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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것’은 좋은 것이지요.
법정스님의 <버리고 떠나기>가 생각난다구요?
그렇다면 더욱 좋겠지만
반드시 ‘버리고 떠나기‘가 아닐지라도
작고작은 틈이라도 날 때면
‘그냥 떠나기’도 좋은 일이지요.

이른 아침에  
생존의 부대낌만이 가득한 서울 도심을 벗어나
그저그냥 남으로 남녘으로 내달립니다.
요즘은 지리의 너른 품으로 들어가 안기기가 - 그 교통이
얼마나 좋아졌던지요.
한밭-大田을 지나 晋州라 천리길 - 저 아래 진주를 거쳐서
그 아래 統營까지 주욱~ 뚤린 ...
그래서 내륙을 여지없이 시원하게  관통하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함양, 생초, 산청나들목은 경호강 물줄기만을 굽어보며
허위단심 그냥 지나친 후,
숨고르기 몇 번 할라치면 단성 나들목입니다.
또 지나치시려고요?  
아니지요. ‘지리품에 들기’라면 그리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안 가본 몇 년 동안에
길도 변하고 風情도 인심도 변하였을 그 길을
다시 가봅니다.
그러나 눈으로 느끼기에 길은 넓어지고
線型이 개량되기는 했어도
그리 많이 변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성철 큰스님의 생가를 돌아봅니다.  
[智異山劫外寺]....
이름도 특이한  現額을 달고 있는 정문과 너른 마당,
좌우로 우줄하니 서 있는 千枝松이 우리를 맞아줍니다.
중앙에는 성철스님의 靑銅 彫像이 우람하고  
중국에는 흔하다 해도
우리나라에는 귀하디 귀한 白松이 의연합니다.
뒷편을 눈 여겨 바라보니
스님의 해인사 九重深處의 수행정진, 고요적막과는 사뭇 어울리지않게
뒤편으로  뚤려버린 거창한 고가도로,
그 위를 어디론지 바삐 달리는 자동차 소음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단성을 거치면서 좌우를 둘러보니
농민봉기의 그 시절 함성이 울리는 듯,
귓가에는 시원한 몇줄기의 바람결이 역력합니다.
여기서부터는  方丈지리의 제일봉에서 시작된 산줄기들이
마구 흘러내립니다.

길가에 고즈넉이 엎드린 마을-남사마을도 들려보아야지요.
된 흙을 이겨 강돌을 쌓아올린 흙담장에는
담쟁이넝쿨이 새순을 피워내고,
고샅길 좌우로는 사대부, 민초의 私家들이 어울려 있습니다.,
대개는 인적이 없어 아궁이의 불기도 사그러든지 오래이고
우물물도 말라가는데
그저 높이 솟아 있는 은행나무, 팽나무, 혹은 큰 가시가 험상한
斥邪의 엄나무 등, 울 안팎의 나무들 뿐이었지요.

늦봄의 강한 햇살이 부서지는 속에
우리의 몸을 실은 차는 斷俗寺址로 접어듭니다.
참 아쉬운 정경이 눈앞에 벌어져 있었습니다..
斷俗 - 무릇 속세와의 단절, 離俗의 念을 극대화하며
중생제도의 불도를 꽃피우던  절터가
이제는 여러 민가와 잡초에 묻혀있습니다.
석가모니의 공덕 선양과  경건한 공간으로의 구획,
그리고 사찰행사 때면 깃발이 내 걸리던 幢竿,
그 몸체는 이미 어디에도 없고
다만 화강암으로 잘 다듬어진 幢竿支柱만이 우뚝하고
그것과 金堂사이에 동서로 서 있던 3층석탑  2기만이
애써 관리되는 잔디밭에 덩그마니 자리하고 있었지요..
석탑 앞 민가들 사이에 열지어 선 벚나무에는
붉은 버찌가 한창이어서
참으로 영롱하게 하늘빛 아래 신부의 볼을 닮아있었습니다.
단속사에 갔으니 당연히 政堂梅를 찾았지요.
600여년을 살아온 그 매화는 3대 매화라고 하여 政堂梅閣이라는 비각은
여느 공신의 神道碑보다 거하게 서 있고
올 해도 그 튼실한 열매는 디리디리 열려 있었습니다.

덕산면 소재지를 거치면서
산천재와 덕천서원도 둘러보니
경내의 배롱나무는 이제 새싹을 토해내고 있어
초여름부터 석달 열흘간의 붉은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돌담을 돌아나와 산으로 산속으로 달려 중산리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영남권 산꾼들에게는 제일 가깝게 천왕 제일봉에 오를 수 있는  
들머리가 아니겠습니까?
등산로 입구에서 음료 한잔을 마시면서
칼바위, 법천골, 순두류코스 들머리에 눈길을 주며
이리저리 등산로만 가늠하다가 돌아나왔지요.
어서어서 곡점을 거쳐 거림골로 접어들어
孤雲洞을 가보려던 계획이었으니까요.

양수발전소가 생기기 전이니 몇 년 전만 해도 교통이 불편하여
세석평전에 오르는 산꾼들 외에 찾지도 않던 거림골이
이제는 2차선으로 포장되어있고
가로막힌 삼신봉 줄기는 터널을 뚫어 묵계고개 거쳐 청학동에 이르도록
시원하게 길이 나 있었지요.
고운동, 그곳이 이제는 산청양수발전소의 上部池가 위치합니다.
전기가 남아도는 심야에 下部池의 물을 퍼올리고  
긴급히 전기가 모자랄 때에는 상부지의  물을 하부지로 내려쏟으면서
발전을 한다지요.

고운동에는 암자 한 곳이 이전 복원되었고
민가는 몇 집이 남아있어
간혹 찾는 山客이나 遊客을 맞이하는 것 같더군요.
[孤雲湖] - 초서로 일필휘지, 준공 휘호석이 자리한 곳까지 걸어가 보니
저 아래 反川골짜기와 굽이쳐내리는 능파가 아름다워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까지 달콤하였지요.
묵계재를 돌아내려가다 원묵계에 있는 茶悟室 앞에 잠시 서서
‘성 아무개’ 선생의 자취도 눈여겨보았습니다.

산 높고 골이 깊은 산중에는 해가 빨리 집니다.
벌써 산 그림자가 골짜기에 퍼져나가는 횡천강을 따라 달려서
하동에 이르니 초봄에 그 토록 하얀 꽃비를 뿌리던 벚나무들은  
연녹색의 신록을 품고 있고  
좌로 줄달음치며 따라오는 섬진강은 엇그제 내린 빗물이 넘실대며  
蟾津淸流, 시원하게 흘러가데요.
그 희디 흰 모래톱과 청류에 발을 담근 채 끼득거리는
그 물새가 왜 그립지 않겠는가...
그러나 해지기 전에 화개동천에 들고 싶은 마음에  그냥 달려갔지요.

화개장터,
북신거리는 분위기는 예나제나 매 한가지여서
男負女戴 장마당을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로 한창입니다.
그 곳 길가에서
전 국무총리인 이수*씨를 창밖으로 우연히 스쳐 만나기도 햇지요.

차문화축제가 열리는 쌍계사 입구의 기념관 마당에는
이미 특설 무대장치에 이국적인 모양으로 뾰족한 방갈로들이
즐비하게 갖춰져 있습니다.
해가 갈수록 성대하여지는 차문화축제의 분위기를 알 것 같더군요.
개막 첫날의 축제분위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화개동천의  각종 製茶所 마다 자랑하는 차맛도 즐기고
이리기웃 저리기웃하며 돌아다녔습니다.
面 단위마다  경쟁적으로 준비한 녹차관련 먹거리들 맛도 보고
조00家와 해0산방의 차도 두어통 사고 ...
[00도예]에서는 장작불로 구워냈다는
질감이 풍부한 茶器도 하나 골랐습니다.

밤이 이슥해지자
개막 첫날, 현란하게 쏘아올리는 불꽃놀이의 화려함을
하늘이 내리는 축복처럼 눈과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화개천의 임시 섶다리 근처 둥근 거북바우에  날름 올라앉아
쏟아지는 불꽃들을 머리위로 받아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새는 밤이 편하다’는데 ,
떠돌이 산객의 밤은 깊어갈수록 아쉬움 뿐이었지요.
어디로 갈까?
부엉이 울고 밤새 우는 화개동천의 밤은 깊어만 갔습니다.
이때
[00陶藝]의 우연한 추천으로 어둡고 긴 산길을 걸어
佛日平田을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믐께 옅은 구름 낀 하늘은 온통 칠흑이었고,
희미한 랜턴에 의지하여 허위허위 올라가는 등판에는
어느덧 땀이 흥건하고
아지못할 산새, 숲새들은 낮은 소리로 울기도 하고
때론 날개를 털며 푸득거리기도 하였지요.

천여년 전에 孤雲선생이
靑鶴을 불러 타고다녔다는 환학대를 지나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가 애닯은 작은 내를 건너서
平田은 가까워오는데
동행하여 안내하던 임시 산장지기 권 아무개 선생의 랜턴 불빛이
저앞으로 나서고 나니  
우리의 四圍는 더더욱  칠흑같은 어둠으로 둘러처졌지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아도
보이는 건 아슴프레한 하늘그림자 밖에는...
그때 좌측 숲속에 파란 두개의 불빛이 나타나
다시 하나로 또는 두개로 되는 듯, 비쳐왔습니다.
평전이 가까우니 야영을 하는 사람이려니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것은  
삼신봉 흘러내린 쌍계, 국사, 불일평전을 맴돌며 사는
산짐승의 형형한 눈빛이었다니
뒤늦게도 毛骨이 송연해졌습니다.

불빛도 없는 어두운 鳳鳴山房은
주인도 병석에  계시고 임시 산장지기도 외출한 적막한 강산이지만
앞마당에 걸려있는 자그마한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클라식 음률이 어둠의 사방을 울리고 있었지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까지도 잠을 자는 이런 적막강산에
왠 클라식이며 더구나 카라얀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음률이라니요.?
산방주위를 밤눈으로 가늠하니
‘변규화’선생이 화를 당하신  뒷채가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지만
왠지 새벽 날이 밝으면 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문득 俗人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전설속의 鳳凰이 울어제끼는 그윽한 선경,
山房의 토방에  가즈런히 신을 벗고 올라섰습니다.
동양철학자 도올 김00 선생이
상당기간을 留하기도 했다는 방을 털어내
넓게 개조한 - 흙내음이 밴 산방에 앉아  
산장지기 권 선생이 내려주는 쑥차를 흥건하게 마셨습니다.

야생차가 자생하는 불일평전이고
화개동천에는 녹차가 어울리지만,
황혼녘까지 축제장에서 많이도 마셔댔으니
이 밤 이 산방에서는 주변 산에 자생하는 쑥으로 만든  
쑥차 한잔이 더욱 의미가 깊고 맛 또한 개운하더군요.

1년 중 9개월은 오징어배를 타고  
3개월은 東家食西家宿, 산천을 유람한다는
권선생의 談論 속에 밤은 깊어만 갔고
변규화선생이 건강하실 때
스스로 40여가지의 산야초를 채취하여 만든 不老酒를 내어와
가지각색의 陶器盞에 거푸 받아 마시니  
아연 불노장생 불사명주가 이것인 듯
목젖 울대가 뜨듯하게 더워졌습니다.
곁들여 마신 오가피주에 취기는 더해져 불콰해진 기운에
장지문 밖 산방의 교교함이 궁금하여
다시 토방을 내려섰습니다.

역시 별빛조차 없이 사위는 검은 어둠 뿐,
보이는 것은 空際線 上에 우줄거리는 울창한 수림뿐이었지요.
그저 長明燈이 듯  밝혀놓은 한개의 백열등 불빛만이
교교한 불일평전을 밝히고 있고
간간이 겁 없은 불나방이 등불에 달려드는 앞마당에는
여전히 클라식 음률이 조용히 흘렀고,
대나무 홈대를 타고 흘러내리는 石間水 물줄기가
다른 음색으로 화답하고 있었지요...

옷깃을 스치는 가벼운 바람기도 없는 皎皎寂寞의 산방마당,
고욤나무 아래 반석에 앉아서 영원인 듯 어둠을 응시하였지요.
권선생은
별빛을 찾는 우리의 노고에 화답하듯이
하나 뿐인 백열등 마저 꺼주는 호의를 베풀었지요..
그 순간에 나누는 간결하고 절제된 두어마디 말이 천둥처럼 울려왔으니  
靑梅桃花 唯一無二 寂寞深處 鳳鳴山房 ....

밤은 이슥하여 이슬이 내리는 듯 서늘한 기운이 감돌아
다시 산방에 들어가 노곤한 몸을 뉘어 등불을 끄니
사위는 더욱 적막하고 새소리도 잠이 든 듯  
검은 적막이 온몸을 감싸며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사진 上 ; 남사마을 일부.
사진 下 ; 불일평전의 鳳鳴山房 풍경 .
  • ?
    오 해 봉 2007.05.26 08:45
    겁외사 단성농민봉기 단속사지 다오실 봉명산방을
    더듬어 내려간 연하봉님 반갑습니다,
    이곳 지리마당과 섬진나루에서 읽었던 노변정담같은
    좋은글을 읽었습니다,
    어떤 인연으로든 곡 한번 뵙고싶은 생각이 듭니다.
  • ?
    섬진강 2007.05.28 17:10
    예전에 불일평전에서 야영한적 있었는데
    그때도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
    김현거사 2007.06.21 07:14
    섬세한 글솜씨로 소개해주신 불일평전을 꼭 한번 가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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