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6.4.土 ]
사진1 - 웅석봉
사진2 - 법계사 3층탑
무더운 날씨에 꿈도 야무지게 태극종주를 한다고 나름데로 이것저것 준비를했다,
쉰아홉이면 적은나이가 아니라고 극구말리는 집사람의 말림을 웃음으로 흘리며
드디어 배낭을 꾸렸다,
집사람에게 사정하여 가볍고 맛있는걸로 부탁한 반찬5가지를 넣고 저울에올리니
23kg 이 넘었다,
큰일이다,
나름데로 줄이고 줄였어도 20kg이 넘었다,
지리산에 갈때는 고기를 먹어야한다는 하우고개의 맛있는 점심약속도 30분늦춰가며
오류동에가서 웅석봉지도를 갖고왔다는 김수훈님을 만났더니 선배님 배낭이 몇kg
이던가요 한다,
1kg을빼고 19kg 이라고 했더니 어떤일이 있어도 12kg으로 줄여야 한다고했다,
지난번에 편한세상과 신후님이 낙오한이유가 배낭무게 때문이었지 않습니까했다,
19kg 메고는 절데로 성공 못합니다 하였다,
지도얻으러 갔다가 좋은소리는 못듣고 걱정스러운 소리만듣고 온것같아 씁쓸했다,
줄이자,
과감하게 줄이자,
쌀9컵을 6컵으로 라면6개도 4개로 누릉지 유과 인삼사탕 고소미 와풀도 절반을 덜었다,
산에가면 고기를 먹어야한다고 싱겁게조리한 소고기졸임도 반근정도만 담았다,
코펠에든 프라스틱 그릇도 3개만넣고 국자도뺐다,
비박용 통비닐도 폭3m 짜리를 2m 짜리로 교체했다,
옷도 무지하게 최소화했다,
배낭을 저울에 올렸다,
몇번을 빼냈으나 18kg이 조금넘는다,
더이상은 줄일수가 없었다,
코펠이 5-6인 용인것과 께스무게가 대단했다,
침낭과 침낭카바 에어메트리스 비닐등 비박장비가 3kg정도 되었다,
인천에사는 동선이 (초등학교동창 송기찬의동생 10년후배) 부부와는 21:20 분에 부천
중동역에서 만나기로했다,
그래야 서울남부 터미널에서 23:00시에 산청가는 심야버스를 탈수있다,
21:00시에 배낭을메고 집을나섰다,
이더운날씨에 고생을 사서한다고 집사람이 문밖까지 나와서 걱정과 격려를해준다,
내가 점심먹으러 갔을때 배낭을 메어볼려고 했더니 못메것드라고하며 끌기도힘들
드라고해서 둘이웃었다,
중동역에 도착하자 금세 동선이 부부가왔다,
온수역과 고속버스 터미널역을거쳐 남부터미널에 도착했다,
23:00시 정각에떠난 진주가는 심야버스는 02:35분 산청에 도착했다,
산청에서는 10여명이 내리는데 우리까지 등산객 7명이었다,
택시가없어서 20여분을 기다렸다,
지곡사 입구까지 4600원이 나왔기에 5000원을 주었더니 기사님이 좋아했다,
드디어 렌턴을켜고 배낭을 점검하고 스틱을 조절했다,
임도를따라 걸었다,
무거운 배낭을메고 땀은나도 반딧불이 날라다니는 산길을 걷는게 그렇게 즐거웠다,
그리고 행복했다,
길섶으로 뻗어나온 칡넝쿨을 밟지안고 스틱으로 걷어두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수정이 엄마는 반딧불을 처음본다며 신이났다,
한참을 가다보니 절에서치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아마 지곡사의 종소리인것같다,
아름답고 은은하게 울리는 천은사의 종소리만큼은 못한것같았다,
동선이 부부는 여지껏 이렇게 신새벽에 등산해보기는 평생 처음이라며 즐거워했다,
[ 6.5.月 ]
웅석봉 오르는 나무계단.
이런계단이 몇군데 더있었고 무척낡았다 이사진은 상태가 좋은것을 골랐음,
국립공원 밖이기에 등산로와 시설들이 지리산과는 비교가 되었다.
웅석봉 표지석.
왕재 이정표.
이곳에서 쉬고있는 진주에서오신 60대부부를 만났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에 부천에서 왔다고했더니 부부가 반기시며 딸이 인천에산
다고 하셨다,
수정이 엄마가 인천 산다고하니 무척반기며 30 몇인딸이 인천 B중학교 선생님
이라고 하시며 간식 드실려고 갖고온 쑥으로만든 맛있는떡을 몽땅주신다,
딸이 살고있는 인천에서 왔다는 딸에대한 사랑 때문이다,
부모님들의 마음은 어쩔수 없는가 싶었다,
나보고 딸을 중매 하라고 하셔서 자신없다고 했더니 웃으셨다,
중산리 가는길.
연휴라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지리산에 올라간 주인을 기다리는 차들,
버스 정류소에서부터 매표소까지 2km구간 줄지어 주차되었다,
밤머리재 위에서 지도를펴고 갈길을 설명했다,
잠도 못자고 험한 웅석봉을 올라갔다온 수정이 엄마가 동부능선은 도저히 못가겠다
고한다,
내 배낭에서는 아침에 김밥먹으며 끓여먹은 라면두개와 께스가조금 소모되어 가벼워
진게 전부였다,
모른체하고 동부능선은 가을쯤 동선이와 하기로하고 중산리로 가기로했다,
밤머리재 콘테이너박스 매점에서 칡즙을 한잔씩 먹으며 메모해간 택시를 부르려하니
가게주인이 1톤 화물차로 자기가 태워다 주겠다고 하였다,
얼마냐고 물으니 20000만원만 달라고하기에 좋다고하고 중산리까지왔다,
14:00시가 조금 덜된시간 매표소에서 여직원이 예약했느냐 비박한다면 겨울날씨와
똑 같이 춥다고하니 수정이 엄마가 또 내눈치를 살피며 난색이다,
"좋다 그러면 목욕도하고 푹 자고 새벽에 올라가자" 했더니 동선이네 부부가 좋아서
싱글벙글하며 죽겠단다,
매표소옆 관리공단직원 조현종군네 용궁식당 3층 민박집으로 올라갔다,
목욕을 하고 한소곰 자고났더니 요리 잘하는 동선이가 강낭콩을넣은 맛있는밥에
자기 큰형수가 강화에서 쌀뜨물먹여 길렀다는걸 사왔다고 돼지고기에 두부를넣은
김치찌게등 진수성찬을 차려놓았다,
정말로 맛있게 잘먹었다,
커피를 마시며 3층에서 매표소쪽을 바라보니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내려오는 검은
옷이 주류인 등산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려왔다,
모두들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17:30분쯤 내일을위해 자리에 누었다.
[ 6.6.火 ]
우천 허만수선생 추모비.
최화수선생님 칼럼참조.
칼바위.
칼바위 설명 안내문.
법계사 삼층석탑.
삼층석탑 설명 안내문.
천왕봉 개선문.
천왕샘 아래 만발한 철쭉.
천왕샘.
얼음물 처럼 시원한물이 비교적 잘나왔음,
공단측에서 개축 보수 했으면 좋으련만 바위틈에서 졸졸 나오는 물을 어렵게
받아야한다,
천왕봉.
11:00 시인데도 사람이 무지하게 많았다,200-300명은 되어보였다,
우리가 개선문밑에 왔을때 헬기가 왔는데 사진찍던 사람이 사진을 좀더 잘찍어 준다고 뒤로 물러서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다고한다,
천왕봉 표지석 남쪽에서 사진찍을때는 항상주의 해야한다,
관리공단은 곰만 비싸게 사올게 아니라 위험한 천왕봉주위 안전시설도 만들었으면
한다,
천왕봉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때는 항상조심 해야한다.
통천문.
울산에서 오신분들,
이곳에 사진을 올리기로 합의했음,
천왕봉에서 이곳저곳 구경하고 사진찍느라 근한시간 늦게 내려오는 동선이네 부부를
그늘에 앉아 기다리다가 통천문을 배경으로 여러팀의 사진을 찍어주고 오이 사탕 과자를 많이 얻었다,
통천문앞 잘생긴 구상나무.
바위틈에서 저렇게 곧고 잘자란 나무는 처음보았다.
천왕봉에서 제석봉 오는길에 흐드러지게핀 꽃.
사진작가 20 여명이 진을치고 있었다,
역광이라 색갈이 선명치 못하나 실제는 눈을뒤집어 쓴것처럼 하얗다.
제석봉 고사목과 철쭉.
제석봉 철쭉은 시들어가고 있었다,
아직 피지안은 꽃몽올도 꽤 있었다.
제석봉.
멀리 반야봉이 희미하게 보인다.
제석봉 고사목 설명문.
장터목 산장.
장터목에서 점심후 동선이 부부는 백무동으로 내려가고 나는 노고단을거쳐 덕두산
까지 간다고 아쉬운 작별을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단독 산행이다.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주능선에서 좋은곳중의 하나다.
촛대봉밑 장터목 가는길의 수백년된 주목.
촛대봉 고개에서본 천왕봉.
세석 대피소.
세석평전의 철쭉은 떠나가고 있었다.
지리산 최고의 기도처 영신대로 유명한 영신봉 이정표.
최화수선생님 칼럼참조.
벽소령 가는길에 흐드러지게핀 붉은병꽃.
세석에서 벽소령 가는길은 각종 꽃들이 만발한 꽃길이다.
이근처에서 김포에서온 7살짜리 정세용을 만났다,
젊은 엄마 아빠를 칭찬했더니 무척 좋아하며 배낭에서 먹을것을 꺼내려했다,
아빠는 머리를 길게 길러서 멋지게 묶었다,
대단한 엄마 아빠였다.
그리운 산죽길.
선비샘.
대구와 부산의 태극종주 팀들이 비박하고 있기에 2002년 12월 태백산에서 비박후
3년만에 그들곁에서 통비닐, 에어메트리스, 침낭으로 비박을했다,
텐트는 불법이다만 단속이 미치지 않는곳에서 많이들 이용한다,
이들은 술도 잘먹고 코도 잘곯았다.
벽소령 대피소.
고마운 고사목.
주능선 곳곳에 살아있는 나무나 고사목이 힘든 등산객들에게 도움을 주는곳이 많다,
위험한 바윗길 언덕에 누어서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하느라 뿌리가 반질 반질했다.
형제봉.
연하천 산장.
시설은 낡았어도 모두가 좋아하는 곳이다,
그리고 산장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토끼봉 이정표.
토끼봉 밑에서 영광 성지 송학중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하나같이 착하고 인사도 곱게 잘했다,
날씬하고 잘생긴 인솔 선생님에게 물었더니 10년전부터 교장선생님의 지시로
지리산 종주를하고 있다고했다,
학생들의 예의범절을 칭찬했더니 젊은 K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했다,
이들은 "아니온듯 다녀가소서" 라는 큰리본을 모두 배낭에 달고있었다,
50명이 뱀사골과 피아골에서 나누어 잤다고하며 오늘은 벽소령까지 간다고했다,
그 교장선생님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화개재 551계단 오르는 입구.
99년도에 만들었다는 설명 안내문.
삼도봉.
임걸령 샘.
피아골 삼거리 이정표.
조난 산악인 비목.
이곳을 지날때는 언제나 숙연 해진다,
비목 주위의 잡목들을 꺽고 정중히 다듬어주고 지나왔다.
노고단에서 천왕봉 가는길.
뒤에 반야봉이 보인다.
노고단 대피소.
선비샘에서 비박후 벽소령 대피소를거쳐 연하천 산장에서 약간 늦은 아침을 먹었다,
화개재 멋진쉼터 그늘에서 찰떡파이 양갱 고소미로 점심을 때웠다,
551계단을 쉬지안고 오르는게 힘이들었다,
쉬고 싶었으나 참았다,
땀이 무지하게 흘렀다,
삼도봉,임걸령 샘터, 피아골삼거리,조난산악인 비목,을거쳐 노고단 언덕에왔다,
불과 보름전에 ofof.net 모임때 집사람과 왔었는데도 설레이고 좋았다,
큰딸의 말데로 지리산이 애인 인가보다,
노고단 취사장에서 어젯밤에 선비샘에서 해온밥을 즉석 육계장에 소고기를넣어 맛있게 먹고 내일먹을 밥을해서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배낭을 점검 하고보니 장갑이 어디로갔다,
미군 조종사가끼는 장갑이라는데 내손에 잘맞고 싸릿대와 조릿대 숲길을 헤치기엔
안성마춤인 장갑인데 서운했다,
큰 산에갈때 끼라고 막내가 사다줬는데,
아무도없고 어두워져가는 성삼재 내리막길을 혼자서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왔다,
이곳 저곳에 전화도하며 혼자서 신이났다,
허나 성삼재에 와서는 허탈했다,
성삼재에가서 밥을해먹고 주차장에서 비박을한다던 대구팀이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주차장 3곳을 다찾아보고 만복대 가는길로 들어가서 한참을 찾아봐도 없다,
거울처럼 찬바람은 무섭게불고 구례읍내 불빛은 반짝거리는데 혼자서 산속에서 비박하기엔 겁도나고 꺼림칙했다,
지갑에서 메모지를찾아 택시를불러 구례구 역에왔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대충 땀을닦고 윗티만 갈아입었다,
그리고 격려해준 분들께 고마움의 문자를 드렸다,
태극종주를 시작하셨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