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5일 토요일
화개재를 지나 연하천산장으로 가기 전 바로 만나는 봉우리가 토끼봉이다. 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불린다고 한다.
토끼봉의 산세는 험하지는 않지만 오르막길이 길어 노고단방향에서 출발하여 그 날 연하천이상의 대피소에서 숙박을 하는 경우에는 꽤 힘든 코스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오늘같이 뱀사골산장에서 일박을 하고 아침에 오르는 경우에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 수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의 경우 종주코스중 특히 힘든 코스를 들라하면 토끼봉, 영신봉, 촛대봉, 제석봉 네 곳을 꼽는다.
우리는 뱀사골산장에서 간단히 누룽지를 끓여먹고 새벽 5시 전에 출발하여 화개재에서 먼 동이 밝아 오르려는 지리산의 능파를 배경으로 사진촬영에 공을 들이고는 토끼봉을 거쳐 연하천산장을 향하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는 20키로의 배낭을 지고도 그리 힘들지가 않은 것이 근래 4개월 이상을 매일 3시간정도씩 아내와 함께 집과 가까운 삼성산을 야간등산하며 체력을 기른 덕택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명선봉을 거쳐 아침 9시 30분 경에 연하천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제 막 아침을 끝낸듯한 산꾼들로 붐볐고 사철 물이 풍성한 연하천의 물을 보충하고 벽소령으로 발걸음을 향하였다.
여기서부터 우리 일행은 서서히 쳐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새벽에 너무 서둘러 오느라 누룽지를 끓인 죽으로 몇 숫가락 들지 않아 허기가 진 이유에서였다. 뱀사골산장에서 저녁에 잠들 때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이 아침의 식사를 준비하기로 하여 내가 준비를 하였는데 누룽지를 끓이고 햇반 하나와 기본 반찬과 캔고등어를 준비했는데 어제 저녁 술을 마시고 자서 입맛이 없기도 하려니와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기도 힘들어 나를 제외한 일행은 다른 것은 손을 대지않고 누룽지 끓인 것을 두 어 숫가락만 입에 대고 말은 것이다. 음식을 준비한 나는 햇반은 개봉을 하지 않아 점심에 먹을 요량으로 다시 배낭에 챙겨 넣었지만 선비샘까지의 일정도 녹녹치 않고 누룽지 끓여 남은 것과 데워서 개봉해 놓은 고등어를 버릴 수도 없어 그냥 혼자 다 먹은 연유로 다행히 시장하지는 않았는데 다른 일행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선비샘에 도착한 일행은 허기가 지니 힘이 없어 혼났다며 아침 그 비린 고등어를 내가 혼자 다 먹는 것을 보며 ‘저 비린 것을 어찌 저리도 먹을까’ 생각했었는데 허기져 오는 내내 ‘그 때 누룽지 끓인 것과 고등어 살코기를 몇 점 더 먹었더라면 이리도 허기지지는 않았을 터인데....“라고 생각했다 하며 그 날 내내 비린 고등어를 화재로 삼았다. 죽비는 지리산에 오니 사람이 원초적이 되어 먹을거리와 육체적인 힘든 것에 대한 것 밖에 생각나지 않아 단순해진다면서 일행을 대변한다. 죽비는 근래 건강을 챙기는 것과 나태해져가는 자신과의 싸움을 할 요량으로 마라톤에 열중하여 풀코스도 몇 차례나 완주했다는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긴 산행을 하는 것이 마라톤과는 또 다른 힘든 면이 있나보다.
선비샘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오침을 할 요량으로 누었다. 피곤한 몸이 잠깐이라도 잠에 취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려니 했는데 반바지를 입은 다리에 개미가 올라오고 벌같은 것이 윙윙 날라다녀 그러기가 어려웠다.
오늘의 목적지는 세석산장이다. 종전의 종주일정에 비교하면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코스이고 천천히 가도 오후 5시면 도착할 수 있어 마음이 전혀 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벽소령산장을 지나 세석평전을 가는 굽이굽이 지리산 능선길을 등 뒤로는 우리가 걸어온 반야봉을 지고 앞으로는 세석과 천왕봉을 바라보며 경관이 좋은 곳을 만나면 사진을 찍어가며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일행끼리 정담을 나누었다. 처음에 의도한 느슨한 지리산행이 계획대로 된 것이다.
세석평전에 도착할 무렵 잠시 비가 내렸으나 비를 흠뻑 젖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잠자리에 들기까지 운무가 자욱하여 세석으로 오기 전 내가 일행들에게 이야기한 세석에서의 그 주먹크기만하던 아름다운 별자리를 볼 수 없어 아쉬워하긴 했지만 산장의 평온한 잠자리 속에서 세석의 아름다운 별자리를 기대하던 모두의 가슴에 초롱초롱한 별들이 고요히 내려앉았으리라.
~~~~~~~~
8월 6일 일요일
우리는 아직 어둑어둑한 세석산장의 잠자리에서 일어나 어제밤의 꿈자리에서 같이 했던 세석의 하늘 위를 수놓는 초롱초롱한 새벽별들을 바라보면서 어제아침 뱀사골산장에서 식사를 부실하게 하여 고생한 시행착오를 오늘은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세석산장에서 새벽 4시에 캔황도와 초코파이 두어 개로 간단히 요기를 한 다음 장터목에 가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의논이 되어 지리산종주의 마지막 날 새벽 4시에 우리는 촛대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제 세석산장 관리인의 말로는 촛대봉의 일출시간은 새벽 5시 15분경인데 일기관계로 일출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 하여 촛대봉의 일출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였다.
내가 처음으로 지리산을 올랐던 코스가 의신을 들머리로 하는 대성계곡코스로 세석평전을 올랐던 것이고 (지금의 취사장으로 쓰는 자리가 종전의 대피소임.) 1947년 정해년에 조고(祖考)께서 지리산 천왕봉을 등정할 때 세석평전의 양씨 노인집에서 1박을 한 기록이 있어 지리산 중에서 특히 세석에 대해서 남다른 감회를 가지고 있다.
연하봉이 바라보이는 목장길(?) 전에 조망이 좋은 바위를 골라 연하봉을 배경으로 하여 사진을 찍고는 장터목산장에 도착하여 밥을 지으려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어 이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우리는 아침식사를 하면서 천왕봉을 올라 하산코스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하였다. 천왕봉을 오른 다음 치밭목산장이나 칠선계곡으로 내려갈 것인지 아니면 중산리나 백무동코스중에서 택일하는 것인데 본래의 계획은 치밭목산장을 거쳐 유평리로 내려가는 것이었지만 지리산 10경의 하나이고 휴식년제로 아직 가보지 않은 칠선계곡으로 변경하는 것도 욕심을 내볼 수 있겠고 백무동이나 중산리 코스는 혹시나 일행 중 지친 사람이 있을까 보아 빠른 하산길을 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인데 일행 중에 남원아짐님을 생각한 말이었다.
의논중에 칠선계곡의 휴식년제가 풀렸는지를 알아보러 지게꾼님이 장터목산장 직원에게 물어보러 갔고 남원아짐은 고민을 하다가 많이 힘들었는지 아니면 다른 스케쥴이 있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여기서 백무동으로 그냥 하산을 하겠다고 하고 칠선계곡은 아직 통행이 불가하다하여 우리는 애당초의 스케쥴대로 유평리로 하산하기로 하였다.
장터목산장은 해발 1750미터에 있어 오르려는 천왕봉까지는 165미터의 고도차이가 있는데 50분정도의 소요시간으로 고사목지대로 유명한 제석봉을 거쳐 오르는 천왕봉길이 경사가 급하여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오르는 길이 쉽지만은 않지만 지난 이틀간의 긴 장정끝에 오르는 최고봉에 오른다는 설레는 마음이 육체의 힘듦을 눌렀다.
오늘은 평소의 천왕봉 등정인원보다 그리 많지 않아서 그리 힘들이지 않고 천왕봉 표지석을 보듬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잠시의 휴식을 취한 다음 중봉을 향하여 걸음을 옮기었다. 나는 일행의 앞장을 서서 식수를 보충할 목적으로 전에 위치를 들은 적이 있는 중봉샘을 찾으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바로 앞에 두 사람의 등산객이 있어 긴장된 얼굴로 우리에게 저 앞에 반달곰이 나타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호기심에 카메라를 그쪽 방향으로 들이대고 살피는데 중봉을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 전에 작업인부의 기거하는 용도로 쓰이는 듯한 컨테이너 출입문 쪽에 곰 한 마리가 컨테이너 문을 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컨테이너 출입문을 안쪽방향에서 고리를 걸어놓았는지 열리지가 않아 몇 번을 시도해 본 후 다시 옆 창 쪽으로 가서는 창살이 하나가 빠진 창을 기웃거리다 이내 그 쪽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앞의 두 사람과 우리 일행은 중봉샘을 찾아 물을 보충할 겨를이 없이 곰이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선 사이 부랴부랴 그곳을 통과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허겁지겁 올라가는 사이 지게꾼님은 자신의 카메라를 들고 컨테이너 반대편 창으로 가서 곰이 뭐하는지를 살피며 사진을 찍고자 하였단다. 그랬더니 컨테이너 안에서 곰이 계란을 깨먹고 있다 지게꾼님을 보고 창 쪽으로 와서 앞발을 창쪽으로 덥썩 덮치며 어르렁거려 지게꾼님은 깜짝 놀라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다시피 하여 우리 쪽으로 왔단다.
우리는 중봉에 올라와 휴대폰을 들고 국립공원사무소 반달곰을 관리하는 부서를 찾아 이 내용을 신고하여 참고하라 하였는데 당시는 무척 놀란 마음으로 허둥거렸지만 지금와서 생각하니 지리산국립공원에서 생태보전목적으로 훈련시켜 방사한 반달가슴곰이 야생에 적응을 못하여 사람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대개 산길을 걷는 것은 오르막길이 힘들고 내리막길은 위험한 법이니 3일간의 긴 산행으로 지쳐있는데다 또한 써레봉과 치밭목산장을 경유하여 유평리로 내려가는 길이 짧지 않아 조심을 할 필요가 있다. 남원아짐님을 보내고 나를 포함하여 지게꾼,죽비 이렇게 우리 셋은 지리산의 제2봉인 중봉의 봉우리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봉을 내려와서 다시금 써레봉을 탄다. 오르내리며 아기자기하여 지루하지 않은 코스가 써래봉인데 써레봉은 문득문득 천왕봉을 우러러 바라보고 좌로는 치밭목산장쪽을, 우측으로는 마야계곡을 바라보는 조망미가 좋기도 하려니와 사람의 출입이 상대적으로 적은 관계로 지리산 본래의 그런 분위기를 가지는 코스라고 생각한다.
언제나처럼 무뚝뚝하게 맞이하는 민병태씨가 관리하고 있는 치밭목산장에 도착하니 오전 12시가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굳이 여기서 점심을 하지 말고 좀 더 하산하며 내려가는 도중에 하자는 의견이 있어 그렇게 하기로 하였는데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도 없어 민병태씨 얼굴이나 보고 가자는 심사로 매점으로 가서 탄산음료 두 개를 사며 “이번 여름 매상을 좀 올렸느냐?”는 물음에 “매상 올리고 자시고 할 일이 없네요.”라고 무뚜뚝하게 대답하는 민병태씨는 천상 경상도 산사나이이다.
일행은 무재치기 폭포를 들르지 않고 그대로 하산길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오는데 새재와 유평리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를 놓고 일행간에 잠시 의논이 있었고 길이 멀고 험하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유평리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마지막 내려오는 길에 30분 정도 소나기를 만나 흠뻑 젖었고 창갈이를 해야 하는 시간을 놓친 등산화 덕분에 두 번씩이나 진흙길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지리산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순순히 내보내주지 않는가보다.
굽이굽이 지리산능선길은 딱히 몇 마디 말로 뭐라 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의식으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수유(授乳)를 받던 아련히 어머니의 젖무덤같고 아내의 속살내음이 물씬 풍기는 듯한 그런 산이 지리산인데 그 중에서도 치밭목,써레봉,중봉으로 잇는 길에서 특히 그런 것을 느낀다. 이제 나는 3일간 나를 보듬고 있던 지리산의 품을 떠나게 되었고 다음 산행 때까지 또 얼마간이나 긴 시간을 도심 빌딩의 숲에서 지리산의 품을 그리며 지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일이다.
애송시 중에 권경업 시인의 ‘취밭목 가는 길’로 지리산종주산행기를 아쉬운 마음으로 마칠까한다.
치밭목 가는 길
돌부리 가시밭길
휑하니 집 나가서 떠돌다 온 놈
보기 싫다 외면 않고, 그래도
제비꽃 양지꽃을, 속옷의
레이스처럼 피운 섶을 열어
묵묵히 속살로 맞이하는
못난 시인의 선한 아내 같은 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