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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조회 수 3565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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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나는 지난 가을에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걷쳐 천왕봉을 오르고, 대원사로 내려오면서 나는 수 없이, '이런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되내였다. 새벽 13시에 화엄사에서 길 떠나 노고단에 새벽 5시에 올랐고, 다시 13시간을 걸어 장터목에 닿았다. 나는 걸으면서 몇 번이고 주저않았고, 지리산의 지루함에 질려버렸다. 하루를 쉬고 다시 이른 새벽 장터목을 나와 제석봉을 걷쳐, 천왕봉을 오를 때 열 걸음 옮기고 한번 숨 돌리고 열 걸음 옮기고 한번 숨돌리며 올랐다.

[1]
지리산,

난, 그곳에서 나와 싸우고는 두 번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다시 내 발걸음은 화엄사를 걷고 있다. 새벽 2시에…….

3 월 15일부터 4월 30일까지 산불예방으로 종주길이 닫혔다가, 5월에 열렸다.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서는 곧장 지리산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가면 뭔가 있을 듯한, 그리고 그 종주길이 얼마나 지루한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내 의식을 밀어내고 산을 늘 동경하곤 했다.

화엄사.
진주에서 밤 10시 20분 기차를 타고, 새벽 0시 04분에 구례구역에 내려 시내로 들어간다. 시내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새벽 2시, 화엄사에 들어가서 길을 나선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절 문이 아직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 눈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앞선 날, 비가 와서 화엄사 계곡에 물소리가 크게 울린다. 나는 다리를 건너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

보름이지만 짙은 안개와 울창한 숲에 가려 길이 어둡다. 계곡물소리는 어둠 속에서 더욱 우렁차다. 새 소리마저 물소리에 씻겨 가는 새벽에 홀로 어두운 길속으로 찾아들어간다. 여기에서 한 시간 걸리는 자리에 연기암이 있다. 그곳까지는 편안하게-어둠을 벗 삼아, 지난 가을에 오른 길을 떠올리며 걷는다. 어둑어둑한 길을 한참 걸어올라가니, 갑자기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지난 가을 밤에도 이랬다. 나는 어둠 속에 들려오는 이 미지의 정체에 놀라 소름이 돋고, 발걸음이 얼어버리는 경험을 했다. 어둠은 상대방의 정체를 숨긴 체 공포를 내게 던져주는데, 이때의 소름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시처럼 털을 쏟게 한다. 즉 어떠한 물체인지 모르고, 어디에서 날아오지 모르기에 사방이 '적'이 되어버린다. 간단한 해결 방법이 이 어둠 속에서 가장 빨리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뛰다시피 하여 올라가니, 연기암 가는 커다란 길이 있고, 달빛이 나처럼 길을 홀로 걷는다. 나는 크게 한숨을 돌리고서는 다시 산길을 들어서려는데, 알림글이 있다. 그 글귀는 '지리산에 반달곰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반달곰, 혹시 부스럭거리는 소리의 정체는……. 반, 달, 곰. 하지만 종주 내내 어떠한 동물도 만나지 못했으며, 지리산이 얼마나 큰 산이지도 대충은 짐작하기에-반달곰을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본능은 이성을 앞선다. 분명 반달곰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조금 전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는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머리털이 주빗 솟는다. 빨리 이 어두운 길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모든 걸 하늘에 맡기고, 애초에 가려고 마음먹었던 길을 나선다. 잠시 달이 보였지만 숲길에 들어서니 어둠뿐이다. 어둠 속에서 짙은 안개가 나를 감싼다. 어제 내린 비를 머금은 숲 속, 촉촉한 물길을 머금은 안개는 묘령의 아가씨 손 만큼 곱다. 난 아가씨를 끌어안고 뒹구는 것 만큼 촉촉한 안개 낀 숲길에 서 있다.

화엄사와 노고단 사이에 놓인 중재까지 이르는 길은, 단 한 번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걷기에는 불편함이 없다. 그리고 이 곳에서 곰을 만나면 어떡하지라는 엉뚱한 생각이 인다. 깊숙이 발을 들인 상태, 다시 내려가거나 위로 뛰어올라가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지만 난 속으로 아무도 만나지 않길 바란다. 물소리에 계속 귀가 쏠리는 게, 옷을 벗고 목욕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중재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걷는다. 어떻게든 이 어둠 속에서 빨리 벗어 나야한다는 생각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발걸음이 서서히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조금 언덕이 있나 싶었는데, 접선대를 지나 눈썹바위에 이르는 길, 내내 힘겨움이다. 열 발짝 걷고 숨 한 번 돌리고, 다시 열 발짝 걷고 숨 한 번 돌리고. 하지만 이 숨 돌림이 종주 길 내내 나를 옥좨는 첫발걸음이 될지는 아직 까지는 몰랐다.

안개는 산을 오르지 않고, 대신에 어느 산을 넘는지 바람 소리가 물소리보다 크게 울린다. 숨이 차서 뒤돌아보니, 혼령기가 꽉 찬 아가씨가 돌아앉은 듯 달이 요염하게 앉아있다. 내가 음큼하기 때문일까. 인시(인시)에 걸린 보름달은 요염하게 나를 홀리고 있다. 다시 열 걸음 올리고 숨 한 번 돌린다. 모든 건 내 의지이다. 누가 이 길을 가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확신은 없지만, 내 의지에 의해 나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바람 소리가 거세다. 접선대를 지나 눈썹바위가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지만 가도 가도 숨 만 차오른다. 숨을 헉헉거리며 코재를 지나 성삼재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길에서 그만 주저앉아 버린다. 긴 터널을 빠져 나온 안도감과 무거운 발걸음에 온 몸이 지쳐있다. 하지만 이제 부터 시작임을 나는 알고 있다.

노고단에서 장터목.
노고단에서 장터목을 걷쳐 천왕봉까지 이르는 길은 25.5km 본격 종주길이다. 노고단에 올라서 임걸령을 지나는 길을 잠시 바라본다. 오늘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화엄사에서 끌고 온 두 발이, 길을 나서기 앞서 지쳐서 더 이상 못 가겠다고 엄살을 부린다. 임걸령을 거쳐 반야봉을 돌아, 삼도봉까지는 잘 버터 왔는데……. 삼도봉에 이르니 불모장릉의 계곡 사이로 짙은 안개가 물처럼 밀려와 있다. 안개는 솜이불보다 더 푹신해 보인다. 가방을 벗어 던지고 안개 속으로 뛰어 들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포근하다. 이른 새벽부터 길을 나선 이들이 삼도봉에서 잠시 쉼을 쉬어간다.

밤새 산을 올랐기에, 지리산 아랫동네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주능선 길에는 철쭉이 이제 꽃 봉우리를 내밀거나 한 두송이 꽃을 피우고 있다. 길 양옆마다 철쭉이지만 꽃은 아직 이르다. 잠시 꽃을 아쉬워하며 걸어가는데……. 발걸음이 생각만큼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땅 위에서 올라온 무엇이 내 발목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 듯 하다. 다시 반복이다. 열 걸음 걷다가 숨 한번 돌리고, 다시 열 걸음 나아가서 숨 한번 돌린다. 화엄사에 오른 힘겨움이 반복되어진다. 머리는 온통, '누가 내 발목을 잡는가'에 매달려 있다.

연하천산장

억지로, 억지로 발을 이끌고 연하천 산장에 닿는다. 지리산에서 노고단, 연하천, 벽소령, 세석, 장터목산장이 주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내 쉼터는 크게 산장으로 나누고서는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 마다 산장을 그리워한다.

연하천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길을 나서지만, 발걸음은 천근만근이고 머리는 생각이 터질 듯이 쏟아 오른다. 온갖 잡념이 머리 속에서 아우성을 친다. 나는 부풀려지는 머리 속 생각을 그냥 놓아둔다. 운봉, 마천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심하게 차갑다. 바람소리는 거대한 폭포의 굉음처럼 들려온다. 생각의 생각의 생각을 끄집어내어 바람에 던져 버리고, 양지바른 곳이 있다면 바람을 피해 숨을 돌린다. 발걸음은 점점 마비가 되어간다. 머리 속의 잡념, 몸의 피곤함, 발걸음의 무거움, 내 몸은 균형을 잃었지만 나를 세우는 건 '의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내 의지뿐이다'

머릿속 무수한 생각은 바람에 흩날려 버리고, 텅 빈 머리만이 내 발걸음에 동행자가 된다.

벽소령산장
벽소령에 가방을 벗어 놓고, 햇살에 졸고 있다. 마산에서 온 '열린 산악회'에서 '당일치기 지리산 종주'라는 포부를 안고 뛰듯이 앞서간다. 지리산에는 많은 이들이 저 마다의 생각으로 찾아든다. 나이가 예순이 넘으신 어르신, 불혹의 나이에 친구랑 온 사람, 나처럼 홀로 걷는 이. 배낭 하나 메고 온 아가씨, 장터목에서 만난 사춘기 아이들, 많은 이들이 길 위에 있다. 나는 왜 이 길에 다시 선 것일까?

벽소령 산장에서 잠시 동안 이어지는 길을 나는 참 좋아한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리고 깊은 골짜기가 발아래 놓여 있어서, 길이 험하지 않아서. 이제 중반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 나는 벽소령 산장을 벗어나고 있다.

걸을수록 발걸음은 마비가 되어 가고, 화산처럼 폭발할 듯한 잡생각은 발마에 다 흩어져 버린다. 오직 나를 지탱하는 힘은 처음부터 '내 의지'일 뿐이다. 즉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내가 나아가야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에만 움직이고 있음을 안다. 다리가 너무 힘이 들어, 잠시 나무에 기대고, 다시 바위에 기대앉고, 그리고 가방을 풀어 놓으면 스르르 눈이 감긴다. 어디서든 눕고 싶다. 한 숨 자고 일어나면 좋겠다. 하지만 '장터목산장까지 가야한다.'는 내 의지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열 걸음 가서 잠시 쉬고, 다시 열 걸음 가서 쉰다. 다리가 걷는 것은 의지에 의해 자동반복이며, 내 의지는 힘겨움과 무수히 싸우고 있다. 몸은 무수히 나에게, 지칠 대로 지쳤으니 쉬어야 한다고 간절한 염원을 보내고 있지만 의지는 나아가야 함이 옳다고 한다. 나는 수 없이 열 걸음 정도 걷고서 쉬기를 반복한다. 그 사이 사이에 저절로 눈이 감겨온다.

세석산장
세석에서 가방을 베고 누웠다. 산장으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철쭉나무가 가시덩굴처럼 산발해 있지만 역시나 꽃은 이르다. 꽃이 핀들 내 눈은 지금 잠에 겨워 꿈틀거리고 있다. 세석에서 누가 보든 개의치 않고 의자에 누워 나른한 오후 잠에 취한다. 조금씩 조금씩 누웠다 일어나는 게 나에게 큰 힘이 되는 듯 하다.  다시 나에게 묻는다. 나는 왜 이 길을 나서는 걸까? 누구의 이끌림일까?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 걸까? 걷는다는 것, 이 밖에 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답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 서 있는 듯 하다.

이제 한 고비가 남았다. 긴 거리를 걸었고, 장터목까지만 나아가면 오늘 하루가 마무리 된다.

숨 한 번 돌리고 다시 걸어간다. 걸음걸이는 느리다. 아주 느리다. 머리는 화산처럼 수많은 생각을 토해내더니 이제는 잠잠하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눈을 감은 채 걷는 듯 하다. 머리가 텅 비어버린 상태가 벽소령을 건너 세석까지 이어지더니, 다시 앞날에 대한 생각이 인다. 생각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바람에 다 날리고, 텅 빈 머리는 봄 햇살을 맞은 땅처럼 생각의 싹을 새롭게 틔워낸다. 열 걸음 걷고, 숨 돌리면서 내 앞날에 내 꿈에 대해 생각한다. 머리가 멍하게 되었다. 앞날에 대한 희망을 꽃 피웠다를 반복하며 발을 밀어낸다.

이번이 지리산을 두 번 째 걷는 길이지만 주위에 대한 풍경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 '이런 미친 짓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다. 새벽 2시부터 줄 창 걸어, 오후 5시 30분, 즉 15시간을 걸어서 하루를 정리하는 이 걸음은 풍경에 대한 여유를 안겨 주지 않는다. 반야봉에 들르지 못한 것도 길이 멀어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두지 못함에 있다.

장터목산장
장터목에 사춘기 학생들이 소란스럽게 신이 나 있다. 서울에서 온 이들은 선생님을 따라 백무동 계곡으로 올라와 있었다. 그들은 자유로움 속에서 마냥 즐겁다. 나는 가방을 한 구석에 내려놓고 산장이 열리길 멍하게 바라본다. 오직, 잠자리에 눕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2]
새벽 4시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어젯밤 여덟시가 되기 앞서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니 새벽 4시다. 단숨에 긴 밤을 건너왔다. 많은 이들이 벌써 자리를 뜬 체, 자리가 깔끔하다. 나도 가방을 메고서 부시시한 얼굴로 산장을 나선다.

하룻밤 자고 일어났기에 피로가 어느 정도 가셨겠지 생각하는 건 달콤한 상상이다. 열 발 자국 때기 앞서 내 몸의 상태를 직감적으로 알 수가 있다. 나는 나 보다 나이 어리거나 나이 드신 분을 수 없이 앞으로 밀어 보내며 걷는다. 내 발걸음은 어제 오후의 길 위에 놓여 있다. 다시 열 발자국 걷고 숨 한번 돌린다. 나 아닌 모든 이들의 발걸음은 사뿐하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그곳에서의 '해맞이'를 꼭 바라지 않는다. 이쯤 되면 먼 길을 걸어 온 것에 대한 고마움과 그곳에 무사히 닿기만 바라는 마음만 생긴다. 더 무엇을 바란다는 것은 욕심이며, 욕심이 나를 흩트릴 수가 있음을 나는 안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발을 옮긴다.

[3]
지리산을 가거든, 왜 가냐고 묻거든

처음에 지리산 오를 때에는 막연한 동경과 두려움을 이기고픈 싸움이었다. 내게 지리산을 걷는 다는 건 무서움이였다. 어떻게 길을 나서야 하며, 그 먼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할지, 비라도 오면, 곰이라도 만나면, 가다가 다리가 부러지면……. 나는 두려움 앞에 몸을 떨면서 가슴 한 구석으로는 사뭇치는 동경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지리산이다.

살아서 한번도 오르지 않는 이가 있는데, 1년에 두 번씩이나 화엄사에서 천왕봉을 잇는 길을 걸었으니 행운일까? 행복일까? 나는 두 번째 지리산을 다녀오고 나서 그 길을 묻는다. 그 길이 무엇이길래 나를 붙잡느냐고?

지리산, 어쩜 그는 내게 삶을 들려주는 게 아닐까라는 느낌이 간혹 든다.

내가 나서지 않는 길은 두려움이며, 두려움 속에서는 무엇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가리켜 준다. 그리고 새벽에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오르는 길은 어린아이와 사춘기 시절과 젊은 이십대를 나타낸다. 나는 어떠한 꿈을 꾸지만, 그 꿈의 정체는 막연하고 길을 나섬에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 속에 쌓여 있다. 하지만 세상에 거칠 것이 없는 나는 스스럼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엄마 품을 빠져 나오, 세상에 발을 디딘 나는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노고단에 올라서면 이립에 해당된다. 두려움은 어느 정도 걷히게 되고, 막연한 꿈은 그 이미지를 들어낸다. 천왕봉이라는……. 이때에는 게으름 없이, 느리게 나아가는 건 부끄러움이 아니다. 부끄러움은 자기 발걸음이 빠르다고 자만하는 것과 할 수 없다는 게으름뿐이다. 느리더라도 게으름이 없으면 꿈을 이루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그 꿈길 속에 어린이와 나이 드신 어르신이 함께 걷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기에 오랜 힘겨움이 따라붙는다. 지루하다.

장터목에 닿으면 지천명이고 다음날 제석봉을 오르는 길은 이순이다. 하루 종일 걸어 온 길은 평생을 살아온 길이며, 하늘의 뜻을 알 듯 말 듯한 고개에 이른다. 그리고 하루를 묵고 다시 길을 나서면 지금까지 가지고 온 욕심을 버리게 되고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음을 볼 수 있다. 꼭 그곳에 서서 해를 보겠다는 욕심은 없다. 먼 길을 게으름 없이 걸어온 것에 고마울 뿐이며 그것이 삶이 된다.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는 것이다.

천왕봉에 올라, 하늘에 인사를 올리고 길을 내려선다. 삶은 이런 것이다. 지리산은 내 삶의 한 부분을 도려낸 것이 아닐까. 무엇을 할지 모르고, 앞길이 보이지 않거나 생각이 많다면 오늘은 지리산 화엄사로 가보자. 그리고 노고단을 오르자. 저 멀리 제석봉과 천왕봉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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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불재 2007.05.11 13:37
    잔잔하게 쓰여진 글에서 여러 생각들을 해 봅니다.
    홈이 참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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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7.05.11 15:07
    앉아서 바라보는곳이 웅석봉 인가요,
    앉은 자세부터가 고수같아 보입니다,
    하루산행이 화엄사 에서부터 장터목 까지라니
    대단 하십니다,
    어즈간한 사람들은 2박3일코스 이기에요,
    깔금한글 잘 읽었습니다,
    화엄사 무서운밤길 혼자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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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로 2007.05.11 18:12
    지리산은 내 삶의 한부분을 도려낸 것이 아닐까..
    이 부분에 밑줄 그어 봅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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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자봉 2007.05.11 18:57
    부럽네요...
    화엄사에서 백무동이라 그것도 하루에 장터목까지 휴
    지난 겨울 세석까지 가는데도 밤 일곱시에 도착하였는데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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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쉴만한 물가 2007.05.11 19:46
    지난해 새벽을 걸었던 그 길이 가슴 한켠에서 꿈틀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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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성 2007.05.11 21:46
    이런저런 생각에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새벽산행을 해보면 정작 눈에 뵈는것이 없어서 그런지 머릿속은 텅텅비어서 아무런 생각이 없더라구요. 나중에 그 아무생각 없는 오로지 앞만 보고 가는것이 좋아서.. 산행을 하곤했는데.. 수고하셨습니다. ^^
  • ?
    금바다 2007.05.12 11:09
    감칠맛나는 글 가슴으로 읽고,마음으로 느끼고 갑니다.
    '이런 미친 짓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일이면 또 그리워할 내고향 지리가 아닐까요?
    행복한 나날 되시길...
  • ?
    슬기난 2007.05.12 20:34
    풍경님은 전생에 지리 어느 양지바른 언덕에
    함초롬히 피어나던 한송이 꽃이었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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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념 2007.05.13 01:59
    어느 분의 말...
    산에 올라 열심히 걸다보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서 좋다.
    그냥 무상과 무심이 되어 버려서 그래서 너무 좋다.
    그래서 난 열심히 산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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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타타 2007.05.13 13:35
    저도 갈때마다 미친짓이죠...
    벌써 몇년째인지...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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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둘배기 2007.05.14 09:52
    잘 읽었습니다.. 지루하고 정겨운 그길을.. 15시간의 산행,...
    앞날에 좋은일 이 있길바랍니다..
  • ?
    풍경 2007.05.14 17:39
    제 글.. 다시 읽어보니 마니 부끄럽네요. 문체도 서툴고..
    상불재님/ 고맙습니다. 지리산이 많은 생각을 품게 해 주는 듯 합니다.
    오해봉님/ 천왕봉에 앉아 있는 이의 모습입니다. 제가 뒤에서 몰래 훔쳐 찍었습니다.
    진로님/ 님의 말씀을 듣고 곰곰히 내 글이 진실한가 생각해 봅니다.
    군자봉님/ 긴 시간만큼 많은 생각을 해 주게 하여, 걷고 걸었습니다.
    쉴만한 물가님/ 비온 뒤의 화엄사 계곡, 어두운 산길, 보름달 정말 잊을 수가 없을 듯 합니다.
    해성님/ 무수한 생각을 비우기 위해 지리산에 서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금바다님/ 걸을 때에는 두 번 다시 안온다이고, 내려와서는 그곳에 달려가고 싶어 병이 나더라구요. 전 또다시 어제밤 걸었던 그 길을 그리워 하고 있습니다.
    슬기난님/ 과찬이십니다. ^^;
    무념님/ 맞습니다.어지러운 머리, 비울려고 가지요. 산에서 무심(無心)을 배웁니다.
    차둘배기님/ 긴 글 부족한 글, 깊이 봐 주셔셔 고맙습니다.
    모두 모두 행복하고, 좋은 일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들어와 눈도장만 찍다가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들으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행복하세요~~~
  • ?
    다알달 2007.05.16 18:32
    첫날 너무 무리하신듯 합니다. 벽소령쯤에서 1박하시면 훨씬
    부드러웠을 텐데요. 다시는 찾지 않을것같이 힘들지만
    어느샌가 다시 떠오르는 능선에서의 풍광들이... 선합니다.
  • ?
    이안 2007.05.18 16:28
    같은 코스를 시간차를 두고 걸었습니다.
    진로님의 밑줄 친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읽었습니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과..
    느린 보폭으로 진행이 더딘 이안과 대비되는....

    지리산.. 함께 걷는 느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종주기..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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