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마음보다 먼저 길들여지는 몸
제5절 지리산이 키운 진돗개의 야성
오늘의 종착지는 삼화실! 배꽃, 복숭아꽃, 오얏꽃이 많은 세 개 마을을
합쳐 붙인 이름이라는데 이 얼마나 아름다운 발상인가. 지금부터는 난
이도 「하」! 들로 강으로 산천 경계 구경하며 천천히 걸으면 된다. 그런데
1시간 뒤 관점 마을에 들어서서 드디어 사고가 터졌다. 늘 그랬듯이 앞
서 가던 정돌이 어미와 정돌이의 동생이 신작로 한 편에 서서 축대 아래
밭을 주시하고 서 있다. 뭘 보나 싶어 다가가 보니 유유자적 모이를 쪼
고 있는 토실토실한 노란 토종 암탉 한 마리. 순간 저 녀석들이 합작으
로 잡은 멧돼지가 여러 마리라는 식당 아주머니의 말이 살아나면서 저
닭을 덮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번개처럼 강하게 머리를 때렸
다. 들고 있던 등산 스틱으로 정돌이 동생을 치자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순간, 이소룡 몸매의 어미는 이미 축대 아래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내
가 옆에 있던 J에게 돌멩이를 찾으라고 외침과 거의 동시에 암탉의 찢어
지는 비명 소리는 온 동네에 메아리쳤다. 두어 번의 급회전이 있었나?
마치 고속 촬영영상처럼 한두 번 물고 놓치나 싶더니 서너 개의 닭 털은
허공에 휘날리고.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단말마의 비명 소리는 아주 애
절했다. 급기야 어미 입가에 붉은 선혈이 비쳤다. 상황 종료.
얼굴도 식별하기 힘들 정도로 먼 곳 밭 한가운데에서 고함이 들려온다.
“닭 어떻게 됐습니까?”
“우리 개 아닙니다.”
“닭 어떻게 됐냐니까요? 죽었죠!”
잠깐 침묵이 흘렀다. 조금 전까지 거친 숨을 몰아 쉬던 닭이 미동도 하
지 않는다.
“우리 개 아닙니다.”
“닭 어떻게 할 겁니까?”
긴급 구수 회의.
‘그래, 조금 변상하자. 주인 누구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이
제 저 놈들 이 동네 다시는 못 다닐 수도 있다.’
“아저씨 우리 개는 아닌데요. 그래도 돈 만 원 드릴게요. 바로 이 집 맞
습니까? 우체통에 만원 넣고 갑니다.”
“조심히 가세요!”어찌 목소리가 한결 부드럽다.
그렇게 이 동행들에게 적지 않은 수고비를 지불했다. 결국 갈비탕값 나
갔다.
지금도 의견은 분분하다.
‘그 닭 들고 왔어야 한다.’
‘아니다. 피가 철철 흐르는 놈을 어떻게 들고 다니며 털은 누가 벗기냐?’
‘그 아저씨 일부러 닭 풀어 둔 거다. 상습범이다. 만 원 건지고 그날 저녁
그 닭 상에 올랐다.’
‘그럴 리 없다.’ 등등.
상당 시간 어미는 보이지 않았고 시간이 좀 흘러 눈에 띄었을 때 야단을
쳤다. 닭을 죽이면 어떻게 하느냐고. 마치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라도 하
는 듯 바닥에 바짝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고 눈길도 피한다. 그 곁에 있
는 새끼 두 마리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내 눈에는 아주 풀이 죽어
보였다. 이놈들의 야성은 종착지에 도착하기까지 두 번 더 드러났는데
한 번은 갑자기 두 놈이 산등성이 언덕으로 달려들어 두 발로 구멍을 후
벼 파더니 대가리 - 절대 주둥이가 아님 - 를 처박고는 으르렁 거리며
난리를 떨었다. 한 놈이 주둥이를 박으면 다른 놈은 다른 쪽을 후벼 파
고. 아마 들쥐 구멍이라도 발견한 모양이었다. 순간 아닌 밤중에 홍두깨
도 유분수지 구멍 안에서 발발 떨고 있을 들쥐를 생각을 하니 얼마나 우
습던지.
또 한 번은 새끼 두 놈 중 한 놈이 고양이를 몰았다. 아무런 소리도 없었
는데 나머지 두 마리가 쏜살같이 합세해 덤벼드니 고양이는 혼비백산
나무 위로 도망갔다. 이 또한 얼마나 진귀한 구경거리인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고양이는 나무에서 미끄러졌고 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도
망가는데 순식간 일대에 먼지가 휘날리고 난리가 났다. 또 닭이 아니길
천만다행이다. 결국 진돗개 모자의 고양이 사냥은 실패로 돌아갔다.
종착지인 삼화실 안내소에 도착하니 직원들이 모두 알아본다. 우리는
무용담처럼 닭값 변상한 이야기를 하니 저 녀석들이 잡은 멧돼지가 근
스무 마리 정도 된단다. 그날은 온 동네 잔치가 벌어진다는데. 개가 피
맛을 보았으니 위험하다며 이제 된장 바를 때가 되었단다. 순간 정돌이
네 집에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어미가 좀 포악해 보이
니 연락해서 묶어 두시게 하라 했다. 덕택에 재미있게 왔다는 인사도 빠
뜨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 먼 길을 어떻게 돌아가냐고 걱정을 비추었더
니 염려 말란다.
개들의 영역 범위는 어느 정도일까? 무릇 인간을 제외한 - 과거 수렵시
대에는 인간도 그러했겠지 - 모든 생명체는 소위 활동 영역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녀석들의 뒤를 따르면서 계속 품었던 의문 하나. 도대체 개
의 방광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 겨우 몇 방울(?)씩 흘리는 수준이지만
수도 없이 오줌을 뿌리며 가는데 신기할 따름이었다. 결국 그 냄새로 길
을 찾아 가는 거다. 자유롭게 영역 표시를 할 수 있는 한 개들이 활동 범
위는 무한한가? 또 궁금한 행동 하나. 어떤 경우에는 오줌을 조금만 뿌
리고 어떤 경우에는 오줌을 뿌린 후 두 발로 심할 정도로 흙을 파헤쳐 뿌
린다. 무슨 차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