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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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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이상한 마성을 가졌다.

산행을 한 번 다녀오면 여러 날 몽환 처럼 지리산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꿈꾸는 것 처럼 몽롱함 속에 한동안 헤메게 되는 산이 지리산이다.

이렇듯 지리산은 어느 정도 중독성을 가진 산임에 틀림이 없다.

한국 사람이 외국에 나가서도 김치맛을 그리워 하듯이 지리산을 다녀 오면

몇일이고 지리산 생각에 다른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

눈 앞에는 온통 천왕봉이 어른거리고 벽소령의 세파란 달빛이 비치기도 하며

때로는 연하봉의 그 화려한 기화요초의 향내가 코끝에 아른거린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산이 지리산이다.

언젠가 지리산종주를 하고나서 무릎이 시끈거리면서 몸살이 들었는데도 지리

산의 그런 마성 때문에 그 다음 주말 다시 지리산을 올랐다가 정말 혼이 난 적

도 있다. 지리산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이른 아침에 귀가를 울렸던 새소

리가 잊혀지지 않아 다음 날 새소리를 듣기 위해 가까운 산에 오른 적도 있다.

또 다시 태어난다면 지리산의 작은 새가 되어 지리산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꾸

기도 하였다.

지리산을 자주 다니다 보면 자주 보이는 얼굴들이 있다.

서울이나 인천 같은 먼 곳에 살면서도 지리산을 거의 1~2주 간격으로 찾는 사

람들을 보면 처음엔 쉽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나 역시 비슷한 처지이지만...

산하면 지리산이지~ 지리산을 모르면 어떻게 산을 안다고 말할 수 있남~

지리산 지리산 지리산... 그렇게 지리산에 미쳐 버린 사람들도 무척 많다.

적어도 내가 지리산에 다니면서 확인한 바로는 그렇다.


무엇이 지리산을 이토록 미치게 만드는 걸까?

나는 지리산이 어머니 같은 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배반이나 억압이란 단어와는 무관하다. 한없는 포용과 관용과 용서

의 화신이다. 우리가 어머니라고 불러온 것은 지리산에서 그러한 어머니의 특

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평생 매일 보아도 언제나 좋은 대상이 어머니이듯."

인터넷 어느 홈페에지에 지리산을 소개하는 글이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리산을 오르는 일은 힘이 많이 든다. 수많은 코스가 있지만 하나 같이 가파른

길이 나타나고 거친 암릉길이 널려 있다.

그렇지만 지리산을 조금만 알고 오르면 지리산 처럼 편안하고 포근한 산이 또

없다. 지리산은 거의 모든 코스가 오르막길만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틀림없이 내리막길이 금방 나타난다. 내리막길만 있는 코스

도 없다. 내리막길이 있으면 그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오르막길이 머지않아 나타

나는 산이 지리산이다.

두어시간만 가면 어느 곳이든 틀림없이 지친 나그네의 목을 축이는 샘이 있다.

아무리 깊은 산중이라도 그렇다. 이런 깊은 곳에 이토록 높은 곳에 어떻게 샘이

있을 수 있을까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

해발 1500m가 넘는 곳에 샘이 줄지어 있는 산은 아마도 세계적으로도 드믈지

않을까... 이처럼 찾는 이들을 위해 지리산은 태생적으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산임에 틀림이 없다.

또 있다.

산을 오르다 지치거나 다칠 경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간혹 있다.

참으로 난감한 경우이다.

그러나 지리산에서는 그런 걱정을 안해도 된다. 아니...거의 그런 경우는 없을

성 싶다. 왜냐하면 5~6km 간격으로 하산할 수 있는 산행로가 나있다.

대피소가 줄을 지어 있는 것은 그러한 지리산의 인간을 위한 배려에도 앙탈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하옇든 지리산은 참 좋은 산이다.

하지만 지리산은 무서울 때도 있다. 한여름 계곡의 거센 물살, 한겨울 키를 넘

는 폭설,거의 매일 같이 내리는 비 등등... 아마도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

은 사람이 가장 많은 산이 지리산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지리산을 모르고 깔보고 함부로 오르다간 큰 코를 다치는 산이 지리산이기

도 하다.

한없이 부드럽고 자애로운 성정을 가졌지만 필요하면 회초리를 드는 어머니

처럼 말이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아픈 마음을 뒤로하고 눈을 부릎 뜨기도

한다. 회초리를 들었던 우리네 어머니의 눈을 기억하는가. 안타까움과 슬픔이

가득 담긴 그러면서도 사랑을 감추지 못하는 그런 어머니의 눈을 그려보면 지

리산의 성정을 이해할 수 있어진다.

이렇듯 지리산은 어머니와 너무도 닮은 산이다.

그래서 나는 지리산은 어머니라고 말한다. 어머니가 보고 싶듯이 나는 오늘도

지리산이 그립다. 지리산에 올라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리운 마음을 달래 보고 싶다.


그런가하면 아버지 같은 산도 있다.

대표적인 아버지 같은 산은 설악산이다.

그 깊은 오르막...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내리막. 거칠고 거친 암릉길.

깊고 깊은 계곡. 뾰쪽함이 아름답다 못해 무섭게 까지 느껴지는 봉우리.

설악산은 딱 집어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진

산이다. 집에서 느끼는 가장의 그 것 처럼 카리스마를 느끼게 하는 산이다.

설악산에는 한 번 들어오면 산행을 마칠 때 까지 참으로 일관되게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목이 말라도 참아야 하고 샛길을 찾아 내려가고 싶어도 쉽지가

않다. 유장한 골짜기 골짜기 마다 힘과 강인함이 함께 느껴지는 산이다.

만물상의 그 다양한 첨각을 상상해 보자. 천불동의 그 호방한 기를 느껴 보자.

귀면암의 그 험한 얼굴을 그려 보자. 심지어는 선녀의 모습을 한 비선대나 권

금성 같은 바위산 까지도 그 이름과는 달리 인간의 범접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산이 설악산이다.

죽음의 골짜기, 공룡능선 같은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진 산이 설악산 말고 또 있

을까. 그렇듯 설악산은 남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아버지와 같은 권위와 카리스마를 물씬 풍기는 산이다.

하지만 설악산에도 부모의 따뜻한 성정이 함께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고집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이 하나 같이 그러하지만 알고 오르면 참으로 매력

을 물씬 풍기는 산이 설악산이다.  빼어난 경치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다녀 오면 산으로 부터 받은 정기를 느낄 수 있는 한국의 큰 산이기 때문이다.

설악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들어 보면 설악산도 지리산 처럼 오르면 또 오르

고 싶어지는 마성을 가졌다고 한다.

아버지가 아무리 무서워도 보고 싶어지는 것과 같다. 때로는 말없고 무뚝둑한

아버지의 그 표정없는 표정이 한없이 그리워 지듯이...

아버지를 만나러 설악산에도 가고 싶다.

표정없는 얼굴 뒤에 숨겨진 아버지의 그 사랑을 느끼기 위해 설악산에 오르고

싶어진다. 오늘 처럼 차가운 날은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과 헛기침과 함께 나의

모든 걸 걱정해 주는 아버지가 함께 그리워 진다.

그리운 나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지리산과 설악산.

나의 몸이고 피이고 나의 살을 준 이들이다.


그런가하면 한라산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이면서도 특징을 말하기가

쉽지않다. 정말이지 특징을 딱집어 말하라면 갑갑해진다.

설악산과 지리산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어떤 매력도 찾기가 쉽지않다.

사람에 따라서 느끼는 점이 조금씩은 차이가 있겠지만 난 도통 한라산을

모르겠다. 밋밋한 것 같기는한데 올라보면 조금은 힘들게 하는 산이 한라산

이다. 산의 능.곡선을 보면 거칠 곳 같기는 한데 올라보면 보기 보다는 어렵지

도 않는 산이 한라산이다.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산이기는 한데 산행거리로 보

아서 앞의 두 산에 비해 오르는 시간이 별로 들지 않는 산이 한라산이다.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아늑함이 느껴지는 산이 한라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라산을 올라 보면 그냥 좋은 산이구나하고 느끼게 된다.

이유를 구체적으로 다 말할 수는 없는데 좋은 산이라는 느낌을 주는 산.

한라산은 어떻게 비유해야하나 많은 고민을 하였다.

누님 같은 산이 한라산이다. 정말 큰 누님을 닮은 산이 한라산이다.

말없는 그러나 더없는 아늑함이 느껴지는 산...

해지는 석양에 뒷산에 올라 있을 때 어머니가 해놓은 저녁밥을 먹으라며 날

부르러 뒷산 까지 올라와 나의 손을 잡아 끌던 큰 누님이 한라산에 오르면

아련히 떠오른다. 바다 건너 멀리 제주도 외롭게 우뚝 솟아 있는 산. 시집간

누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는 것 처럼 한라산을 오르는데는 상당한 다짐을 해야

하는 것 까지 한라산은 큰누님을 너무도 닮았다.

그리운 나의 큰누님, 그리고 그리운 나의 한라산.


아~ 그렇게 나는 산에서 어머니를 만난다. 아버지를 만나기도 한다.

때로는 큰 누님도 만난다.

어떤 땐 그냥 산에 올라 부모님과 누님의 나에 대한 사랑과 그 한없는 애정을

확인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땐 부모님 생각이 들어 산에 오르기도 한다.

살아 계시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이지만 산에 오르면 그 분들의 나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희생이 오롯이 느껴지기에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르고 싶어진다.

그런데 요즘은 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산이 하나 같이 아름다워지고 하나 같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님이 된다. 산사랑이 더욱 커지는 탓일까?

산안에 있어도 산이 그리워 지는 것,그 것은 산사랑 때문인가 보다.

가족은 함께 살아도 애틋한 정을 늘 안고 사는 것 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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