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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2004.07.28 15:34

한여름 지리 (2)

조회 수 2513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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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뙤약볕입니다. 원래 이글거리는 태양을 좋아하지만 이런 무공해 햇살은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얼른 숲으로 숨어듭니다. 잎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올려고 야단인 저 찬란함, 그늘이 만들어 주는 이 신선함은 숲속을 천상의 궁전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위 사진) 2004.7.24 09:34 임걸령 가는 주능선 길에서...

(위 사진) 2004.7.24 09:35 햇살은 평범한 것도 보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위 사진) 2004.7.24 09:42 산행로옆 햇살 받은 둥근이질풀 호기심 가득한 눈길 보내고...

한적한 능선길을 조금 걸어 임걸령에 도착했습니다. 아늑한 숲에서 탁 트인 곳으로 나오는 순간! 아이고~~ 눈을 뜰 수 없습니다. 어릴 적 비오는 날 단체관람 영화 보고 나서 영화관 나왔을 때 갠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던 그 느낌 그대로 입니다.

(위 사진) 2004.7.24 09:46 임걸령에서... 초록과 하늘색 일색인 지리에서 저 노랑 원추리 무리는 한 점의 보석 같습니다 ^^*

(위 사진) 2004.7.24 09:47 임걸령 샘터. 여전히 풍부한 수량입니다. 시원하다 못해 차겁습니다.

임걸령 샘터옆 배낭 내려놓고 목마름보다 우선 눈부심부터 해결합니다. 목이야 천천히 축여도 되지만 이 순간 이 정경은 지나가면 다신 돌아오지 않으니... 급히 선글라스 끼고 모자 쿡 눌러쓰니 아!... 이 아름다운 세상~~

미지근한 식수 버리고 이 시원한 샘물로 바꿔 넣습니다. 물주머니 가득 채우고 배낭에 다시 넣을려는 순간... 좀 가볍게 가자는 간사한 마음의 꼬임에 바로 넘어가 반을 비워 버립니다. 아! 이것이 첫번째 오만방자함... 이에 대한 그 혹독한 응징, 으~~ 몸서리가 쳐집니다.

(위 사진) 2004.7.24 10:03 임걸령 떠나며

노루목으로 오르는 이 얼마 안되는 오름길에서조차 땀이 줄줄 흐릅니다. 땀은 킬킬거리며 눈 속 파고 들어 따갑게 하고, 입속으로도 바닷물 같은 짙은 짠 맛 밀어넣고 있습니다. 땀 닦을려고 멈추는 순간 몸에서 발산되는 무지막지한 열기로 안경이 바로 뿌옇게 되어버립니다. 이 한여름에 안경에 왠 서리입니까? ㅎㅎㅎ

(위 사진) 2004.7.24 10:17 노루목 가는 길에서...

(위 사진) 2004.7.24 10:21 거의 다 올라섰습니다. 좀 살 것 같습니다.

(위 사진) 2004.7.24 10:45 다 왔습니다... 노루목 가는 마지막 나무계단입니다.

(위 사진) 2004.7.24 10:47 노루목앞 전망 좋은 바위에서 탁 트인 지리의 모습... 노고단, 돼지령, 임걸령... 참 시원한 맛입니다!

(위 사진) 2004.7.24 10:47 조금 더 오른쪽엔 성삼재와 가르마 탄 것 같은 관광도로

너무 빨리 지쳐 갑니다. 반야봉 올라야 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 하느라 처리용량 부족한 머리는 더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가야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날은 이리 땡볕에다 바람 한 점 없으니... 뭐 까짓것 가 보기로 합니다. 이것이 두번째 오만방자함입니다.

갈림길로 힘겹게 오르는데 터진 물주머니에서 순식간에 물 빠져 버리 듯 갑자기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이럴까 하며 생각해 보니... 번개다 회식이다며 기름진 음식 일단 많이 먹었고, 그 결과 몸은 급속히 불었고 이 늘어난 몸무게 허리에 부담 줄까 봐 음식 조절 좀 심하게 했고, 잦은 모임은 과한 술을 부르고 그 결과 숙취는 늦은 아침 강요하고, 이는 아침운동 거르게 하고, 근력은 당연히 약해지고, 그걸 짧은 시간에 강화시키기 위해 지리에 들기 전날까지 몇 일간은 새벽 및 저녁으로 뜀박질까지 해 가며 무리한 것이 근육을 피로하게 만든 것이다 라고 판정 내립니다. 예... 욕심은 화를 부릅니다...

(위 사진) 2004.7.24 11:02 반야봉 갈림길. 왼쪽은 삼도봉쪽으로 내려가는 길, 오른쪽은 지금 올라온 노루목쪽으로 내랴가는 길

(위 사진) 2004.7.24 11:10 좀 더 오르니 그늘없는 땡볕에 활짝 핀 노오란 원추리

(위 사진) 2004.7.24 11:13 가뜩이나 지쳤는데 너무합니다~~

일은 벌어진 것이고, 현명한 대응을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한편으론 또 이런 생각으로 중얼거립니다. '오르는 것만 힘들지 오르면 시원하고 또 쉬고 내려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뿐해질 거야...'

결국 자제하지 못하고 단내 뱉어 가며 정상을 향해 올라갑니다. 힘들다는 생각 안하기로 합니다. 추운 겨울 지리도 생각하고, 얼마전 오브넷가족분들과 빗소리 들으며 보낸 즐거운 만남도 생각합니다. 옛 시간을 되새김질하며 히득거리다 보니 어느 사이 반야봉 정상입니다.

아! 이 아름다움! 그리 보아도 질리지 않고 매번 새로운 모습! 예!...이 모든 것 보고 느끼러 지리에 옵니다! 아니, 지리가 꿈 속에서 이 모습 보여 준다며 유혹하였기에 지금 이 지리에 온 것입니다! 배낭도 내려놓지 않은 채 사진부터 찍기 시작합니다.자! 저 멀리 천왕봉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만복대까지...

(위 사진) 2004.7.24 11:40 반야봉 표지석에서 바라본 지리 주능선과 천왕봉, 그리고 그 친구(?)들 ^^

(위 사진) 2004.7.24 11:40 아래 삼도봉과 그 너머 목통골 정경

(위 사진) 2004.7.24 11:40 반야봉 돌탑과 그 너머 노고단

(위 사진) 2004.7.24 11:40 머리 벗겨진 만복대 ^^*

돌탑옆 저 빨간 셔츠 입은 여성이 앉은 자리, 해연님 주무신 자리옆에 앉아 오늘 처음 음식물 입에 넣어 봅니다. 붉은 사과 한 알 으적으적 씹으며 저 먼 곳 노고단고개 돌탑쪽 멍하니 바라보고 있습니다.

(위 사진) 2004.7.24 11:45 노고단과 노고단 고개

춘계입산통제기간중 저 노고단고개에 올라 하염없이 이곳 올려다 보았었는데... 어느 듯 시간은 흘러... 맞은 편 그 위치에서 저 곳을 바라보다니... 삶이란 그런 것이겠죠...

(위 사진) 2004.7.24 11:46 불무장등능선쪽의 정경입니다.

(위 사진) 2004.7.24 11:48 반야봉 돌탑 너머... 올라온 피아골쪽 정경

(위 사진) 2004.7.24 11:48 극복해야 할 대상 토끼봉 ^^* 그 너머 촛대봉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모든 것은 정지한 듯 합니다. 다만, 시간만 지친 기색없이 항상 그렇게 달리고 있습니다. 이젠 내려가야 할 시간입니다. 몸이 천근만근 같습니다. 누구처럼 드러누워 잠들고 싶습니다. ㅎㅎ 그러나 전 아직 그런 자유 누릴 뱃포 없나 봅니다. 어쩌면 우리 세대가 강요 당한 것이 그러한 자유의 포기가 아닐까 합니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방향 잡아 울창한 숲속 내림길 조심스럽게 내려섭니다. 힘 빠진 상태에서 근육에 무리한 힘 가하면 쥐 나기 쉽기 때문입니다. 쥐가 난다는 것은 다리의 기능을 잃는 것입니다. 그것만은 절대 안됩니다!...

그럭저럭 주능선 갈림길에 무사히 다다릅니다. 천천히 내려오다 보니 또 10분을 계획보다 지체했습니다... 이런 식의 진행은 뻔한 결과를 낳습니다.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을 반사적으로 의식합니다.

(위 사진) 2004.7.24 12:42 반야봉 내림길과 주능선 만나는 갈림길의 기울어진 표지대...

(위 사진) 2004.7.24 12:50 이름 없는 무덤 지나 삼도봉에 도착합니다.

(위 사진) 2004.7.24 12:51 삼도봉 표지대에서 바라본 반야봉

화개재 551개 계단 내려섭니다. 내림길에서도 땀은 비 오듯 합니다. 배낭의 무게감이 처음으로 느껴집니다. 이러면 안됩니다. 무조건 쉬어야 합니다. 허리가 약하기에... 배낭 맨 채로 털썩 앉습니다.

오호! 그런대로 색다른 맛이 있군요 ^^* 이렇게 길 가운데서 주저앉은 적 없었는데... 이 끝없는 계단 오를 땐 머리 내리박고 어떻게 하면 빨리 오를까 하는 생각뿐이었고, 이 계단 내려설 땐 힘들지 않으니 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계단에 앉아 바라보는 정경 이렇게 아름다운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위 사진) 2004.7.24 13:04 화개재 가는 551개 나무계단 중간에서...

(위 사진) 2004.7.24 13:15 끓고 있는 화개재

너무 더워 저기 벤취 그늘에 드러누웠습니다. 더위는 휴식조차 힘들게 합니다. 한 3분 누웠는데 좀체 몸이 식지 않아 오히려 땀만 더 흘리고 있습니다. 일어나 걷는 것이 덜 더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극복 대상인 토끼봉 오름길,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몇 걸음 걷고 몇 분 쉬고... 거의 기진맥진입니다... 물만 벌컥벌컥...

(위 사진) 2004.7.24 13:38 토끼봉 가는 길

악 쓰고 오릅니다. 토끼봉입니다. 왜 토끼봉에만 오르면 이리 지루하고 힘들까 생각해 봅니다. 예... 그렇군요... 그래요... 이곳 오르면 그 다음은 꿀맛 같은 긴 내림길이니 그걸 바라고 기대하는 마음 조급증 불러들여 그런 것 같습니다. 기대되는 보상이 크면 클수록 그것 얻기까지의 고난이 더 힘들게 느껴지나 봅니다.

그래도 정상이니 물 한 모금 마셔야 하겠습니다. 호스를 빨아 봅니다. 근데... 어?! 아이고~~~ 물이 떨어졌습니다! 이 일을 어쩌나요 허! 물주머니는 다 편리하고 좋은데 그 사용량을 쉽게 확인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 일을 정말 어쩌나요... 이 뜨거운 날씨에... 휴!

(위 사진) 2004.7.24 14:16 토끼봉 정상 표지대 부근에서...

빠른 시간안에 연하천대피소 도달하는 것이 최상인 것 같습니다. 총각샘 중간에 있긴 하나 거의 연하천대피소 다 가서 있고 또 신뢰감이 들지 않으니... 하여튼 길을 재촉해 봅니다. 그나마 내림길이니 다행입니다. 속도 냅니다. 시간 절약 위해 일단 사진 찍는 것 중단하기로 합니다. (여러분 죄송 ^^* 저두 일단 살아야겠습니다 ㅋㅋ) 한 발 한 발 있는 힘 다해 내딛습니다.

토끼봉에서의 내림길 끝나고 명선봉 오름길에 접어듭니다. 빠른 몸놀림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몸을 지치게 하고 있습니다. 쉬는 횟수도 많아집니다. 지리에서 흔하다면 제일 흔한 그 바람, 오늘은 정말 어디로 다들 숨어 버렸는지...

(위 사진) 2004.7.24 16:29 붐비는 연하천대피소. 각자 분주한 모습들...

연하천대피소, 발 달린 짐승 아니니 가고 가고 또 가면 결국 도달할 것이니... 예... 즐겁게 가기로 합니다. 음... 먼저 체중 많이 줄겠습니다 ㅋㅋ 그럼 날씬한 몸매? ㅎㅎㅎ... 참! 아니지... 그 모든 옷들 사이즈 줄일려면? 허리는 사이즈는 줄이더라도 헐렁해져 버릴 옷매무새는 어쩌고? 아이고~~ 구하기 힘든 등산복들!... 안돼! ㅎㅎㅎ 이 체격에 무게만 가벼워지는 것 없나? (떼굴떼굴-머리 굴리는 소리)

총각샘에도 들를 수 있었지만 지나쳐 버립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나무계단 나타납니다... 예... 다 왔습니다... 무사히 말입니다. ^^

시원한 물에 대한 욕심 마음껏 부려 봅니다. 실컷 마시고 가득 채우고 또 마시고 손수건도 적시고 얼굴도 씻고 또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ㅎㅎㅎ

벽소령에 19:00 까지 도착해야 하고, 벽소령 가는 길 비록 내림길이지만 마지막 부분엔 반복되는 S자 반대 모양의 능선 돌아넘기가 힘들게 하니 서둘러 출발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도 급한 성격만은 성능 떨어지지 않고 너무 잘 작동되고 있습니다. ㅎㅎㅎ 혹 몰라 벽소령대피소에 전화를 넣어 두려고 전화 거니 신호가 잡히질 않습니다. 허!... 일단 빨리 가 보는 수밖에... 1시간 정도의 여유로 시작해 봅니다.

(위 사진) 2004.7.24 17:05 삼각고지 휙~ 지나 형제봉 나타나고...

잡념 버리라 합니다. 아름다운 경치에 눈돌리지 마라 합니다. 허! 짙은 구름으로 커튼 쳐 버립니다. 감사하다 해야 할지, 얄밉다 해야 할지 참! 에구~~형제봉 내림길에서 바라보는 벽소령대피소의 아련한 모습 이번엔 접어야 하겠습니다...

(위 사진) 2004.7.24 17:55 좋은 경치 가릴려면 바람이라도 불어야죠! 이게 뭡니까? ^^

(위 사진) 2004.7.24 18:40 벽소령대피소의 부산한 모습입니다.

마감시간(19:00)에 딱 맞춰 도착합니다. 아주 아주 여유있으리라는 당초 예상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계획은 풍비박산된 20.6km 였습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예측 능력은 참 보잘 것 없다는 것 또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철저히 대비하고, 충분한 여분을 주머니 이곳저곳에 저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만은 최대의 적입니다.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자연앞에서는...

삐거덕거리고 뻐근한 육체를 굽혀 등산화 벗고 대피소내 중앙홀에 줄을 섭니다. 예약 안되신 분들의 애끓는 하소연이 이렇게 줄 서게 만들었습니다. 저 차례입니다. 주민등록증을 내어 줍니다. 혼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묻는 이유가 뻔합니다. 맨 구석자리에 쳐박기 위함이죠. 분홍색 표를 받아보니 여지 없습니다. ㅎㅎㅎ

침상으로 가 배낭 내려 놓고, 등산화는 신발주머니에 넣어 침상 아래에 두고, 저녁식사 준비물들(뭐냐구요? 컵라면 1개...쩝... 근데 왠 '들'? 아~ 버너, 코펠, 가스, 수저, 2L물통, 휴지, 물휴지, 치약, 치솔, 쓰레기 봉투...) 큰 비닐봉지에 모두 쓸어 넣고, 지퍼팩에 고이 넣어 온 갈아입을 옷들 챙겨 2층으로 올라가 젖은 옷 훌렁 벗어 버리고 뽀송뽀송한 녀석들로 후다닥...,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벗은 옷과 장갑, 모자 줄에 널어 놓고, 가져온 샌들 꺼내 들고, 보조의자 꺼내 들고, 카메라와 삼각대 챙긴 후, 지갑과 전화기 호주머니에 꾹 찔러 넣고 2호실을 나섭니다.

대피소 중앙홀에는 남은 자리 배정받기 위해 선발된(? ^^*) 분들 공단직원의 훈계(? ㅋㅋ) 비슷한 소리 억지로 들어가며 잠자코 앉아 있습니다. 그 사이를 조용히 빠져나옵니다. "에~ 이렇게 된 것은 저희 잘못이 아니라 예약 안하고 오신 여러분들이며..."

밖은 전보다 더 짙은 구름으로 덮어져 있습니다. 투벅투벅 샘터(대피소에서 의신 가는 길 60m 아래)로 내려갑니다. 샘터에서 긴 행렬 끝에 붙어 무료한 10분을 흘려 보냅니다. 대피소로 다시 올라옵니다. 대피소 주변은 취사하시는 분, 비박하실 분들로 메워졌습니다.

취사장안으로 들어갑니다. 오히려 이곳이 덜 붐빕니다. 간의의자 펼치고 앉아 버너 켜고 코펠에 물 500cc 넣고 끓입니다. 컵라면 봉지 뜯고 가루스프 털어 넣은 뒤 물 끓기를 기다립니다. 좀 멍하니 있다가 카메라 꺼내 오늘 찍은 사진들 보며 미소 짓습니다. 그리그리 시간은 흐릅니다. 다 끓었습니다. 컵라면 용기에 물 붓고 코펠 뚜껑 덮어 놓은 후 계속해서 찍은 사진에 몰두합니다.

컵라면은 맛있었습니다. 컵라면 용기 휴지로 닦아 내고 같이 쓰레기 봉투에 넣습니다. 남은 물로 치솔을 조금 적시고 양치를 한 다음 휴지에 뱉고 그것들도 쓰레게 봉투에 넣습니다. 버너, 코펠, 가스, 수저와 가지고 온 다른 물건들 챙기고 간이의자 접은 후 취사장을 나섭니다.

(위 사진) 2004.7.24 20:08 세석 방향의 정경

벽소령대피소 앞뜰에는 이미 어둠이 내렸습니다. 세석쪽 펜스 바로 앞에 간의의자 펼치고 앉습니다. 운무는 더욱 짙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벽소령 벤치에 한가히 앉아 달과 구름과 꽃과 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야겠다 벼렸는데... 다 허망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에고~~ 이 컴컴한 곳에서 사람 구경이나 해야겠습니다.

카메라 꺼내 삼각대에 설치하고 No Flash로 이런 저런 정경을 담습니다... 그러는 사이 많은 분들의 즐거운 이야기들 구름 양탄자 위에 올라 타고 깊어 가는 한여름밤의 지리 곳곳으로 번져 가고 있었습니다...

(위 사진) 2004.7.24 20:09 즐거운 얘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위 사진) 2004.7.24 20:10 어둠은 서서히 서서히 몰려 들고...

(위 사진) 2004.7.24 20:49 벽소령대피소 안의 모습. 홀로 산행 하시는 분들만 조용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슬쩍 찍었습니다 ^^*

이젠 자러 가야겠습니다. 모포 배정받고 침상으로 돌아옵니다. 장비와 물품들 다시 배낭에 잘 정돈해 넣습니다. 모포 하나는 반으로 접어 요로 하고 하나는 여러 번 접어 무릎 밑에 괴는 용도로 합니다. 공기 벼개 꺼내 바람 불어 넣고, 라디오에 건전지 끼우고 이어폰을 귀에 꽂습니다. 라디오 켜서 다이얼 돌려 조용한 음악 찾습니다. 그때 이 음악 Annie`s Song 흘러나옵니다. 지친 몸 편히 하고 마음 푹 놓고 음악에 취해 봅니다...

Annie's Song by John Denver

You fill up my senses
Like a night in a forest
Like the mountains in spring time
Like a walk in the rain
Like a storm in the desert
Like a sleepy blue ocean
You fill up my senses
Come fill me again

Come let me love you
Let me give my life to you
Let me drown in your laughter
Let me die in your arms
Let me lay down beside you
Let me always be with you
Come let me love you
Come love me again

당신을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숲속에서 맞이하는 밤처럼
봄날의 포근한 산처럼
빗속을 거니는 산책처럼
사막의 폭풍우처럼
잔잔한 푸른 바다처럼
당신은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그대여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세요

당신을 사랑하겠어요
내 인생을 당신에게 바치겠어요
당신의 웃음 소리로 내 근심 걱정 잊고 싶어요
당신의 품 안에서 죽게 해주세요
당신 옆에 몸을 누이고 싶어요
당신과 언제나 함께 있고 싶어요
당신을 사랑하겠어요
그대여 나를 사랑해 주세요

(위 사진) 2004.7.24 20:50 소등 직전의 대피소 내 침실의 모습. 책 읽으시는 분, 주무시는 분... 대피소 밖의 떠들석한 분위기와는 정말 다른 평소의 대피소 모습들입니다.

당신은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예... 그래요...


Annie's Song - John Denver

  • ?
    슬기난 2004.07.28 16:12
    남부능에서의 아쉬움을 만회하려는데
    물과 시간이 방해를 했나봅니다.
    당신(=지리)이 내마음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예! 맞습니다.
  • ?
    작은 이영진 2004.07.28 16:50
    힘들게 산행하시면서 찍으신 사진 너무잘보고갑니다
    부러울뿐입니다~*^^*
  • ?
    인자요산 2004.07.28 16:50
    2부 언제올라오나 기다리다 고개빠졌는데
    힘든산행길 읽는사람 숨까지 넘어갑니다.
    가만히 앉아서 지리감상하니 미안하기까지합니다
    화개재 계단세는 여유..꼭 누구와 같습니다
  • ?
    sagesse 2004.07.28 17:00
    이글거리는 뙤약볕과 헉헉대는 숨소리, 그리고 갈증...
    얼른 전화하셨음 직접 갖다드리진 못해도 지리신령님 시켜 비라도 내려드릴 것을...
    근데 그리되면 더 독이 되는 행위일까요?ㅎㅎㅎ
    자연 앞에서의 오만함이란,,, 우리가 바로 되받게 되는 형벌과도 같지요. 후~~, 나도 겸손^ 또 겸손^^
  • ?
    진로 2004.07.28 18:44
    네 상상이 갑니다...
    그나마 경치를 가릴려면 바람이라도 불어줘야죠.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지리....
    벽소의 풍경이 저를 또 돌아삐게 하는군요.
    나무 동굴을 끝에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 내가 저길 가야만 하는가?
    저 많이 주절거렸습니다....^^
  • ?
    야생마 2004.07.28 21:18
    정말 잘 보았습니다..사진한장 한장 다 멋집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능선들..샘터..산장모습..숲..나무..
    고생많이 하시며 담아오셨을텐데..편히 보기가 죄송하네요..
    침실의 모습도 정겹구요..예약안하고 오신분들이 많았는지요..
    자리배정 잘 받아서 잘 주무셨는지 궁금합니다..
    3부를 기다립니다..내내 계속 바쁘시겠네요..ㅎㅎ
  • ?
    들꽃 2004.07.28 21:27
    모든 길들이 환상의 꽃길같고, 지리에 머문 모든 사람들이
    축복받은 이들처럼 느껴집니다. 행복한 순간들 잘 잡으셨네요.
    디카를 가지고 가는 길목마다 찍으시는 정성 누가 따라갈까요.
    오르면서 몇컷 찍기도 힘든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허허바다님...존경스럽습니다.^ ^
  • ?
    섬호정 2004.07.28 22:14
    저 많은 천왕봉의 친구들! 긴 능선들. 멀리서 바라보고도 반야봉 촛대봉 ...알아보는 지리와의 친근함, 성시를 이루는 여름철 산장 대피소들...님들을 품은 지리는 행복한 산입니다 그 산에 머물고 싶어 오르는 님들은 축복받으신분들, 힘든 산행속에서 찍은 사진작품을 앉아서만 보기 송구합니다 오늘도 찌는 더위에 땀 한번 흘리고라도 봐야하겠네요. 고맙습니다
  • ?
    도명 2004.07.28 22:28
    <위사진 2004.7.24.1003. 임걸령 떠나며> 에게

    임걸령 바람 여울 가녀린 몸 흩날리는가
    마른 바위 딛고선 벼랑 앞에 안까님 쓰는가
    아닐세 천상을 향하려던 춤 사위 그 모습일세.

    -한 수 올림. 도명-
  • ?
    부도옹 2004.07.29 00:33
    마치 펜으로 그린 세밀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정밀묘사....
    읽는 사람도 목이타고 힘이 듭니다. ^^*

  • ?
    정진도 2004.07.29 18:19
    이생각저생각 잡생각으로 등산하고있는저에게 우리 허허바다님의
    산행기는 생각하는 등산이 무엇인가를 제시하고있습니다.
    마냥뿜어놓는 유머와 시적인감성, 표현력 많이배우고 재미있어합니다.
  • ?
    오 해 봉 2004.08.02 14:35
    초등학교 운동회하는날같은 벽소령산장의 모습이 정말로 보기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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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한여름 지리 (1) 10 허허바다 2004.07.27 2716
1119 한여름 1박2일 지리산종주기 8 김종광 2004.08.17 2861
1118 한여름 1박2일 지리산종주 사진모음 11 김종광 2004.08.23 3481
1117 한신지계곡 - 창암능선 2 산사나이 2003.11.04 1775
1116 한신계곡-세석-남부능선-쌍계사(1박2일) 1 박수원 2003.03.03 1950
1115 한신계곡 2 file 청솔지기 2018.05.27 2546
1114 한신 지곡 우골 -멋진 비경을 찾아서,,,, 5 슬기난 2011.11.22 1686
1113 한북오두산향 (1. 한북갈림길-보광사) 돌양지 2003.03.13 1920
1112 한북-오두산향(完. 바구니고개∼오두산) 돌양지 2003.03.31 1789
1111 한북-오두산향 (3. 오산리기도원입구-바구니고개) 돌양지 2003.03.29 2183
1110 한북-오두산향 ( 2. 됫박고개~파주 오산리) 3 돌양지 2003.03.18 1951
1109 하점골 - 쟁기소 1 산사나이 2004.06.08 1662
1108 하얀 물보라는 구름으로 피어오르고---불일폭포 이 영진 2003.05.08 1976
1107 하늘이 열렸던 날.. 6 file 지현 2004.11.16 2369
1106 피아골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16 산이조아 2003.10.28 2230
1105 피아골에서 한신계곡으로 2 덕이 2002.10.15 2554
1104 피아골 (지리산도 진화한다) 4 file 지리탐구 2007.12.22 2499
1103 푸른 산죽능선을 찾아서 1 산사나이 2002.05.2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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