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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기 (6) - 촛대봉에서 연하천으로

새 중에 제일 무서운 새가 ‘먹새’라고 하지 않던가. 입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어깨가 산행 중의 고행을 도맡아 한다. 기력이 쇄하기 시작했는지 배낭에 든 먹거리와 물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러 온다. 촛대봉을 뒤로하고 세석산장을 지나 영신봉을 넘을 때까지 편안하던 산길이 칠선봉(1576m)으로 이어지면서 제법 힘들고 가파른 길의 연속이었다.

장터목에서부터 따라온 진도개 ‘백구’는 언제까지 길을 안내할 생각인지 돌아갈 생각이 없다. 백구에게 초코파이를 한 조각 던져주었더니 거들떠보지 않는다. ‘혹시 내가 이 녀석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땅에 떨어진 과자 조각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백구를 불렀더니 다가와서 잘 먹었다.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 백구는 먹을 것 때문에 길을 안내한 것이 아니라는 의사 표시를 분명히 하고서는 과자 한 개를 모두 먹고는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순수 혈통의 진도개는 아니겠지만 겉 모습은 영락없는 진도개였으니 그가 진도개 체면을 지킨 것이 이상할 것 없다는 생각을 했다.

덕평봉 선비샘에 다다른 것은 오전 11시 10분.
“예전엔 덕평봉에 무덤이 하나 있었다고 하던데..."
“선비샘 전설에 있는 무덤 말이지? 지금은 없어졌나봐."
“무덤의 주인이 평생 천대받던 노인이라면서요?”
“그래요. 살아서 천대받았으니 죽어서라도 사람대접 받으라고 아들이 선비샘 위쪽에 무덤을 만들었대요. 그러니까 물 먹으려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게 되어 그 노인이 많은 사람들에게 절을 받게 되었다고 하대요.”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 무덤도 보이지 않고 파이프를 타고 흘러 나오는 선비샘의 물맛도 특별히 신통하지 않았다.
지도를 보니 선비샘에서 벽소령까지 2.4km. 벽소령산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세며 벽소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12시 20분. 벽소령산장에 도착.
벽소령산장은 물이 귀한 곳이라고 했다. 엊저녁에도 밥해먹을 사람들에게 물 두통씩만 배정을 했다고 하는 것을 보니 250명이난 수용해야하는 산장의 위치가 아무래도 잘 못 된 것 같다.
산장 처마 끝 짧은 그늘에 앉아 라면을 끓였다.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허기가 졌다. 아침에 먹던 찬밥을 라면에 말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아무래도 잠시 쉬었다 가야 할 것 같다. 산장에 들어가니 남여 구별할 것 없이 여기 저기 누워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산장 바닥이 찼지만 이내 낮잠이 들었다. 잠시 자고 일어난 듯한데 한 시간이 지났다.
벽소령을 떠나 1km 남짓 걸었을 때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느꼈다. 그런 일이 없었는데 기운이 탈진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진땀이 나고 기운이 없었다. 자가 진단으로는 아무래도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았다. 10미터를 걷고 한 참씩 쉬어야 하기를 몇 번.
“왜 그래요?”
“아무래도 심장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 이렇게 기운이 없을 수가 없는데...”
“그런 적이 없었잖아요.”
“예전에 심전도 검사를 받았을 때 이완할 때 약간 이상이 있다고는 했지만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서울 가면 병원부터 가봐야 하겠어요.”
“일단 한 30분 쉬어보자구. 심장에 이상이 있다면 금방 회복이 될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럴 수가 없었다. 서울 근교에 있는 산이긴해도 매주일 산을 올랐고, 지난해는 3번이나 설악산을 다녀왔지만 한 번도 몸에 이상이 생긴 적은 없었는데...
10여분 앉아 쉬어도 빠진 기운이 회복되지 않고 가슴이 더 답답해지는 듯하다.

“혹시 다른 데 아픈 것은 아닌가요? 여기 저기 좀 만져봐요.”
“가슴이 답답한데 혹시 체한 것 아닐까 몰라. 소화제 어디 있지?”
“배낭 작은 주머니에 있어요.”

소화제 두 알을 먹고 10분 쯤 지나니 답답했던 가슴이 슬슬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땡볕에서 급하게 라면을 먹고, 찬 바닥에 누워 낮잠을 잤으니 소화기에 문제가 생길만도 하지. 천만 다행이었다.

속이 뚫린 김에 형제봉까지 단숨에 올랐다. 다시 기운을 차린 내게 휘파람새들이 여기 저기사 ‘휘이익 휘리릭 휙’하고 열심히 휘파람을 불어 주었다. 형제봉을 조금 지나 전망이 좋은 바위에 올랐다. 지리산이 병풍처럼 둘러있었다. 멀리 천왕봉이 높이 서있고, 능선을 따라 오른편으로 눈을 옮기니 촛대봉이 눈에 들어 온다. 뒤로 돌아보니 반야봉과 노고단이 훨씬 다가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6월 7일 오후 4시.
드디어 이틀째 목적지인 정감이 넘치는 아담한 연하천산장에 안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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