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깊은 산속 연못 찾아,,,
o 산행일 -2006.10.15. 06:20~15:40
o 어디로 - 거림~와룡폭포~시루봉~청학연못~영신사지~음양수~북해도교~거림
o 누구랑 - 지.산님들과
06:20 거림 출발
06:55 첫번째 계곡 건너는 곳
07:55 와룡폭포
10:20 청학연못
11:05 영신사지
13:05 음양수
14:25 북해도교
15:40 산행종료
휴식및 점심시간 포함
o 왁자한 웃음소리를 귓전으로 흘리며 전날 산행의 피로를 풀고
눈을 뜨니 부지런한 몇 분이 벌써 아침준비를 해놓았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며 서둘러 준비하여 길상사옆
금줄을 넘어서 고요한 도장골로 걸음을 옮긴다.
어제 하루 종일 지리의 품속에 안겨 가을 향기에 취해 보낸 시간도
잠시 또 다시 호젓한 숲속을 휘저어 나가니 가슴이 시원해진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서린 가슴 아픈 사연을 담은 안내간판을 무심코 지난다.
이마에 땀이 살짝 맺힐 때쯤 계곡을 건너는 너른 바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님들을 기다린다.
가을이 살포시 내려앉은 도장골 시원한 계곡물에 손을 적셔 땀 닦고
배낭 비우기 작전을 구사하는 님들 덕분에 여러 과일로 입을 호사시킨다.
도장골의 아침
계곡 건너 이어진 산길이 잠시 계곡으로 내려왔다 다시 산길로 이어지고
작은 3거리에서 직진해야 할 곳에서 좌측 오르막(작은 도장골)으로 잠시
오르다가 뒤돌아 나온다.
키 작은 산죽 사이로 난 오르막을 잠시 넘고 무심코 길을 따르다가
와룡폭포를 지나버려 다시 뒤돌아 폭포로 내려선다.
와룡폭포
와룡폭포에서
줄어든 수량에 폭포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폭포상단 바위에 배낭내리고
한창 농익은 가을 정취에 취하고 여러님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냥 그대로 가는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 들고
싶을 정도로 정겨운 시간이다.
한동안 휴식 후 배낭을 메는 선두그룹에 후미로 올라온 분들의
원망소리가 터져 나오고
좌측계곡(촛대봉골)으로 길을 잡아 오르다 능선으로 붙는
지점에서 물 보충하고 잠시 쉰다.
제법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르고 작은 바위도 넘어 촛대봉 능선에 올라서니
나무사이로 멀리 천왕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배낭내리고 쉬는 시간이면 연신 웃음보따리를 풀어놓는 님이 있어
힘든 오르막을 오른 고행도 싹 잊어버리게 하고 시루봉 제법
큰 바위를 가뿐하게 올라선다.
저만큼 촛대봉이 눈 안에 들어오고 일망무제 툭 트인 지리의 능선들이
긴 선을 그리며 아래로 내달리고 있다.
키 작은 나뭇가지를 헤치며 잠시 진행하다가 갈림길이 이리저리 흩어진
곳에서 좌측으로 길을 잡아 연못 쪽으로 내리막 내려서는데 올라오시는
한 분이 연못이 어디쯤인지 묻는다.
잔돌평전 광활한 곳에 이런 신비한 연못이 자리하고 있어 여러 전설을 잉태시킨다.
청학연못
연못 위 바위에 새긴 각자는 비바람에 풍화되어 그 원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다시
길을 이어 서쪽으로 고도를 유지하며 한동안 돌아 나오니 음양수샘 가는
3거리로 정확히 나온다.
잠시 세석 대피소 방향으로 오르다 영신사지라 짐작되는 곳으로 올라
점심시간을 가진다.
옛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영신사지의 기록에 의지해 옛 절터를 찾아
치열하게 노력하신 분들의 노고에 의하여 최근 영신사지로 판명 하였으나
다른 견해를 표명하시는 분도 계신다.
영신사지에서( 사진 우측 둥근 바위-좌고대, 중앙 아래 바위-가섭대)
좌고대.
"가섭전(迦葉殿)의 북쪽 봉우리에는 두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른바 좌고대(坐高臺)라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밑은 둥글게 서리었고 위는 뾰족한 데다 꼭대기에 방석(方石)이
얹혀져서 그 넓이가 겨우 한 자[尺] 정도였는데, 중의 말에 의하면, 그 위에
올라가서 예불(禮佛)을 하는 자가 있으면 증과(證果)를 얻는다고 한다.…"
*가섭대
"절의 북쪽 비탈에는 석가섭(石迦葉) 일구(一軀)가 있었다.
세조 대왕(世祖大王) 때에 매양 중사(中使)를 보내서 향(香)을 내렸다.
그 석가섭의 목[項]에도 이지러진 곳이 있는데,
이 또한 왜구(倭寇)가 찍은 자국이라고 했다.
아, 왜인은 참으로 구적(寇賊)이로다.
산 사람들을 남김없이 도륙했는데,
성모와 가섭의 머리까지 또 단참(斷斬)의 화를 입었으니,
어찌 비록 아무런 감각이 없는 돌일지라도 인형(人形)을
닮은 때문에 환난을 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오른쪽 팔뚝에는 마치 불에 탄 듯한 흉터가 있는데,
이 또한 “겁화(劫火)에 불탄 것인데 조금만 더 타면
미륵(彌勒)의 세대가 된다.”고 한다.
대체로 돌의 흔적이 본디 이렇게 생긴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황괴(荒怪)한 말로 어리석은 백성을 속여서,
내세(來世)의 이익(利益)을 추구하는 자들로 하여금 서로
다투어 전포(錢布)를 보시(布施)하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이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서"
저만큼 촛대봉
한동안 따스한 가을 햇살아래 맛있는 점심과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고
거림으로 몇 사람 내려가고 창불대를 향하여 서쪽 남부능선으로
길도 없는 곳을 치고 오른다.
무성한 잡목이 앞을 가로막고 잠시 후 남부능선을 따라 내리막 진행하니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서있는 창불대에 도착한다.
창불대
*창불대
"저물녘에 창불대(唱佛臺)를 올라가 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하도 높아서 그 아래로는 밑이 보이지 않았고,
그 위에는 초목은 없고 다만 철쭉[躑躅] 두어 떨기와 영양(羚羊)의
똥만이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 두원곶(荳原串), 여수곶(麗水串), 섬진강(蟾津江)의
굽이굽이를 내려다보니,
산과 바다가 서로 맞닿아 더 기관(奇觀)이었다.……
" 김종직 -유두류록에서
창불대에서
까마득한 절벽위에서 선인들의 발자취를 느껴보고 건너 절벽위로 올라
사진을 찍는 분이 있어 왁자한 농담이 오간다.
세석에서 음양수 내려오는 길을 만나고 가을 가뭄에 음양수 한쪽 샘이 말랐다.
잠시 쉴라치면 어느새 한쪽에선 주님 찬양의 시간을 가지고,,,
내리막을 잠시 따르다가 길 왼쪽 조그만 돌에 하얀 동그라미 그려진
옆으로 난 샛길로 들어서 음양수골로 내려선다.
무성한 산죽사이로 길이 끊기는 곳이 간간히 나타나고
계곡을 몇 번 건너고 나서야 북해도교에 도착한다.
북해도교
마지막 과일 깍아 나누고 약 3km 남은 내리막 내려서는데 한분이
거의 뛰는 걸음으로 내려서 흐르는 땀 훔치며 거림 매표소
조금 전 계곡에 뛰어든다.
“으 차거워“
차가운 계곡 물에 몸 담그고 속세에 찌든 모든 잡념들을 떠내려 보내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매표소 내려서며 산행 종료한다.
o 산행일 -2006.10.15. 06:20~15:40
o 어디로 - 거림~와룡폭포~시루봉~청학연못~영신사지~음양수~북해도교~거림
o 누구랑 - 지.산님들과
06:20 거림 출발
06:55 첫번째 계곡 건너는 곳
07:55 와룡폭포
10:20 청학연못
11:05 영신사지
13:05 음양수
14:25 북해도교
15:40 산행종료
휴식및 점심시간 포함
o 왁자한 웃음소리를 귓전으로 흘리며 전날 산행의 피로를 풀고
눈을 뜨니 부지런한 몇 분이 벌써 아침준비를 해놓았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며 서둘러 준비하여 길상사옆
금줄을 넘어서 고요한 도장골로 걸음을 옮긴다.
어제 하루 종일 지리의 품속에 안겨 가을 향기에 취해 보낸 시간도
잠시 또 다시 호젓한 숲속을 휘저어 나가니 가슴이 시원해진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서린 가슴 아픈 사연을 담은 안내간판을 무심코 지난다.
이마에 땀이 살짝 맺힐 때쯤 계곡을 건너는 너른 바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님들을 기다린다.
가을이 살포시 내려앉은 도장골 시원한 계곡물에 손을 적셔 땀 닦고
배낭 비우기 작전을 구사하는 님들 덕분에 여러 과일로 입을 호사시킨다.
도장골의 아침
계곡 건너 이어진 산길이 잠시 계곡으로 내려왔다 다시 산길로 이어지고
작은 3거리에서 직진해야 할 곳에서 좌측 오르막(작은 도장골)으로 잠시
오르다가 뒤돌아 나온다.
키 작은 산죽 사이로 난 오르막을 잠시 넘고 무심코 길을 따르다가
와룡폭포를 지나버려 다시 뒤돌아 폭포로 내려선다.
와룡폭포
와룡폭포에서
줄어든 수량에 폭포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폭포상단 바위에 배낭내리고
한창 농익은 가을 정취에 취하고 여러님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냥 그대로 가는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 들고
싶을 정도로 정겨운 시간이다.
한동안 휴식 후 배낭을 메는 선두그룹에 후미로 올라온 분들의
원망소리가 터져 나오고
좌측계곡(촛대봉골)으로 길을 잡아 오르다 능선으로 붙는
지점에서 물 보충하고 잠시 쉰다.
제법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르고 작은 바위도 넘어 촛대봉 능선에 올라서니
나무사이로 멀리 천왕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배낭내리고 쉬는 시간이면 연신 웃음보따리를 풀어놓는 님이 있어
힘든 오르막을 오른 고행도 싹 잊어버리게 하고 시루봉 제법
큰 바위를 가뿐하게 올라선다.
저만큼 촛대봉이 눈 안에 들어오고 일망무제 툭 트인 지리의 능선들이
긴 선을 그리며 아래로 내달리고 있다.
키 작은 나뭇가지를 헤치며 잠시 진행하다가 갈림길이 이리저리 흩어진
곳에서 좌측으로 길을 잡아 연못 쪽으로 내리막 내려서는데 올라오시는
한 분이 연못이 어디쯤인지 묻는다.
잔돌평전 광활한 곳에 이런 신비한 연못이 자리하고 있어 여러 전설을 잉태시킨다.
청학연못
연못 위 바위에 새긴 각자는 비바람에 풍화되어 그 원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다시
길을 이어 서쪽으로 고도를 유지하며 한동안 돌아 나오니 음양수샘 가는
3거리로 정확히 나온다.
잠시 세석 대피소 방향으로 오르다 영신사지라 짐작되는 곳으로 올라
점심시간을 가진다.
옛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영신사지의 기록에 의지해 옛 절터를 찾아
치열하게 노력하신 분들의 노고에 의하여 최근 영신사지로 판명 하였으나
다른 견해를 표명하시는 분도 계신다.
영신사지에서( 사진 우측 둥근 바위-좌고대, 중앙 아래 바위-가섭대)
좌고대.
"가섭전(迦葉殿)의 북쪽 봉우리에는 두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른바 좌고대(坐高臺)라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밑은 둥글게 서리었고 위는 뾰족한 데다 꼭대기에 방석(方石)이
얹혀져서 그 넓이가 겨우 한 자[尺] 정도였는데, 중의 말에 의하면, 그 위에
올라가서 예불(禮佛)을 하는 자가 있으면 증과(證果)를 얻는다고 한다.…"
*가섭대
"절의 북쪽 비탈에는 석가섭(石迦葉) 일구(一軀)가 있었다.
세조 대왕(世祖大王) 때에 매양 중사(中使)를 보내서 향(香)을 내렸다.
그 석가섭의 목[項]에도 이지러진 곳이 있는데,
이 또한 왜구(倭寇)가 찍은 자국이라고 했다.
아, 왜인은 참으로 구적(寇賊)이로다.
산 사람들을 남김없이 도륙했는데,
성모와 가섭의 머리까지 또 단참(斷斬)의 화를 입었으니,
어찌 비록 아무런 감각이 없는 돌일지라도 인형(人形)을
닮은 때문에 환난을 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오른쪽 팔뚝에는 마치 불에 탄 듯한 흉터가 있는데,
이 또한 “겁화(劫火)에 불탄 것인데 조금만 더 타면
미륵(彌勒)의 세대가 된다.”고 한다.
대체로 돌의 흔적이 본디 이렇게 생긴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황괴(荒怪)한 말로 어리석은 백성을 속여서,
내세(來世)의 이익(利益)을 추구하는 자들로 하여금 서로
다투어 전포(錢布)를 보시(布施)하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이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서"
저만큼 촛대봉
한동안 따스한 가을 햇살아래 맛있는 점심과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고
거림으로 몇 사람 내려가고 창불대를 향하여 서쪽 남부능선으로
길도 없는 곳을 치고 오른다.
무성한 잡목이 앞을 가로막고 잠시 후 남부능선을 따라 내리막 진행하니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서있는 창불대에 도착한다.
창불대
*창불대
"저물녘에 창불대(唱佛臺)를 올라가 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하도 높아서 그 아래로는 밑이 보이지 않았고,
그 위에는 초목은 없고 다만 철쭉[躑躅] 두어 떨기와 영양(羚羊)의
똥만이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 두원곶(荳原串), 여수곶(麗水串), 섬진강(蟾津江)의
굽이굽이를 내려다보니,
산과 바다가 서로 맞닿아 더 기관(奇觀)이었다.……
" 김종직 -유두류록에서
창불대에서
까마득한 절벽위에서 선인들의 발자취를 느껴보고 건너 절벽위로 올라
사진을 찍는 분이 있어 왁자한 농담이 오간다.
세석에서 음양수 내려오는 길을 만나고 가을 가뭄에 음양수 한쪽 샘이 말랐다.
잠시 쉴라치면 어느새 한쪽에선 주님 찬양의 시간을 가지고,,,
내리막을 잠시 따르다가 길 왼쪽 조그만 돌에 하얀 동그라미 그려진
옆으로 난 샛길로 들어서 음양수골로 내려선다.
무성한 산죽사이로 길이 끊기는 곳이 간간히 나타나고
계곡을 몇 번 건너고 나서야 북해도교에 도착한다.
북해도교
마지막 과일 깍아 나누고 약 3km 남은 내리막 내려서는데 한분이
거의 뛰는 걸음으로 내려서 흐르는 땀 훔치며 거림 매표소
조금 전 계곡에 뛰어든다.
“으 차거워“
차가운 계곡 물에 몸 담그고 속세에 찌든 모든 잡념들을 떠내려 보내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매표소 내려서며 산행 종료한다.
창불대 꼭대기에 앉아 저쪽 반야봉에 노을지는 모습을 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