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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2002.02.24 01:06

지리산 종주 이야기

조회 수 421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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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이야기

(2002.1.30(수) - 2.3(일) : 4박5일)


산행코스 : 중산리-로타리산장(1박)-천왕봉-장터목산장-새석평전-벽소령산장(1박)-연하천산장-화개재-570계단-삼도봉-노고단산장(1박)-성삼재-고리봉-만복대-정령치-고기리(고촌1박)


출발전

지리산...
태어나서 첨으로 가는 지리산이다.
어렸을적엔 산을 좋아하시는 담임 선생님 때문에 산에 자주 다녔는데...
정말 오랫만의 산행이다. 그것도 겨울산, 그것도 4박5일간의 지리산 종주,
백두대간의 시작...

우연히(?) 시간이 생겼고, 지리산행 얘기를 들었을때, 나도 모르게 가고싶다는 생각에 동참을 선언했다.
동참선언후 나름대로 갈등했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힘들거란 생각, 그리고 여러가지 복잡한 머리속, 반복된 생활에 대한 지겨움 등... 지리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이미 나를 지리산으로 향하게 하고 있었다.

같이 동행하는 형이랑 최소한으로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고, 이것저것 준비물들 챙기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내일 새벽 6시35분 남원행 기차. 시계는 4시반에 맞추어 놓았는데, 이미 시간은 새벽 1시다. 빨리 자야하는데... 잠이 잘 오지 않는다...


1일차

음악소리에 잠이 깼다. 정확히 4시반이다. 대충씻고, 대충먹고, 역으로 향했다. 5시 반 정도에 집에서 나왔다. 아직 어둡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에 6시10분쯤 도착. 이번 산행의 대장 교진이형이랑 역대합실에서 만났다. 언제봐도 편안한 형. 산을 무지 좋아한다. 난 지리산이 첨인데, 형은 셀수도 없다 한다. 헉~

남원행 새마을호에 올랐다. 아침이 밝아온다. 기차도 오랜만이다.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 한가롭고 여유롭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차창밖의 풍경은 너무 여유롭다.
교진이 형하고 아침으로 기차도시락을 먹고, 어제 설친 잠을 잤다.

10시반 남원역에 도착했다. 중산리로 가야한다. 중산리에서 다른 일행을 만나야 한다. 용희누나랑, 경란누나. 용희누나는 구면이고, 경란 누나는 초면이다. 누나들은 안동, 예천에서 출발한다.

남원역에서 터미널로 이동, 함양까지 가는 버스를 탓다, 기사 아저씨왈 함양에서 중산리까지 가는 버스는 없고, 원지라는 곳까지 가야한다고 하신다. 남원에서 두시간 거리,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교진이형이 일정을 조정해야겠다고 한다.

1시를 좀 넘겨서 원지에 도착, 중산리행 버스를 탓다. 중산리에는 2시가 다되어서 도착했고, 중산리 어느 식당에서 용희누나랑, 경란 누나와 합류했다. 누나들은 2시간정도 우리를 기다렸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짐을 다시정리했다. 배낭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마음을 가다듬고...이제 진짜 시작이다.

3시에 식당에서 나왔다. 기차나, 버스에서 보이는 풍경으론 겨울답지 않게 따뜻했다. 벌써 봄이 온듯한... 하지만 산행을 시작하는 지금 바람이 좀 분다. 아직 겨울이다. 그리고 저 앞에 지리산이 있다.
포장된 길을 따라 20여분 오르니 매표소가 보인다. 입장료계산하고, 직원으로부터 이런저런 주의사항과 당부말을 듣는다. 매표소 아래 매점에서 물을 몇개 샀다-1리터짜리가 천원이라니, 집에두고온 2리터 짜리(600원)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물무게도 보통이 아니다. 매표소를 지나 오르는길에 점점 눈이 많이 보인다.

벌써 숨이 헉헉 거린다.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본격적인 산행 시작이다. 산에 오를수록 눈이 많아진다. 언제 올랐는지 하산하는 사람들이 제법많다. 내려오는 등산객들과의 인사를 빼놓지 않는다.
땀이 많이 흐른다. 웃옷을 하나 벗었다. 겨울산행. 걸을땐 땀이나서 덥지만, 쉴땐 금새 추워진다. 그동안 술, 담배에 찌든 몸이 안쓰럽다. 첫날이라 그런점도 있지만, 한발한발 내딧기가 힘들다...
그래도 맨 선두에 섰다. 교진이 형이 무전기를 켜고 내 페이스데로 쭉 올라가 보라고 한다. 칼바위를 지나(힘들어서 이게 칼바위인지도 몰랐다 그냥 큰 바위네 하고 계속 올라갔다)계속 오른다. 오늘 목적지는 로타리 산장이다. 계획대로 라면 천왕봉을 오르고 장터목산장에서 1박을 하는거였지만, 중산리 도착시간이 너무 늦어져 일정 조정이 불가피하다. 산에 오를수록, 눈이 많이지고 바람도 차다. 5시가 지나니 어둑어둑 해진다. 로타리 산장은 왜 안보이는지...

선두에서 혼자 산행한지 1시간여 저앞에 절(법계사)이 보인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다. 좀더 걸으니, 절 아래 로타리 산장이 보인다. 다왔구나... 산장에 도착한시간은 5시반정도 산장 의자에 배낭을 내려놓고 숨을 고른뒤, 일행을 기다린다. 산장에 이르기 전에 작은 평전(?)이 있다. 저 아래로 산과 들이 보인다.

어둑어둑해진 하늘아래 구름과 산과 하얀눈... 땀을 식히며, 일행을 기다렸다. 6시쯤 일행이 도착 산장에 짐을 풀었다.

로타리 산장. 아담한 규모다, 이미 산장에 도착한 등산객들이 몇몇 있다. 짐을 풀고 저녁 준비를 한다.
저녁은 된장찌개와 밥이다. 취사장에 부산에서 왔다는 산악동아리 학생들이 먼저 밥을 짓고 있었다. 1박2일 코스로 왔다고 한다. 학생들이 따듯한 녹차를 권한다. 속이 확 풀리는 것 같다. 교진이 형이 감사의 뜻으로 육포를 건낸다. 여학생이 못먹는다며 사양한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밖에서 해먹는 밥은 언제나 맛있다. 더군다나 힘든산행뒤의 산에서 해먹는 밥맛이란... 입가심으로 교진형이랑 양주(캡틴Q) 한모금을 했다. 속이 확풀린다...

저녁을 먹는 중에 이국적이 분위기의 다른 등산객이 저녁을 하러 들어온다. 아무래도 동남아쪽... 외국인이 지리산을 찾는다는게, 좀 의아해하기도 했지만, 대견스럽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자리를 펴고 잠자리 준비를 한다. 산속의 산장에서는 처음으로 잠을 잔다. 첫날의 피곤함보다는 앞으로의 일정이 머리속에 맴돈다. 산장이 춥진않았지만, 불을 완전소등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켜지는 온풍기 소리에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사람들도 계속 들락날락한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오후 8시부터 잠을 청한다.
지리산에서의 첫날밤은 이렇게 지나갔다.

중산리-칼바위-로타리산장(3.4KM)


2일차

7시기상 산장 밖으로 나가봤다. 따듯한 햇살아래 저너머로 작은 산들과 하얀눈들이 보인다. 차가운 산바람이 상쾌하다.
아침준비를 한다. 어제의 일정조정으로 오늘은 좀 분주하다. 아무래도 이번 종주일정중 가장 힘든 하루가 될 듯... 어제 먹다 남은 밥과, 찌개로 아침을 대신하고 산행준비를 한다. 식수가 부족해 법계사 아래로 흐르는 샘물을 물통에 담는다. 어제는 아이젠과 스패치를 착용하지 않았지만, 오늘부터는 둘다 착용해야 한다. 1월말의 지리산, 아직 눈이 많다.

8시 로타리 산장을 뒤로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용희누나가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 올라오다. 얼마지나지 않아 아이젠을 착용한다. 교진이형은 무아이젠이다. 오전 등산일정은 천왕봉이다.

산에 오를수록 눈이 많다. 등산로는 나 있었지만. 눈이많고 바위도 많고, 경사도 가파르다. 숨이턱 막힌다. 날씨는 무지 좋다. 많고, 바람도 별로 불지않는다.
어제 등산로와는 딴판이다. 처음착용한 아이젠이 아무래도 어색하다. 눈덮힌 경사면을 오르기가 껄끄럽다. 아직 아이젠이 못 미덥다. 오늘도 선두에 섰다. 교진이형은 누나들과 함께 오르고 나는 먼저 산을 오른다. 스틱을 구입할걸 하는생각이 간절하다. 별 필요성이 없을 것 같아 구입하지 않았는데, 후회막심이다. 꼭 필요한 등산용품인 것 같다. 대신 어제 구한 나무가 스틱을 대신한다. 40여분 오른 뒤 쉴만한 곳을 찾아, 잠시 쉬어간다. 배낭에 카파를 씌우고, 황도캔 하나를 따서 허기와 갈증을 채운다. 산아래로 보이는 풍경이 장관이다. 높이도 올라왔다...

저앞에 동남아에서 온듯한(로타리 산장에서 보았던) 청년 둘이 산을 오르고 있다. 역시 힘들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지도상 거리로는 2km밖에 되지 않는데 왜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경사도 완만하다, 가파르고, 가파른 경사면을 오를때는 두려움도 있다. 여기서 미끄러지면...헉~~ 이를 악물고 산을 오른다. 정상을 얼마 남기지 않아 동남아 친구들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청한다. 우리일행은 이번에 사진기를 가져오지 않았다. 흔쾌히 같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말레이시아인이고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이가 들어보였는데, 이제 18살 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나이론 20살정도 되었겠지..??) 아무튼 그 친구들 표정이 밝아서 좋다. 멀리서 우리나라에 와서 공부하는 것도 그렇고, 그 와중에 우리나라의 명산에 오르려 한 그 마음이 대견하다.

천왕봉에 오른지 3시간이 다되어간다. 저 앞, 저 코너만 돌면 정상이다. 언덕에서 잠쉬 숨을 고르니 교진형과 누나들이 언덕을 오른고 교진형이 먼저 마지막 경사면을 오른다.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바위 경사면인데, 눈이 덮여있고, 밧줄이 하나 매달려 있다. 먼저 천왕봉에 오른 사람들이 내려오며 격려해준다. 마지막 힘을 다해 경사면을 오른다. 중간쯤에서 아래를 보니 누나들도 힘들게 올라오고 있다. 좀만 더 오르자, 좀만...
드디어 경사면을 올랐다. 옆으로 완만한 작은 길이 있고 좀위에 천왕봉 봉우리가 보인다. 아 이제 다 올랐다.!!

11시15분 드디어 천왕봉 정상에 올랐다. 해발 1915m 남한의 육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우뚝솟은 돌위에 천왕봉이라는 글씨가 확연하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야~호를 외친다. 숨을 고르며 천왕봉 한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앉는다. 날씨는 맑고 바람도 세다. 지금 나보다 높은 곳에 있는 남한의 한국인은 아무도 없다. 사방으로 웅장하게 뻗어있는 지리산 자락이 보인다. 저 멀리 남해도 보인다. 장관이다. 아으 사진기를 왜 안가져 왔는지 후회막심이다. 사탕과, 초코바로 허기를 때운다. 천왕봉에서 전화하는사람. 먼곳을 바라보는 사람, 허기를 채우는 사람, 사진찍는 사람 다양하다. 말레이시아 청년 둘이 또 사진을 같이 찍자고 청한다. 누나들하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청년들은 장터목까지 같이 가자고 한다. 우리는 종주일정이고 이 청년들은 오늘 산을 내려간다고 한다. 천왕봉에서 20여분 정도 머문 뒤 장터목으로 향한다. 같이 정상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씩 제갈길을 간다. 말레이시아 청년은 좀 더 있다 출발한다고 한다. 천왕봉의 감격을 뒤로하고 장터목으로 향한다. 이제 여기보다 높은곳은 없으니...맘이 뿌듯하다.

점점 천왕봉과 멀어져간다. 이제부터는 능선을 타는 산행이 많다. 장터목으로 가는 길은 완만한 능선이다. 주위에 보이는 경치가 그야말로 장관이다. 조금 걸어가니 고사목 지대가 보인다. 고사목이 많이 베어진 것 같다고 누나들이 말한다. 도굴꾼들이 자신들의 소행을 감추기 위해 산에 불을 질러 산불이 났던 지역이다. 불에타 죽은 나무들이 외롭게 서있다. 그 모습이 묘한 경치를 만든다. 장관이긴 하지만 왠지 가슴 한구석이 깨름직하다. 개인적으로는 천왕봉에서 장터목으로 가는 코스가 가장 아름다운 산행 코스라 생각한다. 산위를 걷는 기분, 양 옆으로 보이는 하얀 산들과 끝없이 펼쳐진 공간들...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고사목지대를 지나 내리막길이 보인다. 장터목까지 한참 내리막이다. 비료푸대를 안가져온게 후회된다. 부족하나마 그냥 앉아서 내려와 본다. 재미있다. 눈이 정말 많기도 하다.

12시30분쯤 장터목 산장에 도착했다. 바람이 세다. 바로 취사장에 들러 점심준비를 한다. 오늘은 벽소령 까지 가야한다. 장터목에서 벽소령까지는 10km남짓이다. 갈길이 멀다.
점심은 라면4개로 대신한다. 재빨리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산행준비를 한다. 우리보다10분 늦게 도착한 말레이시아 청년, 한명은 이잠이고, 한명은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시 점심을 먹는다. 이친구들은 장터목에서 하산할꺼다. 하산 잘하고 사진 꼭 보내주기 바래!! ^^

1시반쯤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교진이형이 앞서 나간다. 해떨어지긴 전에 산장에 도착해야 한다. 오늘 코스가 만만하지는 않다. 겨울산은 6시면 해가 진다. 6시전에 벽소령이 도착해야 한다. 아이젠을 다시 착용하고 장터목을 출발한다.
사실 오늘 다리에 알이 베길것 같았는데, 다행이 아무렇지 않았다. 근데 내리막길에 왼쪽 무릅이 아프다. 특정한 경사를 내려올때만 아프다. 자꾸 신경이 쓰인다. 아직 갈길이 먼데...
교진이형은 무아이젠인데도 빠른속도로 나아간다. 나름대로 따라가려고 하지만 형은 저만치 앞서 간다. 에이 그냥 내페이스데로 가자...날씨가 정말 좋다. 오늘도 많은 날씨에 바람도 간간히 분다. 추위를 대비해 이것저것 챙겨온 옷들이 후회된다. 배낭무게만 늘려놓은 것 같아서...3시가 다 되어서 세석평전에 도착했다. 저 앞에 교진이형이 먼저 도착하여 쉬고 있다. 세석평전에는 세석산장이 있는데 경치가 그만이다. 능선사이에 넓다란 평전이 있고 그위에 산장이 이쁘게 세워져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석산장이 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장이라나...교진이형과 경란누나랑 앉아서 숨을 고르고 보니 몇분 뒤에 용희누나가 저멀리 보인다. 많이 힘들어 보인다. 하긴 나도 힘든데... 세석에서 잠깐 쉰 뒤, 내가 먼저 출발한다. 벽소령까지는 아직도 6km가 넘게 남았다. 바쁘게 산행을 시작한다.
아이젠이 자꾸 불편하다. 끈이 풀리는 것 같구, 아무래도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벽소령에서 조정해야지, 벽소령까지 가는길은 때론 오르막, 때론 내리막 그래도 무난한 편이다. 눈길을 따라 무작정 걷는다. 걷다보면 봉우리에 오르고 봉우리에 오르면 내리막, 한잠 내려가면 또다시 오르막, 그리고 봉우리, 그리고 내리막...또 땀이 난다. 웃옷을 하나 벗는다. 간간히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무작정 걷는다. 잠쉬 쉴때는 경치를 둘러보고, 한참 걷다보니 산경사면 반대쪽 해가 비치지 않는부분, 눈길을 혼자걷고 있다. 앞에도 뒤에도 아무도 없다. 약간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걷는다. 그냥 걷는다.

좁은 산길을 지나보니 저 앞에 사람들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작은 평전이 있다. 아 이게 왠일인가~~ 저기 평전에 샘터가 있다. 그리고 물이 나오고 있다. 얼른가서 배낭을 내리고 물통에 물을 받아 먹는다. 꿀맛이다. 물이 나오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물을 마시고 잠깐 쉰다. 초코바를 하나 먹는다. 땀을 식히니 또다시 추워진다. 출발해야겠다. 출발하려는데 경란 누나가 온다. 누나가 물을 마시는걸 보고 다시 출발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샘터가 선비샘이라 한다. 물맛 정말 죽였다. 벽소령까지는 이제 2km 남짓 남은 것 같다. 내리막길에 왼쪽 무릅이 아파온다. 다리를 움직여 보고, 그냥 걷는다. 이까짓것 쯤이야~~오후 4시가 지나자 바람이 제법차다. 겉옷을 다시입는다. 벽소령1km푯말이 보인다. 아 다왔다. 힘을 내자... 30여분 걸어가니 저멀리에 벽소령 산장이 보인다. 남은 힘을 다한다. 1km남짓 완만한 길이었다. 어둑어둑 해지고, 곳곳에 낭떠러지가 있다.

5시50분 쯤 벽소령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에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산장으로 들어가 배낭을 내려논다. 10쯤 후에 나머지 일행이 도착했다. 방배정을 하고, 산장아저씨가 주의 사항을 얘기하신다. 별로 걷지 않았으면서 왜이리 힘들어하냐고 농담을 건네신다. 그리고 내일기온이 크게 떨어져 8시 이후에 산행을 하라고 권유하신다. 벽소령에서는 2층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벽소령산장은 크고 깔끔했다. 따뜻하기도 하고, 식수도 마련되어있었다. 짐을 풀고 저녁 준비를 한다. 산에선 해가 있을때는 걷고 해떨어지면 먹고 잔다. ㅋㅋ 오늘 저녁은 부대찌게다, 편하게 옷을 입고 취사장을 향했다. 취사장이 무지 춥다. 밥먹는 내내 추위에 떨면서 먹었다. 옷 두툼하게 입고 올껄...저녁을 맛있게 먹고 산장으로 향하는데(취사장과 취침하는곳의 거리가 좀있다)바람이 무지 차다.-정말 얼어 죽는줄 알았다. 취사장에서 떨고 있었는데 차가운 산바람까지 맞으니, 막 뛰어서 침낭속으로 들어갔다. 침낭속에서도 몇분간은 이가 달달 떨렸다. 정말 무지 추웠다. 지금 생각해도....으으으, 벽소령 산장은 다 좋은데 화장실이 너무 멀다. 화장실 가려면 그 칼바람을 또 맞아야 한다. 저녁을 먹고 몸 여기저기를 풀고 취침 준비를 한다. 2틀째 밤이다. 피곤하긴 하지만 역시 잠이 잘 오지 않는다. 9시 소등, 아래층에서 파스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에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벽소령은 난방이 잘되어서 침낭을 덮지 않고 잤다.

로타리산장-천왕봉-장터목산장-세석평전-선비샘-벽소령(13.4km)


3일차

어느새 잠들었나부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6시정도, 아래층에 사람들이 산행준비를 하나보다, 우리는 7시 기상이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자꾸 거슬린다.

7시기상 아침을 먹었다.
벌써 3일차다 시간이 빨리가기도 한다. 아침을 먹고 산행준비를 시작한다. 아이젠이 자꾸 걸린다. 어제 우리 옆자리에 40대후반(??)정도의 부부가 있었다. 무척 보기 좋았다. 겨울 산을 부부가 함께...나도 나중에 결혼하면 같이 와야지~~^^, 그 부부들도 출발준비를 한다. 아이젠을 다시 고쳐 묶고 산행을 시작한다. 8시40분 어제 산장관리인 아저씨의 말처럼 날씨가 그렇게 춥지는 않다. 벌써 겨울 산의 날씨에 적응이 된걸까?? 오늘은 노고단까지 간다. 다리는 오늘도 알이 베기지 않았다. 날씨는 오늘도 좋다. 약간 구름이 있지만, 날씨는 맑다. 오늘 점심은 뱀사골근처 화개재에서 먹기로 했다. 오늘도 걷는다. 이젠 아이젠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산길, 눈길도 익숙해졌다. 무릅은 여전히 아팠지만, 견딜만 하다. 그러고 보니 2월1일이다. 1월도 벌써 지나갔구나...산행을 시작하면 처음 10여분간은 무지 힘들다. 게다가 첨에 오르막길이라도 만나면 정말 힘들다, 하지만 그냥 걷는다. 걷다보면 힘든건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걷고 있다. 왜??, 그래 가야할 곳이 있으니까, 이유는 없다. 가야할 곳이 있으니까 걷는 것이다.

오늘도 내가 앞서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길이 그다지 쉽지는 않다. 오르막 내리막 번갈아서 나타난다. 산행길 여기저기에 나뭇가지위에 백두대간을 표시하는 리본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백두대간에 대해서도 이번 산행을 통해 그나마 그 의미를 조금 알 수 있었다. 연하천까지 가는길은 거의 혼자 단독 산행을 했다. 일행과 좀 떨어져 산행을 했고, 거리차가 좀 난 것 같다. 10시반 쯤 연하천 산장에 도착했다. 난 산장으로 가지 않고 길가에 배낭을 풀고 일행을 기다렸다. 초코바를 먹으며 기다리는데 일행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 10여분쯤 쉰다음 출발준비를 한다. 혹시나하고 무전기를 켜고 위치를 확인한다. 교진형이 연하천에서 좀 쉬고 가자고 한다. 베낭을 다시풀고 산장의자에 앉았다. 몇 분뒤에 일행이 도착했다.

연하천산장은 지리산에서 가장 아담한 산장 같다. 산장 앞쪽에는 샘물이 흐르고 산장아저씨도 다른곳에 비해 좀 젊은 것 같다. 황구도 한 마리 있다. 덩치큰 놈인데 쓰다듬어 주니, 무척 좋아한다. 일행모두 산장 앞의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둔다. 물을 끓여 커피를 탄다. 나는 라면을 하나 꺼내 뽕라면(일명 봉지라면)을 해먹는다. 쉬는김에 열랑을 보충하자!! 물을 끓이고 있는데 산장아저씨가 문 옆 해가비치는 곳에 앉아 '한강'이란 책을 읽고 있다. 그 옆에 황구가 아주 편한 자세-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잔다. 햇살이 따스한가 보다 황구가 자꾸 몸을 더 편다. 책을 읽은 산장아저씨와 그 옆에 따듯한 겨울햇살을 받으며 자고 있는 황구, 정말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연하천에서 1시간 정도 쉰 뒤. 11시30분쯤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누나들은 나중에 연하천산장에서 꼭 1박을 하자고 한다. 풍경과 분위기가 너무 맘에 든 듯하다. 젊은 산장 아저씨 때문인가?? ^^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오르막 계단이다. 이젠 오르막도 별 신경 안쓴다. 천왕봉 가파른 경사도 올라왔는데 이까짓것 쯤이야... 한발 한발 내딧는다. 연하천에서 뱀사꼴 까지는 4.2km이다. 부지런히 걷는다. 반대 코스로 산행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금요일이라 그런가?? 어제 그제보다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오늘도 날씨가 좋다. 아무래도 산에 오기전 목욕재개를 해서 그런가?? ㅋㅋ 날씨가 정말 좋다. 웃옷을 또 하나 벗는다. 산행 내내 쉴때는 겉옷을 입고 산행 할때는 면티에 남방하나만 입고 산행을 했다. 바람이 좀불면 겉옷을 입긴했지만, 그리고 산행내내 썬글라스를 착용했다. 누나들이 벌써부터 얼굴이 탓다고 말한다. 거울보기가 힘들어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타긴 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3일째 씻지를 못하고 있다. 머리엔 기름이 좔좔 흐르고 얼굴도 꽤재재 하다. 그래도 창피한 건 없다. 나만 그런게 아니니까!! ^^

가끔 봉우리에 올라 내가 걸어온 길을 보면 저 멀리서 천왕봉이 보인다. 와~ 저길 어떻게 걸어왔는지... 까막득하게 보이는 저 곳을 내가 진정 걸어왔단 말인가, 이 두 다리로...내가 대견하다. 연하천에서 뱀사골까지는 그래도 난코스이다, 내리막과 오르막이 번갈아 나타나고 산행길도 만만하지가 않다. 하지만 뭐, 역쉬 그냥 걷는다. 한발 한발 내딧으면 어느새 봉우리에 오르고 목적지에 다다르게 된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진 않지만...

연하천을 출발하고 2시간이 좀 지나서 화개재에 도착했다. 뱀사골은 화개재에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우리는 산장으로 가지 않고 화개재에서 점심을 먹는다. 먼저 온 아저씨한분이 쉬고 있었다. 연하천에서 뵈었던 분이다. 우리는 점심 먹을 준비를 했다. 점심은 라면, 물이 좀 부족하다, 쉬고계시던 아저씨가 식수를 건네주신다. 자기는 여분이 더있다고, 그러면서, 라면을 끓이려 하니까, 그 아저씨왈 "또 먹어요??" 하시는게 아닌가, 아 이런 민망할때가...연하천에서 뽕라면 먹는걸 보신 모양이다. "아녀 아 그땐 저만 먹구여..." 아저씨가 웃으신다. 우리 일행도 같이 웃는다. 라면물을 올리고 화개재를 둘러본다. 산행을 하면서 이런 지형을 많이 본다. 평전같이 평평한, 산위에 이런 평평한 지대가 있는것도 참 다행이다. 쉬기좋고, 경치구경하기도 좋다. 난 저만치 사람의 발자국이 닿지 않은 곳으로 가서 전화 통화를 시도해본다. 여긴 전화가 된다. 사실 지리산 내에선 전화가 잘 되지 않는다. 세석쯤에서 잠깐 통화가 되었고 지금 여기서 전화가 된다. 집과 친구들한테 전화를 해 안부를 묻는다. 이 산중에 가까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통화를 마치고 라면을 먹는다. 취사장이 아닌곳에서 첨으로 먹는 라면이다. 역시 맛있다. 산에와서 몸무게가 좀 빠질줄 알았는데, 아니다, 더 찔껏 같다. 밥맛도 좋고, 힘드니까 많이 먹게 된다. 물론 내 얘기지만..., 암튼 라면을 국물까지 완샷을 하고 다시짐을 챙긴다. 3시쯤 출발 준비 노고단으로 향한다. 어제 뱀사골을 지나면 500여개가 넘는 나무계단이 있다고 했다. 어제 그말을 듣고 조금 걱정을 했는데, 바로 그계단이 저 앞에 보인다. 헉~스,
계단이다~~역시 선두에 섰다. 계단을 하나하나 오른다. 첨엔 가뿐하다. 그러다가 점점 속도가 느려지고 쉬는 시간도 많아진다. 정말 계단이 많긴 많다. 우뛰...뭐 화엄사에 비하면 세발에 피겠지만, 그래도 계단이 참 많기도 하다. 계단을 오르고 나중에 누나들한테 들으니 계단이 570여개라나. 누군가가 그렇게 써놓았다고 했다. 계단 참 많기도 많다.

계단을 오르고 다시 걷는다. 걷다보니 또 봉우리가 나타난다. 아쒸~ 노고단까지는 쉽다고 했는데... 봉우리를 오르니 이상한 구조물이 있다. 길을 멈추고 가까이서 보니 삼도봉이라 써있다. 즉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가 만나는 지점, 철구조물을 가운데 두고 여기로 가면 전라남도, 요기로 가면, 전라북도, 저기로 가면 경상남도다. 재미있다. 삼도봉에서 오늘 도착지인 노고단이 저멀리 보인다. 한숨이 절로 난다. 까마득한테 오늘 안에 갈 수 있을지...교진형에게 물어보니 충분히 간다고 하신다. 또한번 인간이 대단하구나 하고 느낀다. 삼도봉을 뒤로하고 다시 움직인다. 역시 6시 전에는 노고단에 도착해야 한다. 삼도봉을 지나 몇 번의 오르막을 지나고 나니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가 한참이다. 임걸령을 지나 점점 노고단에 가까워진다. 거리를 알리는 푯말에 자꾸 눈이 간다. 아 이정도 남았구나, 빨리가자...

임걸령을 지나, 돼지평전에 도착했다. 멧돼지가 자주 나타나 놀다 가는곳 이라나... 그래서 돼지평전이라는 설명문이 보인다. 물론 멧돼지는 보지 못했다. 간혹 동물 발자국은 볼 수 있었지만, 토끼나, 돼지는 보지 못했다.

돼지평전 아래의 다른 평전에서 쉬고 있는데, 저쪽에서 5-7명정도의 인원이 등산복을 맞춰 입고 우리와 반대쪽으로 산행을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산행의 끝자락이고 그들은 산행의 시작이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전에 앞서가는 여자분 뒤로, 대장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우리가 쉬는 것을 보고 일행들에게 "쉬지말고 가자"라고 말한다. 하긴 뭐 이제 시작이니 열심히 가야지...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근데 그 뒤로 남자들의 짐이 장난이 아니다. 헉~~ 뭐 산행시작이라 짐이 많겠지만. 우리 일행은 그 광경을 보고 와 우리는 짐이 많이 줄어서 다행이다~~라며 한바탕 웃었다.

그렇게 좀 쉬고 다시 걸었다. 이제 노고단도 멀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완만한 길이다. 바람도 시원하고 길도 시원하다. 점점 노고단이 가까워 진다. 어느새 이렇게 왔는지...삼도봉에서는 아득하기만 했는데 저앞에 노고단 돌담이 보인다. 사람들도 보이고, 이젠 1km정도 힘들긴 하지만 남은 힘을 다한다. 감회가 새롭다. 실질적으로 노고단까지가 지리산 산행 코스의 끝이 아닌가...점점 노고단이 다가온다. 길 끝자락에 마지막 오르막길...한발한발 내딧으니, 노고단에 도착했다...'천왕봉까지 30여km'푯말이 또 눈에 들어온다. 많이도 걸어왔다. 5시30분쯤 도착, 늦지 않게 도착했다. 바람이 세다. 노고단 돌담에 올라본다. 저 멀리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아~~기분이 좋다. 바람이 차지만 시원하다.

노고단 산장은 저 아래 있다. 돌담에서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형, 누나들이 사라졌다. 헉, 어디갔쥐?? 부랴부랴 따라 내려갔다. 산장까지는 계단길이다. 눈이 덮여있어, 이게 계단인지 아닌지 구별은 되지는 않았지만 계단이 맞다. 5시40분쯤 노고단산장에 도착 짐을 풀고 저녁준비를 한다. 노고단 산장, 겉으로는 무척 좋아 보였지만, 잠자는 곳의 시설은 그다지... 침상이 무척 짧았다. 다들 숏다리로 알았는지...뭐 그렇다고 롱다리도 아니지만, 침상이 짧았다. 머리를 침상 끝 턱에 대고 자야할 정도로...암튼 대충 배낭을 풀고 저녁을 지었다. 노고단엔 취사장에 식수가 나온다. 머리를 감고 싶었지만, 세면, 세탁금지라는 푯말이 떡하니 서있다. 오늘 저녁은 김치찌개다. 그리고 아마도 오늘로서 밥을 지어 먹는건 끝일꺼다, 짐이 점점줄어 좋다. 김치찌개가 무척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취침준비를 한다.

오늘은 8시20쯤 자리에 누웠다. 역시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노고단은 산장같지가 않다. 차도 올라오고, 물론 지금은 눈이 많아 못 올라오지만...당일치기로 온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왠지 지난밤의 벽소령이나, 로타리처럼, 산속 같은 분위기가 아니고, 유원지에 온 듯한 그런 느낌이다. 아무튼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다.

벽소령-연하천-화개재-570계단-삼도봉-노고단(14.1km)


4일차

이번 지리산 산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7시기상, 어제 먹다 남은 밥과, 찌개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다음 오늘 일정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냥 화엄사로 내려갈 것이냐?? 고리봉을 넘어 만복대, 정령치, 고촌으로 갈 것이냐?? 개인적으로는 이왕 산행을 시작한거, 만복대를 오르는 길을 택하고 그런 의사를 밝혔다. 결국 다수의 의견이 모아져 고리봉을 지나 만복대에 올라 고촌으로 빠지는 일정을 택했다. 오전 휴식을 넉넉히 취했다.

이젠 음식도 거의 바닥이다. 어차피 산을 내려가면 식당에서 밥을 먹을 것이고, 정령치에서 먹을 라면만 있으면 된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쌀이 많이 남았다. 내가 많이 가져온 것이다. 아무래도 무게가 많이 나가 어느 정도를 따로 담아 산장아저씨에게 필요한사람 주라고 전해줬다. 그러니까 산장아저씨가 고맙다며 원두커피를 권한다. 난 원래 커피를 먹지 않지만 고맙게 커피를 받아먹었다. 덕분에 한잔에 1000원하는 원두커피를 일행모두가 마실 수 있었다.

짐을 챙기고 의자에 앉아 아이젠을 착용했다. 날씨는 오늘도 맑구나!! 목욕을 하길 잘했어~~^^, 9시반 노고단 산장을 떠난다. 길을 따라 성삼재 휴개소까지 간다. 차가 올라올 수 있는 도로인데, 눈이 너무 많아 차는 다닐 수 없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눈 덮인 도로를 따라 많은 사람이 올라오고 내려간다. 역시나 도로를 내려오면서 비료포대 생각이 간절했다. 40여분정도 내려와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했다. 차는 성삼재 휴게소까지 올라오는 듯 했다. 역시 사람들이 조금 있다. 우리는 성삼재에서 좀 쉬었다. 햇살이 따듯해 앉아있는 와중에 졸음이 오기도 했다.

성삼재에서 교진이형이 일회용카메라를 샀다. 성삼재에서 사진을 한방 찍고 만복대를 향해 출발하였다. 성삼재 휴게소를 뒤로하고 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만복대로 가는 등산길이 보인다. 우리는 도로에서 등산로로 발길을 옮겼다. 이쪽 등산로는 아직 등산객이 많이 찾지 않은 듯 하다. 눈이 장난이 아니다. 거의 허벅지까지 온다. 어제까지의 산행과는 다른 맛이다. 만복대 등반길 초입부분에 묘가 하나 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산이 좋아 산에 잠들다...'라는 비문이 있고, 아마도 등산 중에 사고를 당한 것 같았다. 잠시 묵념을 한 뒤 다시금 산행을 시작하였다.

만복대 까지는 6KM남짓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눈 덮인 산길... 허벅지까지 쌓여 있는길, 걷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재미있었다. 조금 가고 있으니 뒤쪽에 다른 등산객들이 만복대를 오르고 있다. 조금 지나 평원에서 사진을 또 찍었다. 누나들이 아직 사람 발자국이 없는 눈위를 걸으며 좋아한다. 눈이 정말 예쁘다. 뒤따라오던 일행이 먼저 출발하고 우린 여유롭게 출발한다. 눈도 많고, 사람이 많이 지나가지 않아 길도 별로 좋지 않다. 또 해가 비치는 곳은 눈이 녹아 질퍽질퍽하기도 한다. 산행이 쉽지는 않다. 작은 고리봉을 넘으니 작은 평원이 또 눈에 들어온다. 역시 눈이 많다. 우리를 추월했던 일행들은 저만치 먼저 가는 것이 보인다. 만복대도 까마득히 저 너머에 보인다. 휴~~저길 언제 오르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걷는다.

고리봉을 넘으니 어느 정도 능선길이다. 하지만 역시 해가 비치지 않는 곳엔 눈이 많이 쌓여있고, 역시 대관길을 알리는 리본이 여기저기 달려있다. 만복대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지점, 뒤를 돌아보니 제법 만복대를 오르는 등산객이 많다. 아마도 당일이나 1박2일 일정으로 등산을 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만복대에 오르기전의 어느 봉우리에 아까 우리를 지나쳤던 등산객들이 짐을 풀고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는 힘들게 올라가, 만복대까지 안올라 가시냐고 물으니, 그분들은 여기까지 만 오를것이라며, 나에게 포도주 한잔을 건네 주셨다. 역시 내가 선두에 있었기 때문에 뒤에 일행이 있다며, 뒤에 오시는 일행에게도 나눠주길 부탁하며 포도주를 받아 마셨다. 아~~ 그 맛이란...정말 죽여줬다. 마침 목도 마르고, 몸엔 땀이나고, 정오 때라 햇살도 강했는데, 달착지근 하면서 시원한 것이 정말 꿀맛이었다. 감사의 말을 전하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근데 나중에 안 사실인데, 뒤에 오던 일행은 포도주를 못 먹었다고 한다. 사실 나에게 따를 때 좀 많이 따른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양이 모자랐던 모양이다. 괜히 형, 누나들한테 미안했다. 나혼자 그 맛난걸 얻어 먹어서...^^

등산길에 오른지 2시간 반 여가 지나니 저 앞에 만복대가 보인다. 이미 나를 앞서 지난 다른 등산객도 많다. 하긴. 난 지금 종주고, 개다게 배낭도 크고, 저 사람들은 배낭도 작고, 오늘 산행을 시작한거니까... 스스로 위안하긴 했지만, 나를 앞서가는게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다. 더 이를 악물고 만복대에 오른다. 만복대에 가까이 다가서자, 능선을 따라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계단을 하나, 하나, 올라 드디어 만복대에 도착하였다. 그때 시간이 1시 45분이었다. 만복대는 해발1433M이다. 만복대에 오르니 천왕봉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만복대에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휴식을 취한 뒤, 사진을 몇 방 찍었다.
이제 또 내려가야 한다. 이젠 정말 하산길이다. 또다시 여기보다 높은 봉우리는 없다...

2시가 좀 지나 만복대를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다음 목적지는 정령치. 정령치 역시 휴게소가 있다. 만복대에서 정령치를 가는 길은 그야말로 눈길이었다. 눈이 어찌나 많은지, 눈길을 걷는게 아니다. 눈에 밀려 가는 것 같았다. 정말 눈이 많았다. 누누히 말하지만, 지리산 산행과는 또 다른, 느낌 아직 사람의 때가 덜 묻은 듯한...그런 느낌이었다. 아마 이쪽 코스의 산행을 포기했다면 무지 아쉬워했을 것 같다. 힘도 많이 들긴했지만 눈과 어우러진 광경은 또하나의 장관이었다.

눈과 씨름하며 내려오기 1시간여 저앞에 정령치 휴게소가 보인다. 정령치도 차가 올라오는 도로상에 있다. 역시 눈이 와 차는 못 올라오는 듯했다. 휴게소에 먼저 도착한 등산객이 많다. 눈이 많이 와서 인지 휴게소는 문을 닫아 놓았다. 우리는 휴게소 문앞에 자리를 잡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남은 라면은 세 개, 산에서 마지막으로 해먹는 식사다. 정령치는 바람이 많이 불고, 땀이 식기 시작하니 무척 추웠다. 추운날씨에 먹는 라면맛은... 아마도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찬 도시락을 먹는 다른 등산객이 어찌나 안쓰러워 보이던지, 정말 맛있게 라면을 먹었다.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4시쯤 휴게소를 출발한다.

정령치 부터는 도로길이다. 또다른 고리봉을 넘는 길이 있긴 하지만, 그냥 도로로 하산하기로 했다. 도로 길을 내려오는데, 역시 눈이 장난이 아니다. 지지난 주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눈이 오긴 많이 왔나보다. 도로가 온통 눈이다. 다른 등산객은 다른 고리봉으로 하산하는 것 같다. 내려오는길에 사람을 만날 수 가 없었다. 눈 덮인 도로를 내려오며, 그 동안의 지리산 산행을 머리속으로 떠올려본다. 도로길을 내려 오는것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한시간 정도 내려오니 정령치 휴게소가 또 까마득히 저위에 보인다. 아래로는 고촌 마을이 보이고...이제 정말 산행이 끝나간다. 또 머리속으로 생각이 많아진다. 아 이제 다 와가는구나. 지리산을 종주했구나, 정말 아름답다, 담에 또 와야지, 배고프다, 힘들다...등등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1시간30여분을 내려오니 고촌 마을에 다다랐다. 5시40분 우리는 선유산장에 자리를 잡고 짐을 풀었다. 선유산장은 고촌 마을에 있는 식당으로 식당과 민박을 겸한다. 교진형과, 누나들은 전에 함 와봤다고 한다.

짐을 풀고 왠 만큼 정리한 다음, 저녁 먹기전에 맥주와 파전을 먹었다. 아직 씻지 못해서 몸은 찌뿌둥했지만, 시원한 맥주맛은 역시 잊을 수가 없다. 왜 이렇게 못잊는게 많은지...원...식당에는 다른 등산객이 많았다. 단체로 온사람들 같은데 꽤나 시끄럽고 번잡했다. 사람들이 얼마간 빠져나간 다음, 저녁을 먹으며 술을 한잔씩 한다. 산행간의 이야기나, 이전 저런 얘기로 산행간의 고단함을 달래며 12시가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정말 너무 좋았다. 지리산도 좋았지만, 함께 했던 형, 누나 모두 모두 좋았다. 정말 좋았다...

노고단산장-성삼재-고리봉-만복대-정령치-고촌(약13KM)


5일차

2월3일이다. 7시반에 일어났다. 방바닥은 따듯했지만, 방에 웃풍이 있어 코가 맹맹하다. 산에서 잘 땐 멀쩡했는데, 내려와서 자니, 감기가 걸린 것 같다. 이것 참~~

다시 짐정리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물론 어제 머리도 감고 발도 씻었다. 무지 상쾌하다. 오늘도 역쉬 날씨가 좋다. 교진이형이 나한테 운이 좋다고 한다. 이런 좋은 날씨 만나기도 힘들다구...뭐 나뿐만 아니라, 형, 누나들도 운이 좋은 거지 뭐~~^^, 9시10분쯤 산장 앞에서 남원행 버스를 탓다.

10시 쯤 남원에 도착 늦은 아침을 먹는다. 남원역 근처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원래는 짜장면을 먹으려고 했는데, 중국집이 문을 열지 않았다. 서울행 기차는 11시55분 기차였다. 아침을 먹고 난 뒤 시간이 좀 남아서, 남원역 앞에서 차를 마시며, 얘기를 했다. 누나들은 남원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대구행 버스를 타야한다. 11시40분쯤 용희누나와 경란누나는 버스를 타러 가고 나는 교진형과 기차에 올랐다.

차창사이로 산이 보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산꼭대기에 시선이 멈추어 진다.

저긴 얼마나 높을까...^^

차창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오후4시쯤 기차는 서울역에 도착했다. 교진형은 마을버스를 타고, 난 전철을 타고 간다.

교진이 형하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이로써 4박5일간의 지리산산행이 그 막을 내렸다...



종주를 마치며...

나에게 있어서 첫 지리산 종주...첫번째로 지리산을 종주했다는 것 자체로 뿌듯하다. 그리고 함께 종주한 교진형, 용희누나, 경란누나와 좀더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다. 더불어 그간 나에게 있었던 내 주위의 공기의 불순함을 이번 산행을 통해 어느 정도 정화시킬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완전 정화를 시키고 싶었지만, 그건 나의 착각인 듯 싶다. 산에 갔다 온다고 내 주변의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산에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것 같다. 단지 산에서의 상쾌함, 고요함, 아름다움, 웅장함, 외로움...그때 그때의 느낌에 충실하면 될 것 같다.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 ?
    부도옹 2002.02.24 15:23
    함께한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항상 밝고 건강하시길 바라며....
  • ?
    강의분 2002.07.17 00:49
    정말 함께 한 듯 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실감나는 산행기 였어요.저는 이번주에 지리산으로 휴가를 가려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답니다.감사하구요,행운이 가득한 님이 되길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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