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0일 저녁, 번개 천둥이 몹시 쳤습니다.
근래 이런 날씨는 처음입니다.
"내일도 틀렸구먼!"
사실은 1주일 전 3일도 그랬습니다.
밤새 내리는 비 때문에, 4일 새벽 배낭을 멨다 말다하다가 날을 샜습니다.
결국 지리산에 못 갔습니다.
그런데 딱 1주일 뒤 오늘도 그럽니다.
똑 같이, 아니 더 심하고 변덕스럽습니다.
월드컵 축구고 뭐고 자정이 지나자 집에서 나왔습니다.
‘한숨 더’ 하다보면 못갈 확률만 높아지니…….
"날씨도 안 좋은데, 다음에 가세요."
허나 이 말은 내가 현관문을 이미 나간 뒤의 얘기라 다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지리산을 갈 때마다 꺼리(?)를 가지고 갑니다.
혼자서 낙낙히 걸으면서 그 꺼리를 생각하고 정리합니다.
한 번에 안 되면 두세 번 가서 정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지리산을 가는 나만의 이유입니다.
해마다 몇 번씩은 가는데 올해는 방학 시작되기 전에 가려고 합니다.
방학 철이 되면 지리산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 둘째 놈이 그 꺼리입니다.
고3인데 애비로서 딱히 해주는 게 없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을 묻어 버린 지 오래이기에 말로는 해줄 게 없습니다.
"너 대학 들어가면 아빠랑 지리산 종주하자."
이 말이 전부였습니다.
제 엄마는 아들놈을 위해 날마다 반야심경을 한번 씩 씁니다.
그것도 외워서 씁니다.
일종의 불공인 셈입니다.
벌써 대학 노트 22권 째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기야 하겠습니까마는 큰애 때부터 시작한 일입니다.
나는 불경을 외우지도 못하니 몸으로 때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2년 전 딸애 입시 때도 지리산을 몇 번 갔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가야 합니다.
말하자면 ‘자식놈 대학입시 기원 지리산행’입니다.
집을 나서 차를 몰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지리산을 어디에서 부터 시작하는가 입니다.
성삼재부터…….
아니면 백무동부터…….
좀 편하려면 백무동 쪽이 좋고…….
아니면 이때까지 가던 대로 성삼재로 갈까…….
어느덧 차는 광주교도소를 지나 도동고개를 넘고 있었습니다.
빨리 결정해야합니다.
88을 타느냐
호남을 타느냐
잠시 후 저는 호남선에 있었습니다.
날씨도 별로고, 어둡기도 해서 성삼재 쪽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5년 전에 첫 종주를 한 뒤 매년 3번씩 종주를 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매년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작년이 4년 째인데 종주를 2번 밖에 못해 11번으로 끝났습니다.
올해는 5년째로 그 첫번 째이자 합해서 12번째입니다.
올해도 그 약속이 지켜질런지 모르겠습니다.
어느덧 성섬재에 이른 시각이 새벽 2시.
차 속에서 이것저것 준비도하고 먹기도하고…….
출발하려 하니 밖이 춥습니다.
배낭 속에서 재킷을 뺐습니다.
아뿔싸! 재킷이 아니라 바지입니다.
바지를 외투로 알고......
그럼 외투가 없는데…….
이 때 내가 24년 전에 샀던 트렁크 속 Summit 재킷이 생각났습니다.
작업복으로 입으려고 넣고 다니던 것입니다.
이것이라도 감지덕지죠.
3시. 천천히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4시 00분. 노고단대피소.
9시 00분. 연하천대피소. 밥해 먹고……술 좀 사려 했는데 안 팔아서 못 샀습니다.
11시 00분. 벽소령대피소.
사실은 벽소령에 자려고 예약을 해뒀는데, 시간이 너무 일러서 취소했습니다.
1시 50분. 세석대피소.
여기서 또 고민입니다. 힘도 들고 여기서 잘까말까…… 그런데 아직 잘 시간은 아니고……에라 가자.
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성삼재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하고, 친구들 3명은 백무동에서 세석대피소로 올라 온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세석에 도착하기 전 오후 3시 경 선비샘에서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미 세석에 올라왔답니다.
저와의 거리 차는 약 2시간.
“니그들 그냥 장터목으로 가라.”
“아니어 올 때까지 기다릴게”
“그럼 거꾸로 와라. 중간에서 만나서 같이 가게.”
그냥 해본 소리인데 진짜로 그들이 거꾸로 달려서 와버렸습니다.
징한 놈들…… 결국 중간에서 만나 체포되어 세석을 지나 장터목까지 끌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힘들었지만 마중 산행까지 대접받았으니 꼼짝도 못하고……
그런데 또 한 친구가 오후 4시경에 백무동에서 출발하여 거의 두 시간 만에 달리다시피하여 장터목까지 올라와 합세했습니다.
그날 장터목에서 조촐하게 술한잔 했습니다만 저는 술맛도 없고 해서 조금 마시고 잤습니다.
이런 연유로 당일 장터목까지 가본 적이 있습니다.
한번 해봤던 것이라고 어그적 어그적 장터목으로 향했습니다.
3시 50분. 장터목대피소.
힘도 들고 여기서 자야지…….
“아저씨, 황도 하나, 물 한통 주세요.”
“예.”
“아저씨, 지금 들어가 쉴 수 있습니까?”
“예약했습니까?”
“아니오.”
“그럼. 7시에 오세요.”
“예?”
“예약했으면 지금 입실이고, 아니면 7시에 오세요. 규정입니다.!”
“……”
차가 노고단에 있으니, 백무동으로 하산해야 하는데……
지금부터 3시간 동안 혼자 어디서 뭣하며 어쩌란 말인가.
시간도 어중간해서 자고 내일 내려가기도 그렇고……
에라 모르겠다. 천왕봉이나 올라가버리자. 뒷일은 올라가서 생각하고……
5시 00분. 천왕봉.
한군데 전화하고, 한군데 문자 보내고 나니 할 일이 없습니다.
그 다음 대책은 중산리로 하산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천왕봉에서 어떤 분에게 디카로 사진을 얻어 찍었는데 지금 그 사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8시 00분. 중산리.
시간을 보니 17시간을 걸었습니다. 힘들었습니다.
천왕봉에서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어디서 옵니까?”
“성삼재요.”
“몇 시에 출발했습니까?”
“새벽 3시요. 아저씨는요?”
“아침 8시 반에 출발했습니다. 선두는 벌써 내려갔고요.”
“……”
‘자식놈 대학입시 기원 엉겁결 당일 지리산종주’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일찍 자리만 배정받았어도 장터목에서 잤을 것입니다.
그리고 연하천에서 술만 샀어도 장터목에서 잤을 것입니다.
모두가 핑계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예약이 다 차서 자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떻게 잘 수야 있었겠지만……
아무튼 1박2일의 장비와 계획으로 갔는데, 예정과 계획에도 없던 당일종주가 되버렸습니다.
중산리로 늦게 내려오는 바람에 비싼 대가를 치루고 어찌어찌해서 광주에 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의미는 있었고, 무릎 안 상하고 몸 성히 하산한 것 만해도 감사합니다.
다음날 차를 찾으러 구례에서 아침 10시20분 버스로 노고단에 올라갔습니다.
버스 속 앞자리에 각각 노인 두 분씩 두 일행이 있습니다.
한 무리의 두 노인분들은 평범한 차림입니다.
다른 무리의 두 노인분들은 범상치 않습니다.
해병대 모자에, 해병대 군복을 위아래 입고, 해병대 군화에, 수통이 두 개 달린 탄대를 차고, 배낭은 엄청나게 큽니다.
노고단 올라가는 도중 네 노인분들은 쉽게 친해져서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해병대시네. 나는 HID요. 반갑소. 그런데 어디서 오시오?”
“부산이요.”
“오늘 어디서 주무시요?”
“연하천이요.”
“우리는 벽소령인디.”
“우리는 천천히 갑니다.”
“내일은 요?.”
“장터목이요.”
“우리도 내일은 장터목인디 만나겄소. 근디 올해 몇이요?”
“나는 67이고, 이 양반은 72요. 댁들은 예?”
“나는 69고, 이 양반은 71이요.”
‘……’
어느덧 성삼재.
이제는 버스 운전기사와 해병대 두 노인분과의 대화입니다.
“부산 양반들이 이제 나를 모른 체하시네요.”
“그게 아이라, 자주 보는디 뭐.”
“제가 대접할 테니 차 한 잔 하고 가세요.”
“안 마셔도 괜찮아. 다리 안 아프면 왕복 종주할거니까 그 때 만나서 마시지 뭐.”“
‘……’
저는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근래 이런 날씨는 처음입니다.
"내일도 틀렸구먼!"
사실은 1주일 전 3일도 그랬습니다.
밤새 내리는 비 때문에, 4일 새벽 배낭을 멨다 말다하다가 날을 샜습니다.
결국 지리산에 못 갔습니다.
그런데 딱 1주일 뒤 오늘도 그럽니다.
똑 같이, 아니 더 심하고 변덕스럽습니다.
월드컵 축구고 뭐고 자정이 지나자 집에서 나왔습니다.
‘한숨 더’ 하다보면 못갈 확률만 높아지니…….
"날씨도 안 좋은데, 다음에 가세요."
허나 이 말은 내가 현관문을 이미 나간 뒤의 얘기라 다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지리산을 갈 때마다 꺼리(?)를 가지고 갑니다.
혼자서 낙낙히 걸으면서 그 꺼리를 생각하고 정리합니다.
한 번에 안 되면 두세 번 가서 정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지리산을 가는 나만의 이유입니다.
해마다 몇 번씩은 가는데 올해는 방학 시작되기 전에 가려고 합니다.
방학 철이 되면 지리산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 둘째 놈이 그 꺼리입니다.
고3인데 애비로서 딱히 해주는 게 없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을 묻어 버린 지 오래이기에 말로는 해줄 게 없습니다.
"너 대학 들어가면 아빠랑 지리산 종주하자."
이 말이 전부였습니다.
제 엄마는 아들놈을 위해 날마다 반야심경을 한번 씩 씁니다.
그것도 외워서 씁니다.
일종의 불공인 셈입니다.
벌써 대학 노트 22권 째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기야 하겠습니까마는 큰애 때부터 시작한 일입니다.
나는 불경을 외우지도 못하니 몸으로 때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2년 전 딸애 입시 때도 지리산을 몇 번 갔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가야 합니다.
말하자면 ‘자식놈 대학입시 기원 지리산행’입니다.
집을 나서 차를 몰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지리산을 어디에서 부터 시작하는가 입니다.
성삼재부터…….
아니면 백무동부터…….
좀 편하려면 백무동 쪽이 좋고…….
아니면 이때까지 가던 대로 성삼재로 갈까…….
어느덧 차는 광주교도소를 지나 도동고개를 넘고 있었습니다.
빨리 결정해야합니다.
88을 타느냐
호남을 타느냐
잠시 후 저는 호남선에 있었습니다.
날씨도 별로고, 어둡기도 해서 성삼재 쪽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5년 전에 첫 종주를 한 뒤 매년 3번씩 종주를 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매년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작년이 4년 째인데 종주를 2번 밖에 못해 11번으로 끝났습니다.
올해는 5년째로 그 첫번 째이자 합해서 12번째입니다.
올해도 그 약속이 지켜질런지 모르겠습니다.
어느덧 성섬재에 이른 시각이 새벽 2시.
차 속에서 이것저것 준비도하고 먹기도하고…….
출발하려 하니 밖이 춥습니다.
배낭 속에서 재킷을 뺐습니다.
아뿔싸! 재킷이 아니라 바지입니다.
바지를 외투로 알고......
그럼 외투가 없는데…….
이 때 내가 24년 전에 샀던 트렁크 속 Summit 재킷이 생각났습니다.
작업복으로 입으려고 넣고 다니던 것입니다.
이것이라도 감지덕지죠.
3시. 천천히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4시 00분. 노고단대피소.
9시 00분. 연하천대피소. 밥해 먹고……술 좀 사려 했는데 안 팔아서 못 샀습니다.
11시 00분. 벽소령대피소.
사실은 벽소령에 자려고 예약을 해뒀는데, 시간이 너무 일러서 취소했습니다.
1시 50분. 세석대피소.
여기서 또 고민입니다. 힘도 들고 여기서 잘까말까…… 그런데 아직 잘 시간은 아니고……에라 가자.
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성삼재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하고, 친구들 3명은 백무동에서 세석대피소로 올라 온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세석에 도착하기 전 오후 3시 경 선비샘에서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미 세석에 올라왔답니다.
저와의 거리 차는 약 2시간.
“니그들 그냥 장터목으로 가라.”
“아니어 올 때까지 기다릴게”
“그럼 거꾸로 와라. 중간에서 만나서 같이 가게.”
그냥 해본 소리인데 진짜로 그들이 거꾸로 달려서 와버렸습니다.
징한 놈들…… 결국 중간에서 만나 체포되어 세석을 지나 장터목까지 끌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힘들었지만 마중 산행까지 대접받았으니 꼼짝도 못하고……
그런데 또 한 친구가 오후 4시경에 백무동에서 출발하여 거의 두 시간 만에 달리다시피하여 장터목까지 올라와 합세했습니다.
그날 장터목에서 조촐하게 술한잔 했습니다만 저는 술맛도 없고 해서 조금 마시고 잤습니다.
이런 연유로 당일 장터목까지 가본 적이 있습니다.
한번 해봤던 것이라고 어그적 어그적 장터목으로 향했습니다.
3시 50분. 장터목대피소.
힘도 들고 여기서 자야지…….
“아저씨, 황도 하나, 물 한통 주세요.”
“예.”
“아저씨, 지금 들어가 쉴 수 있습니까?”
“예약했습니까?”
“아니오.”
“그럼. 7시에 오세요.”
“예?”
“예약했으면 지금 입실이고, 아니면 7시에 오세요. 규정입니다.!”
“……”
차가 노고단에 있으니, 백무동으로 하산해야 하는데……
지금부터 3시간 동안 혼자 어디서 뭣하며 어쩌란 말인가.
시간도 어중간해서 자고 내일 내려가기도 그렇고……
에라 모르겠다. 천왕봉이나 올라가버리자. 뒷일은 올라가서 생각하고……
5시 00분. 천왕봉.
한군데 전화하고, 한군데 문자 보내고 나니 할 일이 없습니다.
그 다음 대책은 중산리로 하산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천왕봉에서 어떤 분에게 디카로 사진을 얻어 찍었는데 지금 그 사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8시 00분. 중산리.
시간을 보니 17시간을 걸었습니다. 힘들었습니다.
천왕봉에서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어디서 옵니까?”
“성삼재요.”
“몇 시에 출발했습니까?”
“새벽 3시요. 아저씨는요?”
“아침 8시 반에 출발했습니다. 선두는 벌써 내려갔고요.”
“……”
‘자식놈 대학입시 기원 엉겁결 당일 지리산종주’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일찍 자리만 배정받았어도 장터목에서 잤을 것입니다.
그리고 연하천에서 술만 샀어도 장터목에서 잤을 것입니다.
모두가 핑계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예약이 다 차서 자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떻게 잘 수야 있었겠지만……
아무튼 1박2일의 장비와 계획으로 갔는데, 예정과 계획에도 없던 당일종주가 되버렸습니다.
중산리로 늦게 내려오는 바람에 비싼 대가를 치루고 어찌어찌해서 광주에 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의미는 있었고, 무릎 안 상하고 몸 성히 하산한 것 만해도 감사합니다.
다음날 차를 찾으러 구례에서 아침 10시20분 버스로 노고단에 올라갔습니다.
버스 속 앞자리에 각각 노인 두 분씩 두 일행이 있습니다.
한 무리의 두 노인분들은 평범한 차림입니다.
다른 무리의 두 노인분들은 범상치 않습니다.
해병대 모자에, 해병대 군복을 위아래 입고, 해병대 군화에, 수통이 두 개 달린 탄대를 차고, 배낭은 엄청나게 큽니다.
노고단 올라가는 도중 네 노인분들은 쉽게 친해져서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해병대시네. 나는 HID요. 반갑소. 그런데 어디서 오시오?”
“부산이요.”
“오늘 어디서 주무시요?”
“연하천이요.”
“우리는 벽소령인디.”
“우리는 천천히 갑니다.”
“내일은 요?.”
“장터목이요.”
“우리도 내일은 장터목인디 만나겄소. 근디 올해 몇이요?”
“나는 67이고, 이 양반은 72요. 댁들은 예?”
“나는 69고, 이 양반은 71이요.”
‘……’
어느덧 성삼재.
이제는 버스 운전기사와 해병대 두 노인분과의 대화입니다.
“부산 양반들이 이제 나를 모른 체하시네요.”
“그게 아이라, 자주 보는디 뭐.”
“제가 대접할 테니 차 한 잔 하고 가세요.”
“안 마셔도 괜찮아. 다리 안 아프면 왕복 종주할거니까 그 때 만나서 마시지 뭐.”“
‘……’
저는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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