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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형에게

오랫동안 소식드리지 못했습니다. 지난 여름 너무 경황없이 보내다 보니 그렇

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지리산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지리산은 나에게는 언제나 어머니입니다.

올해 내 생애 가장 긴 여름을 보내면서,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마음으로 지리

산을 동경해 왔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만남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안보

면 멀어지는 것"처럼, 그러면서 지리산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았습

니다. 현실을 극복하는 길이 따로 있는데도, 나는 그 현실속에서만 길을 찾고

자 했습니다.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던 건 의외로 지리산과 먼 곳에서 였습니

다. 1개월여 미국에 출장을 다녀 왔습니다. 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볼수 있던 시간이 되었습니다. 난 상황의 미아(迷兒)가 되어 있었습니

다. 나는 너무도 외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 그 때서야... 나에게 유일한

희망은 어머니라는 사실, 지리산이란 사실을 새삼스럽게 터득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리산이 있기에 나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희망을 안고 돌아 왔

습니다.

그리고 오늘(10월 6일) 아침 일찍 지리산으로 갔습니다.

차창가를 스치는 자연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노오란 들녁에는 가을비가 촉촉

히 내리고 있었습니다. 조그만 산들은 단풍으로 서서히 채색을 할 준비를 서두

르고 있었습니다. 개울을 흐르는 물소리가 더없이 낭낭하게들려 옵니다. 나의

마음은 고향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도회에 사는 아들의 마음, 바로 그 것입니

다. 설레임, 환희, 감동 등에 조급함이 함께 합니다. 그렇게 음정리에 도착하였

습니다.


작전도로를 따라 벽소령을 향해 걸어 올라 갑니다. 이 길을 미리 염두에 두었

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발길이 이 곳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언필칭 "고난의 길"이라 할 이 길을 만난다는 사실이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르지

요. 50여년 전 우리의 젊은이들을 이 길을 통해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었

는데... 나는 지금 이 길을 통해서 갈등과 희망 사이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있습

니다.

태풍 루사로 인한 수해는 아직까지 곳곳에 큰 생채기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인

간의 흔적이 많이 닿는 곳일수록 더욱 큰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대로 두

면 아무렇지 않을 곳에 인간의 발길이 머무르면 깊히 패이고 무너지고 하였습

니다. 흡사 "산사태박물관"이라 할만 합니다. 인간의 힘보다 자연의 자연스러움

이 훨씬 바람직한 가치임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그러나 자연을 이기는 힘도

있습니다. 그 것은 시간입니다. 한여름 분명 짓푸른 젊음을 구가했을 숲의 나무

들은 잎새의 윤기를 모두 잃고 퇴장을 서서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고 보면

모든 생물의 죽음은 숙명이기에 앞서 자연스러움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성 싶습

니다. 우리 인간의 생채기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시간이 가면 치유되고, 망

각할 수 있음이 모든 생물의 죽음처럼 자연스러움으로 받아 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짙게 피어 오르는 물안개 때문에 지리산의 냄새만 맡고 산행을 계속합니다. 보

슬비는 여전히 내리면서도 가늘었다, 굵어졌다를 쉼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자욱히 깔려 있는 안개와 거세고 힘찬 물소리에서 왼편으로 펼쳐지는 광대골

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벽소령에는 정오가 막 지난 시각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멀지 않은 거리인데

도 지리산에의 감동에 비교적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

유 속에서도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내 자신에 대한 반성도 해 보았습니다.

내가 미워해 왔던 사람들도 생각했습니다. 안개속처럼 미궁속에서 해답을 찾

지 못했습니다. 비가 그치고 안개가 걷히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난의 길을 따라서 내려가고 싶었습니다.


삼정리를 향하다가 빗점골로 갈 겁니다. 빗점골은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모다

안고 있는 고난의 현장이요, 비극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남부군사령관 이현상

이 최후를 맞이 했던 곳입니다. 형도 가보지 못했다고 했었죠.

처음에는 거친 너덜길이 한동안 계속되고 있습니다. 비내리는 날, 거친 내리막

너덜에서 산행에서 당하는 최고의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다 인간의 흔적,

작전도로가 나타나고 한동안 편안한 산행을 하게 됩니다.

삼정리 갈림길에서 빗점골로 향하였습니다. 빗점골까지는 2.8km라는 표지판

이 가르키는 대로 산행을 재촉하였습니다. 작전도로가 생기기 전 이 곳의 주인

은 빨치산들이었겠지요. 이 곳을 빨치산루트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서 지레 짐

작을 합니다. 작전도로가 놓이면서 주인은 곧 토벌대로 바뀝니다. 세상사가 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주인과 내일의 주인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오늘의 승자

와 내일의 승자가 분명 다를 수 있듯이... 세상의 주인이 언제나 같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의미를 상실할지도 모릅니다.

승자가 언제나 같은 게임은 이미 게임이 아닙니다. 하나의 요식행위나 절차라

고 말해야 옳죠. 싸움에서 토벌대는 이겼고 빨치산은 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

서 승자의 의미는 무의미해져 버렸습니다. 이 곳을 찾는이들은 그냥 그 날의 비

극만을 안타까워 합니다. 우리의 일, 우리 민족의 비극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

에 지리산 자락에 피를 흘리며 죽어간 젊음은 적과 아군이 아닌 "우리"로써 존

재합니다. 그들은 죽어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리산은 화해와 용서의

용광로가 되어 활화산처럼 오늘도 활활 타오르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리산은

하나의 커다란 무덤입니다. 적과 동지는 한 무덤에 합장되어 함께 누어 쉬고 있

습니다. 지금까지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지리산에서 그들이 흘

린 피는 땅에 스며 함께 물이 되었고, 그들이 죽어 사라져간 육신은 함께 거름

이 되었습니다. 이 곳을 찾으면서 화해와 용서를 배우고 싶습니다. 어느 누구

도 미워하지 않는 관용과 아량을 배워가고 싶습니다. 우리의 어머니처럼, 어머

니의 따스한 마음처럼...

빗점골에 자리잡은 남부군사령관 이현상의 아지트는 예상 밖으로 초라했습니

다. 이 자리에서 죽어간 주인공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고독한 삶을 살다간

사람입니다. 그는 남과 북, 모두로 부터 철저한 버림을 받았습니다. 고독한 사

람이란 말이 참으로 마음 아프게 와닿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 깊이 숨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조그만 아지트에서 총탄세례를 받고 죽어 갔습니다.

나는 그의 삶의 괘적이나 그가 죽어 가면서 사념했을 이데올로기적 갈등에는

큰 관심을 갖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한 인간이 모두로 부터 버림받고 쓸쓸히

죽어가면서 이 나라에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상황이 가슴 아픔

니다. 고독이란 것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자신의 편이 더 이상없다는 것, 느껴

보지 않고는 실감하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하지만 지리산은 그토록 고독한 그

를 받아 들였습니다. 그는 지리산에 피를 뿌리고 지리산에 그의 고혼을 묻었습

니다. 나는 그가 지리산의 새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는 자유롭습

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고독으로 부터 해방

을 의미합니다. 지리산이 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은혜는 사랑입니다. 자신

을 버렸던 모두를 그가 먼저 받아 들이지 않으면 그는 두 번 죽어야 합니다. 가

슴에 칼을 품고서는 자신의 가슴을 먼저 해칠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

다. 그가 죽어서는 고독으로 부터 벗어 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두 바위 사이에 거적 등으로 위장을 하고 그 안에서 은거했던가 봅니다.

주변 조망이 좋고, 수목이 우거진 것 정도가 아지트로서 기능을 했겠다 싶었습

니다. 바위 사이 자리잡은 노각나무 한그루는 줄기가 당시 불에 검게 그을린 체

로 오늘까지 살아서 푸르른 잎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질곡의 역사, 민족을 고난

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그러면서도 살아 남았습니다. 노각나무가 살아 남은 건

분명 화해와 용서의 오늘을 보기 위해서 였을 겁니다. 이 세상이 노각나무 같다

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곳에 서 있는 "격전지순례관광지"라는 안내판을 보

면서 이미 우리는 "비극의 비극성"을 극복해 버린 모습을 확인합니다.

나부터 그리하겠습니다. 우선 미워하는 사람이 없어야 겠지요. 그리하겠습니

다.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는 없겠지만, 그리하도록 힘쓸 것입니다.

이제야 나의 눈은 밝아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세파를 헤쳐나갈 자신도 생겨 납

니다. 승부를 내야 할 때가 결코 아니기 때문에, 그냥 내 방식대로 살아 가겠습

니다.

삼정리를 거쳐 의신마을로 내려 오면서 내내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형은 늘

세상사를 웃음으로 관조한다고 말했지요. 그런 형을 이제는 만나도 좋을 것 같

습니다. 다음 주에는 꼭 지리산산행을 함께 했으면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 ?
    장수 2002.10.07 22:40
    그랬었구먼~ 요즘 보기 힘들다 생각했다네. 늘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혜안을 기대해도 좋겠네.
  • ?
    단순.. 2002.10.08 11:51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
    moveon 2002.10.08 12:12
    문자가 문자 이상의 아름다움을 줄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 ?
    2002.10.08 14:34
    음.. 2주일전 천왕봉 통천문 암반위에서 가파른 계곡을 헤집어 올라오던 산안개를 바라보며 가슴이 시리도록 ... 역사가 소용돌이쳐도 지리산은 그 역사를 품에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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