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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9일 밤, 1박 2일 동안 복학생들끼리의 여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학교 후배 성아와 통화를 했다. 전국일주여행을 떠났던 길수, 승윤과 함께 지리산에 간다는 것을 알고,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성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바로 전화가 온 것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입석을 타고 있었고 게다가 혼자 내려가다가 서대전에 가서야 애들을 만난다는 것이었다. 좀 걱정스러웠지만 어쩔 수 있으랴?


잘 다녀오라고 한 뒤 갑자기 나도 지리산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날 여행 멤버들과 오랫만에 물가에 나온 기분에 늦게까지 한 잔 하면서 얘기를 하다가 서너 시간 밖에 못 잔 터라 피곤했지만 즉시 기숙사 컴실로 내려가 지리산 등산로와 교통편 등을 알아보았다. 그날 저녁이면 충분히 애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와 빨래 바구니에 가득찬 빨래감을 들고 밤 2시에 세탁실로 내려왔다. 불행히도 여행 한 번에 여름옷이 모두 끝장났기 때문이었다. 빨래를 넣고 세탁기를 돌린 후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계획을 세웠다.


저녁에 짠! 하고 나타나서 놀라게 해 줄 생각에 기분이 괜히 좋았다. 3시 반에 탈수된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돌렸다. 내일 입고 가지고 가려면 그래야 했다. 그런데 아침 7시쯤에 잠에서 깨어 세탁실에 가 보니 건조기는 아직도 돌고 있었다. 옷들이 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로 따땃했다.


8월 10일 아침, 서둘러 아침을 먹고 짐을 쌌다. 어딜 가는지 의아해 하는 룸메이트의 눈길을 애써 피하며 간단하게만 짐을 꾸렸다. 그런데 이렇게 싼 짐이 나중에 나의 생명을 건지게 될 줄이야...


룸메이트 정훈이의 환송을 받으며 고속터미널로 갔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남원행 버스가 떠났고 다음 차는 한참 후에 그것도 우등 고속이라 요금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서둘러 서울역으로 갔다. 간신히 표를 끊고 10시 50분 전라선 무궁화호에 타는 데 성공했다. 입석이었으나 자리가 아직 다 차지 않아서 앉아서 갔다. 3시 17분 도착 예정이라 점심을 건너뛸 수 밖에 없었다. 중간중간에 뭐라도 사 먹고 싶었으나 한푼이라도 아껴야 했다.


3시 25분쯤 남원역에 내렸다. 주저없이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고 우선 뱀사골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애들이 가는 종주 코스 중간으로 올라가는 코스였기 때문이었다. 지리산은 워낙 크기 때문에 척추에 해당되는 종주 코스가 있고 곳곳에 올라가고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기 때문에 중간에 만나려면 그리로 가야 했다.


표를 끊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누더기 차림으로 남원에 내려온 이몽룡이 따로 없었다. 이를 보신 아주머니께서 공기밥 한 공기를 더 주셔서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다 먹었다. 그리고 수퍼마켓에 들러 랜턴 하나와 초코파이 한 상자, 아트라스 네 개를 샀다. 이것도 역시 간식거리로 샀으나 그날 밤에 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오후 5시, 뱀사골 입구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뱀사골 산장까지 9km, 등산 지도에 따르면 4시간이 걸리는 코스였다. 그러나 애들을 따라잡을 욕심에 한 번도 쉬지 않고 8km를 두 시간만에 주파했다. 나 자신도 놀랄만한 체력과 정신력이었다. 아마도 이유는 따로 있으리라... power of love 라는 말은 이때 적절한 표현일듯 ^^


그러나 이제부터가 나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뱀사골 대피소 1km' 라는 이정표를 보고 방심을 했는지 길을 잃고 말았다. 분명히 등산로인 줄 알고 한참을 갔는데 길이 없어졌다. 되짚어 돌아가려 했으나 해는 지고 있었다. 나무와 바위 사이를 헤매다가 다리가 모두 까지고 넘어지고 8시가 가까워지니 해는 넘어가고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이 되었다. 죽음에의 공포를 느꼈다. 무리한 산행으로 인해 옷은 이미 땀에 흠뻑 젖었고 체력은 바닥났다. 주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사람 없어요~오~오~~

그러나 내 목소리의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더 이상 움직이는 것보다는 머물러 쉬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잘 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그리 무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8시 반쯤 기대 앉기 좋게 생긴 바위를 찾았다. 우선 비닐 봉지 4개를 깔고 신문지를 깔았다. 배낭을 기대고 앉았다. 하늘은 맑아서 별이 무지 많이 보였으나 주위는 온통 어둠뿐.. 정말 공포 그 자체였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산 속에서 장비 없이 노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우선 젖은 옷을 모두 벗고 새 옷을 입었다. 가방 안에 있는 모든 옷을 입었는데 반팔 티셔츠 2개, 긴팔 남방 하나, 반바지 위에 긴 체육복 바지 하나. 이게 전부였다. 이불이나 침낭도 없이 수건 한 장으로 다리를 덮었다가 어깨를 덮었다. 시간이 정말 안 갔다. 담배 한 대를 꺼내 피웠는데 3분도 안 흘렀다. 해가 뜨는 시각이 5시 반 경이니까 9시간이 남았는데 어떻게 시간을 보내지? 가방 안에서 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훨씬 밝고 안정이 되었다. 간간이 벌레들이 날아들어 스스로 타 죽기도 하고, 땅에 떨어진 솔잎에 불을 붙이기도 하고 시간을 보냈다. 잠이 들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장난을 계속했다.


매시 정각에 담배 하나씩 피웠다. 정훈이가 사 준 그 담배는 정말 내 생명의 은인이다. 담배가 생명의 은인이 되다니 참 요상한 경우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간간이 초코파이와 초코바를 먹고 그 봉지도 촛불에 태우면서 무료함을 달랬다. 라디오가 있는 것이 생각나서 잡음에도 불구하고 들었다. 대구 MBC 인지 대구 지역 입시 학원들 광고가 나오는데 홈쇼핑급의 유치찬란한 광고여서 산 속에서 혼자 웃었다. 그러나 3시가 되자 건전지가 다 되었는지 라디오가 안 나왔다. 3시 40분쯤 촛불도 꺼졌다.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주위 솔잎을 모아 불을 붙였지만 젖어서 실패했다. 핸드폰을 꺼냈다. 송수신 불가 지역이지만 저장된 메시지는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지우지 않은 메시지들을 읽으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시간은 4시. 조금만 더 참자는 생각까지 했으나 곧 잠이 든 것 같다. 한기를 느껴 몸을 떨면서 깨어 보니 5시 반, 주위가 밝아져 있었다.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직 일렀다. 오늘도 길을 찾지 못하면 오늘밤은 진짜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서둘어 짐을 챙기고 계곡 물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나무와 바위를 헤치며 나갔다. 15분쯤 헤매다가 드디어 등산로를 찾았다. 닭살이 쫘~~악 오르면서 살아나게 됨에 감사했다. 그리고 6시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뱀사골 대피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냥 물 한 병 받아서 통과했다. 애들은 연하천 산장에서 잘 계획으로 알고 있었기에 아침에 그곳을 떠나기 전에 잡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뱀사골 산장에서 잤고 아침 7시가 넘어서 출발했다고 한다. 결국 이제부터는 내가 계속 앞서가게 된 것이다.


이것도 모르는 나는 연하천까지 죽을 힘을 다해 걸었다. 간밤에 노숙을 하고 잠 한 숨 제대로 못 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신은 또렷했고 걸음 또한 빨랐다. 8시쯤 연하천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많이 떠나고 있었다. 관리하시는 분에게 어제 이용자 명단을 확인했는데 애들은 없었다. 명부를 제대로 안 쓰는 사람도 있다고 해서 이곳에 묵었다고 단정짓고 따라잡기로 했다.


그러나 너무 배가 고팠다. 물 한 병과 초코파이 한 개를 먹고 가려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주위를 둘러보고 마음씨 좋아 보이는 부부가 식사 준비를 하는 곳으로 다가가 말했다. "저기~ 밥 좀.." 흔쾌히 앉으라고 한 그 분은 그날 내려가신다며 밥에 누룽지까지 끓여 주시고 점심 때 먹으라고 라면과 구운 오징어, 초코바까지 주셨다. 정말 눈물나게 고마웠다. 꼭 일행을 찾으라고 격려해 주신 그분을 뒤로 하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오전 산행 중에 또 좋은 분들을 만났다. 초등학생 아들 둘을 데리고 오신 아저씨와 인천에서 오신 형과 누나, 그리고 연하천 산장에서 일을 도와 주시는 누나 둘과 함께 오전 내내 함께 걸었다. 점심을 걱정했지만 나의 사정을 들은 이분들과 벽소령 대피소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산행 내내 마주 오는 사람들에게 남자 둘, 여자 하나 못 봤냐고 계속 물었으나 허탕이었다. 그러다가 벽소령에서 그런 학생들을 봤다는 분이 있었다. 한 시간 쯤 전에 본 것 같다고.. 그렇다면 내가 두 시간쯤 뒤처진 건데.. 사실 그 시각에 애들은 나보다 처쳐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점심 먹고 서둘러 인사하고 길을 떠났다. 꼭 일행을 찾으라는 격려를 받으며..그런데 내가 떠난 뒤 20분만에 그것들(?)은 그곳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다고 한다.  오마이갓!


오후 산행에서는 중학교 선생님이신 아저씨를 만나 함께 왔다. 산을 정말 좋아하신다고, 남들은 1박 2일로 오는 노고단-장터목 코스를 오늘 하루에 주파하신다고 하였다. 정말 체력 좋으신 분이었다. 젊은 내가 따라잡기에 급급할 정도였다. 특히 오르막에서 숨 한 번 헐떡이지 않으시고 올라가는 모습에 감탄 또 감탄...


그 분 덕택에 장터목 산장에 오후 5시에 도착하였다. 그분도 취사 도구가 없으신 관계로 1500원 받는 육개장 사발면 하나씩을 먹었다. 아침부터 내 장기가 되어 버린 "저기~~ 죄송하지만 모자라지 않으시면 XX  좀..."을 발휘하여 김치도 얻어 먹었다.


후배들도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할 줄 알았던 나는 하염없이 기다였다. 도착하는 길목에 앉아 집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처럼.. 망부석이 되어 버리는 줄 알았다. 날이 저물고 이제는 도착하는 사람들도 뜸해졌을 무렵 오늘 이용자 명부를 확인했으나 없었다. 혹시나 하고 바로 직전 대피소인 세석 산장에 연락을 좀 해 달라고 했다. 길수, 성아, 승윤 이름으로 묵는 사람들이 있는지.. 잠시 후 애들이 세석에 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나는 혼절 직전까지 갔다. 내가 어제부터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내가 그애들을 지나쳐 앞서갈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내일 장터목으로 오면 꼭 관리실에 들러 나를 찾으라고 전해 달라고만 하였다.


그날 장터목 대피소는 그야말로 시장바닥이었다. 장터목이라는 이름이 걸맞게 앉아서 잘 수밖에 없도록 사람이 많아서 밖에 나가서 자는 사람들도 있고 대단했다. 다행히 서로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서로의 다리를 포개고 간신히 누워 잘 수는 있었다.


새벽 3시 반, 사람들이 깨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나와 그 선생님도 3시 50분쯤 출발, 5시경 천왕봉에 도착하였다. 일출 예정은 5시 30분. 하늘은 맑았으나 하필이면 해가 뜰 자리에 조그마한 구름이 있었다. 날은 다 밝았으나 해는 보이지 않고 오늘도 틀렸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사람들의 탄성과 함께 빨간 해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하늘에 흩날리는 구름에 따라 보였다 안 보이기를 반복하고 사람들의 탄성과 탄식이 교차하면서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두 번째 도전만에 보게 되어 정말 기뻤다. 고생한 보람이 있군.. ^^


다시 산장으로 내려온 것이 6시 50분경.. 그 선생님은 다시 노고단에 차를 세워 두고 오셔서 오늘 내로 돌아가야 한다고 7시쯤 서둘러 떠나셨다. 정말 놀라운 체력이었다. 어제 11시간만에 40km를 오시고 5시간 자고 3시 반에 일어나 천왕봉을 올라갔다 내려와서 바로 그 길을 되짚어 가신다니... 주위 사람들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분이 가시고 나는 다시 어제 그 자리에서 망부석이 되어 애들을 기다렸다. 8시가 넘자 세석에서 묵었던 사람들이 장터목에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오신 아저씨도 오시고, 연하천에서 아침 얻어먹을 때 같이 계셨던 할아버지도 오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아직 일행을 못 만났다고 하자 아침 드시고 남은 것을 내려가는 길에 배고프면 드시려고 싸 왔다고 밥을 꺼내 주셨다.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감사하게 먹고 인사드리고 담배도 얻어 피우고, 애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제 내가 1시간 40분 걸렸는데 10시 반이 되도록 안 오는 것이었다. 산행에서는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불문율인데.. 이것들이 그냥 세석에서 내려가 버린 것이 아닐까 불안해졌고 몇 시까지 기다릴까 계산하기 시작했다.


10시 40분,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고 어디서 많이 보던 빨간 머리끈이 보였다. 그리고 옆에 상당히 초췌한 몰골의 길수, 승윤이가 보였다. 그대로 달려나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너희들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

다른 일행 5분과 함께 8명이 함께 도착하였는데 내가 올 줄은 몰랐다고 변명, 또 변명.. 이런 배신자들.. 내가 누구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는데.. 반가움, 억울함, 아쉬움.. 오만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눈물이 흐를 뻔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라면을 먹은 후 천왕봉에 다시 올랐다. 하루에 천왕봉을 두 번 오르는 것도 하기 어려운 경험일 것이다. 하여간 새벽에 어두울 때 올랐던 것과는 다른 기분을 느끼며 1시간만에 정상에 올랐다. 사진도 찍고 야호도 하고, 그분들이 가져오신 쐬주도 한 잔 하고, 중산리 쪽으로 하산하시는 그분들께 인사하고 라면도 얻어가지고 다시 장터목으로 내려왔다.


라면을 끓여 먹는데 성아가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아침에 할아버지께서 주고 가신, 내가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비상 식량인 핫브레이크를  먹이고 기력을 회복시켜 3시 20분쯤 하산을 시작했다. 남원 가는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내려왔지만 정말 힘든 길이었다.


사흘간의 산행으로 지칠 대로 지친 몸과 계속되는 내리막 돌길로 인해 무릎과 발목, 종아리 등이 성한 곳이 없는 것 같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내리막 돌밭. 그곳을 내려오길 3시간 반. 백무동에 6시 50분쯤 도착했다. 막차 시간은 7시 5분. 버스 타는 곳까지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버스는 있었고 그토록 갈망하던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를 물고 남원행 버스에 올랐다.


남원으로 가는 도중에 친구들과 연락해서 기차 시간을 알아 보고, 버스 기사 아저씨와 얘기도 하면서 남원에 도착했다. 기차를 탄다고 하니 아저씨가 일부러 길을 돌아서 지나는 길에 역 근처에 내려 주셨다. 역에 도착해서 다행히 좌석표를 끊고 역 앞 식당에서 막걸리로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을 자축했다. 저녁을 뽀지게 먹고, 남원역 화장실에 들어가 정말 오랫만에 제대로 씻고 면도까지 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역 광장에 자리를 펴고 앉아 기차를 기다리면서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11시 50분쯤 기차에 탔다. 자다 깨다 이야기하면서 올라왔고 나는 수원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한 것이 4시 20분경...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세 명은 일출을 보겠다고 동해 바다로 또 간다는 것이다. 서울에 도착해서 속초로 간다고 하였다. 정말 지칠 줄 모르는 체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지루한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 감사...읽어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 죽음에의 공포도 느끼고, 산에서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고 많은 경험 했던 것 같다.


끝으로 훌쩍 이런 고생길을 떠날 수 있게 한 나의 사라지지 않은 젊음에 감사하고,

담배, 가방, 모자, 양말 그외 정신적, 물질적 협찬을 해 준 룸메이트 정훈이에게 감사하고,  

연하천 대피소에서 아침밥과 비상식량을 주시고 좋은 얘기 많이 해 주신 서울 지하철공사 2호선 성수역 승무사무소 근무하시는 김남현 님께 감사드리고,

그날 점심도 같이 하고, 마지막날도 만나 일행들 만나게 된 것 축하해 주시고 내가 얼마나 그들을 찾아헤메었는지 낱낱이 증언해 주신 아저씨와 아저씨의 아들인 초등학교 5학년, 1학년 윤직, 동직이에게 감사하고,

둘째날 오후 산행을 함께 하고 장터목 산장 이용료도 내 주시고 사진 찍어 주시고 보내 주신다고 주소까지 적어 가신 평촌중학교 정재원 선생님께도 감사드리고,

장터목에서 싸 오신 밥도 주시고 금쪽같은 초코바도 주셔서 성아의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 주신 마산에서 오신 할아버지께도 감사드리고,

세석 산장에 여러 번 연락해서 일행을 찾을 수 있게 해 준 장터목 관리하시는 아저씨,

남원역 근처에 내려 주시고 좋은 얘기 많이 해 주신 전북고속 1004호 기사 아저씨,

기차 시간을 알아봐 준 승현, 남원역에 있을 때 전화해 준 성은 등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정말 감사하다는 말씀드리면서,

산은 정말 좋은 곳이고 그곳에 오는 사람들도 모두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는 말로 긴 글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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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시 지리산에 가려고 정보 수집차 들렀다가 얻기만 하고 그냥 가기가 섭섭해서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재작년에 무모하게 떠났다가 큰일날뻔한 산행기를 저희 동아리 홈페이지에서 다시 퍼다가 올립니다.

이번에는 여럿이 준비하고 떠나는만큼 불상사가 없을 것으로 기대하며~

읽으신 분들이 잠시나마 이런 녀석도 있구나 하며 미소지으셨다면 다행이군요~

  • ?
    최정화 2002.08.14 10:40
    실감나는 산행기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고생한 만큼 너무나 큰걸 얻어오셨군요..
  • ?
    사자와양 2002.08.14 13:44
    정말 대단한 지리산 산행 이었군요,화이팅!!
  • ?
    yalu 2002.08.14 1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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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학 2002.08.15 11:08
    참 풋풋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 ?
    검은별 2002.08.16 19:46
    이런 말 해도 될진 모르지만...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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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추리 2002.08.19 20:46
    정말 힘드셨겠네요. 젊음이 참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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