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탑에 얽힌 전설 소개합니다.
[족제비 탑]
지리산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한 작은 암자에서 구곡 각운(龜谷 覺雲) 스님이라는 분이 불경을 집필하고 있었다.
눈은 몇 날 며칠 계속해서 내렸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끊어졌다. 이제 스님은 이듬해 봄이 오고 눈이 녹아야만 바깥 출입을 할 수 있었다.
<염송설화>라는 불경을 스물 아홉 권이나 집필한 스님은 쓰던 붓이 많이 닳아 있었다.
폭설이 내리고 길이 끊겨 산을 내려가 붓을 장만해 올 수 없었다.
눈을 치우던 스님에게 족제비 한 마리가 나타나 조르르 스님에게 달려왔다. 족제비와 스님은 오랜 친구사이였다. 한번은 족제비가 독사 한 마리를 잡아먹다가 그만 실수로 온몸에 독이 퍼져 다 죽게된 것을 스님이 약수와 약초로 해독을 시켜 살려준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족제비는 늘 스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스님,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아니다. 아무런 걱정이 없단다. 그러나 족제비는 필시 스님에게 큰 걱정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스님이 밤새워 불경을 집필하는 동안 암자 입구계단 위에 앉아 늘 밤하늘의 달을 쳐다보았다.
그런 어느 날 달밤이었다. 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 한참 동안 나오지 않을 때 갑자기 스님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서성거렸다.
허허, 이거 붓이 없어 어떡한다? 이제 조금만 더 쓰면 완결이 될턴데.
스님은 달이 구름 밖으로 나오자 달을 쳐다보며 땅이 꺼져라 한 숨을 푹 내쉬었다.
족제비는 스님이 무엇 때문에 고민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벌써 몇 해째 암자에 칩거하면서 <염송설화>를 집필하고 있는 스님이 이제 마지막 순간에 붓이 다 닳아 더 이상 집필을 할 수 없게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날 밤 족제비는 잠이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올 겨울엔 완성을 시켜야지 하시던 스님의 말씀이 자꾸 떠올랐다.
족제비는 지금 자신이 스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곰곰 생각했다. 스님의 은덕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해온 자신이었다. 온몸에 독이 퍼져 다 죽게 된 것을 스님이 살려주었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스님의 은혜만은 갚겠다고 스스로 굳게 맹세해온 그였다.
족제비는 그 맹세를 실천해야 할 날이 다가온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한 몸 던져 스님께서 불경을 완성하실 수 있다면 죽어도 죽은 목숨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스님이 일어나 방문을 열었을 때 족제비는 바로 방문 앞에 죽어 있었다.
이는 필시 우연한 죽음이 아니야. 자기 꼬리로 黃毛筆을 만들어 불경을 완성하라는 족제비의 거룩한 뜻이 담겨 있는 거야.
스님은 족제비가 생명을 바쳐 자기 몸을 보시했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이 뭉클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맑은 불꽃 하나가 솟아나 스님의 온몸 구석구석을 활활 태우는 듯했다.
족제비의 죽음을 헛되이 해서는 안돼. 이 족제비 털로 黃毛筆을 만들어 불경을 완성하는 것만이 족제비의 죽음을 높이 받드는 일이야.
스님은 벽장 깊숙이 숨겨 놓았던 단도 한 자루를 꺼내 정성껏 숫돌에 갈았다.
스님은 아침 햇살이 칼끝에서 날카롭게 빛을 발하자 조심스럽게 두껍고 긴 족제비의 꼬리를 잘랐다. 그리고 깊게 눈구덩이를 파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족제비의 시체를 묻었다.
춥지만 여기서 좀 자고 있거라. 봄이 와서 눈이 녹으면 내 널 다시 묻어줄 테니.....
족제비는 모든게 원하는 대로 잘 이루어졌다는 듯 입가에 잠시 미소가 스치다가 사라지는 듯 했다.
스님은 족제비의 꼬리털을 푹 삶아서 잘 말린 다음, 재로 문질러 기름기를 빼내었다. 기름기가 다 빠진 털을 통 속에 넣어 원추형의 붓털 모양으로 만든 다음, 붓털의 基部를 실로 동여매고 인두로 지져서 고정시키고, 다시 붓자루에 끼워 풀로 붙여 제대로 된 황모필을 만들었다.
죽은 족제비의 꼬리털로 몇 자루의 黃毛筆이 만들어졌다. 스님은 그 붓으로 다시 집필을 시작했다. 부처님의 말씀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족제비의 갸륵한 마음을 높이 받들어 스님은 단 한 순간도 집필의 손을 놓지 않았다.
폭설이 몇 번 더 내리는 동안 겨울은 더욱 깊어졌다가 봄이 다시 찾아왔다. 서른 권 째를 마지막으로 <염송설화>를 다 완성하자 산에는 눈녹은 물이 맑게 흐르기 시작했다.
눈이 다 녹자 눈구덩이 속에 파묻어 둔 족제비의 시체가 그대로 드러났다. 족제비는 꼬리가 잘린 채 눈이 녹아 질척질척한 땅바닥에 모로 누워 잠에서 깨어날 줄을 몰랐다.
스님은 족제비의 시체를 소중히 거두어 다비를 해주었다. 족제비의 주검을 태우는 불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모두 다 모여 한순간 불길 속에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튿날, 다비의 불길이 다 꺼지고 아침이 되자 햇살에 영롱히 빛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사리였다. 족제비의 몸에서 나온 사리가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아, 족제비의 몸에서 사리가 나오다니!
스님은 혹시 그 족제비가 부처님이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오랫동안 고개 숙여 합장 기도했다. 그리고 몇 해 동안 시주를 거둬 사리탑을 세워 족제비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정성껏 안치했다.
우리는 지금도 그 사리탑을 찾아가 볼 수 있다. 지리산의 영원사 위쪽 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다 보면 <上無住庵>이라는 암자가 나오는데, 그 암자에 있는 삼층석탑이 그것이다.
[정호승 쓴 어른이 읽는 동화 항아리 (열림원 刊)에서 인용]
[족제비 탑]
지리산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한 작은 암자에서 구곡 각운(龜谷 覺雲) 스님이라는 분이 불경을 집필하고 있었다.
눈은 몇 날 며칠 계속해서 내렸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끊어졌다. 이제 스님은 이듬해 봄이 오고 눈이 녹아야만 바깥 출입을 할 수 있었다.
<염송설화>라는 불경을 스물 아홉 권이나 집필한 스님은 쓰던 붓이 많이 닳아 있었다.
폭설이 내리고 길이 끊겨 산을 내려가 붓을 장만해 올 수 없었다.
눈을 치우던 스님에게 족제비 한 마리가 나타나 조르르 스님에게 달려왔다. 족제비와 스님은 오랜 친구사이였다. 한번은 족제비가 독사 한 마리를 잡아먹다가 그만 실수로 온몸에 독이 퍼져 다 죽게된 것을 스님이 약수와 약초로 해독을 시켜 살려준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족제비는 늘 스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스님,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아니다. 아무런 걱정이 없단다. 그러나 족제비는 필시 스님에게 큰 걱정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스님이 밤새워 불경을 집필하는 동안 암자 입구계단 위에 앉아 늘 밤하늘의 달을 쳐다보았다.
그런 어느 날 달밤이었다. 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 한참 동안 나오지 않을 때 갑자기 스님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서성거렸다.
허허, 이거 붓이 없어 어떡한다? 이제 조금만 더 쓰면 완결이 될턴데.
스님은 달이 구름 밖으로 나오자 달을 쳐다보며 땅이 꺼져라 한 숨을 푹 내쉬었다.
족제비는 스님이 무엇 때문에 고민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벌써 몇 해째 암자에 칩거하면서 <염송설화>를 집필하고 있는 스님이 이제 마지막 순간에 붓이 다 닳아 더 이상 집필을 할 수 없게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날 밤 족제비는 잠이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올 겨울엔 완성을 시켜야지 하시던 스님의 말씀이 자꾸 떠올랐다.
족제비는 지금 자신이 스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곰곰 생각했다. 스님의 은덕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해온 자신이었다. 온몸에 독이 퍼져 다 죽게 된 것을 스님이 살려주었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스님의 은혜만은 갚겠다고 스스로 굳게 맹세해온 그였다.
족제비는 그 맹세를 실천해야 할 날이 다가온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한 몸 던져 스님께서 불경을 완성하실 수 있다면 죽어도 죽은 목숨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스님이 일어나 방문을 열었을 때 족제비는 바로 방문 앞에 죽어 있었다.
이는 필시 우연한 죽음이 아니야. 자기 꼬리로 黃毛筆을 만들어 불경을 완성하라는 족제비의 거룩한 뜻이 담겨 있는 거야.
스님은 족제비가 생명을 바쳐 자기 몸을 보시했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이 뭉클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맑은 불꽃 하나가 솟아나 스님의 온몸 구석구석을 활활 태우는 듯했다.
족제비의 죽음을 헛되이 해서는 안돼. 이 족제비 털로 黃毛筆을 만들어 불경을 완성하는 것만이 족제비의 죽음을 높이 받드는 일이야.
스님은 벽장 깊숙이 숨겨 놓았던 단도 한 자루를 꺼내 정성껏 숫돌에 갈았다.
스님은 아침 햇살이 칼끝에서 날카롭게 빛을 발하자 조심스럽게 두껍고 긴 족제비의 꼬리를 잘랐다. 그리고 깊게 눈구덩이를 파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족제비의 시체를 묻었다.
춥지만 여기서 좀 자고 있거라. 봄이 와서 눈이 녹으면 내 널 다시 묻어줄 테니.....
족제비는 모든게 원하는 대로 잘 이루어졌다는 듯 입가에 잠시 미소가 스치다가 사라지는 듯 했다.
스님은 족제비의 꼬리털을 푹 삶아서 잘 말린 다음, 재로 문질러 기름기를 빼내었다. 기름기가 다 빠진 털을 통 속에 넣어 원추형의 붓털 모양으로 만든 다음, 붓털의 基部를 실로 동여매고 인두로 지져서 고정시키고, 다시 붓자루에 끼워 풀로 붙여 제대로 된 황모필을 만들었다.
죽은 족제비의 꼬리털로 몇 자루의 黃毛筆이 만들어졌다. 스님은 그 붓으로 다시 집필을 시작했다. 부처님의 말씀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족제비의 갸륵한 마음을 높이 받들어 스님은 단 한 순간도 집필의 손을 놓지 않았다.
폭설이 몇 번 더 내리는 동안 겨울은 더욱 깊어졌다가 봄이 다시 찾아왔다. 서른 권 째를 마지막으로 <염송설화>를 다 완성하자 산에는 눈녹은 물이 맑게 흐르기 시작했다.
눈이 다 녹자 눈구덩이 속에 파묻어 둔 족제비의 시체가 그대로 드러났다. 족제비는 꼬리가 잘린 채 눈이 녹아 질척질척한 땅바닥에 모로 누워 잠에서 깨어날 줄을 몰랐다.
스님은 족제비의 시체를 소중히 거두어 다비를 해주었다. 족제비의 주검을 태우는 불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모두 다 모여 한순간 불길 속에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튿날, 다비의 불길이 다 꺼지고 아침이 되자 햇살에 영롱히 빛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사리였다. 족제비의 몸에서 나온 사리가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아, 족제비의 몸에서 사리가 나오다니!
스님은 혹시 그 족제비가 부처님이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오랫동안 고개 숙여 합장 기도했다. 그리고 몇 해 동안 시주를 거둬 사리탑을 세워 족제비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정성껏 안치했다.
우리는 지금도 그 사리탑을 찾아가 볼 수 있다. 지리산의 영원사 위쪽 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다 보면 <上無住庵>이라는 암자가 나오는데, 그 암자에 있는 삼층석탑이 그것이다.
[정호승 쓴 어른이 읽는 동화 항아리 (열림원 刊)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