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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증언에 의한 남한의 빨치산 활동상황을 보면 인민군이 후퇴한 51년 북상을 시도하지만 중앙당의 지시에 의하여 다시 남하하게 된다. 51년 5월 덕유산에서 6개 도당회의를 열어 지리산에 통일적인 지휘 본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하고 이현상이 총지휘하는 남부군이 결성된다. 하지만 전남도당의 박영발은 이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투쟁을 벌이게 되고, 남부군은 지리산 조개골로 들어와 빨치산 활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이후 유엔과 국군의 소탕작전과 빨치산의 중앙당과 연락이 여의치 못해 효과적인 투쟁을 할 수 없게 되자 51년8월 중앙당지시(94호 결정서)에 의하여 52년 중반에 5개 지구당으로 개편이 이루어지게 되나, 이마저도 제5지구당인 지리산 지역에는 10월이 되서야 전달이 된다.

이에 52년 10월 지리산 빗점골에서 이현상, 박영발, 방준표, 김삼홍 등이 모여 제5지구당 구성을 위한 회의를 열게 되는데 이 회의에서 이현상, 김삼홍과 박영발, 방준표 사이에 심한 의견대립이 있어 결국 의견통일을 보지 못하고 중앙당의 지시와는 달리 도당해체 없이 제5지구당을 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경찰에 의존하던 토벌대가 군경합동 작전으로 바뀌고, 특히 백선엽, 송요찬사단 등에 의하여 빨치산은 그 세력이 빠른 속도로 쇠락의 길을 거듭한다. 53년7월 휴전협정이 맺어지자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야했던 이들은 53년9월6일 전남도당위원장 박영발의 주재 하에 지구당을 해체할 것을 결정한다.

이때 이현상은 사령관에서 평당원으로 강등되고 12일후 빗점골에서 최후를 맞는다. 이 사건으로 박영발, 방준표 등은 교조주의자들이란 오명을 쓰게 된다. 그 후 사실상 총수가 사라진 이들은 비트를 토끼봉으로 옮겼다가 반야비트로 들어오지만 그들도 4개월 후인 54년2월 추운 겨울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반야비트는 일부러 찾아들어가도 찾기가 어려운 은밀한 곳에 있다. 내부는 두어 평쯤 되는 공간에 4~5명이 좁게 누울 수 있는 자리와 두 명 정도가 겨우 누울 수 있는 통신용 공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음침한 내부에 렌턴을 비춰보니 당시의 아비규환을 말해주듯 몇 조각 잔해들이 보인다.

이곳엔 박영발을 비롯한 여비서, 무전사, 주치의등 8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주 임무는 무선으로 북의 지령을 전달받아 등사잉크로 인쇄를 하여 전달해 주던 ‘조국출판사’ 일을 했던 곳이다. 박영발은 만주에서 항일투쟁도중 잡혀 일제의 고문으로 다리를 절게 된 탓에 이현상의 활동적인 투쟁과는 달리 비트에 은신하여 활동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반공세대를 거쳐 왔던 나도 왠지 모를 숙연함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그들이 목숨까지 내놓고 이 좁은 동굴에까지 쫒겨 와서도 무장투쟁을 해야 했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외세에 의하지 않은 자주적 통일이었을까. 아니면 항일빨치산의 이념처럼 해방 후 최고수준의 대립으로 나타나는 지배적 계급세력과 상대적 약자인 민중들 사이에 나타난 적대적 형태가 폭력으로 나타난 것일까.

도덕적 윤리적인 가치관에서라면 희생의 대가는 치유하기 힘들만치 크다 하겠지만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그들의 물리력을 정당한 방법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동굴 속 어둠을 헤집으며 지난 역사를 반추해 보지만 내 역사의식이 증명하듯 아무것도 판가름하지 못한다.

박영발의 죽음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기록으로는 전세가 불리해저 54년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자살설(이태의 남부군, 한국사회주의인명사전, 백과사전)이 있고, 또 하나는 54년 4월 12일자[동아일보] 보도인데 54년3월 모부대 박상옥 중사 일행이 반야봉부근 수색작업을 벌이던 중 밟힌 인분에 의해 비트가 발견돼 3명을 사살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박영발이었다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가 최근 이 비트를 증언한 박남진옹이 밝힌 내용으로 조국출판사의 필경사일을 보았던 장본인이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조국출판사의 첫 출발은 반야봉 아래 계곡에 온돌식 비트가 시작이었으나, 53년 12월 15일 반야봉에 대규모 토벌대가 진주하는 바람에 바위비트로 옮겨진다. 여기에 무전사, 의사, 여성비서, 박영발 등 4명이 은거하고 박 옹 등을 포함한 나머지 7명은 보급투쟁 등으로 수시로 출입을 하였다.

한편 박영발과 함께 동굴에서 은신하고 있던 주치의 박모씨는 1953년 5월 토벌대와의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당해 이동이 매우 힘겨운 상태였다. 동굴생활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식량이 떨어지고 토벌대의 수색작전이 비트를 압박해오자 일행 중에서 자연스럽게 비트를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에 총상으로 이동이 어려웠던 주치의가 '장소를 옮기게 되면 혼자 버려지게 될 것'이라는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다 '혼자 버려지느니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1954년 2월 21일 비트 보초를 보는 중 박 위원장 등 총 3명에게 30연발 칼빈소총을 난사했다. 갑작스런 총기난사로 동굴에 있던 박 위원장과 무전사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이모 여성비서가 몸에 지니고 있던 수류탄을 던져 의사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이 여성비서는 부상과 허기로 동굴에서 힘겹게 버티다가 다음날 22일 식량을 전해주러 온 대원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진다.(발췌, 시민의소리)


이와 같은 증언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자살설은 실질적인 2인자의 죽음이 내부자에 의한 사고라는 것이 알려질 경우 심리적인 타격이 컷을 것을 감안한 소문 퍼뜨리기로 생각되며, 토벌대에 의한 사살설은 이현상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경찰과 군인의 성과주의 사고방식에 의한 전공부풀리기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 듯 박영발이 죽은 날짜는 각각 다르다.


비트를 지나 조그만 지능을 잡았다 싶으면 길은 사면에 붙어 끊어지질 않고 이어진다. 아니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서인지 오히려 확실한 발자욱이 찍혀있다. 여기서 묘향대 삼거리까지는 약 20여분, 평소 비박지로 사용하는 제법 너른 터를 만난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으면서 긴 미로를 빠져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쉬엄쉬엄 오솔길을 따라 묘향대에 오르니 땀범벅이 된 얼굴을 바람이 쓰다듬고, 구름 속에 갇혀있던 태양이 얼굴을 내민다.

그때 갑짜기 반야가 거대한 높이로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내 품안에서 싸움이란 애초에 없었다. 그러니 이기고 짐은 더더욱 없었다. 저기를 보아라, 지금 저렇게, 저렇게 평온하지 않느냐.

계곡을 바라보니 함박골의 상처는 푸른 숲에 덮여 씻은 듯이 없어져 있었다.


- 구름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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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들마을 2005.10.11 11:29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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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민 2005.10.13 13:51
    구름모자님의 산행기는 빠지지않고 잘읽고 있습니다.
    공부하는기분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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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모자 2005.10.14 10:49
    버들마을님 과찬이십니다.

    진민님 졸필을 탐독하신다니 송구스럽습니다. 전 그저 산을 다니는 일에 조그만 보람이라도 느껴보려는 일종의 자기만족과도 같은 행위에 일부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글을 쓰는 능력이 있듯이 그 글을 지면에 옮기는 작업에 불과한 일이지요.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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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으로 2005.10.17 21:18
    버들마을님의 말씀처럼 구름모자님 "대단하십니다."
    덕택에 지리에 좀 더 친근해지고 해박해집니다.
    댓글 적어도 님의 글은 가히 일당 천 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우리 구름모자님,화이팅!!!
    늘 님의 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는걸 염두에 두시고
    계속해서 좋은글 써 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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