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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주고 싶지 않은 이름 선유동(선유동~ 내원골)


지리산을 생각하는 옛 사람들의 의식에 유독 이상향의 전설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서구식 척도인 크기와 넓이만으로 계량해서는 찾아내기가 어려울 듯 싶다. 내 생각엔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동양적사상이 기초가 되어야 하고 그런 내면적인 가치관이 현실세계와 부딪치면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이 민중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향에 대한 전설이나 기록이 지리산 언저리에서도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곳이 삼신봉 주변이요, 그중에서도 화개동천을 중심으로 한 주변 계곡에 이런 류의 전설이 가장 많이 분포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것은 아마도 남쪽, 양지, 줄기의 중심, 넓고 아름다운 계곡과 터, 유불선과 관련된 종교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성된 잔재물일 것이다.

선유동仙遊洞을 뜻 그대로 풀이하자면 ‘신선들이 노닐던 곳’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이 아닌 신선, 그시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경지, 영생과 도락을 얻을 수 있는 무릉도원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상위 개념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살펴보면 화개동천에 처음 나타난 이는 최치원이었다. 일찍이 당나라에서 과거를 급제하고 벼슬을 지내던 그가 고국인 신라땅의 중흥을 위해 내려왔지만, 국운은 이미 기울고 민심이 흉흉한데다 조정에는 간신배만이 가득하였다. 의로운 선비이기는 하였으나 투사가 아니었던 그는 현실의 모순과 맞서 싸움을 택하는 대신 세속과 인연을 끊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의 마지막 생은 가야산 해인사에서 마쳤다는 기록도 있긴 하지만, 혹세의 사람들은 그가 지리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말을 한다.

그의 기록으로는 쌍계사 부근의 쌍계석문雙溪石門이란 각자와 국보인 진감국사비, 불일폭포오르는 길의 환학대, 그리고 신선이 되기 전에 공부를 했다는 옥천대가 있고, 신흥마을 바위에 새겨진 삼신동三神洞, 속세의 번뇌를 씻고자 했던 세이암洗耳岩, 왕성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푸조나무 등이 있다.

다음이 고려시대 파한집을 쓴 이인로다. 이인로가 살던 시대는 난세중의 난세였다. 이자겸의 난을 필두로 묘청의난, 무신의 난이 일어나면서 최씨 무신정권이 국가권력을 좌지우지 하였고, 지방에는 굶어 죽는 자와 도적, 그리고 농민들의 봉기가 창궐하였다. 게다가 이 시기는 몽고의 연이은 침공으로 국토마져 유린되었던 혼란기였다. 이러한 때에 문신으로 무신들과 타협을 마다하고 그가 선택한 곳은 말로만 전해 듣던 무릉도원 청학동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 이상향을 찾아내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고 만다. 혹자들은 최치원이나 남명처럼 자연인으로 살면서 글을 짓고 후학을 양성했더라면 더 멋진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 말하지만 도피와 타협은 우리가 지금 이렇게 편안한 자세로 논할 게제가 못된다.

그후 많은 족적을 남긴 이가 바로 휴정 서산대사이다. 지리산에서 깨달음을 얻은 대사는 현존하는 대부분의 기록이 신흥사에 머물렀던 기간 중에 쓰여진 것들이다.

그의 문집 청허당집을 보면 덕사德士 옥륜과 도우道友 조연 두 사람이 화개동천에 다리를 하나 놓고 그 위에는 다섯 칸의 누각을 지어 붉은 빛으로 색칠을 한 후 다리 이름을 홍류교, 누각 이름을 능파각이라 하였다. 지금의 신흥교 부근이다. 이 부근 경치를 그린 휴정의 시를 보면

「畵閣飛雲橋臥水 그림같은 누각에 구름이 날고 다리는 물 위에 누웠으니,
山僧每日踐長虹 산중의 스님들은 매일 긴 무지개를 밟는다 (중략)
萬古乾坤一笑中 한없는 세월 세상사가 한 웃음 속에 있네」

즉 휴정의 신선세계는 홍류교와 능파각이었고 그곳이 신선궁이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의 남명 조식은 불일암에 올라 주위 경치를 둘러보고는 이곳을 청학동이라 말한다. 선답자(남효온, 김일손)들의 기록에도 언급이 되어있는 걸 보면 아마도 그들의 기행록을 보았던 듯 싶다.

그가 읊은 청학동의 모습은 ‘허공에 매달린 암자, 동쪽에 가파르게 떠받친 듯 솟아있는 향로봉, 서쪽에 만길 낭떠러지로 우뚝 솟은 비로봉, 청학 두 세 마리가 바위틈에 살며 하늘을 날고, 그 아래 학연은 까마득하여 보이질 않는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전설이 가득한 곳과 함께하고 있는 선유동, 그런데 문제는 이 계곡에만 어울릴 것 같은 명칭의 역사가 고작 30여년이라는 것이다.

이 골짜기에 옛 이름이야 당연히 있었겠지만, 이 계곡을 다녀온 지금 난 선유동이라는 이 이름을 잃지 않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다. 그것은 욕심부려 지키려는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다. 새로 생겨난 지명이 어느 개인의 심금을 울리는 기록에서 시작되었을 지언정 지리산 줄기의 어느 계곡에 이 이름처럼 어울리는 명칭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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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호정 2006.02.15 20:28
    구름모자님!
    님의 글이 오르기를 수시로 드나들며 기다렸지요
    화개골에서 유숙하지못하면, 청학동 아래에서
    한 밤을 지새는 일이 고향답사의 일정이 되었습니다
    토지 문학제의 밤, 어둔 길 40여분 돌아와 청학골을 머리로 유숙하며 문인들과 짧은 식견을 나눴는데...님의 글을 읽고 깊은 역사를 알기를 오직 바랍니다 ANNAPOLIS 에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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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로 2006.02.16 10:50
    신선이 노닐던 곳 저는 언제나 가보나요..^^
    지리산이 현실적으로 멀어지면서
    마음은 더 그곳으로 달려가니....원
    여유 생기면 지리쪽에 예쁜 집 지어 보고 싶군요...^^
    항상 댓글은 못 남기지만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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