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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7.24 오전1:27 윗새재 마을에서 시작한 산행, 그래... 이 일출을 보고자 한 것이었지... 어둠의 훼방에 허우적거리며 조개골을 올라 거친 숨 다독거리며 바라본 하늘... 머리 위 하늘은 우주와 내가 있는 곳 사이에 그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을 만큼 투명한데 해가 뜨는 저곳은 낮은 구름들로 가득하여 화려한 일출은 기대키 어렵겠다.

컴컴한 어둠이 두려워, 살기 위해 그 빠르신 슬기난님 뒤쫓다 보니 너무 빨리 올랐나 보다. 하봉헬기장 아래 샘터에서 시계는 4:40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빤히 보이던 치밭목대피소는 어둠과 안개구름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가파른 오름길 때문에 온 몸은 땀 범벅이다. 그러나 새벽 산정상부의 낮은 기온은 금방 한기를 느끼게 한다. 조용히 귀 기울여 보니 능선엔 바람이 세차다. 오늘 일출은 5:19이고, 또 저리 낮은 구름이 드리웠으니 바알간 햇님을 뵐려면 한 10분은 더 얹어야 할 것이다. 하봉까지 가는데 25분이면 충분하니 미리 하봉에 올라 일출 본다고 무려 한 30분을 저 거센 바람에 덜덜 떨며 농락 당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간식도 꺼내 먹고 신선한 샘물로 수통을 가득 채우고 하며 시간을 흘려 보낸다. 그러나 한기는 인내의 한계를 기웃거리다 결국 그 문지방을 넘어서고 있다. 천천히 가며 체온을 유지하자며 다시 배낭을 맨다. 한기에 점령 당한 상의가 배낭에 밀려 살갗에 닿이면서 오싹한 움츠림이 온 몸에 퍼져 간다.

하봉헬기장에 오른다. 바람은 예상 보다 더 거세다. 체감되는 온도는 영하의 기온이다. 텐트 치고 야영한 꽤 많은 산객들 두터운 겉자켓을 입고 새벽을 준비하고 있다. 동녘은 붉은 기운을 미미하지만 조금씩 뿜어내기 시작하고 있고 오른편의 중봉과 천왕봉은 옅은 안개구름에 실려 온 여명으로 아직 떠나지 않으려는 어둠을 밀쳐 내며 그 장엄한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세찬 바람에 굴복하고 하봉쪽 숲속으로 숨어들듯 발걸음을 옮긴다. 숲을 지나가는 오싹오싹한 바람소리에 정신을 실어 보내었는지 어느듯 하봉이다. 햇님은 아직 구름 뒤에서 이제사 단장을 준비하는 것 같고, 바람은 그 등장을 신비롭게 하기 위해서인지 온 지리를 한바탕 휘젓고 다니고 있다. 그렇다... 지리와 지리의 나무, 풀, 새와 짐승들은 옷매무새를 단정히 고치고 그쪽을 향해 돌아섰다. 오늘도 저 위대한 생명의 신을 맞이하기 위해 경건히 서 있다.

아직 해뜰 시간은 한참이나 남았고 또 보다 나은 조망을 위해 하봉 북쪽 암벽병풍이 쳐진 전망대로 이동한다. 대기는 서서히 한기를 잃어 가고 있다. 구름과 안개에 어지러운 동쪽 하늘은 드디어 고운 처자의 아미 같이 가느란 높은 구름에 선홍빛 물을 듬뿍 들였다. 조금만 있으면 된다. 곧 홍조 띈 볼을 한 순수하고 이쁜 햇님이 얼굴을 내밀 것이다. 그렇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햇님이 떠오른다... 천천히 오르는 그 아름다움에 넋을 놓는다. 사진기를 들이 대는 것도 잊어버렸다. 구름들은 진회색으로 변하며 그 끌어안고 싶은 선홍빛을 더욱 붉게 하고 있다. 그 절정의 순간 반대편 지리주능선 위 머물던 창백한 달님은 화려한 햇님의 등장에 누가 되지 않으려는듯 옷고름으로 눈가에 비친 눈물 훔치며 어둠과 함께 조용히 영신봉 너머로 뒷걸음치고 있었다...

달님은 눈가에 비친 눈물 옷고름으로 훔치며 어둠과 함께 조용히 영신봉 너머로 뒷걸음치고 있고...

전망대 바로 아래에 서서히 펼쳐지고 있는 초암능선

전망대에서 바라본 하봉, 중봉 그리고 천왕봉...

햇살 끌어안고 있는 지리의 생명들...

영혼이 떠나간 고사목에도 똑같이 햇살은 나눠지고...

안개구름 속을 파고 드는 햇살... 저기 움푹 들어간 곳이 치밭목대피소인데...

아! 아침햇살... 아침햇살에 깨어난 주황색 나리, 슬기난님께서 이웃 어여쁜 꽃에 마음을 주자 질투하던 저 순간... 정령 꿈이겠지요... 정령 꿈이겠지요...

산객이 드물어서 그런지 하봉에서 국골사거리로 이어지는 아침숲은 건강하고 신선하다. 산길은 온갖 나뭇잎과 나무껍질로 덮힌 흙길로 푹신푹신하기까지 하다. 국골사거리에 배낭을 풀고 늦은 아침을 한다. 식었지만 친근한 흰 밥, 매운 고추와 정다운 된장, 가냘픈 김과 새침데기 김치가 만들어 낸 그 행복감은 뭐라 표현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아름다우신 두 분 슬기난님과 진로님과 그 행복감을 함께 하고 있으니!...

국골사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고 동부능선으로 향한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길가엔 산죽들이 점점 무성해지고 있다. 반팔과 반바지로 드러난 여린 살갗들은 쓰라림에 아우성이다. 특히 키 작은 철쭉녀석들이 고약하다며 고자질로 난리다. 그리그리 등성이 넘어넘어 우람한 독바위에 올랐다.

아! 이 장엄한 지리의 모습!
말로도 안 되고 사진으로도 전할 수 없는
이 자랑하고픈 어머니 같은 지리의 품!

독바위에서 내려다본 희미한 조개골의 모습.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어둠을 헤치며 저곳을 더듬어 올랐던 허상들은 이곳에서 저렇게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저 골짜기를 내려다보고만 있는데...

독바위에서 새재마을쪽을 바라보며... 이 바위에 우두커니 앉은 못난 이 내 허상, 저 외로워 보이는 소나무처럼 지리의 눈엔 그리 보이겠지... 그리 보일 것이야...

저 너머가 새재인데... 그래 그래 다 왔다... 그 순간은 결국엔 이리 오게끔 되어 있지... 그런데 저 구름들은 왜 산등성이를 넘지 못하고 저리 주츰거리고 있나...

새재에서 저 아래 윗새재마을을 내려다본다.
이제 또 돌아가야만 하네...
허! 저 원추리 녀석이 부럽기만 허구먼...

  • ?
    슬기난 2005.07.25 18:08
    님들 덕분에 찬란하게 떠오르는 햇님께 소원한가지 빌어도 보고,,,
    독바위 아래 넓은 바위에서 즐기던 낮잠, 아름답게 피어난 온갖 야생화, 끈질기게 스킨쉽을 나누고자 달려들던 산죽과 키작은 나무들,
    조개골 시원한 계곡물에서 물놀이, 차곡 차곡 기억의 앨범속에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 ?
    타타타 2005.07.25 18:15
    한편의 시같은 산행기입니다.
    산행기로나마 다시 뵈니 방갑기 그지 없습니다.
  • ?
    진로 2005.07.25 18:20
    하봉밑 샘에서 맛있는 물을 마시며 춥다 추워~~~
    이 더운 계절에 할말입니까?....ㅋㅋㅋ
    전 시원했구먼요....헤헤헤
    알탕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건데 아쉽습니다....^^
    너무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신 두분께 감사드립니다.
  • ?
    gilinbong 2005.07.25 19:06
    반갑습니다.
  • ?
    부도옹 2005.07.25 19:58
    ^------------------------------------------------------------^
  • ?
    김용규 2005.07.25 20:07
    한편의 산행기가 부드러운 글 솜씨에 멋진 컴의 편집기술, 지리산의 운치와 딱 어울리는 음악을 배경으로 그윽하면서 더 아름다운 산행기로 샘이 솟는군요. 지리산에 가보질 않아도 지리산의 어느 산골짜기에 다가가 있는 느낌입니다.
  • ?
    산이슬 2005.07.25 23:15
    옅은 구름이 드리워진 지리, 신비로울 뿐입니다.
    아무리 다시 봐도 아름다움 뿐입니다 ^^*
  • ?
    오 해 봉 2005.07.26 00:59
    허허바다님의 산행기를 오래간만에 접했습니다,
    원추리도좋고 이곳저곳 사진도 좋지만 맨윗분이
    나도좀 데리고 갈것이지.
  • ?
    편한세상 2005.07.26 03:52
    반갑기 그지없는 산행기를 접하며...
    느닷없이 시커먼 바탕에 흰 글씨가 다소 생경스럽지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어 더욱 더 의미를 새겨봅니다.
  • ?
    아낙네 2005.07.26 09:13
    지난 메아리가 눈한번 다시 비벼보곤 쓰윽~ 웃게되는 반가운 인사로
    변신하는 찰라입니다 ^^*
    지리와 한데 어우러진 세분 모두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 ?
    해성 2005.07.26 11:18
    어이쿠 허허바다님~ 안녕하십니까.
    사각 렌즈로 바라본 지리풍경이 아름답네요.
    반갑습니다~~
  • ?
    닭과 계란 2005.07.26 12:24
    우와~! 허바님! 반갑습니다.^^ 그 동안 웬 유비통신이....^^

    진로는 무릎부상이 많이 좋아 졌나보네?^^
  • ?
    2005.07.26 14:31
    질문잇습니다.
    위의 독바위는 운암마을 뒤쪽 노장대 부근의 독바위인지요?
  • ?
    슬기난 2005.07.26 15:00
    유님! 동부능선상의 독바위는 진주독바위라고 합니다.
    그날 날이 흐리고 구름이 많아 유님의 고향쪽은 보이지 않아
    많이 서운했더랬지요.
    .
  • ?
    산이조아 2005.07.26 21:12
    잘보고 감니다.
    글도 좋고, 사진도 좋고, 음악도 무척 좋습니다.
    향상 건강하셔서 좋은 산행기 부탁드립니다.
    꾸 벅.
  • ?
    2005.07.26 23:33
    난 음악 안 들리는데........ 유감이네요.
    왜 안들리지?
    슬기난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각종 난한테 안부 전해주셔요. ㅎㅎ
  • ?
    섬호정 2005.07.27 06:41
    허허바다님 ! 산행기 반갑습니다
    사진에서 지리가 안녕과 신선함을 봅니다
    ...원추리 ! 또 없으신가요???
    올해에도 여전히 그리운 꽃.

    ^&^ 가까이두고 보려고요~
    '그곳에 가고싶다'로 좀 떠 갑니다 합장
  • ?
    도명 2005.07.27 07:48
    7월의 무더운 밤을 식혀주던 둥근 새벽달이
    지리산으로 가 있군요
    보기만 해도 서늘하여 집니다 반가워서~
    지리시문학방에 달님을 옮겨봅니다. 합장
  • ?
    정진도ㅓ 2005.07.27 10:26
    안보인다고 다들걱정하더니만 역시 제자리에 계셨군요.
    세련되고 원숙한 허바님의 산행기는 감동적입니다..
    항상 건승하시길...........
  • ?
    야생마 2005.07.27 14:49
    그러게 걱정했더니만 멋진 산행기로 안심주시네요.
    아! 원추리의 계절인데...많이 부럽지요.
    그래도 저리 멋지게 담아내시고 그곳에 좋은님들과
    알탕하고 오신 허허바다님도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 ?
    볼프강 2005.07.27 17:31
    우후
    허허바다님, 이 무더위 식혀주는
    감동글 읽고 마음에 기쁨 가득합니다
    제 홈으로 퍼가야 겠어요
  • ?
    김현거사 2005.07.28 08:45
    허허선생 오랫만이요.
  • ?
    기쁜인연 2005.07.29 12:01
    슬기난님?
    유님?
    蘭 좋아하시나요?한국춘란?
    허허바다님의 허허바다와도 같은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그날 저도 허허바다님의 발자욱을 밟았더랬슴다.
    모두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 ?
    차둘배기 2005.07.29 16:22
    님 이 가신 그길 나도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수고 많이하셧군요.
    건강하시고 다음에 내가 갈때에 길안내 부탁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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