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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반목 평화의 골짜기 함박골(일명 폭포수골)


함박이란 통나무 속을 파서 바가지처럼 만든 그릇을 말한다. 그런 의미라면 함박골은 그러한 형태의 옴팍한 지명을 말하는 곳이다. 따라서 반야봉을 통나무로 가정한다면 함박골은 우묵한 함지박일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함박이란 단어 어원을 찾아보니 움푹한 지형 외에 함박꽃이 많았다는 곳과, 고어로 ‘함’은 하늘(天)을 말하는 ㅎ`ㄴ ㅂ`ㄺ (1)에서 분화되면서 ㅎ`ㄴ ㅂ`ㄱ(2), 한박, 함박으로 전이된 고어와도 같은 의미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런데 이곳 지명유래는 이도 저도 아닌 함박을 만드는 곳이 있어 함박골이 되었다는 내력뿐이다. 논리비약이지만 반야와 묘향과 문수에 어울리는 ㅎ`ㄴ ㅂ`ㄺ (3)이 더 어울리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골짜기에 산꾼들의 발길이 잦아지기 시작한 것은 한국동란 당시 조선노동당 전남도당위원장인 박영발의 비트가 세상에 다시 회자되면서 관심을 갖게 된 최근 일이다.

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곳을 찾아낸 이는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1954년 체포돼 36년을 감옥에서 보낸 뒤 1989년 가석방 출소한 비전향장기수 김영승씨다. 비트를 증언한 박남진의 증언에 따라 반야봉 아래 함박골 일대를 수색하여 2004.11월 답사를 완료하고 2005.2월과 5월 언론기관과 뜻을 같이하는 일행들을 통해 지상에 공개했던 것이다.

어떤 의미의 가치가 붙여질지는 역사가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슬픈 역사로만 치부하기엔 피아의 상처가 너무나 깊어 보듬어야할 편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진다.



버스와 새벽열차, 후배 승용차까지 동원하여 서둘렀지만 반선에 도착한 건 해가 중천에 오른 오전 8시였다. 이른 시간도 아니건만 토요일인 탓인지 오르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계곡을 가득 메운 물소리만이 혼자임을 더욱 처량하게 만든다.

이끼폭포골 지류에 내려 잠시 조반을 들은 후, 길을 재촉하여 함박골 초입을 찾아 나선다. 시즌이 꺾였음인지 한 두 사람의 산객들만이 내려오고 있을 뿐, 사방은 계절을 잃은 듯 조용하다.

간장소를 지나고 안영교를 건너자마자 뱀사골 본류로 찾아들어가 살피니 계곡 건너로 있을 것 같던 함박골 초입이 보이지 않는다. 적당한 지점의 낮은 내를 건너니 옴팍하게 숨어있는 함박골이 뱀사골과 합수하는 지점에서 방향을 틀어 깊숙한 곳으로 흐르고 있다.

초입은 사태에 굴러온 바위들이 둑을 쌓은 듯 도열해 있다. 성기지 않게 모여 있는 바위 위를 걷는데 까치독사 한마리가 양지녘에서 또아리를 틀어 몸 말리기를 하고 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글을 벗어버렸다. 보호색으로 무장하여 오수를 즐기고 있는 저들의 휴식에 난 훼방꾼이나 마찬가지니 자칫 실수로 오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약간의 불편은 감수해야했다. 하긴 곧 짙은 녹음속일 테니 불편이랄 것까지도 아니지만...

비경이 시작되는 건 오래지 않았다. 초입을 막 꺾어 들어서자마자 길다란 와폭 하나가 애교스런 몸짓으로 몸을 비틀어 흘러내린다. 이 곳을 올라서면 곧 두 번째 폭포가 다소곳이 인사를 한다. 마치 아흔아홉칸 넓은 저택의 본당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그것은 이제 본격적인 내부의 모습을 감상할 준비에 예의를 갖추라는 뜻이기도 하다.

3폭은 벽을 박차고 일어선 수직의 폭포이다. 그 자태가 거만스러울만치 기교를 넣어 주인장의 기품이 보이는 듯하다.

이후 얼마간 짙은 어둠속을 걷는다. 동행자가 없는 산행은 언제나 고독이라는 그림자가 지치도록 사무치게 쫒아 다니는 것이 생리지만 오늘은 어제 내린 비의 영향인지 탓할 만큼 진한 외로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만난 네 번째 폭포는 진한 감동이 전해온다. 짙은 녹음 속에서 갑자기 하늘이 터지며 햇살과 함께 쏟아져 내린다. 허공에서 갑자기 튕겨져 나온 듯한 포말은 이제 갓 껍질을 터트린 순백의 목화솜처럼 눈이 부셔 넋이 나간 듯 쳐다보고 있었다.

이어 만나는 다섯 번째 폭포는 벽 한쪽 기슭으로 물길을 모아 수줍은 듯 떨어지지만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은 우측으로 제법 험하게 이어진다.

이후 다시 얼마간 짙은 이끼와 고목들이 뒤덮고 있는 원시미 가득한 계곡을 걷게 된다. 마치 꽉 짜여진 틀 속에서도 여분의 미학을 담은 정원처럼,

(계속)


주 (1), (2), (3) 아래하 ( ` )가 있는 고어입니다.

  • ?
    웅재부 2005.10.07 22:21
    님의 산행기를 마치 공부하듯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지리가 가지는 슬픈 역사에 대한 설명이 희미해져 가는 386의 진보성을
    질타하는 듯합니다.
    저는 사는 곳이 안동이라 지리를 찾으려면 너무 힘이듭니다만
    님과의 조우를 항상 꿈꾸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 한번 불러 주십시요.
    plus928@hanmail.net 제 메일 주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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