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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보니 발아래 용도있게 가공된 목재가 보인다. 이후 이런 목재는 계곡 상류부까지 두어 개가 더 보인다. 다듬어진 모양새나 규격이 화전민이 집을 지었던 자재와는 어울리지가 않아 혹시 절집에 사용했던 자재가 아닐까 했지만 자료를 찾아보니 도벌이 심한 5~60년경 철도용 침목을 만들던 도벌꾼들이 단속반을 피해 황급히 도망을 나와 반출하지 못한 잔재라 한다.

원래 남원 목기와 함양 옻칠은 명성이 자자했던 터이니 이곳의 지명 유래인 함박, 즉 목기를 만들던 곳은 칠선의 청춘홀이나 제석단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지만, 이 높은 곳에서 저렇게 규모있는 목재를 가공하여 내려갈 생각을 하였다니 인간 욕심이 새삼 놀랍다. 하긴 산업기반이 없는 그 시대에 쉽게 돈버는 방법치고 이곳 지리산만한 곳도 없었을 것이다.

널다란 반석지대를 만나면 멀리서 또다시 폭포의 굉음이 들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두 줄기 거대한 물기둥이 곧추선 벽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 모습은 마치 2단평행봉에서 체조하는 소녀와 같아 벽 끝에서부터 재주를 부리며 통통거리다가 사뿐 내려앉는 마무리까지 어디하나 흠잡을 데가 없어 보인다. 규모도 규모지만 자태가 너무 고고하여 주인의 때깔스런 정성이 보이는 듯 하다. 이곳은 폭포의 기품처럼 벽이 워낙 서있어 좌측으로 완전한 우회를 하여야 한다.

이어 만나는 폭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우아함이 돋보인다. 길게 늘어선 물줄기는 상단에서 두 갈래가 나뉘어 긴 장삼을 늘어뜨렸다 잡아채 듯 너울대며 흐르고, 오름길은 그 현란한 물줄기 사이로 나있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폭포를 느끼면서 오른다는 것이... 이 산과 한 몸이 되어 내가 곧 폭포이고, 북·장고 없이도 흥겨운 가락이 흐르며, 그 장단과 함께하는 춤사위의 주인공이니 오늘은 내가 곧 축제장의 주인 아니던가?

언제였던가, 이런 느낌, 그래 국골이었다. 그때도 오늘처럼 비가 내린 다음날이었다. 계곡은 환희의 물결이 넘쳐나고, 휘모리장단같이 빠른 박자와 최고조에 이르는 함성이 있었다. 그뿐이랴 그 박자를 사위어내는 춤사위와 모두 어우러져 하나가 된 듯 감동의 물결이 넘쳐나고 있었다.

이 폭포 위에서 우측으로 작은 지류 하나가 내려온다. 물줄기로 보아 그 끝은 멀지 않은 듯 보인다.

조금 간격을 두고 다시 나타나는 폭포 역시 길게 누운 와폭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한껏 치장하여 현란한 듯 보이나 느낌은 중후하다. 마치 부채춤이나 교방춤을 추듯이 한과 흥, 교와 태를 고루 갖추어 차분하면서도 섬세하고, 애절하면서도 화려하다. 또한 여기엔 정중동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어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묘한 매력이 넘쳐 흐른다. 마치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다스려 마무리 수순에 들어가는 화려함과 장중함이 함께 있는 곳이다.

이후 얼마간 다시 원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크고 작은 바위가 뒤엉켜있고, 계곡 여기저기 쓰러진 나무엔 이끼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게다가 분위기마저 축제가 끝난 뒷모습처럼 황량하여 느낌상으로는 이제 계곡의 최 상류부에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깐, 소란스런 물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또 다른 물 떨어짐이 보인다. 비록 단애나 힘찬 물줄기의 비상은 없을지라도 계곡을 울리는 물소리는 처음 그대로이다.

태가 끼어 미끄럽고, 걸음걸이가 불편한 바위군락을 피해 우측 산비탈로 올라서니 이 험하고 바위투성이인 계곡에 먹이 사냥을 나온 멧돼지가 바로 조금 전 내 갈 길을 헤집고 다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이들이 가족동반하여 소풍이라도 나왔다가 식사중이거나, 아니면 한가로운 오수라도 즐기다가 조우라도 하는 날이면 난 어차피 불청객일 테니 자칫 노리개감이 되기 십상이다. 동행자 없는 산행에는 모든 게 신중해야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오늘 같은 날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쌓여 내 그림자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걸 보면 난 아직 지리에는 젖먹이나 다름 아니다.

쫒기듯 온 신경을 집중하며 허겁지겁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지쳐있을 즈음 전면에 벽이 하나 보이더니 사방이 꽉 막힌 듯 보인다. 멧돼지 흔적은 이곳에 사라지고 물가로 내려서니 좁은 협곡 속을 은밀하게 숨어 흐르는 폭포가 보인다. 낀바위폭포로 불러도 좋을만치 아담한 돌맹이 하나가 물길의 좁은 틈새에 박혀있고, 물은 소리만 우렁찰 뿐 그 바위틈 사이를 어렵게 빠져나오는 듯 보인다. 주위 풍광이나 그 모양새는 제법 폭포의 위엄을 갖추었다 하나 왠지모를 숙연함이 묻어난다.

문득 반도통일을 꿈꾸다가 쫒기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박영발이 떠오른다. 항일빨치산으로 한때는 영웅이었지만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 당시 그는 섬멸해야할 적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나마 세력은 고갈되고 이 좁은 골짜기에 숨어들었으니 저 좁은 틈새를 흘러나오는 물소리는 그가 가슴에 지니고 있던 고뇌에 쌓인 심정과 돌려놓을 수 없는 대세에 흘러나오는 긴 탄식이 아니었을까?

언제부터인지 태양은 구름 속에 숨어 버리고, 주위는 어둠을 방불케하는 음산함이 내려와 벌써 이 곳에 든지 2시간이 지났는데도 분위기 적응이 쉽지 않다.

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꺾여 급한 비탈을 오르게 된다. 너덜이 심한 산길은 두터운 이끼가 덮여있고, 가는 줄기들을 헤치며 3~4분 오르면 심마니 모둠 같은 온돌이 나온다. 박영발 일행이 불을 지피고 추위를 피했던 곳이며, 북쪽의 방송을 청취하여 인쇄물을 제작 보급하는 조국출판사의 마지막 장소이다.

이곳에서 약 50여m 위쪽에 바위비트가 있다. 비트란 한국동란시 천연동굴이나 지상에 위치한 은신처를 말하며, 원래 지하본부라는 뜻의 아지트(agit, agitpunkt러)는 지하에 만든 은신처라는 말로 서로 구분해 부른다. 포개어진 틈 사이에 놓인 나무사다리를 올라서면 좁은 굴 입구가 나오고, 내부는 한 덩어리처럼 보이나 용도는 둘로 나누어 져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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