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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2002.01.16 12:39

또 다시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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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간 : 2002년 1월 7일(월)∼1월 11일(금), 4박 5일

또 다시 지리산.
항상 지리산행은 '벼름'으로부터 시작된다.
다녀온 다음부터 벼르기 시작한다.
'또 가야지'하는 벼름.
작년 겨울, 종주를 하고 나서는 올 여름 지리산행을 별렀고,
그 여름산행이 끝나면서 또 올 겨울 산행을 별러왔다.
그리고...
겨울이 되었다.
배낭을 꾸리기 시작했다.
1월 초, 7일 아침 표를 예매하고, 쇼핑을 하고...
1월 6일, 배낭을 꾸려 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1월 7일
아침, 일찍 일어나 영등포로 향했다.
간신히 차를 타고는 한숨을 돌리고, 밖에 나와서 담배를 한 대 찌~인하게 빨았다.
잠시 바깥 경치를 보다가 지루해지면 책을 꺼내 들었다.
평택을 지나면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래 오려면 와라, 그런다고 내가 안 갈 줄 알고?'
잠이 든 듯, 안 든 듯 끄덕끄덕 졸다가 보니 기차는 어느새 남원을 지나고 구례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짐을 다시 정리하고 구례구에 내렸다. 아직도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12시 52분. 일단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버스를 찾았다. 저∼어기 길 건너에 버스가 있었다. 타려고 걸어가는데 버스는 그 순간 떠나 버리고... '헤∼에, 이걸 어쩌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버스는 자주 있다고 했다. 그러나 눈과 바람 속에 20여분이나 있었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결국은 2,000원을 내고 택시를 탔다. 구례구 터미널에 도착하여 피아골행 버스를 찾으니까 방금 떠났단다. 결국 한 시간을 기다려서야 피아골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연곡사에서 조금 더 가다가 눈 때문에 더는 못 간다고 했다. 아스팔트에는 눈이 다 녹았는데 이게 웬 말이 안 되는 말인가? 그러나 기사는 저쪽 위는 이렇질 않다면서 더는 못 간다고 버티었다. 결국 버스를 내렸다. 다행히 종점에 사는 사람을 마중 나온 승합차를 얻어 타고 종점까지 갈 수 있었다.
시간은 3시 25분쯤.
거기서 한 시간 반을 가야 피아골 산장이다. 나는 이 길이 첫 길이다. 아무도 없다. 같이 내린 아이 하나가 거기까지 간다고 하였으나 종점에서 기다리던 사람과 같이 간다며 먼저 가라고 해서 나만 먼저 출발한 길이다.  다행히 누군가의 발자국이 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아이는 피아골 산장의 관리인인 함태식 영감님의 손자였고 기다리던 사람은 산장의 식구였다. 그가 아이를 데리러 오면서 낸 발자국이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눈은 '싸드락 싸드락' 내리고 있지만 길어야 두 시간의 산행, 그리고 뒤에는 든든한 산사람이 오고 있지 않은가? 그저 걷기로 했다. '등산로 아님' 표지판 안쪽으로 발자국이 있었지만 그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산에 사는 사람이 더 잘 알겠지 하는 믿음...
이런 고요가 좋다. 소란스럽지 않고.
5시 5분쯤 산장에 도착했다.
사람 소리가 없다. 우선 짐을 내려놓았다.
잠시 후 인기척이 났다. 여자 분이었다. "어이쿠 깜짝이야, 어 여자 분이네요?" 산장의 손님이었다. 함 선생님(남들이 다 이렇게 부름으로)과 잘 아시는 분. 나이는 60줄 정도.
그러니까 산장의 식구는 세 분인 것이다. 함태식 영감님, 아주머니, 종점에서 만났던 30대 남자분.
잠시 쉬었다가 짐을 풀고 내일 아침까지의 쌀을 꺼내어 밥을 지었다.
그리고 즉석 곰탕을 끓였다.
곰탕에 밥을 반정도 넣고 또 끓였다. 아예 죽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는 맛있게 먹었다.
아까 버스 종점에서 만나 이도 와 있었다. 아이는 몸이 안 좋다고 올라오지 않았고.
저녁을 먹고 나니 나를 불렀다.
거기에는 무애막(無碍幕)이라는 공간이 있었다. 산장 옆에다가 등산객들을 위해 지었다는 비닐 하우스인데, 훌륭했다. 나무로 만든 탁자와 통나무 의자, 그리고 나무를 때는 난로 하나. 지금은 물이 안 나오지만 씽크대까지 모양을 갖추었고 한 쪽 구석엔 장작이 쌓여 있었다. 투숙객이 나 혼자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함 자 태 자 식 자' 쓰시는 분이 계시는 곳이냐고 물은 덕인지는 모르지만 그 별실로 불려 가는 특별 대우를 받았다. 커피도 한 잔 마실 수 있었고. 누군가 또 올 것이라고 했다. 눈이 오면 못 견디고 이리로 오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나는 잠을 자기 위해 산장으로 와서 잘 준비를 갖추고 책을 꺼내 들었다. 랜턴을 켜고 책을 보는데, 이건 도대체가... 두어 시간 지나니까 불빛이 흐려진다. 건전지를 갈고, 조금 더 있다가 자기로 결정을 했다. 하계용 여름 침낭. 추웠다. 옷을 끼어 입고 버티었다. 누군가가 왔는지 어수선했지만 모른 척하고 그냥 내쳐 자버렸다.

1월 8일.
아침을 먹으려고 하는데 또 불렀다.
아침을 먹고 가 보았더니 어제 보다 두 사람이 더 있었다. 광주에 산다는, 눈이 오면 달려온다는 사람과 그 동행 한 사람. 아침부터 술잔이 돌았다. 세 잔은 필수라고 해서 나도 거기까지는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런!!!
눈이 계속 내리고 입산은 통제.
자연스럽게 산장에 갇히게 되었다. '잘 됐다∼이' 하는 생각으로 그저 머물기로 했다.
은근히 바라던 바이기도 했다. 본의든 아니든 한 번쯤 눈 속에 갇히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저 갇혀서 할 일없이 어슬렁거리고,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뭐, 그런 거... 도시에서는 항상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야만 하지 않는가? 의미 없는 시간이라는 건 용납이 안 되고, 의미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붙여야 하지 않는가?
그래도 버릇!!
민태식 영감님의 저서가 한 권 매달려 있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이곳에 와본 사람은'(제목이 맞는지 모르겠음)이라는 책. 영감님의 산 생활과 노고단 산장, 그리고 피아골 산장, 지리산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담담하게 쓰여 있다. 눈에 갇혀 있는 하루 동안 그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은 그날도 의미 있는 하루가 되고 말았다.
산장에는 잘 자란 진돗개가 두 마리 있다. 크고 노란 놈은 '산동이', 작고 하얀 놈은 '산희'란다. 둘 다 잘 생기기도 했지만, 아주 수~운하다.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처음으로 개를 가까이서 만져볼 수 있었다.
낮에도 술을 마셨다. 저녁을 먹기 전에도 술을 마셨다. 그리고 저녁에는 또 랜턴을 켜고 책을 좀 들여다보다가, 술을 한 잔  마시다가, 옆에 있는 담요를 되는대로 덮고는 잠을 잤다.
'PETZL'이라는 상표의 헤드렌턴이 있는데... 와! 너무 좋았다. 산장아주머니가 쓰는 걸 봤는데 AAA형 건전지(보통 쓰는 것 보다 좀 작은 것) 3개를 넣으면 무려 150시간이나 쓸 수 있다는데 프랑스제였다. 빛도 밝고 크기도 겨우 요따만(대충 5㎝×3㎝×3㎝정도)한데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고 디자인도 정말로 앙증맞은 것이었다.
새벽에는 잠이 깨어 나와 보니 와!!! 웬 놈의 달이 그리도 밝은 지. 어둠으로 쌓인 산을 밝게 비추고 천지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별도 무지 많았음은 물론이다.

1월 9일.
눈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하루 더 있을까?'하는 생각이 간절하기는 하다.
그러나 더 이상 머물 명분이 없다. 어제 도착한 한 사람(이름은 모른다. 나이는 나와 동갑, 60년 생이라고 했다)과 같이 길을 나선다. 10시 30분.
눈이 제법 쌓였다.
무릎까지, 때로는 허벅지까지.
둘이 교대로 길을 뚫으면서- 사실은 그 사람이 거의 했지만- 전진, 또 전진.
와!!!
처음으로 눈길을 간다는 기쁨!!! 그건 대단한 것이었다.
그 포근한 감촉, 쿠션 감각.
순백의 눈을 밟기가 미안할 정도다.
너무나도 좋았다.
그걸 러셀이라고 한다.
하여간 둘이서 '러셀'을 하며 두 시간이나 고생(즐김이라는 게 맞을 것 같다)을 하고 임걸령에 도착, 각자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삼도봉에 도착하여 그는 '반야봉'으로 나는 연하천으로 길을 잡았다. 그는 점심을 먹지 않고 '행동식'으로 대신한다고 했다. '좋다, 나도 해 보자' 하는 생각으로 점심을 거르고 '자유시간'을 먹으며 행진, 화개재, 토끼봉, 명선봉을 지나서 드디어 연하천 산장에 도착. 짐을 푼다. 오후 5시 20분쯤.
연하천 산장. 매년 한 번 이상 들르는 곳. 푸근한 곳. 한적해서 좋은 곳.
또 취사장도 새로 지어졌다. 위, 아래가 터져 있어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이전의 연하천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것이다.
그리고 발전기를 돌려서 실내에 형광등도 하나 들어오고.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높직이 달려있는 선풍기형 히터와 조그마한 석유난로다. 수 년 전 여기에는 낡고 보잘 것 없는 조그만 석유 곤로가 하나 있었고 그나마 산장 이용료 3,000원 이외로 1,000원씩을 더 내야만 켜 주었었는데... 그리고도 추웠는데... 격세지감이다.
하여간 그래도 나는 연하천이 좋다.
수수하고 편안하다. 산장지기들과 사귀어 보지는 않았지만 그게 뭐 대순가? 그 자체로 좋은데.
오늘은 등산객이 많았다.
무려 23명. 꾸역꾸역 밤 열 시까지 모여들었다.
결국 23명이 잔 것 같다.
침낭을 하나 빌렸기에 추운 줄도 모르고.

1월 10일.
7시 기상.
어제 남은 밥은 밤늦게 도착한 사람들에게 주었기에 밥을 다시 해야 했다. 산에서는 왜 이렇게 밥도 잘 안 되는지... 한 30분이나 걸린다. 또 미역국을 끓여서 밥을 같이 넣고 불린다. 억지로 꾸역꾸역 먹고 나서 화장실, 이 닦기. 짐을 챙기고 일어서다가는 이런...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가야지...
결국 9시 15분에야 출발.
아직도 길이 잘 열리지 않아서 장터목까지는 어려울 거라는 염려를 뒤로하고 일단은 힘차게 출발한다. 지도상으로는 벽소령까지 한 시간. 잠을 자고 아침을 먹은 후여서인지 다소간 힘이 난다. 그런데 날씨가 젬병이다. 아침에는 해가 보이더니 지금은 해는커녕 구름만 잔뜩 끼어있다. 바람이 불고 춥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금방 힘이 든다. 형제봉을 지나고 10시 50분이나 되어서야 벽소령 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도 점심을 먹지 않고 자유시간으로 때울 생각이어서 칼바람 속에서 자유시간을 먹고 있는데 산장 관리인이 안으로 들어와서 먹으란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아직 별로 경험하지 못한 호의다. '김 모'라고 근무자 이름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둥글레차 한 잔. 와~우! 언 몸이 다 녹는 듯했다. 벽소령 산장이 친절하다는 것은 여기저기서 들었지만 이렇게 까지는 몰랐었다. 고마운 분이었다.
11시. 아직도 해는 나오지 않고 바람은 날카롭다.
추위 탓에 쉬지도 못하고 걸은 덕에 선비샘까지는 55분만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선비샘도 바람에 노출되어 쉴 만한 곳은 못 되었다. 조금 더 걷다가 바람을 피해서 배낭을 내리고 잠시 휴식. 그리고 자유시간 2개. 물 한 모금. 아직도 나는 따뜻한 물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무게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냥 찬 물을 마신다.
이제부터 칠선봉을 거쳐 세석산장까지의 길은 무척 힘들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철책, 밧줄, 계단...  이 길. 올라도 올라도 더 올라야 하는 길. 진을 다 빼고 또 진을 빼야 하는 길로 기억되어 있다. 그러나 지나친 걱정 때문인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쉽게 '칠선봉'이라는 이정표를 만나고, 시간도 당겨서 도착할 수가 있었다. 13시 55분 도착 너무 빨리 도착했다. 15시나 16시쯤 도착할 걸로 예상했는데... 시간도 여유가 있는데 내려가서 라면을 끓일까 고민도 해 보았지만 그냥 잠시만 쉬기로 결정을 했다. 땀에 젖은 옷이며, 오늘부터 새기 시작하는 등산화 속으로 물이 들어와서 발이 완전히 젖었는데 여기서 쉰다면 추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다시 덮히려면 '으휴!, 안 돼지, 안 돼!'
산장으로 내려가면서 잠시 고민을 했다. '2,000원 짜리 커피를 한 잔 마셔 볼까나?' 어렵게 마시기로 결정을 하고 커피를 달라고 했더니 캔 커피만 있단다. '히∼이 난 캔 커피는 안 마시는데...' 결국 담배만 한 대 피우고 곧바로 출발했다.
장터목까지는 약 두 시간 정도. 길게 잡아야 세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추워서... 추위를 어쩔 수가 없어서... 경치를 즐기고 어쩌고 할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날이 흐려서 멀리는 보이지도 않았다. 겨우 앞에 있는 봉우리만 보이는 정도다. 그러니 그저 걷는 수밖에...
그런데... 오~잉??
멀리 보이는 제석봉.
'고사목들은 다 어디 갔디야??'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제석봉이 민둥산이 되어있었다.
작년 여름에도, 작년 겨울에도 몰랐는데... 이런... 제석봉의 고사목을 모두 베어버린 것 같았다. 하긴 언젠가 고사목과 같은 종류의 나무 묘목(주목인가?)을 심었다는 안내판을 본 기억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그렇지 그 풍치가 얼마나 근사한데, 그걸 벤단 말인가? 다음날 천왕봉을 다녀오면서는 추위 때문에 진짜 베어냈는지 확인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사목을 정말 베었다면 그건 정말 잘못 된 일이다.
촛대봉, 연하봉을 지나고.
15시 55분쯤 장터목산장에 도착했다.
우선 젖은 옷부터 벗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양말도 갈아 신었다. 그런데, 물을 뜨러 갈 일이 태산 같았다. 어쨋거나 우선은 쉬기로 했다.
5시부터 자리배정을 한다니 짐을 풀 수는 없고.
무려 3,000원이나 주고 사 간 슬리퍼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실내화인데 무지 가볍고 물도 잘 안 먹고. 산장에서 움직일 때마다 등산화를 신고 다녀야 하는 것이 너무 불편했는데 이번에는 고놈 덕을 톡톡히 보았다.
우선 담배부터 빨고...
그 때 웬 젊은 청년 둘이서 담배를 좀 달란다.
이러∼어케 보는데 아니, 이 젊은이들이???
그냥 평상복 차림이었다. 그 중 하나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전국일주 여행 중인데 아무 것도 모르고 올라왔다고 했다. 장비는 목장갑 하나가 전부. 아무 것도 없고 복장도 도저히 안 되겠고... 그냥 맨 손이라고 했다. 그래서 잘 됐다 싶어서 "그러∼엄, 내가∼아 담배를 한 갑을 줄테니까∼아 물 좀 떠다 줄래?" 했더니 좋다고 그러자고 했다. 물 뜨는 곳이 좀 멀다고 했더니 그래도 좋다고 하면서 히히 거렸다. '요 놈들, 고생 좀 해 봐라' 생각도 들고, 사실은 등산화에 물이 철벅거려서 참으로 난감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뭐, 담배를 미끼로 남을 시킬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물을 뜨러 갔는데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더니 예상 시간보다도 훨씬 늦게 오더니 "장난이 아닌데요"한다. 난 속으로만 '히히...'하고 웃었다.
자리 배정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옆자리가 되었다. 마침 식량이 여유가 있었기에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지들이 별 수 있나? 따라 올 수밖에... 셋이서 떡 라면을 두 번에 걸쳐서 끓여 먹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일출을 보러 같이 가기로 했다. 8시쯤 되니까 둘이다 잠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9시 반이나 되어서 잤고.

1월 11일.
6시 반이라는 수근거림에 잠이 깼다.
'이런... 늦었네!' 그 청년들을 깨우고 장비를 든든히 한 후에 같이 출발을 했다. 생각 같아서는 혼자 가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여유가 되는대로 모자며 옷이며 장갑들을 빌려주고 같이 가기로 했다. 6시 50분 출발. 산장지기의 말로는 늦어도 6시 반에는 출발해야 한다고 했는데, 너무 늦었다 싶었다. 일단 나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라고 하고는 나도 힘껏 걸었다. 그들은 어제도 날라 다녔다고 했다. 하긴, 그 나이에(25살) 짐도 없었으면 날랐겠지... 오늘도 잘 간다. 어제 밤에 아이젠도 샀으니 오늘은 더 날라 다니겠지. 문제는 나다. 간발의 차이로 일출을 못 보면 낭패가 아닌가? 쓰러지기 직전까지 걷고 잠깐 쉬고 또 걷고... 바람은 어찌도 그렇게 부는지. 항상 일출을 보러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천왕봉의 새벽바람은 정말이지 엄청나다.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 정도이다.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제석봉에서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지... 벌써 온 천지가 밝다. '벌써 떠올랐나? 씨-양!'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씩씩거리고 올라갔다. 7시 25분. 평소의 나에 비해서 엄청나게 빨리 온 것이다. 아직도 해는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사람도 별로 없었다. 모두 7명이었다.
온 천지는 붉게 물들어 있었고 동쪽은 온통 피 빛이었다. 바람을 피해서 숨을 돌리고 잠시 기다리니까...
우~와! 일출이 시작되었다.
노~오란 밝은 구멍이 아래서부터 밀고 올라오는데...
그 구멍에서는 엄청난 빛이 쏟아져 나오고...
해가 수평선위로 완전히 올라오고 나서야 숨을 몰아 쉬었다.
그 청년들, 그 바람이 부는 중에도 사진을 찍는다고 왔다 갔다 하고...
어렵사리 아껴둔 '참이슬' 1/3 팩을 겨우 한 모금씩 나누어 마시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일출은 참, 언제 보아도 감격이다. 뭐랄까...
경이롭다고 할까?
뭐, 그렇다.
다시 산장으로 돌아와서 또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쌀은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걸리고 현재 배가 고프기도 했고... 라면을 끓이라고 하고 들어갔다가 왔더니 아니, 그 많은 떡을 다 집어넣어서 라면은 한 개 밖에 넣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하나만 끓여서 먹고 떡을 건져 먹고, 또 하나를 끓여서 먹고...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또 밥을 1인분이나 주어서 말아서 먹고... 화장실엘 다녀왔더니 휴지 설거지까지 대충해 놓은 상태였다. 그 새 배워서... 다시 산장 안으로 가서 짐을 챙겨 가지고 나오고 사진을 찍고...
10시에 백무동을 향해 출발.
남사면은 벌써 눈이 녹았다가 언 흔적이 보이는데 북사면은 아직도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었다.
여전히 눈의 감촉은 좋았다. 항상 이 정도면 무릎에 이상이 생기곤 했는데 이번에는 무릎도 멀쩡하고 잘 생기던 물집도 생기지 않았다. 눈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뛰다시피 내려가는 것을 억지로 따라가다 보니 '우잉! 벌써 다 내려왔네' 꼴이 되었다.
12시 조금 넘어서 마을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차로 휭~허니 남원으로 왔다. 다음 날 4시 기차표를 오늘 표로 바꾸고 같이 곰탕을 한 그릇 씩 맛나게 먹었다. 물론 그 청년들이 샀다. 히히...

이제는 종주에 메이지 말고 안 가본 곳을 다니리라고 생각은 하고 갔는데...
겨우 피아골만 바뀌고 결국은 종주가 되고 말았다.
칠불암도 꼭 가보고 싶었고 거림골도 코스에 넣고 싶었는데...
치밭목 산장에서 꼭 하루 자고 싶었는데...
또 다시 아쉬움을 남기고 이번 산행은 끝났다.
이제 나는 또 벼르기 시작할 것이다.
다음 지리산행을...

산행경비 : 쇼핑 약 20,000원, 기차 34,000원(영등포-구례구, 남원-영등포), 배낭커버 4,000원
           기타(버스비, 산장이용료, 입장료 등) 51,000원  합계 : 10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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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거사 2002.01.16 16:10
    의미깊은 산행! 축하합니다..
  • ?
    바람과나 2002.01.16 17:57
    안녕하세요. 천왕봉에 있어든 7명중에 한사람입니다. 님의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저에게 식수를 권하는 모습 .정말 반갑습니다. 인연이 된다면 다시 만나뵙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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