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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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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운도 없다
아무리 지리산이 변화 무쌍한 기상 으로 유명하고  
2~3일 있으면서 비를 한번 안 맞으면 오히려 이상하다는 곳이라지만
어쩌면 이렇게  잠깐을 제외하곤 온통 빗줄기와 안개 뿐이란 말인가.

심장이 터질듯하고 다리가 마비 될것 같은 고통속에서도 오솔길을 뚫고 훤히 열린 하늘을 보고 그 하늘을 받치고 있는 그림같은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면 저절로 새로운 힘이 충전되어 또 다시 전진하는게 산행의 감칠맛이건만.
첫날 이후로도 비는 계속 내렸고 지리산은 안개속에 온몸을 가리운채 우리에게 그 큰 덩치를 감출새라 여념이 없다.

우리가  첫날밤을 맡긴 벽소령 대피소는  1500m 높이의 산중에 150여명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삼층짜리  통나무 건물이다.
3~4개의 커다란 방마다 2층 목조 침상이 3면에 둘러있어 방마다 40~50명이 바글 바글하게 뒤엉켜 칼참을 자는 그런 곳이다.

사람이 많으면 잠자리 인원을 늘리기 위해 마치 테트리스 하듯이
옆사람의 다리가 내 얼굴옆에 오고 내 다리맡에는 다른사람의 머리가 누워 있는 지그재그 수면도 자주 한단다.

다소 투박하긴 하지만 왠만한 필수품이 없는것이 없었고
구석구석 쌉쌀한 통나무 냄새를 은은히 담고 있어 오랜 산행의 피로가 다소 풀리는 것 같았다.
바람과 비를 피하면서 식사를 할수 있도록 산장 귀퉁이에는 10여평되는 취사장도 있었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얕으막한 계단만 올라도 무릅이 쑤실듯 아팠고 워낙 피곤했기 때문에 햇반을 데워 식사를 하는것이 너무 귀찮았다.
어렸을때 부유해서 용뿌리를 많이 먹은 내 친구놈이 아직도  체력이 넘치는지 60m아래 샘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물을 길어와서는 햇반을 데우고 국 대신 라면에 김치를 넣어 보글 보글 끓이더니 내앞에 내민다.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사실 다리는 아퍼 죽겠는데 쉼없이 갈길을 재촉하는 친구놈이 야속하기도했고,
나는 어렸을때 어머니가 왜 용을 듬뿍 넣은 보약을 안 해주셨을까 원망도 했다.
용을 잘못 해 먹으면 머리가 하얗게 쉰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혹시 그 것 때문이었나?
지금의 듬성듬성한 머리를 보면 차라리 쉰게 낫나는 생각이 든다.

식사를 마치고 산장으로 들어가니 의외로 남여을 불문하고 혼자온 등반객이 아주 많이 눈에 띄었다.
산은 아주 고독한 곳이다.숨을 헐떡이며 산을 계속해서 걷다보면 무아지경에 빠지게 되고
누구나  그 순간 고독을 느낀다.
지리산은 그 고독을 느끼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을 지닌곳이다.
그 사람들은 아마도 이곳에서 자신이 즐기는 고독을 찾으러 온것임에 분명했다.

내 옆에도 혼자온 사람이 자리를 했다.
귀를 덮는 긴머리 무표정한 얼굴에 허무한 눈빛...나까지 왠지 숙연해졌다.
그러나 그 고독맨은 밤새 천둥같은 코를 곯며 다른 사람의 고독을 완전히 파괴하곤 새벽에 예의 그 표정으로 홀연히 산행을 나섰다.  너무도 뻔뻔스런 뒷모습이었다.      

무릅에 파스를 계속 바르고 마사지를 했다.여기저기 맨소래담,안티프라민,호랑이 고약 등등의 근육통 관련 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방 전체에 파스 냄새가 진동을 한다.
모두에게 오늘은 힘겨운 날이었나보다.

잠자리를 보니 밤8시가 됐다.
어!! 8시 밖에 안됐는데 아무런 할일이 없다
비바람은 더욱더 거세져서 나갈수도 없다.
할수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땀으로 찌든 몸이 침낭속으로 스스르 녹아 들어갔다.

얼마나 잤을까.
천둥이 친다.
고독맨이었다.

잠결에 무릅이 어떤가 움직여 보았다.왼쪽 무릅이 굽혀지지가 않았다.아니 굽힐수는 있었는데 무척 통증이 왔다.
내일 산행은 다 글렀고 내려가는것두 걱정이 되었다. 그 순간부터 잠이 오지 않는다.

어떻게 계획한 지리산행인데...

둘째날

6시정도가 되자 여기저기 부산한 움직임이 인다.
역시나 용뿌리를 많이 먹은 내 친구가 부지런을 떨면서 빨리 일어나 밥먹구 출발하자고 재촉을 한다.
"너 크로스 컨트리 대회 나왔니? 모가 그렇게 바뻐 임마"
으~~ 왠수 내가 왜 저 인간하구 같이 왔을까?
미안한지, 무릅이 어떠냐 친구가 물어본다.

잘 생각 해야지 더 가다 중간에 정말 무리 오면 빼도 박도 못하고
중간에 119불러 엎혀서 헬기타구 내려오는 개망신 당한다는게 그 친구의 우려였다.

바깥에 나가 보았다.
날씨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히뿌연 안개가 가득했다
산장에서 겨우 몇발자국 떨어져 걸어보니 산장이 사라진다.
둘째날의 새벽 안개는 그 큰 산장을 순식간에 코앞에서 삼켜 버린것이었다.
무릅은 어제 밤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아팠다.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어쩔까 고민을 하는데 일부 등반객들이 산행을 포기하고
중도 하산을 하고 있었다.
그 들의 마음은 어떨까?
그 중에 하산의 원인이 된 부상자는 얼마나 괴로울까?

"그래! 가는데 까지 가보자."
3시간 정도만 가면 또 다른 하산길이 있으니까 정 안돼면 거기서 내려 가자고
친구와 작전을 세우고 불필요한 잉여 물품을 덜기 시작했다.
배낭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 였다.
기껏해야 1킬로그램 정도 겠지만 느낌이 달랐다.

용을 엄청먹은 친구놈은 아깝다고 자기가 들고 간다고 주섬주섬 꾸려넣는다.
그래봤자 몇 천원하는 가스통하고 건전지 몇개였는데 지독한 놈이다.
다리가 아프다고 할땐 하나도 안들어주더니,버린다고 하니 자기 달란다.

천왕봉 바로밑 장터목 산장을 목표로 하는 두번째날의 산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천둥소리는 2002.09.06 03:30
    그래도 낫다.밤새도록 되새김질하는 사람옆에서 자면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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