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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이런 골은 셀 수나 있을까?(개선골-천년송능선)


지리산 주능선상의 삼각고지에서 도솔암 삼거리-영원재-빗기재-삼정산-약수암-실상사에 이르는 긴 지능이 하나 있다. 일부는 삼신봉이 있는 남부능선과 비교하여 북부능선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고, 일부는 영원사, 영원재, 영원봉(가칭)이 있어 영원능선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 지능에 기대고 있는 작은 가지들은 셀 수도 없이 많지만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골다운 골은 그리 많지 않아 누(와)운골, 개선골, 빗기재골 정도이다.

개선골을 찾아가는 길은 반선 내령매표소를 지나 얼마가지 않으면 좌측에 하얀 슬래브건물이 하나 보이이고, 그 계곡을 건널 수 있는 엉성한 현수교가 하나 있다. 입구는 철문과 철조망으로 막아놓아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건물앞 공터에 차를 파킹하자마자 수색나온 병사들처럼 주위를 사주경계하다 아주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통과한다.

곧 후손들의 가득한 정성으로 정갈하게 다듬어진 묘를 한기 만나고 이후 수량이 적은 아담한 계곡을 따라 오르게 된다.

20여분 후면 감나무가 몇 그루 보이고 계곡 아래로 묵정밭이 나타난다. 이쯤에서부터 사람이 터 잡고 산 흔적이 보이는 곳인데 마침 텃밭에선 이곳의 유일한 주민이자 개선골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는 할머니(양봉임)가 끝물 고추를 따내고 있다.

“안녕하세요? 가을 농사 잘디았어요?”
“응, 그저 그려, 근디 어디 갈라고?”
“영원재 넘어서 와운으로 갈라고요”
“아이고~ 심들틴디...”
“시간 많은게 쉬엄 쉬엄 넘어가죠 뭐”
“그려~ 잘들 댕기 가”  

마당을 올라서자 여름을 버틴 백구 두 마리가 이방인을 사납게 경계한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 구경일테니 경계도 당연하겠지만, 그보다는 사람이 흥미삼아 올라갈 곳이 못된다고, 더 고생하기 전에 돌아가라는 경고로 들린다.

공가인 집 뒤를 지나 계곡을 건너니 길은 이내 숨어버리고 허리아래로만 가느다랗게 길이 열려있다. 초입부터 고생길을 예감한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들었다고는 하나 덩굴 숲 하나 잘못만나면 어망에 걸린 물고기처럼 진을 빼야하는 건 순간이고, 아무리 용을 쓰고 앞으로 나아가려해도 원수라도 만난 듯 잡아당기는 덩굴과 검문하듯 도열하고 있는 거목들을 통과하려면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시간 장담은 하지 못한다.

사람을 모아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을 흔적을 더듬어 앞으로 나아간다. 오미자 넝쿨들은 지천이나 사람 손을 탓음인지 열매는 보이지 않고 날씨마져 잔뜩 흐려있어 음습하다.
길도 길 흔적이지만 그나마 듬성듬성이라도 인적이 있는 계곡에서 멀어지지 않으려니 자연 생각의 범위는 좁아진다. 오늘따라 고도계가 없으니 현 위치에 대한 가늠이 어렵다.

물길은 예상보다 빨리 끝이 났다. 가느다란 물줄기에서 수통을 채우고는 물길 끊어진 계곡을 따라 오르다보니 덤불숲 근처에서 그나마 있던 인적도 사라진다.

지금 위치 가늠이 않되니 느낌으로 밖에 올라 챌 수가 없다. 지도를 보니 좌우 어느쪽이든 지능만 차면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전면을 바라보니 오른쪽에 인적이 있는 듯 보이나 덤불지대이고, 왼쪽은 너덜혼합지대로 지능이 훨씬 가깝고 마루금에 바위벽이 서있다.

왼쪽 지능을 택해 첫 번째 벽 앞으로 다가가니 절벽 맨 아래쪽에 깊은 굴이 보이나 앞 마당은 동물들의 놀이 흔적이 여실하여 깊이 가늠이 어렵다. 벽 좌측을 돌아 올라 서 보지만 사방에 둘러쳐진 나무들이 조망을 보여주질 않는다. 다만 좌측으로 제법 규모있게 들리는 물소리가 빗기재골의 중상류부 우측능선, 즉 음촛대봉능선상의 어디쯤이라는 것만을 감지할 뿐...

능선의 거의 인적이 없다. 다행이 산죽의 높이가 낮아 제법 곧추선 경사에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오르는 중간중간 노루궁뎅이도 한번씩 보여주며...

인적이 확실한 지능을 잡은 건 근 1시간이 가까워서였다. 그렇담 계곡에서 인적을 찾아 조금 더 올라선 다음 지능을 찾았어야 했다는 뜻이지만 새로운 길을 하나 더 밟았다는 느낌으로 자족한다.

예서도 영원능까지의 거리는 만만치 않다. 조금이면 끝날 것 같던 지능 길은 여린 인적이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고, 산죽밭을 만나면은 그마져도 확인하기가 용이치 않으니 지도를 확인하여 방향을 정해놓고 왠만하면 다이랙트로 올라선다.

절벽, 그리고 우회길, 사람들을 돌려보내고는 바위벽으로 올라선다. 그런데 그 중단쯤 위쪽 홀드하나를 잡고 배낭을 누르고 있는 나뭇가지를 치우는 사이 갑자기 뒤따른던 병옥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바위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형님 땅벌입니다”

그러나 난 진퇴양난, 엉거주춤한 자세지만 내려서면 놈들이 덤벼들 것을 아는지라 본능적으로 배낭을 붙들고 있는 가지를 부러뜨리고 넘어서서 한숨을 돌린다. 다시 만나 물어보니 비싼 지리산 한방침을 맞았다고 자랑이다.

다시 전면을 막아서고 있는 벽을 올라보니 비로소 누(와)운골쪽 조망이 터진다. 명선북능 , 뱀사골, 반야봉, 그리고 옴팡지게 들어 앉은 누(와)운마을.

영원능선까지 거리는 짧은 듯 보이지만 예상외로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인적은 뚜렷하나 산죽의 높이가 높고, 가끔씩 터지는 암봉위에서 바라다 보이는 조망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간이 사람을 놀래키는 형이상학의 바위들... 아마도 내가 다시 이 능선을 찾는 일이 있다면 이 구간의 바위들이 다시 보고파짐일 게다.

영원주능의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 것은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간, 삼정방향은 가득한 개스가 마을을 감추고 있고, 반야봉은 자기와 관계가 없다는 듯 시치미를 뚝 따며 돌아 앉자있다.

사람들이 영원봉이라 부르는 곳이지만 내가가진 지리산지도나 국립지리원 지형도에도 삼각점표시나, 산이름, 해발 등 아무 정보도 나와 있지 않다.

점심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천년송 능선 전망대로 옮긴다.

먹을거리와 남은 시간 여유가 조급한 마음을 날려버리고, 하느적하느적 술과 고기와 채취한 버섯들을 펼쳐놓고 만찬을 벌인다.

천년송 능선은 전망바위만 조심스레 내려서면 별 어려움 없이 누(와)운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다만 급한 내림길 한군데에서는 선답자가 여러 길을 다녀 희미해지긴 하지만 주능만 벗어나지 않으면 곧 외길 능선을 만나게 되고, 1시간 정도면 답답한 숲길이 갑자기 터지며 천년송이 나타난다.

선굵은 화공의 강한 붓터치로 묵직한 수묵화에서나 봄직한 자태여서 중후함이 느껴진다.
게다가 부부송이어서 외롭지 않고, 팔을 뻗으면 맞잡을 만한 거리에 정다운 눈길로 서로를 응시하며 누운마을을 지키고 있다.

천년을 해로한 그 마음으로...


<에필로그> 산악회 회원중 한 처자의 고향이 달궁이다. 현재 달궁엔 작은 아버님이 계시고,  와운은 할머니 고향이자 알고 있는 아저씨, 아주머니가 거주하시며, 뱀사골 초입 석실의 인가(상가)가 고모님 댁이라 한다. 어려서부터 왕래가 잦았기에 그곳의 지명을 기억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어려서는 와운이라는 명칭을 들어보지 못했고, 그곳을 눈골, 누운마을이라 불렀다한다. 누운마을 할머니댁 다니러가는 예기와 눈골에서 멱감던 예기를 신나는 듯 해댄다. 아마도 ‘눕는다’는 뜻이 한문으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누울와(臥)자로 변한게 아닌가 한다.


- 구름모자 -


  • ?
    아낙네s 2004.10.13 18:38
    가지고있는 지도엔 보이지않아서 대략 어느지점이겠거니..
    하고 마니 개운치않네요 ^^"
    정신없이 내려온 길 좀더 눈여겨볼걸 그랬나 싶기도 하구요 ..

    조금씩 올려주시는 글들 보며 욕심만 무럭무럭 커갑니다.

  • ?
    하해 2004.10.14 03:04
    산행시에 돌출하는 일들이 읽는자에게는 山行의 체험, 그 우연성을
    생생하게 맛보게 하네요. 산 내음은 그런것인가 봅니다.
    고유지명은 대개 지형적 또는 환경적 특성이 내재된 경우가 많아서,
    역시 우리말 지명이 본 뜻을 알기가 쉽고 살가운 듯 합니다.
    다층적인 산행 이야기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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