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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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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28일 저녁...
처음으로 맞는 지리산 주능선 종주산행에 대한 기대로
회사에서 집으로 오는데 가슴이 꽁닥꽁닥(?) 뛴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도 이렇게 가슴 설레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
왠지 놀랍다.  아니 내가 아직도 철부지 티를 못 벗어서인지도 모른다.

일행으로 함께 할 사촌형님(50대)을 만나 집에 와 저녁먹고
최종적으로 배낭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잠시 눈부치고
서울역으로 나갔다.  막바지 여름 더위로 날씨는 후덥지근하다.

서울역에서 밤 11시 50분발 진주행 야간 열차에 몸을 실었다.
좌석을 확인하고는 지금부터 내일 산행을 위해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눈을 감고 내일 산행을 그려본다.

준비물은 다 가져왔는가, 내일은 내리자마자 어떻게 해야하겠다는
생각들... 가만 생각해보니, 중산리로 내려올 때 요긴하게 쓸 양으로
사두었던 스틱을 집에 놓고 왔다.  어제 일부러 E-mart까지 나가서
사왔는데... 아쉬움과 함께 점점 늘어만 가는 건망증을 탓해본다.

출발부터 문제는 연이어 터졌다.
눈을 감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자리를 확인해 달라고 한다.
둘의 기차표를 확인하니 모두 2-45석....???
이상하다 둘 다 맞는데
혹시 차표에 error라도 발생되었나 하고 생각하던 중에
"우 우~~~" 내 표에는 오전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고
그 사람 표에는 오후라는 표시와 함께 오후 23:50분이라는 표시가~~

이런 실수를 처음부터 연발하다니~~~ 머리에서 연기 나며
나의 실수를 뉘우쳐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내가 타야할 기차는 벌써 진주역에 도착한 후, 아마 지금쯤 서울로
다시 오고 있을게다... 역무원에게 가서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표를 다시 사라고 한다.  좋다~ 어떻게든 자리만 만들어준다면
돈은 내겠다고 이야기했다.

덕분에 천안 역까지 기차칸 사이의 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어려운 잠을 청했다.  천안을 지나서 역무원이 빈자리를
알려주어서 구례구역까지 앉아 왔지만 정작 잠을 자지 못했다.
오히려 잠을 잔 곳은 덜컹거리며 금속음이 귀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기차칸 사이의 바닥자리...
인간의 마음에 따라 몸과 환경이 다르게 다가옴을 실감한다.

5시 1분...
구례구 역에 도착하자마자~~
식당에 들려 아침식사와 점심때 먹을 김밥을 샀다.
성삼재로 오르는 군내버스로 몸을 싣고 지리산을 오르니
새벽 안개에 가렸던 지리산은 에머랄드 빛의 새파란 하늘과
함께 경이로운 풍경으로 시야에, 아니 가슴에 다가온다.
간밤에 불편하게 설친 잠자리가 껄끄럽지만 왠지
요번 종주산행이 잘 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물론 잘되어야지~~ 얼마동안 벼르다가 시간을 어렵게 만들어
억지로 온 산행인데 하는 생각과 함께...
지리산이란 맛있는 사과를 이제부터 한 입씩 아삭아삭
배어먹는 재미를 만끽하겠다는 생각이 그득하다.

성삼재 휴게소에서 노고단에 오르는 길은 차가 다닐 수 있는 길...
안개가 조금씩 다가왔다가 걷히곤 하지만 그 위로 보이는
아름다운 하늘은 도시 생활의 공해 띠와 고층건물에 가려서
잊혀져갔던 아주 어릴 때 보았던 그 새파란 가을 하늘을
기억 저편에서 생각나게 해주었다.
속으로 정말 잘왔다 라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노고단에서 한숨을 돌리고, 포시스라는 가구회사에 다니는 젊은
총각 한 명을 만나 일행으로 삼고 노고단에 오르니 이제는
지리산이란 사과를 한 입 상큼하게 배어 문 기분이다.
출발지점을 알리는 전리품... 사진 한 장을 박고

임걸령을 향해 걸어가니,
길은 푸근하게 느껴지는 숲속의 오솔길...
이름모를 숲 속의 야생화는 길가에서 오서와요 하며
반기면서 수줍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바람은 가끔씩 살랑살랑거리며 겨드랑이를 간질거리고,...
거의 수평에 가까운 능선길은 조금씩 올랐다가 또 떨어지고
전혀 다리에 무리 없이 오히려 힘을 더하게 할 정도로 좋다.

그때서야, 지리산이란 사과를 한 입 맛있게 배어 물고는
바로 이 맛이야~ 하는 생각이 든다.  속으로 이제부터는
3일 동안 아작아작 이 지리산이란 사과를 맛있게 작살내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메운다.  
처음 맛본 사과맛이 정말 끝내준다.
사람들이 그래서 지리산을 이토록 좋아하는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다.

꿈길같은 숲속길을 걸어서 임걸령에 도착하니
성삼재로 오는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순천에서 온
국민학교 선생님이 반겨준다(반야봉으로 오른다고 함).  

서울사는 아들이 혼자 벌어 먹고 사는 것이 걱정이 된다고 하셨는데,
지금껏 키워서 대학보내고 번듯하게 결혼까지 시켰으면 됐지,
더 이상 바랄것이 없건만, 조금이라도 자식에게 부족함이 없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은 늘 아들곁을 떠나질 않는 모양이다.

임걸령 샘물은 옆에 있는 육산에서 흘려나오는 것인데 수량이 풍부하고
물맛이 약간 달착지근한게 정말 맛있다. 지리산에서 제일의 물맛을
자랑한다는 명성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9시 5분~~ 사진 한 장을 또 찍고, 이제는 노루목으로 향했다.
성삼재부터 노란색 등산 조끼를 입은 여자분들과 사촌형님은 서로 만나는
횟수를 손으로 가리키며 또 만났네를 연발한다.  반갑다고
또 힘이드는 산행에 힘내라고 과일과 초코렛을 서로 건네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속으로 지리산 견우 직녀인가 함께 출발해서
서로 쉬면서 가다보면 만나는 것이야 당연하지 이토록 티를 내나 하고
빈정거렸지만, 사람들이 푸근한 마음은 벌써 지리산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서울 근교의 산을 연상할 수 있는 길을 지나 숨을 헐덕이며 조금
위로 오르니 반야봉과 천왕봉으로가는 갈림길...
이곳이 노루목인가보다.  협소해 보이는  쉼터에서 누군가가
뿌려놓고 간 비스켓을 참새만한 이름모를 새가 열심히 먹고 있다.
별로 인간을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다가와서 비스켓을 물고는
나무위로 날라 감추고, 또 내려와서 물고 가는 반복 동작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잠시 쉬려 벗어둔 내 배낭을 자기의 뒤간으로 잘못 알고
똥을 떨어뜨렸다...

이곳에서 잠시 쉬며 길을 잘못드는 사람을 여럿보았다.
위로 올라가는 방향은 반야봉이고, 아래로 내려가야 천왕봉인데
초행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무의식적으로
윗길로 올라간다.  국립공원 직원이 이 글을 본다면 다음해에는
반드시 이곳에 이정표를 확실히 만들어서 초행의 등산객을
배려해 주었으면 좋겠다.

다시 적절히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천왕봉 방향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니 삼도봉,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행정구역의 경계선을 표시하는 작은 표지석이 하나 서 있었다.
산행중 줄곧 느낀 것은 사람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면 어디에나
파리떼가 들끓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먹고 간 음식 뒤처리를
소홀히 해서 일어난 것 같다.

그저 왔다가 아름다운 경치만 마음껏 감상하고, 발자욱과
마음만 남기고 간다면 얼마나 좋은까...
군데 군데 발견되는 버려진 양심같은 쓰레기 조각이나
봉지는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그나마 지리산을 아끼는 사람들이 조금씩 많아지면서 이러한
현상들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반갑다.  가끔씩 쉴때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가져간 봉투에 담아왔다. 지리산을
아끼는 동호회 모임에서는 앞으로 산행시에 이런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리면 좋을 것 같다.

삼도봉의 난간에 앉아서 바라보는 불무장등쪽의 계곡은 너무
깊고 아름다워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지리산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알게 해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기후의 변화가 심하다.
앞의 계곡이 금방 햇빛에 환했다가 또 다시 구름에 쌓여 보이지 않고
또 그 구름은 나에게 달려와 솜사탕같이, 구름속의 선녀처럼
안긴다.   함께 지리산을 처음으로 올랐던 사촌형님이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농담을 건낸다. 방금 구름속에서 선녀가
다가와 내품에 안겼다고... 마음나뿐 사람눈에는 보이지 않는데나~~
그렇다. 산은 어쩌면 자신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더 더욱 아름다운 자태로 다가올 것이고
쓰레기나 버리고 산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별것
아닌 자연의 한 부분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으리라.

아름다운 불무장등 계곡에 마음을 남기고 천왕봉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이번에 처음이지만 반드시 지리산~~ 그 맛있는 사과를
꼭 먹어치우고 말리라 라는 다짐을 새롭게 한다.  지금쯤, 1/4은
먹었으리란 생각을 했다.
적당히 오르락 내리락하는 오솔길 같은 산길을 나가니 이제는 뱀사골로
가는 나무계단길... 이 산꼭대기 능선길에 인공구조물을 만든
것이 아쉽다기 보다는 산을 보호하고 또 산을 오르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잘 되었다란 생각이 들었다.  
또 성삼재를 오르며 지불한 국립공원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나무계단길에는 내려가는 사람 등산객의
무릎에 올 수 있는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고무바닥을 설치해두었다.  
어떤 사람은 이 길에서 무릎을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려갈 때에 내딪는 발을 번갈아 쓰고, 또 중간 중간에 설치된
휴식소(바람이 적절히 불어주는 곳의 계단옆에는
간단히 앉아 쉴 수 있는 곳)에서 한번씩 쉰다면 크게 어렵지
않은 길이라 생각되었다.

다만, 주행속도에만 목표를 두고 내달리는 산행꾼들에는 이 길을
뛰어내려 갈 수 있는 길이기에 분명 무릎에 무리가 올 것이다.
우리는 초행이고, 산을 즐기려 왔기 때문에 이곳에서 쉬면서 중간중간
떨어지는 체력을 보충하였다.  우리는 뱀사골 대피소로 내려가지도 않고
또 화개재에서 식사할 때 강한 햇볕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서 사간 김밥을 새참으로 먹었다.

새참을 먹은 후, 계단을 계속 내려가니
뱀사골 대피소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화개재...
넗은 평지에는 지리산에 어울리지 않은 쓰레기 봉지가
쌓여있고, 이곳을 지키는 산장지기가 계속해서 쓰레기를 산장으로부터
헬기장이 있는 이곳으로 나르고 있었다.  일행에게 이제 토끼봉인데 이곳이
오늘 오전 산행의 피크(peak)가 될 것이라고 귀뜸을 해주었다.

오르막이 이어지는 산길을 숨을 헐떡이며 올라서니 토끼봉...
올라오는 길에 함께 앞지르고 뒤쳐지기를 계속했던 2명의 여자 등산객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준비해간 점심을 하고 있었다.
쏘세지 한 개씩을 얻어먹고 서로를 격려하며 길을 재촉하였다.

길을 함께 하는 등산객끼리는 묘하게 알지 못할 공동의식이 형성된다.
전혀 관련도 없고 모르는 타인인데도 왠지 주고 싶고, 아껴주고 싶고
또 나누어주고 싶은 생각이 있다.  이것이 내 속에 있는 본능인지
아니면 우리민족에 있는 고유한 정서인지 그것을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산행중 함께 하는 일행은 일종의 동류의식을 형성하여
서로를 격려하며 산행의 피로를 덜게 해주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도 연하천 산장에 먼저 도착하여 두 명의 여자 등산객에게
먹던 음식을 권했으나 앞으로 남은 산행거리와 시간의 버겨움으로
스쳐가 벽소령에서 일박을 같이하였다.

토끼봉 정상에서 우리는 커다란 실수를 하였다.
토끼봉 바로 아래가 연하천 산장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한 것이다.
덕분에 토끼봉을 내려와 연하천 산장을 기대하며 조금 지겨운 산행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토끼봉 다음에 명선봉을 지나서
긴 나무계단을 통과해야 연하천 산장인데 우리는 명선봉을 고려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지리산 능선 종주는 산행시간과 거리를 판단하고 하는
산행이기 때문에 이정표를 잘못 알거나 산행거리를 잘못 알았을 때는
다음 이정표까지가 무척 어렵게 느낄 수 있다.  

2시 30분...
그렇게 기대하던 연하천 산장에 도착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보았던 일행들이 먼저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있다.  연하천에 도착하기 얼마전에 4명의 학생일행과
조우하면서 힘들지요? 하면서 격려의 말을 건낸 적이 있다.
남자2 여자2로 구성된 일행이였는데 대답이 생기있고
튀는 것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로버트(robot)인가요 힘들지 않게요 ?"
웃음으로 그 대답을 들으며 정말 귀엽고 예쁜 여학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더 가서 우리는 그 일행에게 뒤에서 쫒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짐도 무척 무거워 보였는데 뒤에서 계속해서
몰아 붙이니 산행속도가 별루인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앞에서 내몰리다가 결국 꼬리를 내리며 옆으로 비켜서
길을 양보하고 말았다.
내심 지금까지 뒤에서 쫒기지 않으려 주행속도를 빨리했던 것이
허사로 돌아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연하천 가는길이
더욱 힘들었던 하나의 원인도 되었다.

연하천에서 점심을 지어먹으며 산행중 자주 보았던 일행들은
이제는 서로 대화도 나누며 어느새 일행처럼 친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산본에서 왔다던 젊은 부부의 경우가 그랬다.
우린 처음 이 둘을 미혼으로 착각했었다.
성삼재에 오르는 길도 구례에서 타지 않고 가는 길에 있는 모텔촌에서
탔기 때문에 산행도 좋지만 혼전에 서로의 욕심을 챙기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애까지 남에게 맡기고 온 산꾼부부다.  

특히 여자의 경우는 여간 또순이가 아니다.
밥을 2인분 지어 카례를 곁들여 맛있게 먹더니, 이것도
모자랐는지 라면을 또 끊여 먹는다.  옆에서 와~~ 많이 먹네 했더니,
별로 먹은 것이 없다고, 또 설걷이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재치있게
대답하였다. 깡마른 체구에 걸맞게 대식가이다.

유유상종이리고, 우리도 그에 못지 않게 많이 먹었다.  
일행 셋이서 라면 3개에 햇반을 라면 국물에 또 끊여먹고,
옆에서 식사하던 학생일행이 준 아버지 생일떡까지 먹었다.
그래~~ 먹는게 남는거다. 하고 퍼지게 먹었지만 이것은 결국 후회를
자처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은 이제 오후 3시30분을 향해가고 있었다.

3시 30분..
오늘의 고생은 대충 끝나간다는 한가닥 위안을 가슴에 묻고
벽소령 산장을 향해 출발하였다. 연하천 산장 주변에는 야생곰을 보호하려는지
아니면 등산로 정리를 하려는지 주변에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었다.
속으로 그 곰 몇마리를 위해 이제는 인간이 쫓겨나는 것이 원망스러웠지만
오늘 산행을 빨리 마치기 위해 길을 재촉하였다.  이제부터는 노고단 초입에서
보았던 오솔길이기 보다는 서울 근교의 야산을 오르는 기분이 드는
제법 바위와 흙길이 조화된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되는 길이다.
길 중간에 가파른 길은 산행을 돕기 위해 중간중간 밧줄도 메여져 있다.
그때 연하천에서 외쳤던 "먹는게 남는거다"란 구호가
"점심 많이 먹는 것은 바로 고생이다"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부터는 제법 남한 제일의 산다운 산세를 지닌 길이다.
오후 4시를 조금 넘겨 형제봉이 마주보이는 바위에 올랐다.  
지리산은 전체적으로 바위가 별로 없는 육산인데 형제봉의
바위모양은 북한산 위에 있을 법한 모양으로 제법 멋있다.
또 지리산은 야생화가 많은 산이어서 인지 형제봉 꼭대기에 보이는  
분홍의 야생화는 정말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이곳에서 멀리 11시 방향을 바라보니 벽소령 산장의 지붕이 멋지게
한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잠잘 곳이라는 탄성과 함께 가만히
가야할 길을 눈을 더듬어보니 약 4개의 봉우리가 더 보인다.  
저 봉우리를 타고 산을 넘지는 않을 것이고, 아마 봉우리 밑을 돌아
벽소령 산장에 도착할 것 같았다.  
눈앞에 들어온 벽소령 산장으로 가는 길은 삼각고지를 지나
역시 지루하고 제법 어려운 길이다.

중간에 시간을 확인할 겸 핸드폰을 켜서 집사람에게 전화를 하니
지금 차안에서 받는다며, 내일 비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고 한다.
출발 전에 확인한 일기예보는 내일까지는 괜찮고 모레인 토요일에
비가오기로 되어 있는데 하고 의아심이 났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어렵게 이 산을 발을 들여놓은 이상 꼭 천왕봉까지 정복하고 말겠다는
각오가 새롭게 피어났다.  

피곤한 산행객의 여정에 한가닥 희망같은 벽소령 산장에 도착한 것은
6시 20분경, 중간중간 많이 쉬어서 그런지 지도에 나타난 시간과는
우리가 걸어온 시간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아무튼 해지기 전에 벽소령 산장에 무사히 들어왔다는 안도감과,
힘든 지리산 능선 종주의 첫날을 무사히 마쳤다는 기쁨이
교차되어 이제는 지리산이라 사과의 반은 먹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잠시 쉬면서 지친 몸을 회복하고 산장 예약을 확인하니
건장하고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자리를 배정하며 옆으로 한자리씩을
비워 두었으니 편안한 밤이 되라고 말한다.
자리가 넉넉해서 그랬겠지만 내심 배려하는 인심이 고마웠다.

함께 온 일행중 퍼시스 가구에 근무하는 총각이 자기 배낭이 너무
무거우니 저녁을 자기 것에서 빼내서 식사를 하자고 청한다.
배낭을 열어서 확인해보니,
우와~~ 혼자서 가져와도 정말  너무 많이 가져왔다.
일단은 배낭의 무게를 줄일양으로, 또 함께 온 일행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고 안주도 할양으로 참치캔 2개, 스팸하나, 1600원 하는 김치 2개를
넣고 찌개를 한 냄비 끓여서 올라오면서 만난 학생들에게 주었다.
아마 카레를 해먹을 양으로 밥을 했는데 밥이 설익어서 낭패를 보던 중
우리가 준 참치찌게를 넣고 또 끓이니 맛있다고 이구동성이다.
산본서 왔다던 젊은 부부에게는 찌개는 끓이지 말라하고 함께 나누어
먹었다. 산에서 만나 서로 격려했던 만큼, 함께 저녁을 하니
서로를 향한 정(情)도 깊어지고 일행이라는 동류의식도 깊어갔다.

우리가 가져갔던 소주 3병을 함께 나누며 저녁을 먹고 나니 몸은
만신창되어 힘들지만, 벽소령 산장에서의 밤은 운치를 더해만 간다.
밤에 산에서 부는 바람은 벌써 추위를 느끼도록 선선하지만
땀에 기름까지 짜내며 힘든 길을 걸어온 등산객에서는 적당히 피로를
잊게 할 정도로 상큼하게만 느껴진다.

대충 저녁을 끝내니 8시~
산본에서 온 젊은 부부가 헤이즐럿 커피를 끓여서 대접한다.
산장에서 먹는 커피맛이 정말 끝내주게 좋았다고 이야기한다면
누구도 반문할 사람이 없을게다...
서울서 온 학생들이 다시 소주를 꺼내와 몆 잔을 더하고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은 낮게 드리우고 하늘에서는 별들이 쏟아진다.

까만 하늘에 저렇게 많은 별들을 바라보는 것은
보는이에겐 정말 행운이다.  
그리고 하늘에 별이 너무 많고 밝아서 행복했다.
우리 처와 병준이와 정은이도 함께 데리고 와
저 아름다운 별들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램이 마음속에서 간절히 일어난다.

이렇게 밖에서 멋진 순간을 맞는 사이 산장안에서는
누군가가 우리셋을 위해 빌려놓은 담요 2장을 슬적해서
깔고 잠든척하고 있다.  
에이~~ 치사한 사람, 이렇게 좋은 산에 와서도
산밑에서의 나쁜 마음을 털어내지 못하고 그것 몇푼한다고 남의
빌려놓은 담요를 슬적 훔쳐가는 거야 하며 속상했지만
산에서 배운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고 산장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담요를 빌리려하니 그냥 2장을 더내준다.  고마운 사람...

벽소령 산장에서의 잠자리는 훌륭했다.  
어제 저녁 물(술)을 많이 먹고 자서인지 새벽에 신호가 온다.
깨어보니 온통 어두움뿐 화장실을 갈 염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의 본능이 멈출리 없을테고 조용히 일어나  
후레쉬를 천정으로 비추면서 밖으로 나와 몸 안 가득했던
울분을 풀었다.

하늘을 바라보니 온통 구름으로 덮여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내일 비온다는 소리도 들었고 않되겠다 싶어 일행을 깨웠다.
조금 일찍 서둘러서 어찌하든지 장터목까지 일찍가자 했다.
4시도 되지 않아 일행을 깨웠지만,
모두는 종주를 위해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새롭게 했다.  

그러나 지리산이란 사과를 반밖에 먹지못할 아쉬운 현실이 임박해 있었다.
떠나려는데 누군가 태풍이 몰려와 도저히 산행이 불가하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은 비가 오지 않는데... 하면서 되뇌이며 정황을 물었다.
나중에 산장직원을 만나 대충 이야기를 들으니 엄청난 태풍이 제주도
밑에까지 와 있으며 4년전에는 무작정 떠나는 등산객들중 많은 수가
지리산에서 태풍 때문에 목숨을 잃었으니 절대 떠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으~~~어떻게 온 산행인데, 여기서 중단하란 말이야 하고
열이 났지만, 6시 뉴스를 보면서 오늘중으로 남부지방에 50-250미리의
비와 강풍이 예상되며 큰 비 피해가 우려된다는 기상예보에
어찌할 수 없이 나의 목표를 접어야만 했다.

TV에서 본 일기예보로 판단해보면 절대 상태가 나이지지 않을 것이고
기왕 포기하고 내려간다면 빨리가자. 그래야만 밑에서 몰리는 등산객들을
피해 빨리 서울로 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6시30분경에 벽소령 산장을 출발해서 벽소령 작전도로(빨치산 토벌도로)를
타고 음정으로 내려왔다. 버스로 함양까지 와서 함양에서 서울가는 고속버스를 타니 서울까지 3시간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함양서 서울까지 상경하는 시간이 상상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다.
정확하게 12시 56분에 동서울 터미널에 내려 테크노마트의 음식백화점에
들려 점심을 해결하고 집에 오니 1시30분....
아쉽지만 남은 종주기간을 다음으로 미루고 목욕하고 깊은 잠에 들었다.

아~~ 정말 아까운 내 사과 반쪽~~~
  • ?
    오해봉 2002.09.09 17:15
    잘 다듬어지고 정겨운 글 잘 읽었고 다음에 종주한 후에는 더 좋은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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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노총각의 지리산 종주 <1> 이슬총각 2002.08.30 2657
1017 노총각의 지리산 종주<2> 이슬총각 2002.08.30 2194
1016 노총각의 지리산 종주 <3> 1 이슬총각 2002.08.30 2331
1015 노총각의 지리산 종주<4> 이슬총각 2002.08.30 3589
1014 노총각의 지리산 종주 5 8 이슬총각 2002.08.31 2394
1013 [re] 벽소령의 쏟아지는 별빛의 향연 /언젠가는 나도 하리니~ 1 섬호정 2002.09.02 1870
» 벽소령의 쏟아지는 별빛.. 1 병정 2002.08.31 2395
1011 [re] 노총각의 지리산 종주<마지막회>수고와 함께 있을 그녀를 위해~ 섬호정 2002.09.04 1924
1010 [re] 노총각의 지리산 종주<마지막회> 1 우렁각시 2002.09.06 2210
1009 [re] 노총각의 지리산 종주<마지막회> 만리동처자 2002.09.07 1668
1008 [re] 노총각의 지리산 종주<마지막회> 빨간윈드자켓 2002.09.07 1706
1007 [re] 노총각의 지리산 종주<마지막회> 순두부 2002.09.07 1732
1006 [re] 노총각의 지리산 종주<마지막회> 동글이 2002.09.09 1533
1005 [re] 노총각의 지리산 종주<마지막회> 1 남원놈 2002.09.18 1601
1004 [ 휴식년제 길과 공단원 ] 3 프록켄타 2002.09.05 1883
1003 [re] 꿈★은 이루어진다 -지리산을 그리며-/ 어릴적 나의산을 그리며 도토리 투 2002.09.0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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