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 >어쩌면 그렇게 쉽게 지리산의 마지막 밤을 일상의 잠으로 보내는게 > >아까웠는지도 모르겠다. > >친구는 이미 침낭속으로 머리까지 감추었고,새벽의 산행을 준비하고자 모두들 > >이른 잠자리에 들고 있었다. > > > >친구가 알새라 침낭속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밖으로 나왔다. > >여전히 짙은 안개와 바람에 날리는 빗방울이 온몸에 한기를 느끼게 했다. > > > >조금전 국립공원 관리공단 소속의 산장지기 아저씨가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 >등반객들에게 공지사항을 하나둘 알려주는 자리가 있었다. > >마치 스튜어디스 언니들이 하는것 처럼. > > > >"꾸벅" > > > >"에~~지금으로 봐서 내일 일출을 본다는건 불가능한 일로 사료가 되오나 > >갑자기 날씨가 맑아져 일출을 보실수 있게 될라 치면....흠흠..... > >새벽 4시경 지체없이 방송을 할것이니 안심하셔두 되갔습니다" > > > >이런 날씨 속에서 천왕봉 일출을 맞이 한다는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 >원래 지리산에서 맑은 일출을 본다는건 쓰리고에 따따블 씌우는것 만큼 > >어려운 일이라 한다. > > > >산장앞 벤치에 나와 한 30분 정도 등산랜턴을 안개속으로 > >맴맴 돌리며 앉아있으려니 이 생각 저생각이 난다. > >흡사 그 모습이 심하게 소외된 왕따 학생의 하소연 같다. > >"이러고 있으면 그녀를 볼수 있을까?" > >"으~~에취" > >지리산의 매서운 칼바람이 옷깃을 여민 사이사이로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 >"에이 들어가서 잠이나 자자". > > > >머리맡의 창문틀에선 세차게 부딛친 바람들이 휘 돌아나가고 있었지만 > >침낭속은 너무나 아늑했다. > >바람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 > > > > >"야!! 야!! 쾌청하대" > >친구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새벽 4시다 > >"뻥까지마" > >"아니야 정말이야" > > > >정말로 바람이 휘돌던 창가에 보름달이 휘영청 걸려 있었다. > > > >고요하던 산장이 5분대기조 내무반으로 바뀌며,우당탕 쿵탕, > >여기저기서 서둘러 등반 준비를 하느라 방안이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 >늦게 까지 팩소주를 까던 옆자리의 아저씨도 얼떨결에 일어나고, > >고독맨도 부지런을 떤다. > >내친구는 벌써 문앞에 나가있다. > > > >어차피 일출을 구경한뒤에는 산장으로 다시 내려와서 하산을 하므로 > >반대로 넘어가는 일부 등반객을 제외하곤 모두들 장비를 산장에 두고 > >가벼운 빈몸으로 정상을 향했다. > >칠흙같은 어둠속에 달빛에 의지하여 방향을 잡고 랜턴으로 길을 밝히니 > >천왕봉 향하는 등산로가 붉밝힌 손전등이 연결되어 한길로 이어진다. > > > >장관이었다. > > > >"이 불빛 한점중 하나는 그녀의 것이겠지." > > > >은은한 보름달 아래서 성공리에 작업을 마치겠다던 계획이 빗나간건 > >순전히 산장지기 아저씨 때문이었다. > >그녀 일행의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산장 미 예약들에게 침상을 배정 한다며 > >모이라고 한것이다. > >늦으면 자리가 없단다. > >공지사항 듣고 자리 배정 하자마자 다시 나갔지만 그녀는 이미 식사를 마친후였다 . > >빨간 반바지에 빨간색 윈드자켓을 맞춰입고,통통한 배낭을 짊어진채 베이지색 > >벙거지를 귀엽게 눌러쓴 모습이 자꾸 떠올랐지만 그날밤 그 모습을 다시 볼순 > >없었다. > > > >땀 흘리며 장터목 산장을 출발한지 1시간, > >벌목꾼들이 일부러 태워서 생긴 고사목 지대인 제석봉을 지나 > >조금 더 올라가니 드디어 천왕봉이 눈 앞에 있다. > >우뚝솓은 바위 위에 20~30평 공간이 있고 먼저온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다 . > >아직 지지 않은 보름달이 밝혀주는 불빛속에서 > >모두들 해돋이를 감상할 명당자리를 차지하느라 여념이 없다. > > > >지리산 전체가 조금씩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 >언제부터 오려했는데 이제야 왔단 말인가. > >너무도 거대하다. > >저 멀리에서부터 내가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 >미리 봤더라면 엄두가 안 날뻔했다. > > > >아둔한 사람이 들어와서 어질어진다고 지리산이고 > >백두산으로 부터 흘러온 자락이라고 두류산이라고도 한단다. > >설악산을 남성에 비유하면 지리산은 여성이라고 한다. > >바디빌더의 섬세하게 다듬어진 근육처럼 울뚝불뚝한 맛은 없으나 > >풍만한 여인이 누워있는듯 볼륨감 넘치는 산세가 지리산의 여성미다. > >어머니의 품속에서 의지하듯 지리산의 자락에서 어머님의 정을 느낀다. > > > >해가 솟는다. > >지리산의 제일봉이 우주의 정기를 받아들이고 있다. > >그곳의 정기는 백두 대간을 타고 한반도로 흘러갈것이다. > >모두들 말이 없다. > >민족의 영봉 지리산. > > > >어디선가 그녀가 함께 하고 있는 듯 했다. > >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