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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부터 이 사이트를 하루에 수차례씩 들락날락하며 산행정보를 수집하고, 루트를 짜고, 준비물 목록을 만들고, 함께갈 동지를 구하고... 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그러하듯 '지리산 종주'라는 특별한 경험에 들떠 그 날이 오기만을, 어서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근데, 그 날이 오고보니.... 비도 함께 오지 뭡니까.  -.-;;;;;;;

남부지방의 호우에 대한 9시 뉴스를 보고 꿀꿀해하며 서울역으로 출발했습니다. 같이가기로 했던 일행 4명 중, 한 명은 포기를 하고 나머지 3명이 함께했습니다. 예전에 지리산에서 조난당한 사람들 구조되는 장면을 뉴스에서 보면, '아니, 저 사람들은 비온다는 예보 들었을텐데 왜 산에는 가서 저 난리인가' 라며 궁시렁댔는데, 제가 그 입장이 되니 가게 되더군요. -.-;;;;;; 그게 8월 13일 저녁이었습니다.

8월 14일. 구례구역에 도착하니 제법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더군요. 역앞의 군내버스를 타고 구례터미널에 가서 다른 분들의 조언대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세명이 모두 깨끗이 비웠지요. 산에 가서도 음식물을 남기지 말자고 맹세를 한 터였기에 출발부터 마음가짐을 바로잡자는 의미로. 하하하... ^^

근데, 아침식사를 하실 때 유의해야 할 점. 구례에서 성삼재까지 가는길이 상당히 꼬부랑거리쟎아요. 그래서 아침식사를 어설프게 하시면, 즉 꼭꼭씹어 꿀꺽 넘기지 않고 대충 훌훌 마셔버린 분들은 차멀미를 할 가능성이 많더라구요. 저희 버스에서도 몇몇분이 오바이트의 위기까지 갈 뻔 했습니다.

그리하여 6시 50분 성삼재 도착. 비가 내려서 추웠습니다. 저희는 우비 안에 반팔만 입고 있었는데, 다들 긴팔옷을 하나씩 더 껴입었습니다. 그리고는 보무도 당당하게 출발했지요. (이 당당함은 5분도 가지 않았습니다. -.-;;;) 일단 가방이 너무 무거웠거덩요. 성삼재에서 노고단대피소까지는 가방의 무게에 적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터득하게 되었지만, 가방을 메는 것도 어깨만 사용해서는 안되고 허리와 가슴에 무게가 나눠지도록 해야하는 것이더군요.

7시 40분 노고단대피소 도착. 물한모금 마시고, 캬라멜 하나씩 먹고, 화장실 갔다가 출발했습니다. 여기서 출발하면 뱀사골까지 지붕아래 있을 기회가 없는건데, 비오는 날 지붕아래 있다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에 대해 경험이 없던 저희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노고단에서 임걸령까지는 노래도 흥얼거리며 나름대로 즐겁게 산행을 했어요. 비가 줄기차게 오기는 했지만, 그래서 산 아래의 운해가 더욱 변화무쌍했고, 그 신비함을 즐기려 마음을 먹으니까 낙천적으로 되더라구요. ^^ 임걸령에서 물을 먹고나니 뱃속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참 실감나게 들렸습니다. 서둘러 쵸코바를 꺼내 두 개씩 먹었지요. ^^

그놈의 비때문에 잠시 앉아있지도 못하고 또다시 출발을 했습니다. 저희의 산행시각을 보면, 저희가 산행초보인 여자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김수훈님의 '산행계획'에 나와있는 예상시각보다 조금씩 앞당겨졌는데, 그건 비가와서 쉬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T_T 위에서도 말했듯이 그저 빨리 지붕있는데 가서 따뜻한 국물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밖에는 나지 않았습니다.

삼도봉 지나 화개재까지 그 길고긴 계단을 내려오니, 뱀사골까지 또 계단!!! 정말 비만... 그놈의 비만 안오면 화개재에서 대충 먹고 연하천까지 갈 수도 있었을텐데, 비때문에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11시 15분에 뱀사골 산장에 도착했습니다.

일단 산장에서 저희들은 '달달달' 떨었습니다. ^^ 다리가 풀여서 하반신은 자동적으로 달달달... 우비속에 입은 옷도 비에 젖고 땀에 젖고, 결국 체온이 내려가 자동적으로 달달달... 그 와중에서도 어서 뭘 먹어야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물을 끓여, 일단 컵라면으로 속을 덥히고, 그 물에 햇반을 삶고 3분카레를 데워서 먹었습니다. 밥 한술 뜨고 저희 모두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를 연발했지요. 너무나 싹싹 먹어서 휴지 두어조각으로 카레 뭍은거 닦아내니 설겆이할 필요도 없더라구요. -.-;;;;

배를 채우니 주위 환경도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 말소리도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 전까지는 보이는 것도 없고 들리는 것도 없었음. -.-;;;) 그렇게 들린 소리는... 소리는... "입.산.금.지." -.-;;;;;; 오후 1시 30분 경의 일입니다.

저희는 짐을 챙겨 산장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때 산장에 스무명이 좀 넘게 있었는데, 다들 고민을 하게되었죠. 하산이냐, 기다림이냐. 저희의 선택은 매우 단순했죠. 그저, 꼼짝하기가 싫어서 뱀사골 산장안에 또아리를 튼 것이었슴다. -.-;;;; 최종적으로 남은 사람은 18명 쯤 되었어요.

음... 지금도 소박한 뱀사골 산장의 정경이 눈앞에 아른거리네요. 저희 대책없는 초보들은 짐을 잘못싸서 여벌옷까지 모두 젖어버렸어요. 밥은 먹어서 배는 불렀지만 기본적인 태도는 여전히 '달달달'이었습니다. 산장지기 아저씨께서 난로를 가져가 틀어주셨어요. 정말 눈물나게 따뜻했답니다. 대낮이었는데도 어둑했던 실내와, 따뜻했던 8월의 난로....

일단 저희는 옷을 꺼내 말리기 시작했어요. 제 동행이었던 두 명은 정말 열심히 옷을 말렸지요. 하하하...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저희 아시는 분들은 연락주세요. '열심히 옷말리던 처자들'이라는 표현만으로 누구였는지 금방 떠오르실 겁니다. 하하하...

그 때부터 뱀사골 산장에서의 하룻밤은 참 아늑했어요. 산장에 머물렀던, 혹은 대피해있던, 혹은 조난당했던(-.-;;;) 18명은 나름대로 괜찮았거든요. 제가 별로 사교적이지 못해서 먼저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같이 머물렀던 사람들 모두 참 좋은 분들이셨어요. 파주에서 오신 명랑한 아저씨와 그 아들, 면목동에서 온 청년 2명, 딸이랑 아들을 데리고 오신 자상한 아버지, 구리에서 온 처자 2명, 대학 동아리인듯 보였던 단체 6명, 도통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남자 2분, 그리고 옷말리던 우리 3명 (^^;;;). 여기에 뱀사골 산장의 모자 아저씨랑 정수네 가족.... 정말 인상깊었던 하룻밤이었답니다.

그렇게 하룻밤이 가고... 담날 새벽. 반짝뜬 해와 새소리에 깰 것을 기대했으나... 했으나... 무서운 비바람소리에 깼습니다. -.-;;; 정말 그것은 무서운 소리였습니다. 산장이 꼭 날라갈 것 같더군요. 8시쯤 정수네 아빠가 '산에 못가실 것 같네요...' 라며 조심스레 말씀하셨습니다. 15일은 비올확률 90%, 16일은 비올확률 100%. -.-;;;;

에라. 또 밥이나 먹자. -.-;;; 우리는 또 열심히 햇반을 삶았습니다. (열심히 밥먹은 이유: 가방 무게를 줄이기 위해) 다들 하산준비를 했지요. 파주명랑아저씨부자, 면목동청년 둘, 구리처자 둘, 그리고 저희 세명이 함께 하산했어요. 나머지 사람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이 내려온 거나 마찬가지지만요.

그렇게 하산한 뱀사골은... 정말 멋있었습니다. 억울하게도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고, 안개만 자욱... 며칠간 불은 계곡물은 엄청난 양이었고, 그 물은 힘차게 흘러 폭포를 이루고 검푸른 소를 만들며 '아, 이게 지리산의 계곡이구나!' 라는걸 깨닫게 해줬습니다.

그제서야 알게된겁니다. 내가 그토록 하고싶었던 '종주'라는게 도대체 뭔지 말입니다. 꼭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가야 지리산을 갔다왔다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인가, 말입니다. 지리산이 '종주'를 했다고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혹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뿌듯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말입니다. 지리산을 종주하고 싶었던, 가로지르고 싶었던, 모두 점령하고 싶었던 제 욕심은 마치 산을 깎아 도로를 내고 그곳을 차로 달리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게된 것입니다.

뱀사골계곡은 제가 가지 않으려한 길이었습니다. 제 계획에 들어있지 않은 곳이었죠. 그러나 지리산은, '여보게. 인생은 이렇게 길고 긴데... 왜 꼭 앞으로만 나가려 하나. 잠시 옆으로 빠져 좋은 풍경 보고가게..' 라며 저에게 뱀사골을, 그것도 가장 아름다운 뱀사골을 보여준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번에는 종주에 도전하지 않으렵니다. 이쪽으로도 가보고... 저쪽으로도 가보고... 그래서 지리산이 정말 내 곁에 있는 산이 되었을 때, 편안한 마음으로 '종주'라는 것을 해볼 생각입니다. 지리산. 정말 감동스러운 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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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저같은 초보분들께 혹 도움이 될까하여 몇 가지 정리해봤습니다.

1. 햇반에 의존하지 마세요. -.-+ 이게 배낭 무게의 주범입니다. 그리고 삶는 시간이 어짜피 20분 걸리기 때문에 밥하는 것과 별다를게 없습니다. 다음번에 저는  밥은 1일 1회, 저녁에 한번 지어먹고, 담날 아침은 저녁에 지어놓은 밥으로 먹고, 점심은 간단하게 육포와 건빵, 컵라면 등으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2. 배낭에 비닐까는거 잊지마세요. 흑. 이건 정말 저같은 초보나 저지르는 실수일지 모르겠는데... 김장봉지같은 비닐있죠. 그걸 배낭안에 통째로 넣어 단단히 방수대책을 세워야 하겠더라구요. 아무리 좋은 배낭에 배낭커버를 해도 다 소용없습니다. 비닐!!!

3. 기능성 의류의 중요성. 면으로 된 옷은 정말 별루입니다. 비에젖든, 땀에젖든... 너무 쉽게젖고, 무거워지고, 잘 마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에 등산용 바지와 티셔츠를 장만해갔는데, 특히 바지의 기능에 너무 놀랐습니다. 평상시에도 이 바지만 입고다닐 것 같아요. -.-;;;

4. 등산용 스틱. 남들이 쓰는거보니까 정말 부럽더군요. 담에 갈때는 저도 장만해 가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쓰다보니 산이 참 그리워지네요. 흘....
  • ?
    구름 2002.08.16 21:53
    종주의 의미라...
  • ?
    희망봉 2002.08.16 23:01
    전날 저희 가족도 거기에 있었어요
  • ?
    송학 2002.08.19 11:00
    그래요 뭐 급할 것 없지요. 계곡을 느끼고 나서 종주를 해도 좋지요. 마무쪼록 건강과 안전산행이 계속되길......
  • ?
    더딘걸음 2002.08.19 23:14
    그 한번으로도? 역시 깨우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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