지만,
20시에 消燈하는 산장 규칙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여 숙소를 배정받았다....

20시 10분,
잠시 후에는 단체 산행객 80여명이 도착하여
다소 술렁거림은 있어도 가무음곡이나
큰 소란이 없이 숙박하는 모습들은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산장의 마룻바닥에 임대모포를 깔고 드러누우니
오랜만의 산행 후에 오는 피로감이 엄습한다.
산장 천장에 매달린 長明燈 불빛 아래
다소 괴로운 몸짓끝에 이내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 산행 2일째,

-천왕봉

04시 00분,
무거운 몸으로 起床하여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 둘러메고 취사장으로 나가
어젯밤에 남은 밥을 데워 아침요기를 한 후,

04시 40분,
산장마다 식수가 부족하다는 전갈이 있기에 물통에 식수를 채운 후에
어둠을 뚫고 장터목을 향하여 출발한다.
하늘에는 차갑게 떠 있는 배부른 반달이
주능선과 주변 계곡을 아슴아슴 비추는데
등산로와 응달에 깔린 눈빛만으로도 해드램프 없이 산행길이 훤~하다.

중천에 떠 있는 푸른 달빛을 받아
눈밭에 늘어진 나목들의 그림자와
북녘에서 불어와 능선을 넘는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들이
寂寞江山속에 畏敬心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앞으로 앞으로 걷는다.
발자국소리만 들리는 무아지경 속에 걷고걸으며 동행하던 山友는
‘차라리 이대로 새벽이 오지말았으면 ...‘하는
아름다운 獨白을 하니,
그 말에 잠들어있던 가슴속의 젊은 낭만이 살며시 고개를 든다.

06시 40분,
아름다운 바위群들이
서녘으로 달리는 달빛을 받아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우줄거리는 연하봉을 뒤로하고
세석산장을 떠난지 2시간 만에
달빛 속에 잠들어 있는 장터목산장에 도착한다.
週末의 소란들은 모두 어디에 몰아두고  
겨울철 평일이어선지
산장은 조용하고 푸른 달빛을 받고 있는 검은 자태가
아연 姣姣하기까지 하다.

天王日出을 보자하니 시간이 어중간하여
장터목산장은 앉아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서
제석봉의 급사면을 힘겹게 오르는데,
벌써
저 멀리 천왕봉 방향으로는 黎明이 밝아온다.  
여러 작가의 사진 속에서
이름 있게 자리하던 ‘제석봉枯死木 ’들은
예전같지 않게 숫자도 줄었고
그 모습도 왠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데
주홍빛으로 밝아오는 여명에
逆光으로 비껴 서서 잠시 그 모습을 玩賞한다.

07시 30분,
하늘에 이르는 문 - 通天門을 지나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고 지리 第一峰 - 天王峰에 올랐다.
낮은 구름위로 이미 태양은 떠올라
하늘에서 쏟아지는 신령스러운 햇살이
온 천지에 드리워 있다.
어제 벽소령능선을 올라서서
해발 1,500~1,900미터의 연봉을 타고 넘어
이제 지리능선 상에는 더 높이 오를 곳이 없음이 안타깝다.

전라에 구례,남원, 경상에 산청,함양,하동......
3개도 5개 시군에 걸쳐 너른 품으로 자리하고 있는
남한 육지의 최고봉 - 천왕봉,
三神山의 하나인 方丈山,
백두대간이 흘러내려 머무르는 頭流山으로도 불리우고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슬기로워진다’는 智異山,
나는
과연 여기에 오를 때마다
얼마나 지혜로워지고
고단한 삶의 片鱗들을 여유로운 일상의 韻律로
승화시키고 내려가곤 했는가?
높이 오른 者는 반드시 다시 내려가야 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게 올라섰을지라도
정복감과 호연지기를 맛보았으면
결국은 저 아래 인간 군상들의 세계로 내려가
다시 낮게 臨해야 한다는
철학적 思考가 필요한 순간이다.

앞서 도착한 남녀 10여명의 산객들은
표지석을 부여잡고 기념촬영도 하고
혹자는 저마다 의미를 담은 口號를 외치더니
각각 하산길을  재촉한다.

08시 10분,
찬바람을 막아주는 바위턱 아래에 앉아
頂上酒 한 모금에 목을 축이고
태양이 떠오르던 동쪽 - 유평리 방향으로 길을 잡아
하산을 시작한다.

-치밭목산장

천왕봉 바로 옆에 中峰이라는 이름을 얻어
명예와 축복을 천왕봉에 謙讓하고
제일봉을 보좌하며 있는 듯 없는 듯 솟아있는 중봉,
뒤돌아서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가파른 봉우리를 숨을  몰아 넘어
우측으로 길을 잡아 써리봉으로 향한다.

11시 40분,
날카로우면 허리를 감아돌고
부드러우면 올라타고 넘는 암봉들이 연속되는 써리봉을 지나
눈이 쌓인 긴 능선길을 한참 걸으니
아래에 치밭목산장이 기다린다.
시설을 개수하고 태양 集光板이 즐비하게 설치된 산장에는
마침 산장지기인 ‘민 대장’이 지키고 있다.
아직도 무거운 배낭을 외부 야전식탁에 벗어놓고
컵라면에 식은 밥을 말아 腹中에 점을 찍고나서
量도 많고 교양스러운(?) 원두커피 한잔을 마시는데  
능선을 넘나들며 우지지는 새소리가 다양한 꼴을 보니
高度는 퍽으나 낮아진 듯하다.

-무재치기폭포 ~ 유평리

12시 30분,
이정표를 따라
하산길에 들어서 잠시 내려가니
앙상한 나무사이로 보이는 무재치기폭포는
계속되는 한파로 얼어붙어 氷壁이 되어있고  
얼핏
그 속을 흐르는 가는 물줄기는 미미하기 짝이 없다.
폭포를 뒤로하고 내려가는 유평리 하산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 사면과 계곡길이 지루하게 연속되는
길고 긴 산길이다.

14시 50분,
대원사 계곡을 끼고 새재로 올라가는 길가에 있는
무릉도원이라는 민박식당에 도착하여
덕산택시를 부르니 20분이 채 안 되어 당도한다,
오랜만에
지리 품에 안겨 자연과 同化된 순간들을 떠올리며  
땀에 절은 장비와 묵지근한 몸을
친절한 개인택시(055-972-6363)에 싣는다.  ................끝.




  • ?
    오 해 봉 2007.02.23 09:11
    벽소령에서 치밭목까지 좋은코스를 다녀 오셨군요,
    주능선은 아직도 겨울 이지요,
    어제 도봉산에 갔는데 5봉넘어 응달에는 눈과얼음이
    많아서 무척 위험 하드군요,
    연하봉님 자주들려 주십시요.
  • ?
    선경 2007.02.25 05:08
    잠들어있던 가슴속낭만이 살며시 고개를 드는
    감성의 지리산행~~가슴이 뭉클해지는 지리의 풍경들이
    하나 둘씩 떠오릅니다
    멋진 산행기 잘보고갑니다~~~연하봉님 늘 행복한산행되세요~~
  • ?
    이안 2007.02.26 22:19
    후기 감상문을 허락하신다면
    '한 소식 後... ' 라고 쓰겠습니다.
    눈을 감고 누군가 읽어 주면 좋을듯한 후기..
    오늘에야 천천히 다시 읽었습니다.
  • ?
    연하봉 2007.02.26 23:06
    拙文에 귀한 답글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烟霞仙景>에 흠씬 빠진 연하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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