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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당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아직도 지리산 파르티잔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는 최순희(이태의 남부군에는 최문희)다.

52년 대성골전투에서 포로가 되었으나, 남측에서 귀순용사로 삐라에 실리는 바람에 변절자로 몰려 남한 내에서도 은둔생활을 해야했던 그녀는 평양출신으로 일본에서 음악을 전공한 엘리트다.

한국전쟁 당시 경남지방의 문화공작 요원으로 내려왔다가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막히자 경남도당 유격대를 만나 지리산으로 들어와서 남부군 소속 빨치산이 되었다.

최순희에 대한 기록은 지리산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노고단 대피소에 있었던 함태식 선생의 저서 <그 곳에 가면 따뜻한 사람이 있다>에서 그 회한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말해준다.

"남부군 문화공작대 문화부장을 지냈던 최순희라는 여인이 어느날 저자를 찾아 왔다. 밤차를 타고 구례를 통하여 올라 온 그녀는 새벽녘 섬진강이 보이기 시작하자 울면서 오르기 시작해 노고단에 올라와서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온 산에 대고 절을 했다. 저자는 그녀의 일행을 위해 위령제를 지냈다“

그러나 울면서 올라 혼이 나간 사람처럼 절을 했던 그녀의 회한도 이젠 부질없는 짓. 사상적 대립이 만들어놓은 안타까운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다만 이념도 모른 채 지리의 어느 후미진 골짜기에서 이름도 없이 숨져간 순수한 영혼들의 원혼이나마 이젠 양지로 돌아오길 바랄뿐이다.


또 한 사람이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비전향장기수 이인모다.

경남도당 선전부장 대리로 일하다가 그 역시 대성골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고 59년 만기 출소했지만 61년 간첩혐의로 다시 구속돼 15년형을 선고받는다. 76년 만기가 지났지만 전향서를 쓰지 않아 88년 10월까지 복역했다. 34년간 옥살이를 한 것이다.

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91년 월간 ‘말’지를 통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쓰면서 부터다. 그 뒤 서울에서 열린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러 온 북한 중앙방송 기자가 그의 부인 김순임씨(80)와 외동딸 현옥씨(59) 등 북녘 가족의 답장과 사진을 남측 취재진에 전해주면서 송환문제가 이슈화되자 김영삼정부에서 93년 그를 전격 송환하게 된다.
휠체어에 실려 판문점을 넘어가던 그의 모습은 TV로 중계되었고, 북한 TV에서는 ‘통일영웅’으로 추앙 받던 모습이 자주 보였다. 북에서 그의 영웅실적은 소설과 영화, 엽서와 우표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의 모교인 파발인민학교(양강도 김형직군)는 ‘이인모 인민학교’가 되었다.


또 하나 조개골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 했던 자료가 소설가 이병주씨가 쓴 “지리산”이다.

통일조국을 그렸던 빨치산들이 쫒기는 신세가 되어 이 골짜기에 들어서면서 달뜨기능선을 바라보며 적은 기록인데 마치 이제는 살아서 부모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은 것처럼 제법 감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사상이 갈라놓은 분단선 아래에서 그들은 적일 수 밖에 없었고, 그들 역시 그 골짝 어느 한 켠에서 쓸쓸한 생을 마감한다.

”지리산을 찾은 빨치산들은 조개골 등에 숨어 이곳 달뜨기능선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며 고향과 가족을 생각했다. 낡은 총자루를 옆에 두고 구수하게 풍기던 된장냄새와 아내의 젖비린내와 어머니의 말라붙은 가슴팍을 떠올렸을 것이다. 입술을 악 물고, 밤새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에 넋을 놓은 채 달을 보고 있었으리라“

지리산이라는 소설 내용 중 그들의 마음을 이처럼 애닯고 처절하게 표현한 구절이 없었고, 독자들에게는 그렇게 서럽고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 구절이 없었다.


계곡을 건너면 산길은 계곡과 완전히 멀어지는 듯 사면을 차고 올라간다. 하지만 이도 오래지 않아 다시 계곡을 내려서고, 또 한번의 본류를 건너 오르면 치밭목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측 길은 써리봉과 중봉에서 내리는 지계곡을 건넌 후 하봉 헬기장으로 올라서고, 좌측길은 써리봉에서 내려오는 작은 지능 하나를 큰 변화 없이 돌아나가 치밭목산장으로 올라서게 된다.

계곡아랜 아직 가을이 한창인데도 벌써 이곳은 나목이 주를 이루고, 주능에서는 끊임없이 찬바람이 흘러내려 몸서리를 치게한다.


나목은 왠지 모르게 까닭없는 쓸쓸함을 안겨준다



이방인들의 땅, 한 서린 자들의 땅, 영원한 아웃사이더들의 땅, 죽음마저도 외면해야했던 은둔의 땅이었던 조개골.

그래서 단풍은 취한 듯 붉고, 바위는 얼굴처럼 검고, 계곡은 마음처럼 무겁고, 흐르는 물은 한숨처럼 흐른다. 역사가 기억을 하던 말던 그들은 숨죽이며 그렇게 살았고, 티끌만한 죄도 없이 닫힌 마음으로 살아 왔다.

왜냐하면 혼동속의 역사는 가해자가 피해자이고, 피해자가 또 다시 가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 조개는 그런 것 아니었을까? 우렁 깊은 속내를 덮어두고 버거운 삶을 감내하기 위해 단단한 껍질로 무장해야 했던 질곡의 삶, 그런 것 아니었을까?

터질 듯이 서러운 가슴을 감춰두고, 취한 모습으로라도 웃음을 보여 주려했던 그들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소리쳐 불러도 메아리가 없고 목 놓아 울어도 들리지 않는 그런 깊은 계곡이 아니었을까?

상념 속에서 허수아비가 너털웃음을 웃고 있다. 소리도 없이 말이다. 아마도 부질없다는 뜻 일게다. 그 역사를 티끌만치도 모르면서 이런 잡동사니나 풀어 놓는 나를 보면서 말이다.


단풍잎은 취한듯 붉지만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 구름모자 =



  • ?
    산이조아 2008.11.19 17:27
    잘 읽었습니다.
    지리산의 역사에 대해서 더욱 알고 싶어지게 하는 글이군요
    지리산은 알면 알수록 깊어지고 궁금해 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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