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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소령-삼도봉
오전 9시 15분. 벽소령을 출발하였다.  동료들의 컨디션을 살펴보니 체력도 양호하고 기분도 좋아 보인다. 배낭 무게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던 음식이 다소 줄어서일까,  배낭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다. 산행기간 내내 배는 고프지 않았다.  김밥도 각각 한 끼니 분씩 남아있다. 박하사탕과 쵸코바도 남아있고 라면도 하나 있다. 설탕을 적당히 섞어놓은 미숫가루도 준비했었는데 한 숟갈 먹어보니 물이 없으면 영 불편하게 생겨 놓고 왔었다. 과일 또는 야채가 먹고싶다.  포도 한 송이 준비했었는데, 다소 으깨어졌긴 했으나 벽소령에서 한 알도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다. 노고단에 도착하면 따뜻한 국물의 라면을 먹을 수 있을까?
   형제봉쯤에 이르러서는 노고단방향에서 오는 등산객들의 수가 본격적으로 많아졌다. 태어나서 인사를 이렇게 많이 해 본 적이 있었던가?  수고하십니다, 안녕하세요, 힘드시죠, 멋있네요. 등등의 인사말이다.  그래, 지리산 종주쯤의 산행이라면 무슨 꾀가 통하겠는가. 자기의 짐을 지고 자기 두 다리로 한 걸음 한 걸음 이동하는 등산객들을 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참 멋있어 보인다. 나보다 젊은 친구들을 보면, '나도 좀 더 일찍 시작할걸..' 하는 생각이 들고, 조금 큰 자녀들 데리고 오는 사람들 보면, '나도 우리 큰애와 차라리 배낭 메고 등산이나 다녔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고 나이 지긋한 분들 보면, '응. 나도 저 나이에 저 정도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산에서 만난 사람가운데 멋없는 사람 없었다.
    날씨가 참 좋았고 사진기에 담을 것도 참 많았다. 단순히 구름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빛이, 태양의 각도가 사진 찍기에 참 좋았다.  일행과 보조를 맞추다 보면 틈틈이 시간이 난다.  그 짧은 참에 한 장 한 장 찍다보니 이 구간에서 사진을 제일 많이 찍은 것 같다.
   10시 45분에 연하천 산장에 도착하였다. 연하천 산장의 첫 인상은 뭐랄까,  담임이 잠시 자리를 비운 뒤의 중학교 2학년교실 같았다.  우선 왁자지껄하였고, 30여명의 등산객들 모두가 50여 평의 마당에서 제각기 '자유분방'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산장에 따라 등산객의 성격도, 분위기도 다르게 되는가.  라면하나 끓이는 모습도 활달하고 기념사진 찍으면서 짓는 표정도 너무 너무 밝다.  어느 정도는 시끌벅적 하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었고 역시 그런 분위기의 사람들만 주로 본 것 같다.  이곳에 도착하고 보니 완전 딴 세계이다.  고3 입시반 교실에 있다가 가을 체육대회 준비하는 중2 교실에 온 느낌이랄까.  산장을 떠날 때까지 내가 이방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캔 맥주 하나 사서 마셨다.  산장 오른쪽에는 조그마한 별채를 하나 짓고 있었는데 대패소리, 자재 져 나르는 소리. 기계톱 소리 등이 소음을 내고 있었는데,  그 소음도 기가 죽을만큼 연하천의 분위기는 지상 1미터쯤 떠 있었다.  인부들은 새까맣게 그을렸고, 팔뚝 하나가 '이만큼' 했다.  종주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심심찮게 만나는 가지런한 돌계단과 목책을 보면 이 높은 곳에 누가 와서 저 일을 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이들 아닐까.   연하천 공사판에서 만난 인부들 보면 하나같이 임꺽정 같았다.  구한말, 일제 초기에 이 땅에 와서 일했다는 전설적인 일꾼들, '쿠리'가 저랬을까.
    오전 11시.  연하천을 출발하자마자 오르막으로 예쁜 나무 계단길을 만났다.  노고단에서 출발한 팀 같으면, '예쁜 나무계단을 만나 그걸 다 내려가니 연하천 산장이었다.' 하겠지.  한 시간쯤 걷고 나서 점심식사를 했다. 시간적으로도 한 번 충분히 쉴 시간이다.  등산화를 완전히 벗어 발도 말리고 스트래칭도 하면서 30분쯤 쉬었나보다. 아직 힘들지 않다. 토끼봉까지의 여정에서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고배율 망원경으로 한껏 당겨놓은 듯 확대된 모습으로 눈앞에 바짝 다가서서 반기는 반야봉 정상이었다.  반야봉 정상은 특징적으로 엉덩이 모습이어서 나 같은 초보자도 금방 머리에 새겨둘 수 있는 이정표이다.  지난 7월, 천왕봉에서 바라볼 때 새끼손톱 끝처럼 조그맣던 그 봉우리가 이제는 지척에 다가와 있다. 하지만 이번 여정에서 반야봉까지 들르는 것은 다소 무리라 생각된다.  
  오후 12시 45분.  연하천에서 3키로 미터를 걸어온 지점. 이정표에는 해발1,533미터 토끼봉이란다. 노고단까지는 7.5키로 남았고... 그러고 보니 총각샘이라는 이정표의 한 지점을 그냥 지나쳐온 것 같다. 이번 종주 산행에서 놓친 것이 어디 그것 하나 뿐이랴마는 그곳 물 맛이 좋다던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정표가 잘 안되어 있었는지, 아님 그냥 땅만 보고 걸어서 못 본 것일까. 하지만 연하천에서 채운 500ml 식수는 아직 넉넉히 남아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리산 종주코스는 '하마'가 아니라면 500ml 식수통 하나로 각 구간 구간의 물 문제가 다 해결될 정도로 샘이 많았던 것 같다. 참 고마운 코스다.   화개재에 도착하여 뱀사골로 내려가는 길 확인하고 지체 없이 삼도봉으로 향했다.  화개재에서 삼도봉까지 가는 길에 길고 긴 나무 계단을 만났다. 엄 모씨가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있을 때 만든 것이라는데 산사람들에게는 자꾸만 인공물을 지리산에 가미한다고 미움을 받기도 한다는 계단이다. 단조롭게 끝없이 반복되는 계단 계단이 다소 지루하고 주변 경관이 뛰어난 것도 아니나 계단 주위로 우거진 나무가 햇빛을 가려주어 시원하다.  시간만 많으면 담배라도 한 개비 피울만한 계단참의 공간이 중간중간에 있었고..  참 길고 길다. 아파트 층수로 환산하면 몇 층 짜리 아파트일까. 누군가가 계단의 끝 기둥에 547개라 새겨 두었다. 계단 수가 맞는지는 몰라도 아마 처음 계단을 만났을 때부터 카운트를 한 모양이다.
  13시 30분. 삼도봉에 도착하였다.  북쪽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탁 트여있고 전망이 좋아서인지 많은 등산객들이 기념촬영을 하면서 쉬고 있다.  삼각뿔 모양의 철제 표지판과 남쪽사면으로 전개되는 계곡을 바라보며 10여분 쉬었다. 혹 행글라이더나 패러글라이딩을 즐기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바로 이곳이다!  나는 그쪽으로 문외한이라서 바람의 방향이나 착지 예상점에 대한 조건 등의 감각은 없으나 이곳 삼도봉에 올라 남쪽 바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요즘말로 '딱'이다.  조기 아래 산마을을 향해 당장이라도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이곳에 잠시 서서 노고단이 어디쯤일까 가늠해 보았다.  짐작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도 이 때쯤부터는 표정관리 하느라고 무척 힘들었다. 표정관리?  이제 삼도봉에 도착하고 보니 조금 더 가 임걸령, 돼지령 지나 노고단에 도착하면 그 다음에는 한 걸음에 달려, 아니 데굴데굴 굴러서라도 화엄사에 도착할 것 같았고 그러면 이 산행도 끝이 아닌가. 마음 속 깊은 데서 피어 나오는 기쁨을 감추기가 쉽지 않았다.      노고단은 어떻게 변했을까?  1976년에 그곳에 오른 뒤 얼마 만인가?  무슨 바위나 언덕 또는 나무 하나라도 기억에 되살아 날 것이 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에 빠져 삼도봉을 출발하였다.
** 뜻깊은 중추절 연휴가 되시길 빕니다.
    아래 두 분의 산행기도 새겨 읽었습니다.  창 밖을 보니 또 보름달.
    벌써 한 달 전에 다녀온 지리산에서 본 그 달입니다.
        오늘은 그 때,  형제봉에서 구름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찍은 사진을 하나
    갤러리에 올려 봅니다.  구름만큼 예쁜 소나무의 실루엣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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