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26일 일요일
결론부터 말해야 겠다.
피아골의 단풍은 붉게 물들지 않았다.
붉은색과 노란색 푸른색 등이 어우러져 색의 향연이 열리고 있었다.
초입은 단풍과는 거리가 있으나 고개를 들어 위를, 하늘을 보니
"과연 피아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각시와 은호(5살) 나경이(3) 나, 이렇게 우리 가족은 지리산으로 들어 갔다.
저번 노고단으로 들때에 김밥이 모자랐던 기억이 떠올라 오늘은 많이 챙겼다.
김밥 8줄, 사과, 감, 나경이 업을 포대기 까지.
이 정도로 우리의 준비성에 감탄을 한다면 "아니올시다" 다.
토요일 오후에는 남원산성으로 전지훈련까지 다녀 왔다.
매표소 얼마 전부터 차들이 밀리기 시작한다.
나경이는 "응아"가급하다고 울고,
매표소는 보이나 차들은 안빠지고, 미치겠다.
바로 이런 느낌을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하나?
각시에게 나경이 안고 내려서 화장실로 달려 가라하고 나 혼자서 표를 끈었다.
"어른 둘이요"
"예?" (혼자면서 왠 둘?)
"아~ 아.. 화장실 갔어요"
5,200원 달란다. 나는 2,600원에 나의 양심을 팔지 못한다. 처자식이 굶어 죽으면 도둑질이라도 하겠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살만하다.
(참고로 매표소 전에서 내려서 우측 언덕을 오르면 매표소 안거치고 화장실을 갈 수 있음.)
근데 여기서부터 우리의 팀웍이 깨지고 있었다.
매표소 지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화장실앞에서 기다리니 각시와 나경이만 나오는 것이다.
"은호는?"
"자기가 안데리고 있었어?"
"뭔 소리여 자기가 데려가 놓고" 아까 은호가 지 엄마 따라 차에서 내렸었다.
각시에게 고성을 질러놓고 은호를 찾았다.
(평소에는 각시 앞에서 절대 큰소리 못 친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다른 이유도 있지만 체면상....)
찾았다. 은호를. 지 엄마에게 뒤지게 욕얻어 먹는다.
은호가 뭔 죄를 지었지? 은호와 나는 지금도 모른다 .
초입에 드니까 단풍이 가끔 보인다.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인다.
한 200여 미터 갔을까. 친구가 아들을 안고 내려온다.
"소" (난 이친구 성이 소氏라 그냥 "소"라고 부른다)
"어! 누구여. 당신 나 아는 사람이요?" (능청)
서울서 친구가 내려와서 서울친구랑 각시 아들 딸과 단풍 구경을 왔는데 자기는 힘들어서 도중에 포기하고 내려 온단다.
서울서 온 친구와 소씨의 딸 일호(5) 그리고 각시는 계속 올라가고.
나보고 어디까지 갈꺼냐고 묻는다. "피아골 대피소"
빨리 내려올거면 만나서 술한잔 하자는 눈치다. 내가 잘안다. 우린 같은 술꾼이니까.
저번에 이 친구의 각시, 아들, 딸과 우리 식구4명이랑 총7명이 구룡폭로를 갔을 때도 이친구는 빠졌었다.
이번에도 힘들어서 못 올라가겠다니.... 산하고는 거리가 먼 친구다.
친구를 내려 보내고 계속 올라갔다.
올라 갈수록 단풍의 멋은 더해 간다.
호젓한 산길, 잘 익은 단풍, 좌측으로 펼쳐진 계곡, 새소리, 다람쥐....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나올 비경의 전주곡에 불과 하다.
사람에 치이며 가지만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힘이 있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거드름을 피우다가는 낭패하기 딱 좋은 그런 곳이 피아골을 오르는 길이다. 대부분이 바위길이라 위험하다. 실은 재촉하기도 힘들다. 사람들이 많아서.
천천히 볼거 다 봐가며, 발밑의 도토리까지도 봐가며 올라야 하는 길이다.
가는 도중 내내 은호는 김밥 달라고 때를 쓴다.
협박 반 설득 반으로 계속 올라간다.
평지가 끝나고 다리를 하나 건너니 산길이 시작된다.
몇팀이 식사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도 김밥을 꺼내 먹기로 했다.
다 먹고 일어 서는데 은호가 하는 말 "아빠 집에 가자"
처음부터 이놈은 산이 목적이 아니었다. 김밥먹을 라고 따라온 것이다.
여기서 부터는 나경이도 안아달라고 때를 쓴다.
윽박질러도 소용이 없다. 내 생각에도 애들이 걷기엔 버거운 길이다.
지 엄마가 포대기로 나경이를 업고 은호는 걸리고 계속 올라갔다.
여기서 우리의 완벽함이 실수로 바뀌는게 하나 있다. <아기 업는 포대기>
나경이가 포대기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좀더 편하게 갈려고 가져온 포대기가 짐이 되고 말았다.
바둑으로 치면 자충수를 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애 업고는 못올라간다는둥, 최연소 등반객이라는둥, 대단한 엄마라는둥,
격려반 칭찬반이다.
은호는 등반객들이 잘 올라간다고 칭찬을 하니까 이참에 날아 다닐려고 한다.
역시 애들은 칭찬에 더 힘이 난갑다.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다는 감이 오고 부터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츄리닝에 집에서 아무렇게나 신던 운동화에 벙거지 모자
나경이는 지 오빠 운동화, 은호는 아까 김밥먹다 흘린 자국의 얼굴과 윗옷.
각시는 츄리닝 바지에 대충 잠잘때나 입은 윗옷에 포대기로 나경이까지 업고,
허 걱.
촌놈들도 이런 촌놈들은 없겠다는 느낌이다.
각시는 몸에 꼭 끼는 츄리닝 바지땜에 엉덩이 윤각이 그대로 들어난다.
뒷따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섹시(?)한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을 보니 울긋불긋한 등산복, 검은색의 옷차림에 썬글라스,
첨단패션과 촌닭의 대비.
우리는 등산객들에게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왕쪽.
근데 검은색의 스판같은 옷은 등산복 같기도 하고 단체복 같기도 하고... 아므튼 많은 사람들이 입고 다닌 것을 봤다. 특전사 전투원들 같이 단체로 입고 온 팀도 보인다.
갈수록 길이 험해진다.
출렁이는 구름다리도 건너고, 둘이 비껴가기 힘든 구름다리도 건너고...
애들이 걷기에는 무리라 업고 안고 올라 갔다. 위험해서 걸릴 수가 없었다.
힘이 든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가자니 더욱 힘들다는 느낌이다.
포기 할까도 싶었지만 갈수록 보기 좋은 단풍과 하늘이 우리를 이끈다.
푸른 하늘은 폭 빠지고 싶을 정도로 선명한 하늘색이다. 하늘이 진짜 하늘색이다
옛날 고대인들이 이런 하늘에 가까이 갈려고 피라미드를 쌓았을 게다. 틀림없다.
그렇지 안으면 그런 고생을 할 이유가 없다.
겨우 대피소에 도착했다 . 11시에 출발했으니 3시간 걸렸다.
연곡사에서 피아골 대피소까지는 4km.
어디서 갈비 굽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이래도 되나?)
점심을 먹을려고 자리를 찾으니 꽉 찼다.
겨우 빈곳을 만들어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성공 기념으로 맥주 두개(3000원씩) 콜라 두개(2000원씩)을 사서 식구끼리 건배를 했다.
주위에서 "웬 촌놈들" 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촌놈도 입이 있어 맛을 알고 눈이 있어 볼 줄 아는데 어쪄라.
그냥 이대로 즐길란다.
내려갈 걸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하지만 의외로 다리도 안떨리고 잘 내려왔다.
나경이는 지 엄마가 없고, 나는 배낭 두개에다 은호까지 업고 내려왔다.
그 날의 등산은 고행이였고, 만행이였다. 물론 산행이였고.
오를 때 나경이를 봤던 사람들은 내려 올 때 알아보고 사탕도 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준다.
다 내려오니 막걸리 생각이 난다.
그놈의 차가 웬수다.(음주운전 패가망신)
침만 삼키고 집으로 돌아 왔다.
걷지 않으면 갈 수 없고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동이 피아골 사방에 있었다. 끝.
결론부터 말해야 겠다.
피아골의 단풍은 붉게 물들지 않았다.
붉은색과 노란색 푸른색 등이 어우러져 색의 향연이 열리고 있었다.
초입은 단풍과는 거리가 있으나 고개를 들어 위를, 하늘을 보니
"과연 피아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각시와 은호(5살) 나경이(3) 나, 이렇게 우리 가족은 지리산으로 들어 갔다.
저번 노고단으로 들때에 김밥이 모자랐던 기억이 떠올라 오늘은 많이 챙겼다.
김밥 8줄, 사과, 감, 나경이 업을 포대기 까지.
이 정도로 우리의 준비성에 감탄을 한다면 "아니올시다" 다.
토요일 오후에는 남원산성으로 전지훈련까지 다녀 왔다.
매표소 얼마 전부터 차들이 밀리기 시작한다.
나경이는 "응아"가급하다고 울고,
매표소는 보이나 차들은 안빠지고, 미치겠다.
바로 이런 느낌을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하나?
각시에게 나경이 안고 내려서 화장실로 달려 가라하고 나 혼자서 표를 끈었다.
"어른 둘이요"
"예?" (혼자면서 왠 둘?)
"아~ 아.. 화장실 갔어요"
5,200원 달란다. 나는 2,600원에 나의 양심을 팔지 못한다. 처자식이 굶어 죽으면 도둑질이라도 하겠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살만하다.
(참고로 매표소 전에서 내려서 우측 언덕을 오르면 매표소 안거치고 화장실을 갈 수 있음.)
근데 여기서부터 우리의 팀웍이 깨지고 있었다.
매표소 지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화장실앞에서 기다리니 각시와 나경이만 나오는 것이다.
"은호는?"
"자기가 안데리고 있었어?"
"뭔 소리여 자기가 데려가 놓고" 아까 은호가 지 엄마 따라 차에서 내렸었다.
각시에게 고성을 질러놓고 은호를 찾았다.
(평소에는 각시 앞에서 절대 큰소리 못 친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다른 이유도 있지만 체면상....)
찾았다. 은호를. 지 엄마에게 뒤지게 욕얻어 먹는다.
은호가 뭔 죄를 지었지? 은호와 나는 지금도 모른다 .
초입에 드니까 단풍이 가끔 보인다.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인다.
한 200여 미터 갔을까. 친구가 아들을 안고 내려온다.
"소" (난 이친구 성이 소氏라 그냥 "소"라고 부른다)
"어! 누구여. 당신 나 아는 사람이요?" (능청)
서울서 친구가 내려와서 서울친구랑 각시 아들 딸과 단풍 구경을 왔는데 자기는 힘들어서 도중에 포기하고 내려 온단다.
서울서 온 친구와 소씨의 딸 일호(5) 그리고 각시는 계속 올라가고.
나보고 어디까지 갈꺼냐고 묻는다. "피아골 대피소"
빨리 내려올거면 만나서 술한잔 하자는 눈치다. 내가 잘안다. 우린 같은 술꾼이니까.
저번에 이 친구의 각시, 아들, 딸과 우리 식구4명이랑 총7명이 구룡폭로를 갔을 때도 이친구는 빠졌었다.
이번에도 힘들어서 못 올라가겠다니.... 산하고는 거리가 먼 친구다.
친구를 내려 보내고 계속 올라갔다.
올라 갈수록 단풍의 멋은 더해 간다.
호젓한 산길, 잘 익은 단풍, 좌측으로 펼쳐진 계곡, 새소리, 다람쥐....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나올 비경의 전주곡에 불과 하다.
사람에 치이며 가지만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힘이 있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거드름을 피우다가는 낭패하기 딱 좋은 그런 곳이 피아골을 오르는 길이다. 대부분이 바위길이라 위험하다. 실은 재촉하기도 힘들다. 사람들이 많아서.
천천히 볼거 다 봐가며, 발밑의 도토리까지도 봐가며 올라야 하는 길이다.
가는 도중 내내 은호는 김밥 달라고 때를 쓴다.
협박 반 설득 반으로 계속 올라간다.
평지가 끝나고 다리를 하나 건너니 산길이 시작된다.
몇팀이 식사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도 김밥을 꺼내 먹기로 했다.
다 먹고 일어 서는데 은호가 하는 말 "아빠 집에 가자"
처음부터 이놈은 산이 목적이 아니었다. 김밥먹을 라고 따라온 것이다.
여기서 부터는 나경이도 안아달라고 때를 쓴다.
윽박질러도 소용이 없다. 내 생각에도 애들이 걷기엔 버거운 길이다.
지 엄마가 포대기로 나경이를 업고 은호는 걸리고 계속 올라갔다.
여기서 우리의 완벽함이 실수로 바뀌는게 하나 있다. <아기 업는 포대기>
나경이가 포대기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좀더 편하게 갈려고 가져온 포대기가 짐이 되고 말았다.
바둑으로 치면 자충수를 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애 업고는 못올라간다는둥, 최연소 등반객이라는둥, 대단한 엄마라는둥,
격려반 칭찬반이다.
은호는 등반객들이 잘 올라간다고 칭찬을 하니까 이참에 날아 다닐려고 한다.
역시 애들은 칭찬에 더 힘이 난갑다.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다는 감이 오고 부터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츄리닝에 집에서 아무렇게나 신던 운동화에 벙거지 모자
나경이는 지 오빠 운동화, 은호는 아까 김밥먹다 흘린 자국의 얼굴과 윗옷.
각시는 츄리닝 바지에 대충 잠잘때나 입은 윗옷에 포대기로 나경이까지 업고,
허 걱.
촌놈들도 이런 촌놈들은 없겠다는 느낌이다.
각시는 몸에 꼭 끼는 츄리닝 바지땜에 엉덩이 윤각이 그대로 들어난다.
뒷따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섹시(?)한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을 보니 울긋불긋한 등산복, 검은색의 옷차림에 썬글라스,
첨단패션과 촌닭의 대비.
우리는 등산객들에게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왕쪽.
근데 검은색의 스판같은 옷은 등산복 같기도 하고 단체복 같기도 하고... 아므튼 많은 사람들이 입고 다닌 것을 봤다. 특전사 전투원들 같이 단체로 입고 온 팀도 보인다.
갈수록 길이 험해진다.
출렁이는 구름다리도 건너고, 둘이 비껴가기 힘든 구름다리도 건너고...
애들이 걷기에는 무리라 업고 안고 올라 갔다. 위험해서 걸릴 수가 없었다.
힘이 든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가자니 더욱 힘들다는 느낌이다.
포기 할까도 싶었지만 갈수록 보기 좋은 단풍과 하늘이 우리를 이끈다.
푸른 하늘은 폭 빠지고 싶을 정도로 선명한 하늘색이다. 하늘이 진짜 하늘색이다
옛날 고대인들이 이런 하늘에 가까이 갈려고 피라미드를 쌓았을 게다. 틀림없다.
그렇지 안으면 그런 고생을 할 이유가 없다.
겨우 대피소에 도착했다 . 11시에 출발했으니 3시간 걸렸다.
연곡사에서 피아골 대피소까지는 4km.
어디서 갈비 굽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이래도 되나?)
점심을 먹을려고 자리를 찾으니 꽉 찼다.
겨우 빈곳을 만들어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성공 기념으로 맥주 두개(3000원씩) 콜라 두개(2000원씩)을 사서 식구끼리 건배를 했다.
주위에서 "웬 촌놈들" 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촌놈도 입이 있어 맛을 알고 눈이 있어 볼 줄 아는데 어쪄라.
그냥 이대로 즐길란다.
내려갈 걸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하지만 의외로 다리도 안떨리고 잘 내려왔다.
나경이는 지 엄마가 없고, 나는 배낭 두개에다 은호까지 업고 내려왔다.
그 날의 등산은 고행이였고, 만행이였다. 물론 산행이였고.
오를 때 나경이를 봤던 사람들은 내려 올 때 알아보고 사탕도 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준다.
다 내려오니 막걸리 생각이 난다.
그놈의 차가 웬수다.(음주운전 패가망신)
침만 삼키고 집으로 돌아 왔다.
걷지 않으면 갈 수 없고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동이 피아골 사방에 있었다. 끝.
솔차니 고생하셨습니다.
자기딸 자기아들 데리고 단풍구경 간것이지만 다른사람들에게
동기와 희망을부여하는 좋은글로 생각됩니다.
"촌놈도 입이있어 맛을알고 눈이있어 볼줄아는데"그말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절로미소가 지어집니다.
엄마랑둘이 고생하셨고 하산주 막걸리않마신것 참 잘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