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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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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산행일 - 2012. 9.22 07:40~18;20 o 어디로 - 반선~함박골~반야중봉~폭포수골~반선 o 누구랑 - 홍운,대방산,불매골,초* ,물깃, 곰돌이,옥종형님,,슬기난 o 유난히도 바빴던 초가을, 모처럼 정기산행 가는 길에 잠시 짬을 내어 산행계획을 세워본다. 오붓하게 다녀오려던 계획이 만복대로 향하려던 님들을 돌려세워 제법 시끌벅적한 전국 산행팀이 꾸려진다. 늘 지리에 드는 날은 그러하듯 밤을 새워 도착한 반선 일출에 아직 불빛이 없어 잠깐 눈을 부치고 나니 속속 도착하는 님들로 반가운 만남이 이루어진다.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이사장의 도움으로 요룡대까지 편하게 오르니 뱀사골 청아한 계곡 물소리가 귀에 다가온다. 투명하게 바닥을 보이며 흘러가는 물살을 바라보며 한동안 찾지 못한 그리움을 풀어내고 아직도 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집 잔디밭에 밤새도록 교향곡을 들려주는 풀벌레 소리와 겹쳐 가는 시간을 붙들어 매지 못하는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뜨겁던 청춘도 식어지면 노을의 벗이라니 이제 푸르름을 잃어가는 뱀사골 나뭇잎들의 겨울채비가 눈에 들어온다. 지리 다른 곳과는 달리 지난 태풍피해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고 편안한 길 쉬엄쉬엄 오르며 초면인 동행들과 이야기꽃도 피워본다. 가마솥처럼 유난히도 덥던 여름의 기세도 수그러들어 준비한 반팔 옷은 배낭에 수납하고 긴 옷으로 올라도 그리 더위를 못느끼고 지난 며칠 전 내린 비에 한 방울 두 방울 스미어 나와 합쳐저서 함박골 곳곳에 작은 폭포를 이루며 힘차게 흘러내려가는 시원한 계곡가에서 잠시 땀을 식힌다. 이윽고 도착한 이끼폭포의 시원한 물줄기가 지난 몇 번의 산행에서 못보던 장관을 선사한다. 다시 못볼세라 열심히 모습 담고 간식도 들고 오르는 계곡이 작은 폭포들로 갈 길 바쁜 산객을 유혹하며 붙잡는다. 함박이란 통나무 속을 파서 바가지처럼 만든 그릇을 말함인데 반야봉을 통나무로 가정한다면 함박골은 우묵한 함지박일 것이다. 함박꽃이 많아 함박골이라고도 하고 함박을 만드는 곳이 있어 함박골이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한다. 가을의 길목에서 - 박 광 호 - 무덥던 한 여름 짜증스러워 했던가 그 여름 있었기에 오곡은 여물고 그로 하여 우리는 삶을 이어간다. 한낮의 매미소리는 떠나는 여름으로 구성지고 달밤의 귀뚜리소리는 찾아오는 가을로 청아한데 긴 세월 얼룩져 살아온 내 마음속엔 어느덧 갈숲에 이는 바람소리 한 시절 뜨겁게 살던 젊음의 날은 그리움으로 남고, 노을로 찾아오는 가을바람엔 회한만 깊어라 인생에도 수확하는 가을이 있다면 모든 잎 떨어뜨린 나목의 겨울나기처럼 내 앞에도 겨울이 있음을 기억해 두어야 하리 묘향암 갈림길 지나 나오는 폭포가 수량이 많아 옆으로 우회하고 한동안 계곡을 따르다 보니 하늘이 툭 트이며 저 아래로 능선이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아직 물줄기가 제법 많은 수량을 보여 갈 길이 멀었지만 잠시 다리쉼을 하고 본류를 따라 오른다. 이제 제법 곧추 세우며 인내력을 시험하는 너들 길이 이어지고 가파른 길가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버섯을 지나친 일행이 혹시나 식용할 수 있나 하여 뒤돌아 채취하는 사이 동참하는 분이 계시고 (나중 하산하여 일출에서 못 먹는 버섯이라 하여 폐기,,,ㅎㅎㅎ) 가느다란 물줄기가 Y자 형태로 나누어지는 곳에서 우측으로 리본이 많이 붙어 급경사 치고 오르니 * 냄새나는 전망 좋은 능선끝자락으로 올라선다. (*냄새나는 나무가 자라고 있어) 길가 소담스럽게 피어난 버섯! 본류 마지막 계곡 Y자 갈림길,, 연무가 끼어 선명치 못한 전망가운데서도 저만큼 만복대와 서북능선이 눈에 들어오고 점심을 해결하고 가자는 일행과 정상근처까지 가자는 일행들의 설왕설래 끝에 부른 배에 오르막 오르기가 힘들다는 일행의 의견이 참조되어 몇 발 걸어 심마니 능선으로 진입하여 잠시 올라 헬기장 가기 전 아늑한 박지에 배낭내리고 점심상을 차린다. 딱히 산행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고 급조된 산행이지만 각자 준비한 준비물이 알맞게 배낭에서 나오며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꽃을 피운다. 진주, 하동, 남해, 근처에 사는 분들은 초면이지만 서로 동질감을 느끼며 소통에 열심이고 전주 물깃님과 나는 어쩌다 끼어들기는 하지만 변두리로 밀려난다.^^* 하산 길도 험난하여 얼른 일어나야하지만 점심시간 한시간 반을 주장하는 홍운님의 한마디에 느긋하게 숭늉까지 끓여 마시고 자리 정리한다. 반야중봉 정상의 연안 김씨묘는 깨끗하게 벌초가 되어있고 심술을 부리는 연무에 희미한 주능을 한참 바라보다 아쉬움을 안고 묘향암으로 내려선다. 바람에 흔들리는 구절초, 쑥부쟁이, 용담의 배웅을 받으며,,,, 저 만큼 만복대와 서북능선이,,, 반야중봉 정상에서,,, 반야중봉 정상에서,,, 오를때와의 느낌과는 달리 급하게 내리쏟는 길을 줄여 묘향암 삼거리에 내려서니 저만큼 인기척을 느낀 묘향암 길상이의 컹컹대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마당 잔디 손질하고 계시는 스님께 인사하고 뒤따라 내려 온 일행들과 마당에 자리 펴고 스님과 가지고 온 과일 나누며 한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한동안 시간을 보내고 화장실 아래로 바로 내려서니 쓰러진 나무들이 온통 길을 막아 지난 태풍 볼라벤의 위력을 실감나게 한다. 본류와 마주치고 박영발 비트 갈림길 잠시 전 착각을 일으켜 많이 내려 온줄 알고 위쪽으로 비트를 찾다가 돌아내려 비트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일행분들이 굴속에서 이야기 하느라 나올 생각을 안하신다. 깊은 산속 춥고 어둡고 축축한 굴속에서 숨죽인 시간을 보냈을 빨치산들의 모습이 생생히 느껴져 잠시 시공을 초월하여 대화를 나누어본다. “무엇이 이 깊은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생을 불사르게 하였냐고?” “이 골짜기에 산꾼들의 발길이 잦아지기 시작한 것은 한국동란 당시 조선노동당 전남도당위원장인 박영발의 비트가 세상에 다시 회자되면서 관심을 갖게 된 최근 일이다. 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곳을 찾아낸 이는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1954년 체포돼 36년을 감옥에서 보낸 뒤 1989년 가석방 출소한 비전향장기수 김영승씨다. 비트를 증언한 박남진의 증언에 따라 반야봉 아래 함박골 일대를 수색하여 2004.11월 답사를 완료하고 2005.2월과 5월 언론기관과 뜻을 같이하는 일행들을 통해 지상에 공개했던 것이다. 어떤 의미의 가치가 붙여질지는 역사가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슬픈 역사로만 치부하기엔 피아의 상처가 너무나 깊어 보듬어야할 편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진다. 문득 반도통일을 꿈꾸다가 쫒기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박영발이 떠오른다. 항일빨치산으로 한때는 영웅이었지만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 당시 그는 섬멸해야할 적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나마 세력은 고갈되고 이 좁은 골짜기에 숨어들었으니 저 좁은 틈새를 흘러나오는 물소리는 그가 가슴에 지니고 있던 고뇌에 쌓인 심정과 돌려놓을 수 없는 대세에 흘러나오는 긴 탄식이 아니었을까?. 험한 바위아래 좁다란 입구로 들어서면 박영발 일행이 불을 지피고 추위를 피했던 곳이며, 북쪽의 방송을 청취하여 인쇄물을 제작 보급하는 조국출판사의 마지막 장소이다. 비트란 한국동란시 천연동굴이나 지상에 위치한 은신처를 말하며, 원래 지하본부라는 뜻의 아지트(agit, agitpunkt러)는 지하에 만든 은신처라는 말로 서로 구분해 부른다. 포개어진 틈 사이에 놓인 나무사다리를 올라서면 좁은 굴 입구가 나오고, 내부는 한 덩어리처럼 보이나 용도는 둘로 나누어 져있다. 당시 증언에 의한 남한의 빨치산 활동상황을 보면 인민군이 후퇴한 51년 북상을 시도하지만 중앙당의 지시에 의하여 다시 남하하게 된다. 51년 5월 덕유산에서 6개 도당회의를 열어 지리산에 통일적인 지휘 본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하고 이현상이 총지휘하는 남부군이 결성된다. 하지만 전남도당의 박영발은 이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투쟁을 벌이게 되고, 남부군은 지리산 조개골로 들어와 빨치산 활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이후 유엔과 국군의 소탕작전과 빨치산의 중앙당과 연락이 여의치 못해 효과적인 투쟁을 할 수 없게 되자 51년8월 중앙당지시(94호 결정서)에 의하여 52년 중반에 5개 지구당으로 개편이 이루어지게 되나, 이마저도 제5지구당인 지리산 지역에는 10월이 되서야 전달이 된다. 이에 52년 10월 지리산 빗점골에서 이현상, 박영발, 방준표, 김삼홍 등이 모여 제5지구당 구성을 위한 회의를 열게 되는데 이 회의에서 이현상, 김삼홍과 박영발, 방준표 사이에 심한 의견대립이 있어 결국 의견통일을 보지 못하고 중앙당의 지시와는 달리 도당해체 없이 제5지구당을 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경찰에 의존하던 토벌대가 군경합동 작전으로 바뀌고, 특히 백선엽, 송요찬사단 등에 의하여 빨치산은 그 세력이 빠른 속도로 쇠락의 길을 거듭한다. 53년7월 휴전협정이 맺어지자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야했던 이들은 53년9월6일 전남도당위원장 박영발의 주재 하에 지구당을 해체할 것을 결정한다. 이때 이현상은 사령관에서 평당원으로 강등되고 12일후 빗점골에서 최후를 맞는다. 이 사건으로 박영발, 방준표 등은 교조주의자들이란 오명을 쓰게 된다. 그 후 사실상 총수가 사라진 이들은 비트를 토끼봉으로 옮겼다가 반야비트로 들어오지만 그들도 4개월 후인 54년2월 추운 겨울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반야비트는 일부러 찾아들어가도 찾기가 어려운 은밀한 곳에 있다. 내부는 두어 평쯤 되는 공간에 4~5명이 좁게 누울 수 있는 자리와 두 명 정도가 겨우 누울 수 있는 통신용 공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음침한 내부에 렌턴을 비춰보니 당시의 아비규환을 말해주듯 몇 조각 잔해들이 보인다. 이곳엔 박영발을 비롯한 여비서, 무전사, 주치의등 8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주 임무는 무선으로 북의 지령을 전달받아 등사잉크로 인쇄를 하여 전달해 주던 ‘조국출판사’ 일을 했던 곳이다. 박영발은 만주에서 항일투쟁도중 잡혀 일제의 고문으로 다리를 절게 된 탓에 이현상의 활동적인 투쟁과는 달리 비트에 은신하여 활동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반공세대를 거쳐 왔던 나도 왠지 모를 숙연함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그들이 목숨까지 내놓고 이 좁은 동굴에까지 쫒겨 와서도 무장투쟁을 해야 했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외세에 의하지 않은 자주적 통일이었을까. 아니면 항일빨치산의 이념처럼 해방 후 최고수준의 대립으로 나타나는 지배적 계급세력과 상대적 약자인 민중들 사이에 나타난 적대적 형태가 폭력으로 나타난 것일까. 도덕적 윤리적인 가치관에서라면 희생의 대가는 치유하기 힘들만치 크다 하겠지만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그들의 물리력을 정당한 방법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동굴 속 어둠을 헤집으며 지난 역사를 반추해 보지만 내 역사의식이 증명하듯 아무것도 판가름하지 못한다. 박영발의 죽음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기록으로는 전세가 불리해저 54년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자살설(이태의 남부군, 한국사회주의인명사전, 백과사전)이 있고, 또 하나는 54년 4월 12일자[동아일보] 보도인데 54년3월 모부대 박상옥 중사 일행이 반야봉부근 수색작업을 벌이던 중 밟힌 인분에 의해 비트가 발견돼 3명을 사살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박영발이었다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가 최근 이 비트를 증언한 박남진옹이 밝힌 내용으로 조국출판사의 필경사일을 보았던 장본인이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조국출판사의 첫 출발은 반야봉 아래 계곡에 온돌식 비트가 시작이었으나, 53년 12월 15일 반야봉에 대규모 토벌대가 진주하는 바람에 바위비트로 옮겨진다. 여기에 무전사, 의사, 여성비서, 박영발 등 4명이 은거하고 박 옹 등을 포함한 나머지 7명은 보급투쟁 등으로 수시로 출입을 하였다. 한편 박영발과 함께 동굴에서 은신하고 있던 주치의 박모씨는 1953년 5월 토벌대와의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당해 이동이 매우 힘겨운 상태였다. 동굴생활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식량이 떨어지고 토벌대의 수색작전이 비트를 압박해오자 일행 중에서 자연스럽게 비트를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에 총상으로 이동이 어려웠던 주치의가 '장소를 옮기게 되면 혼자 버려지게 될 것'이라는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다 '혼자 버려지느니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1954년 2월 21일 비트 보초를 보는 중 박 위원장 등 총 3명에게 30연발 칼빈소총을 난사했다. 갑작스런 총기난사로 동굴에 있던 박 위원장과 무전사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이모 여성비서가 몸에 지니고 있던 수류탄을 던져 의사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이 여성비서는 부상과 허기로 동굴에서 힘겹게 버티다가 다음날 22일 식량을 전해주러 온 대원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진다.(발췌, 시민의소리) 이와 같은 증언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자살설은 실질적인 2인자의 죽음이 내부자에 의한 사고라는 것이 알려질 경우 심리적인 타격이 컷을 것을 감안한 소문 퍼뜨리기로 생각되며, 토벌대에 의한 사살설은 이현상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경찰과 군인의 성과주의 사고방식에 의한 전공부풀리기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 듯 박영발이 죽은 날짜는 각각 다르다.“ -구름모자님 글에서 발췌- 묘향암 마당에서 바라본 주능 토끼봉! 박영발 비트에서 반야 북사면 깊은 계곡 폭포수골에 이제 서서히 햇살이 종적을 감추기 시작하고 험한 내리막 폭포로 길이 막히면 우회를 시도하지만 아름드리 나무가 쓰러져 내려 갈 길을 막아 기를 쓰고 우회를 시도하고 일행들은 계곡으로 내려간다. 뱀사골 본류 전 잠시 계곡가에 배낭내리고 시원한 물에 얼굴 씻으며 땀 식히고 마지막 간식을 나누며 험한 내리막 길 무사히 마무리함을 다행으로 여긴다. 처음 따라나선 진주친구와 옥종형님, 힘들었을 텐데 내색은 않고 재미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어둡기 전 산행 마무리하기 위해 부지런히 길을 줄이지만 뱀사골 깊은 골이 만만치 않게 다리를 압박해오고 그래도 랜턴 꺼내기 전 요룡대에 도착하여 픽업을 부탁한다. 잠시 시간을 쪼개어 시원한(실은 추웠음) 뱀사골 본류에 뛰어들어 알탕을 하시는 분들을 불러 내려오는 차안에서 힘든 내색 없이 오가는 우스개 소리에 종일 같이 하였던 산정을 나누고 일출에서 간단한 하산 주 한잔에 하루의 고단하였던 일정을 마무리한다. 하산 길 간장소 아래에서,,
Saddle the wind - Lou Christ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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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두 2012.10.03 15:10
    활발하게 산행하시는 모습 부럽습니다 슬기난님 덕분에 박영발 비트도 알게되었군요 꼭 찾아가고 싶은데 어떻게 찾을지 걱정이 앞서는군요 지리산 이곳 저곳 가고 싶은 곳은 많은데 다음을 위해서 미루어둬야 될 것 같아요 덕분에 방에서 지리산 구경 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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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솔지기 2012.10.03 20:10
    아름다운 산행코스 못지않게
    슬프다 못해 울어 가슴저린 역사의 현장을
    소상하게 소개하신 글....
    배경음악과 함께 잘 보았습니다.
    소개하신 곳은
    한민족 분단의 비극에서 다시 되새겨 보아야 할
    역사의 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좌우 극한 대립끝에 형성된 반공이데올로기의 슬픈 역사로써
    혹자는 그런 것 다 공산 파르티잔(빨찌산)의
    험한 말로가 아니겠느냐? 하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는 20세기의 지배그룹 이데올로기와
    한민족 동질성 회복이라는 대명제에서
    다소간 천착하고 되짚어 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
    선경 2012.10.03 23:51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지리의 정겹고 아름다운 지리를 만나며
    다시한번 슬기난님께 감사드립니다
    역사의 뒤안길도 접해보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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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 2012.10.04 09:48
    오랫만의 산행기 정말 반갑고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산행 하시고 좋은 날 되세요.
  • ?
    슬기난 2012.10.05 23:02
    정두님, 오랜만의 사랑방 나들이 반갑습니다.
    찾는것은 조금만 발품팔면 어렵지않을터이고 늘 그자리에
    있는 지리인지라 차근차근 지리에 드시기를,,,,
    청솔지기님,
    민족의 애환이 서린 지리인지라 곳곳에 애달픈 흔적 지나칠때마다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선경님,
    이국에서의 추석은 어떠셨는지요?
    일때문에, 게으름에, 자주 소식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까치님,
    미쳐 꺼내지 못한 이야기도 있고, 자주들지 못한 사정도 있고
    뜸했습니다^^*
    어찌 오브 가족분들의 이야기 기대합니다만 그냥 옛날
    왁자지끌하던 때가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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