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저 읽기만 하고 도움만 받다가 산행기를 올려봅니다.
너그럽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1월 23일 아침 6시 30분,
산행을 같이 할 분들을 만났습니다.
이제 오십대에 접어드신 하모니님 부부.
지리산은 초행이지만 체력은 우리 부부보다 훨씬 낫습니다.
특히 사모님은 인라인광이라 체력이 남다릅니다.
쉼없이 두시간 이상 인라인을 굴릴만큼의 체력입니다.
우리 부부는 쉼없이 두시간 이상 차를 탈 수는 있는 정도의 체력입니다. -_-;;
8시 언저리에 도착한 88고속도로 거창휴게소, 등산객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아침나절의 딱딱한 속이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동 한그릇으로 때웁니다.
다시 차에 올라탄 일행은 신나게 달려 지리산IC로 빠져나갑니다.
도로가 빙판입니다. 간밤에 폭설이 왔다더니 과연 그렇습니다.
실상사를 지나 백무동으로 슬금슬금 기어갑니다.
백무동 주차장을 백여미터 앞두고 차가 좌우로 요동을 칩니다.
몇미터 앞서가던 승합차는 뒤로 미끄러져 내려오더니
우리 왼쪽을 지나 계속 내려갑니다. -_-;; 등골이 오싹합니다.
핸들을 연신 좌우로 돌리는 하모니님.
신기에 가까운 운전솜씨로 고개를 기어오릅니다.
뒷쪽에서 급박한 경적소리가 들립니다. 버스 한 대가 달려 올라옵니다.
빵빠~앙 하는 경적소리가 '안 비키면 다 죽는다~' 로 들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켜줄 재간이 없습니다.
차는 올라가는게 아니라 미끄러지기만 할 뿐입니다.
뒷쪽에서 달려 올라오는 버스도 마찬가지. 멈출 수도 방향을 바꿀 수도 없겠지요.
아... 이게 마지막이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탄 차는 슬금슬금 왼쪽으로 미끄러집니다.
버스는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 언덕을 올라갑니다.
우리 차는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미끄러지며 올라가더니 주차장에 도착.
기록입니다. 100미터를 10분 동안 달렸습니다.
하모니님의 운전솜씨 덕분일까요, 우릴 내려다 보던 마야고의 도움일까요.
10시 30분. 장비를 챙기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백무동.
고1때 처음 알았던 지리산. 첫 산행이 백무동이었습니다.
지리산의 모든 길이 내 것이라 착각하던 정신없던 시절에 뻔질나게 다녔던 길.
십년만에 다시 오릅니다. 그런데 감개가 무량하지는 않습니다. 묘합니다.
꽤 포근한 날씨입니다.
눈으로는 겨울풍경을 즐기고 몸으로는 봄산을 느끼며 오릅니다.
어느새 하동바위에 닿았습니다. 간판은 어디로 가고 없습니다.
연양갱 하나, 물 한 잔. 이젠 참샘으로.
참샘은 샘물나오는 곳 말고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후배들 데리고 야영하다 소주 사달래서 백무동까지 뛰어갔다 오던 일,
아침에 백무동 출발하고 오후에 참샘 도착해서 1박하자던 거북이 선배들,
참샘엔 추억도 많지만 이젠 깨끗이 복원되는 중입니다.
슬며시 몇 번 웃고는 수통채우고 소지봉으로 향합니다.
참샘 윗쪽 너덜은 초보자 애먹이기로 꽤 유명했는데
그나마 앉아 쉬지 않고 그럭저럭 오를 수 있는 걸 보니
지리산 등반 초급 자격은 남아있나 봅니다.
너덜을 다 오르니 조그만 쉼바위.
예전 칠선계곡 붙박이 산꾼들이 영지차 팔던 곳.
그 산꾼들은 아직도 지리산에 남아있는지. 시간이란 넘은 참 무정합니다.
연양갱 하나 먹고 출발합니다.
소지봉 지나 망바위로 접어 들었습니다.
백무동길 처음으로 탁 트이는 전망을 주는 곳입니다.
이 곳이 없었더라면 백무동길이 두배는 지루했을 겁니다.
이젠 출입금지 막아 놨습니다.
그나저나 조금 전에 발에 찬 아이젠이 말썽입니다.
발을 무지 압박합니다. 덕분에 체력이 급속히 떨어집니다.
평지와 오르막이 반복되는 지겨운 구간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핑 돕니다.
가만 생각하니 아침으로 우동하나 먹고 연양갱 두 개. 벌써 두시.
예전보다 20kg가 늘어난 몸무게. 벌써 퍼질만도 합니다.
저를 보며 비웃는 아내. -_-;; 할 말이 없습니다. ^^;;
하모니님 부부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역시 체력이 좋으십니다.
허겁지겁 올라가니 제석단 아래 안부. 북동부 능선들이 눈앞에 좌악.
아... 나는 왜 산을 잊고 살았을까... 온통 그 생각 뿐입니다.
장터목으로 가다보니 제석봉 오르던 옛길이 철조망으로 막혀 있습니다.
제석단 아래 샘물은 지금도 잘 흐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꼬르륵 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세시 반.
먼저 도착하신 하모니님이 물을 끓이고 계십니다.
예전의 야외 반덮개 취사장이 아니라 실내 취사장입니다.
대피소 모양새를 잘 살피니 증축이 되었습니다. 거 참~
라면에 밥으로 배를 채우니 생각이 슬슬 바뀝니다.
대피소는 인터넷상으로 대기자까지 차버려 잘 공간이 거의 없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취사장은 등산객없이 한산합니다. 그렇다면... 흠흠...
시간은 네시를 넘어서고 세석으로 가다보면 해는 질테고 두분은 초행이고...
하모니님 부부를 핑계로 대피소에 올라가 봅니다.
역시나! 간밤의 눈으로 예약취소가 대부분.
일행은 중앙홀로 올라가 일단 드러 누웠습니다. 세석행은 취소. ^^;;
잠시 눈붙이고 자리배정 받으니 숙박인원 도합 20여명. 널널~합니다.
84명 단체로 올라온 수원 어느 학원생들은 따로 방을 배정받았나 봅니다.
애물단지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니 칼바람이 닥칩니다.
능선사이로 운해가 끼고 반야봉 오른쪽 너머로 해가 내려갑니다.
재빨리 한 컷 했지만 삼각대가 없어 여의치 않습니다.
또 생각해 봅니다.
왜 산을 잊고 살았을까... 어찌 이 곳을 잊고 있었을까...
장터목은 예전의 그 장터목이 아니고 나도 예전의 그 산또라이가 아니지만
산은 그 산이 틀림없는데 왜.
1월 24일 아침,
더워서 밤새 잠을 설쳤습니다. 침낭탓인지 난방탓인지...
오늘은 널널 산행입니다. 벽소령까지만 가면 됩니다.
문득 예전엔 더 널널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능선종주가 보통 7박이었으니... -_-;;
산에서는 무조건 거북이!!! 요 버릇은 아직 여전합니다.
어쨌든 오늘은 연하선경을 충분히 즐겨 볼 생각입니다.
취사장에서 만난 연하천 간다는 산객을 떠나보내고 놀다가 출발하니 아홉시.
하늘은 잔뜩 구름이 끼었지만 그것으로 좋습니다.
연하봉으로 올라 삼신 촛대봉을 향해 느긋하게 걷습니다.
아... 선경입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여기는 선경입니다.
신선을 태운 현학이 구름사이로 보이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요즘은 목장길이라고 불리는 그 곳. 아... 미치겠습니다.
경치에 취하니 두 발은 그저 나아갑니다.
머릿속으로는 하나의 결론이 떠오릅니다.
"미쳤던게 틀림없다. 여기를 잊고 살았으니... 미쳤지... 암..."
촛대봉을 지나 세석으로 내려섭니다.
세석 대피소도 덩치가 많이 커졌습니다.
물을 채울 일이 없어 바로 영신봉으로 오릅니다.
헬기장을 지나다보니 또 예전 생각이 납니다.
언제인가 헬기장에 자리펴고 둘러앉아 라면을 먹고 있으려니
타타타~하는 소리와 함께 헬기가 착륙하고
거기서 내리는 귀부인 하나와 자녀쯤으로 보이는 애들...
헬기땜에 모래 투성이가 된 코펠속의 라면과
UFO인양 날아다니는 코펠뚜껑과 은박 매트.
영신봉을 지다나 보니 아래로 영신대가 보입니다.
칠선봉을 지나 바위에 앉아 남부산군과 운해를 즐겨 봅니다.
하루종일 앉아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하루종일 앉아있다가 그냥 대충 자버린 기억이 있는데
역시나 지겹지 않았습니다. ^^;;
선비샘으로 향하는 길은 역시나 가파릅니다.
너무 내려가는 것 아니냐고 하모니님이 우스개 소리를 합니다.
예전의 자일은 없고 계단이 새로 생겼습니다.
계단이라... 뭐... 그렇습니다.
능선의 남쪽사면과는 달리 북쪽은 칼바람이 몰아칩니다.
오호라... 겨울산 맛이 납니다. 콧물이 줄줄 흐릅니다. ^^;;
선비샘에 도착했습니다. 참샘하고 비슷하게 변했습니다.
겨울이라 물이 적습니다. 샘 얼어버린 벽소령에서 쓸 물을 채웁니다.
더불어 대충 점심도 해결합니다.
출발하려니 폭설이 내려 주섬주섬 자켓을 껴입습니다.
방풍장갑까지 끼고 폭설산행!!!에 대비해야 합니다.
5분 걷다보니 햇살이 내려 쬐입니다. 허허... -_-;;
다시 벗고 시원하게 걸어 내려갑니다.
벽소령 시작지점에서 아이젠을 벗고 산책할 준비를 합니다.
개인적으로 벽소령 길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내와 함께 예전 산행얘기를 하며 느긋하게 걷습니다.
아... 좋습니다. 뽀드득 거리는 눈 밟으며 벽소령 대피소로 향합니다.
벽소령 대피소.
실물로는 처음 봅니다.
예전엔 "절대 안된다!! 오르지 못할망정 절대 안된다!!" 요랬습니다.
뭐... 거창한 이유때문이 아니라 벽소령을 제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없는 철, 샘터옆에 텐트쳐놓고 3박4일씩 머무르다 가곤 했습니다.
낮엔 책 몇자 읽다가 자고 깨고... 밤엔 환상처럼 떠오르는 달을 봤습니다.
해가 지고 주변은 온통 뿌연 운무에 달무리를 달고 떠오르는,
백열전구 같기도 하고 꼬마전구 헤드랜턴 불빛같기도 한...
숙박신고를 하고 홀을 휘 둘러보니 침낭 번데기가 하나 있습니다.
어허... 아침에 연하천 간다던 그 산객입니다.
여기서 뭐하냐고 물어봤더니 널널하게 와서 점심먹고 나니
생각이 바뀌더라는 겁니다. 게다가 연하천은 난방고장. 허허~
밥먹으러 취사장으로 내려 가다보니 샘터로 내려가는 길이 보입니다.
가슴이 찡하게 아려옵니다. 샘은 지금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취사장앞엔 나무의자와 식탁이 있습니다.
여름에 별보며 비박하기에 그만이겠습니다.
식탁보고 잠잘 생각부터 먼저하니 드디어 다시 미쳤나 봅니다.
1월 25일.
아침해먹고 느긋하게 출발준비를 합니다.
원래의 산행계획은 세석 1박, 연하천 2박, 성삼재나 뱀사골로 하산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계획이 늦춰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좋습니다.
연하천으로 가서 물을 보충하고 음정으로 내려갈 계획을 잡았지만
수통에 물을 채우고도 1.5리터 하나가 남습니다.
어제 선비샘에서 넉넉히 준비한 보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음정으로 내려갑니다.
날 밝을때 대구에 도착하는게 덜 서글픕니다.
늦은 오후 도시로 돌아가는 것만큼 서글프고 답답한 일이 없습니다.
예전엔 하산한 다음 무조건 1박하고 낮시간에 돌아가는게 버릇이었습니다.
음정하산길도 아주 좋습니다.
딱 맞게 쌓인 눈 밟으며 뉘적뉘적 걸어 내려가면서
뒤쪽을 계속 돌아봅니다. 천왕봉 아래의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하모니님 부부는 이번 산행이 그리도 좋으셨나 봅니다. 나도 흐믓~
열두시 못 미쳐서 음정에 도착.
택시로 백무동으로 차 찾으러 갑니다.
백무동으로 돌아간 김에 점심을 먹습니다.
한시경 대구로 출발합니다.
아쉽기도 하고 지리산을 다시 찾게되어오히려 설레이기도 하고...
돌아오는 88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리다 폭설로 바뀝니다.
지리산 능선에도 눈발이 쏟아지고 있을테지요.
올 겨울이 가기 전에 벽소령부터 노고단까지 남은 능선을 다시 찾고
봄 경방기간이 끝나면 예전처럼 지리산을 찾을 생각입니다.
미친듯이 돌아다니던 그 때 그 시절을 다시 걷고 싶습니다.
십대와 이십대의 산길들을 다시 걸어보고
그 힘으로 삼십대의 산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브넷을 뒤지고 글을 읽고... 산행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오브넷의 모든 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길.
그저 읽기만 하고 도움만 받다가 산행기를 올려봅니다.
너그럽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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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 아침 6시 30분,
산행을 같이 할 분들을 만났습니다.
이제 오십대에 접어드신 하모니님 부부.
지리산은 초행이지만 체력은 우리 부부보다 훨씬 낫습니다.
특히 사모님은 인라인광이라 체력이 남다릅니다.
쉼없이 두시간 이상 인라인을 굴릴만큼의 체력입니다.
우리 부부는 쉼없이 두시간 이상 차를 탈 수는 있는 정도의 체력입니다. -_-;;
8시 언저리에 도착한 88고속도로 거창휴게소, 등산객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아침나절의 딱딱한 속이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동 한그릇으로 때웁니다.
다시 차에 올라탄 일행은 신나게 달려 지리산IC로 빠져나갑니다.
도로가 빙판입니다. 간밤에 폭설이 왔다더니 과연 그렇습니다.
실상사를 지나 백무동으로 슬금슬금 기어갑니다.
백무동 주차장을 백여미터 앞두고 차가 좌우로 요동을 칩니다.
몇미터 앞서가던 승합차는 뒤로 미끄러져 내려오더니
우리 왼쪽을 지나 계속 내려갑니다. -_-;; 등골이 오싹합니다.
핸들을 연신 좌우로 돌리는 하모니님.
신기에 가까운 운전솜씨로 고개를 기어오릅니다.
뒷쪽에서 급박한 경적소리가 들립니다. 버스 한 대가 달려 올라옵니다.
빵빠~앙 하는 경적소리가 '안 비키면 다 죽는다~' 로 들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켜줄 재간이 없습니다.
차는 올라가는게 아니라 미끄러지기만 할 뿐입니다.
뒷쪽에서 달려 올라오는 버스도 마찬가지. 멈출 수도 방향을 바꿀 수도 없겠지요.
아... 이게 마지막이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탄 차는 슬금슬금 왼쪽으로 미끄러집니다.
버스는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 언덕을 올라갑니다.
우리 차는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미끄러지며 올라가더니 주차장에 도착.
기록입니다. 100미터를 10분 동안 달렸습니다.
하모니님의 운전솜씨 덕분일까요, 우릴 내려다 보던 마야고의 도움일까요.
10시 30분. 장비를 챙기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백무동.
고1때 처음 알았던 지리산. 첫 산행이 백무동이었습니다.
지리산의 모든 길이 내 것이라 착각하던 정신없던 시절에 뻔질나게 다녔던 길.
십년만에 다시 오릅니다. 그런데 감개가 무량하지는 않습니다. 묘합니다.
꽤 포근한 날씨입니다.
눈으로는 겨울풍경을 즐기고 몸으로는 봄산을 느끼며 오릅니다.
어느새 하동바위에 닿았습니다. 간판은 어디로 가고 없습니다.
연양갱 하나, 물 한 잔. 이젠 참샘으로.
참샘은 샘물나오는 곳 말고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후배들 데리고 야영하다 소주 사달래서 백무동까지 뛰어갔다 오던 일,
아침에 백무동 출발하고 오후에 참샘 도착해서 1박하자던 거북이 선배들,
참샘엔 추억도 많지만 이젠 깨끗이 복원되는 중입니다.
슬며시 몇 번 웃고는 수통채우고 소지봉으로 향합니다.
참샘 윗쪽 너덜은 초보자 애먹이기로 꽤 유명했는데
그나마 앉아 쉬지 않고 그럭저럭 오를 수 있는 걸 보니
지리산 등반 초급 자격은 남아있나 봅니다.
너덜을 다 오르니 조그만 쉼바위.
예전 칠선계곡 붙박이 산꾼들이 영지차 팔던 곳.
그 산꾼들은 아직도 지리산에 남아있는지. 시간이란 넘은 참 무정합니다.
연양갱 하나 먹고 출발합니다.
소지봉 지나 망바위로 접어 들었습니다.
백무동길 처음으로 탁 트이는 전망을 주는 곳입니다.
이 곳이 없었더라면 백무동길이 두배는 지루했을 겁니다.
이젠 출입금지 막아 놨습니다.
그나저나 조금 전에 발에 찬 아이젠이 말썽입니다.
발을 무지 압박합니다. 덕분에 체력이 급속히 떨어집니다.
평지와 오르막이 반복되는 지겨운 구간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핑 돕니다.
가만 생각하니 아침으로 우동하나 먹고 연양갱 두 개. 벌써 두시.
예전보다 20kg가 늘어난 몸무게. 벌써 퍼질만도 합니다.
저를 보며 비웃는 아내. -_-;; 할 말이 없습니다. ^^;;
하모니님 부부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역시 체력이 좋으십니다.
허겁지겁 올라가니 제석단 아래 안부. 북동부 능선들이 눈앞에 좌악.
아... 나는 왜 산을 잊고 살았을까... 온통 그 생각 뿐입니다.
장터목으로 가다보니 제석봉 오르던 옛길이 철조망으로 막혀 있습니다.
제석단 아래 샘물은 지금도 잘 흐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꼬르륵 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세시 반.
먼저 도착하신 하모니님이 물을 끓이고 계십니다.
예전의 야외 반덮개 취사장이 아니라 실내 취사장입니다.
대피소 모양새를 잘 살피니 증축이 되었습니다. 거 참~
라면에 밥으로 배를 채우니 생각이 슬슬 바뀝니다.
대피소는 인터넷상으로 대기자까지 차버려 잘 공간이 거의 없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취사장은 등산객없이 한산합니다. 그렇다면... 흠흠...
시간은 네시를 넘어서고 세석으로 가다보면 해는 질테고 두분은 초행이고...
하모니님 부부를 핑계로 대피소에 올라가 봅니다.
역시나! 간밤의 눈으로 예약취소가 대부분.
일행은 중앙홀로 올라가 일단 드러 누웠습니다. 세석행은 취소. ^^;;
잠시 눈붙이고 자리배정 받으니 숙박인원 도합 20여명. 널널~합니다.
84명 단체로 올라온 수원 어느 학원생들은 따로 방을 배정받았나 봅니다.
애물단지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니 칼바람이 닥칩니다.
능선사이로 운해가 끼고 반야봉 오른쪽 너머로 해가 내려갑니다.
재빨리 한 컷 했지만 삼각대가 없어 여의치 않습니다.
또 생각해 봅니다.
왜 산을 잊고 살았을까... 어찌 이 곳을 잊고 있었을까...
장터목은 예전의 그 장터목이 아니고 나도 예전의 그 산또라이가 아니지만
산은 그 산이 틀림없는데 왜.
1월 24일 아침,
더워서 밤새 잠을 설쳤습니다. 침낭탓인지 난방탓인지...
오늘은 널널 산행입니다. 벽소령까지만 가면 됩니다.
문득 예전엔 더 널널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능선종주가 보통 7박이었으니... -_-;;
산에서는 무조건 거북이!!! 요 버릇은 아직 여전합니다.
어쨌든 오늘은 연하선경을 충분히 즐겨 볼 생각입니다.
취사장에서 만난 연하천 간다는 산객을 떠나보내고 놀다가 출발하니 아홉시.
하늘은 잔뜩 구름이 끼었지만 그것으로 좋습니다.
연하봉으로 올라 삼신 촛대봉을 향해 느긋하게 걷습니다.
아... 선경입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여기는 선경입니다.
신선을 태운 현학이 구름사이로 보이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요즘은 목장길이라고 불리는 그 곳. 아... 미치겠습니다.
경치에 취하니 두 발은 그저 나아갑니다.
머릿속으로는 하나의 결론이 떠오릅니다.
"미쳤던게 틀림없다. 여기를 잊고 살았으니... 미쳤지... 암..."
촛대봉을 지나 세석으로 내려섭니다.
세석 대피소도 덩치가 많이 커졌습니다.
물을 채울 일이 없어 바로 영신봉으로 오릅니다.
헬기장을 지나다보니 또 예전 생각이 납니다.
언제인가 헬기장에 자리펴고 둘러앉아 라면을 먹고 있으려니
타타타~하는 소리와 함께 헬기가 착륙하고
거기서 내리는 귀부인 하나와 자녀쯤으로 보이는 애들...
헬기땜에 모래 투성이가 된 코펠속의 라면과
UFO인양 날아다니는 코펠뚜껑과 은박 매트.
영신봉을 지다나 보니 아래로 영신대가 보입니다.
칠선봉을 지나 바위에 앉아 남부산군과 운해를 즐겨 봅니다.
하루종일 앉아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하루종일 앉아있다가 그냥 대충 자버린 기억이 있는데
역시나 지겹지 않았습니다. ^^;;
선비샘으로 향하는 길은 역시나 가파릅니다.
너무 내려가는 것 아니냐고 하모니님이 우스개 소리를 합니다.
예전의 자일은 없고 계단이 새로 생겼습니다.
계단이라... 뭐... 그렇습니다.
능선의 남쪽사면과는 달리 북쪽은 칼바람이 몰아칩니다.
오호라... 겨울산 맛이 납니다. 콧물이 줄줄 흐릅니다. ^^;;
선비샘에 도착했습니다. 참샘하고 비슷하게 변했습니다.
겨울이라 물이 적습니다. 샘 얼어버린 벽소령에서 쓸 물을 채웁니다.
더불어 대충 점심도 해결합니다.
출발하려니 폭설이 내려 주섬주섬 자켓을 껴입습니다.
방풍장갑까지 끼고 폭설산행!!!에 대비해야 합니다.
5분 걷다보니 햇살이 내려 쬐입니다. 허허... -_-;;
다시 벗고 시원하게 걸어 내려갑니다.
벽소령 시작지점에서 아이젠을 벗고 산책할 준비를 합니다.
개인적으로 벽소령 길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내와 함께 예전 산행얘기를 하며 느긋하게 걷습니다.
아... 좋습니다. 뽀드득 거리는 눈 밟으며 벽소령 대피소로 향합니다.
벽소령 대피소.
실물로는 처음 봅니다.
예전엔 "절대 안된다!! 오르지 못할망정 절대 안된다!!" 요랬습니다.
뭐... 거창한 이유때문이 아니라 벽소령을 제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없는 철, 샘터옆에 텐트쳐놓고 3박4일씩 머무르다 가곤 했습니다.
낮엔 책 몇자 읽다가 자고 깨고... 밤엔 환상처럼 떠오르는 달을 봤습니다.
해가 지고 주변은 온통 뿌연 운무에 달무리를 달고 떠오르는,
백열전구 같기도 하고 꼬마전구 헤드랜턴 불빛같기도 한...
숙박신고를 하고 홀을 휘 둘러보니 침낭 번데기가 하나 있습니다.
어허... 아침에 연하천 간다던 그 산객입니다.
여기서 뭐하냐고 물어봤더니 널널하게 와서 점심먹고 나니
생각이 바뀌더라는 겁니다. 게다가 연하천은 난방고장. 허허~
밥먹으러 취사장으로 내려 가다보니 샘터로 내려가는 길이 보입니다.
가슴이 찡하게 아려옵니다. 샘은 지금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취사장앞엔 나무의자와 식탁이 있습니다.
여름에 별보며 비박하기에 그만이겠습니다.
식탁보고 잠잘 생각부터 먼저하니 드디어 다시 미쳤나 봅니다.
1월 25일.
아침해먹고 느긋하게 출발준비를 합니다.
원래의 산행계획은 세석 1박, 연하천 2박, 성삼재나 뱀사골로 하산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계획이 늦춰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좋습니다.
연하천으로 가서 물을 보충하고 음정으로 내려갈 계획을 잡았지만
수통에 물을 채우고도 1.5리터 하나가 남습니다.
어제 선비샘에서 넉넉히 준비한 보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음정으로 내려갑니다.
날 밝을때 대구에 도착하는게 덜 서글픕니다.
늦은 오후 도시로 돌아가는 것만큼 서글프고 답답한 일이 없습니다.
예전엔 하산한 다음 무조건 1박하고 낮시간에 돌아가는게 버릇이었습니다.
음정하산길도 아주 좋습니다.
딱 맞게 쌓인 눈 밟으며 뉘적뉘적 걸어 내려가면서
뒤쪽을 계속 돌아봅니다. 천왕봉 아래의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하모니님 부부는 이번 산행이 그리도 좋으셨나 봅니다. 나도 흐믓~
열두시 못 미쳐서 음정에 도착.
택시로 백무동으로 차 찾으러 갑니다.
백무동으로 돌아간 김에 점심을 먹습니다.
한시경 대구로 출발합니다.
아쉽기도 하고 지리산을 다시 찾게되어오히려 설레이기도 하고...
돌아오는 88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리다 폭설로 바뀝니다.
지리산 능선에도 눈발이 쏟아지고 있을테지요.
올 겨울이 가기 전에 벽소령부터 노고단까지 남은 능선을 다시 찾고
봄 경방기간이 끝나면 예전처럼 지리산을 찾을 생각입니다.
미친듯이 돌아다니던 그 때 그 시절을 다시 걷고 싶습니다.
십대와 이십대의 산길들을 다시 걸어보고
그 힘으로 삼십대의 산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브넷을 뒤지고 글을 읽고... 산행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오브넷의 모든 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길.
('타타타' 가 헬기소리였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