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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의 보랏빛 새벽

-6월 22일

 

03:00, 옆 사람들 부시럭 거리기 시작하는 소리에 깨었다. 어제 오후부터 조금 뻐근하던 왼쪽 무릎이 아프다.

몸은 더없이 거뜬하기만 하건만 아픈 무릎이 조금 걱정스럽다.

모포 반납하고 배낭 다시 정리하고 또 하루 일정을 시작한다.

 

03:30, 초입부터 가파르게 시작하는 천왕봉을 향해 출발한다.

어제 새벽보다 약간 더 안쪽으로 부드러이 패인 반달이 아름답다.

랜턴이 아니면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앞사람의 행적을 부지런히 따라가며 불빛에 의지한다. 

왼쪽 무릎이 걱정할 정도로 많이 아파 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참고서 열심히 걸었다.

서서히 호흡이 빨라지고 땀이 난다.

처음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30분쯤까지는 평상시보다 급격히 호흡이 빨라지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통천문을 지나면서 참으로 이름을 잘 지었단 생각을 했다.

아담한 반달이 조금 더 가까이 느껴지는 기분도 든다.

정말로 하늘로 통하는 문인 듯이 느껴진다.

그래서 정상은 천왕봉이겠지만....

 

04:20, 천왕봉 100m 전이다.

좀 평평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정상에 오르기 직전의 여유를 즐기기 위함인지 어둑한데도 그들의 표정이 밝은 듯이 느껴진다.

 

04:37, 천왕봉 정상이다.

드디어.... 일출을 볼 수 있을까 ? 많은 사람들이 기대 반 염려 반으로 왁자하다.

어떤 여학생이 목청껏 “야호~!” 하고 가상한 용기를 떨친다.

어느새 진혁이가 우릴 또 찾아와 환하게 웃는다.

이마의 랜턴조차도 귀엽게 느껴진다.

그렇게 쌩쌩한 녀석인데도 아빠는 제법 싸늘한 기온과 바람이 여전히 걱정스러운지 점퍼를 입히려 아이를 계속 불러대고... 하하

Hera의 옆자리에서 잤다는 부부는 넉넉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일출을 기다린다.

운무가 넘나드는 저 많은 산자락들....

밤새 지리산 한켠을 지켰을 작은 마을의 선명하고 정겨운 불빛을 보며 저기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새벽을 맞을까가 문득 궁금하기도 했다.

동서남북 어디든 확 트인 곳곳의 암청색 봉우리들 하나씩 깨어나는 광경이 아름답다.

일출...., 꼭 그게 아니더라도 저 장관인 정경에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진혁이두 찍어주고 Hera도 찍고..., 정겨운 부부도 찍어주고...

일출 시각이 지나고 주변이 이제 환하다.

많은 사람들은 다시 장터목대피소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아쉽지만 짧은 만남도 다음으로 기약하고 우리의 길을 떠나기로 했다.

진혁이네는 장터목으로 되돌아가서 중산리 쪽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형아~! 이따가 거기서 만나면 좋겠어요~!!”

기특한 녀석, 내가 아저씨라고 부르면 싫다고 반협박을 했더니...., 하하

우리 아이들과 같은 느낌에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이쁘다.

함께 대피소까지 내려가서 밥해먹고 출발하자던 부부는 우리에게 햇반 두개를 꺼내주며 인심 좋은 표정으로 훗날을 기약한다.

함박꽃 나무의 꽃

05:30, 하산을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무릎이 아프다.

현저히 속도가 떨어진다.

아무래도 어제 일정이 내 무릎 상태엔 좀 무리였나보다.

하산하면 다시 수영 열심히 해서 지리산 아니라 백두산 종주를 해도 끄떡없을 정도로 회복시키리라....

여수에서 왔다는 형제를 최대한 열심히 따라 내려갔다.

왼쪽 무릎 아픈 것 빼고는 전혀 피곤하거나 지치지도 않는 길이라서 쉬지 않아도 힘들지는 않았다.

 

06:30, 앞서서 가던 여수의 그 형제가 보인다.

함박꽃나무라는 목련 닮은 예쁜 꽃을 촬영하고 있었다.

우리도 잠시 쉬며 사진을 찍었다.

 

07:10, 법계사에 도착했다.

경내에서 스님은 한명도 볼 수 없었다.

스피커를 통해 흐르는 녹음된 독경소리...,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단청 끝의 풍경을 찍다보니 뭔가 허전하여 다시 살펴보니 거기 물고기가 없었다.

 

 

법계사의 풍경  

 

07:15, 로터리대피소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컵라면 2개를 샀다. 이게 벌써 몇끼 째 먹는 컵라면인가 ?

그래도 여전히 맛있는걸 보면 하여튼 나도 놀랍다.

우리 배낭에 있던 총 3개의 햇반 중에 2개는 주변의 우리 같은 부류의 떨거지들에게 분양했다. 하하

빨간 고추장에 비벼서 우걱우걱 퍼 먹는 모습이...., 한입 뺏어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어 보인다.

‘짜식들..., 엉아랑 뉘님한테 고추장 한 숟갈만 퍼줘 보면 어디 덧나냐 ?? 하하하’

 

07:50, 출발했다. 왼쪽 무릎 때문에 절뚝이며 안간힘을 쓰며 내려갔다.

또각또각 시계 초침처럼 일정한 움직임으로 우리 곁을 쏜살같이 내려가는 젊은 선수가 부럽다 못해 차라리 저주스럽다.

요렇게 마음 쓰다가 제명에 못 죽지... 하하

한 20분쯤 더 내려갔는데..., 앞서서 다리를 절며 내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던 동지가 훨씬 좋아진 모습으로 나를 추월하려 한다.

어제 세석산장에서 두 명의 여인네들에게 과자로 바꿔다 줬다가 음료로 바꿔줬다가 하면서 우리 단잠을 깨게 했던 그 남자다.

천성이 착한가보다.

나를 바위에 앉게 하더니 양말 내 놓으라면서 그걸로 응급조치라며 발목 윗부분을 자르게 하고 또 발가락 부분도 자르게 하여 압박붕대를 만들어 준다.

흘러내리지 않게 해야 한다며 꼼꼼하게 챙겨주고 무릎에 타이트하게 위치시키게 도와주고...., 그리고는 언제 다리를 절었나 싶게 그 남자는 휑하니 사라졌다.

고맙단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훨씬 좋아졌음을 느꼈다.

새소리가 즐겁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사람 사람들....

땀방울 맺힌 얼굴에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참 보기 좋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즐길 수 있음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싶었다.

하산하는 우리에게 부럽다며 인사를 건네는 선량한 표정의 사람들에게 아주 조금 남았다고 너스레떨며 맞장구치니 계곡에 웃음이 가득하다.

 

09:30, 칼바위를 지난다.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하다.

저기 발을 담구고 한참 쉬었다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부지런히 내려갔다.

중산리터미널 시멘트 계단에서...

 

10:10, 중산리 야영지에 도착하였다.

주변 경관이 정갈하고 아름답다.

어제 세석에서 마주쳤던 그 매끈남을 또 만났다.

이름도 모르지만 그저 출발지의 공통점과 목적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같은 공기의 지리산을 호흡했다는 것에 더더욱 반가움을 더 하는 듯 하다. 마을 어귀에서 빙과를 사서 아이들처럼 즐거워하며 천천히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생각보다 터미널까지의 거리가 꽤 멀었다.

11:00, 진주행 버스에 올라탔다.

안면이 있는 사람은 그 매끈남만이 아니다. 선량한 표정들....

두세번 자다가 깨었다가 하다보니 어느새 진주라고 한다.


12:10, 진주도착, 13:00 서울행 우등을 예매했다.

목욕탕 들러서 간단히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 입고 출발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근데...., 진주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엔 목욕탕이 없었다.

터미널 바로 건너편에 목욕탕 표시된 높다란 굴뚝만 보고 무작정 찾아가봤는데, 목욕탕은 찾을 길 없고 온통 여관 천지였다.

오나가나 집 없는 사람들은 왜 이리 많은 건지....  하하

하는 수없이 터미널 화장실에서 양치하고 티셔츠 갈아입고...., 가게에서 바나나 우유 2개 사서 버스에 오르니 마음이 편안하다.

우리의 점심은 어제 산 빵과 카스테라에..., 커피우유도 있다.

뿌듯하다.


17:50,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했다.

우린 정말 수고 많이 했다.

정말로....

Hera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다.


가을쯤엔 뱀사골을 거쳐 피아골로 내려오는 짧은 코스를 택해서 다시 한번 가고 싶다.

단풍이 너무 깊지 않은 어느 주말에...., 훨씬 여유를 가지고 말이다.

함초롬한 아침녁의 들꽃과 바위와 나무들에 스치는 바람소리까지도 더 많이 보고 들을 수 있길 기대하며...

산을 그저 왔다 가는데 급급하여 빨리빨리 지나친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시간대 별로 너스레를 떨다보니 글이 아주 길어졌다.

' 1박2일이 이러면 다음에 3박4일쯤이면 아예 책을 쓰겠구먼....? 하하 '

 

 

비발디 사계 여름 Presto, 정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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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2003.06.27 17:34
    ::: 사진들 정말 훌륭합니다. 각기 사물이 가지는 느낌을 특성에다 잘 살려 놓았군요. 보랓빛 천왕봉의 새벽, 산목련 그리고 여름이 쏟아지는 음악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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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리 2003.06.27 18:43
    산행기 잘읽었습니다.. 맘은 항상 지리에있는데.. 지리보단 조금 가깝다는 이유로 설악을 더 자주 다니는 사랍입니다.. 목욕탕 알려드릴려구요.. 진주터미널 길건너서 좌측으로 100M 쯤가시고.. 골목안으로 끝까지 들어가시면 작은 목욕탕하나있어요..요금은 2800원(2003년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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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3.06.28 01:40
    참 좋은산행기 입니다.컵라면과 햇반만으로 끼니를해결하는 가벼운차림이지만 성삼재에서 장터목까지 여자분이랑 하루에간다는것은 대단한 체력이십니다.공수부대 산악행군 같네요.그와중에도 진혁이와어울리고 사진도다찍고.다음에는 구경도좀하고 무릎생각도좀하시며 천천히 다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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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양지 2003.06.28 04:55
    종주를 축하드립니다. 재미있는 글도 잘 읽었습니다. 제 경우엔 그러께 두번째 찾은 지리 하산길에 무릎을 다쳤었어요. 그래서 이후로 스틱, 신발깔창, 무릎싸개 등을 준비했었는데 혹 이번 산행에 준비 하셨었는지요 ? 또한 신발은 고어텍스 이용시 접질렀었는데, 최근 예전에 신던 맞춤가죽을 신으니 발에 꼭 맞는 게 발목 보호를 위해서 좋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은 산행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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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현거사 2003.06.29 16:26
    서울 근교 수락산 반쯤 오르고 소주 한잔하고 돌아와서 지리산을 펑펑 올라간 사람들 존경안할 수 있나요?그러나 비오는 수락산도 雨日觀瀑 松下聽風의 멋을 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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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심정 2003.06.30 00:06
    진주 사람으로서 송구하군요. 헤헤... 아무나 잡고 물어 봤으면... 뒤쪽에도 몇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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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오문 2003.06.30 00:16
    세심정님, 뭘 송구씩이나요? 근데 지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더니 저~어기 멀리에 있다해서... 하하..., 같은 버스에 탄 사람들을 걱정하기 때문에 샤워할랬던건데..., 그래도 즐거운 기억였습니다. 감사할 따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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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꼼 2003.06.30 16:14
    저 이은호.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열심히 체력을 길러서 지리산 속에 빠져들고 싶군요. 눈앞에 지리산이 아른 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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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싸 2003.07.02 16:56
    전 첫 산행을 님이 갔다온 코르로 2박3일종주했었거든요.. 정말 부산(집)에 도착했을때 저의 몰골은 ~~심하게 들리겠지만 병신이였지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1박2일루 갔다오신다는게.. 참 전 천왕봉에서 해를 못봤답니다.. 담에 꼭 다시 도전할꺼여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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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신령 2003.07.03 13:19
    글솜씬 문단에 데뷔해야하고 산행은 공작원 동뭅니다. 이번 여름휴가에 2가족 8명이 떼거지로 2박3일 종주갑니다. 참고되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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