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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가을이면 나는 유독 지리산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 얼마남

지 않아서인지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꼭 가보아야지... 몇번씩 다

짐을 해보지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야하는 일상 때문에 쉽지만은 않습니다.

오늘(2000년 10월 29일) 하루 연가를 얻었습니다. 순전히 지리산을 만나러 가

기 위해서 바쁜 일손을 뒤로 하였습니다. 나는 이제 지리산으로 갑니다.


날짜가 바뀌기가 무섭게 지리산을 향했습니다.

딱 정해놓은 목적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지리산으로 향해 갑니다. 여명

이 시작되면서 섬진강가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섬진강은 석양의 해질 녁에 가

장 아름답다며 김용택시인이 "저믄 섬진강"을 노래했죠. 평론가 유홍준은 저믄

섬진강을 보라빛으로 채색을하면서 그 모습을 찬미했답니다. 오늘 동틀 녁에

바라본 섬진강은 처음에는 반짝이는 은빛을 띠다가 결국 태양을 머금고 붉은

빛으로 바뀌었답니다. 아~ 여명에 바라다 본 섬진강이 그토록 아름답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어요.


피빛의 섬진강을 바라다 보면서 피아골을 가고 싶어졌습니다.

피아골의 초입에서 계단식 논들을 보면서 이 땅에서 살았던 민초들의 질긴 생

명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연곡사에서도 날렵한 동부도의 세련된 모습보다는

북부도의 투박함이 더 정감있게 다가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고요.

직전(稷田)마을. 본시 이름이 피밭마을이었다나... 피아골의 이름은 거기에서

따왔다는데... 거칠디 거친 그 땅에 심을 건 피밖에 없었고, 피죽이라도 끓여

먹으려던 이 땅의 민초들은 피밭골에 모여 살았는가 봅니다. 그러한 처절함이

피아골에는 숨쉬고 있겠지요.

이른 아침 도착해서 본 직전마을에는 이제 피밭은 없더군요. 그 대신 관광객들

이 남기고 떠나버린 도회의 찌든 냄새, 사람냄새, 술냄새, 그리고 돈냄새만 요

란했습니다. 그래도 직전마을을 지나 삼홍소에 이르는 오솔길이 있었기에 조금

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나만의 사색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 같은 호젓함이 좋았

습니다. 민초들의 처절한 삶을 되뇌이여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수십년

전 피아골을 누볐을 이 땅의 이름모를 젊음들을 생각했습니다.


삼홍소에는 말 그대로 "산이 붉게 물들어 흐르는 물이 빨갛게 변해 있었고, 거

기에 비치는 인간도 붉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삼홍소의 물위로 낙엽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누군가 모든 생물은 죽어가는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 했지

요. 그런 모습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떠내려가는 단풍잎에서 애잔한 추억들의

묶음을 떠올립니다. 어릴 때 너무도 가슴 아프게 보았던 영화,"사랑할 때와 죽

을 때"의 마지막 장면을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애타게 기다렸던 연인의 편

지를 읽다가 적군의 총을 맞고 쓰러지면서도 여울 물위로 떠내려가는 편지를

잡으려고 몸부림치면서 죽어가던 그 장면 말입니다. 어쩌면 수십년전 그 치열

했던 시절, 누군가가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자리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물

위에 떠날려 보내며 죽어 갔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합니다. 그렇기에 나는 지

리산을 생각하면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그 것은 말할수 없는 아련함, 한없는 그

리움, 또 어쩔 수 없는 아픔입니다. 그러면서도 지리산은 어머니의 한없는 용서

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면서 상대를 죽이고자했던 이들이

이제 죽어서는 하나가 되어 서로를 용서하면서 지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을 합

니다.


혼자 걷는 지리산에서 나는 온갖 호사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나뭇잎이 산길의 돌 사이를 가득 메꾸면서 호피가죽이 되고 부드러운 융단의

카페트가 되고 있습니다. 오채색의 단풍 숲이 내가 가는 양 옆으로 병풍 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펼쳐저 있습니다. 산들산들 가을바람이 불어 옵니다. 메케

한 나무향이 더없이 향기롭습니다. 그렇게 호젖한 가을 산행을 즐기고 있습니

다.지금...

난데없는 개가 한마리 나타납니다. 아마도 위에 있는 산장에서 키우는 개인가

본데 나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는듯 그냥 지나가는 여유있는 모습이 재미있습

니다. 지리산에서는 개도 저렇게 등산을 하나 봅니다.


구계등계곡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계곡의 물도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름모를 산새소리가 지리산의 아침적막

을 깨우고 있습니다.

아무도 보이는 이없는 외로운 산행길을 재촉하는데 대학생인 듯한 젊은이 하나

가 소리없이 빠른 걸음으로 나타나 나를 앞서 갑니다. "젊음의 힘"을 느낍니

다. 수십년 전 이곳을 무대로 산야를 달렸을 젊음들도 그랬겠지요. 그들을 그렇

게 달리게 했을 엔진은 무엇이었을까요. 고차원적인 사상이었을까요? 아니면

단순하게 젊음의 힘 때문이었을까요? 나는 그것은 그들이 믿었던 신념 때문이

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념은 인간을 강하게 만드니까요. 신념은 인간을 초인을

만들기 때문이죠. 그 당시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고, 그들의 조국

을 지키고 싶었을지도 모르고요.

그런저런 상념을 뒤로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낫날봉만 선명하게 보이는군요. 지

금은 산도봉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피아골대피소를 지나 소위 피아골의 코재를 오릅니다.

오르막길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포근한가을햇살을 받으면서도 땀은비오듯 흐

릅니다. 이런 고초 쯤이야 그 옛날 이 곳을 누비고 다녔을젊음에 비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죠. 그렇지만 지금은 지금, 현실은 현실이잖아요. 요즘은 이 길

을 오르는 이는 누구나 죽겠다고들 합니다. 길 양 옆으로 산죽 숲이 좌~악 이

어지고 그 당당한 모습이 군복입은 병사들의 당당함을 느끼게 합니다. 신념을

이기는 당당함 말입니다.

이제 계곡은 멀어지고 물소리도 들리지않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

묵의 소리"만이 귓전을 울립니다. 내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이 침묵의 동반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참만에 주능선을 다닿았고 임걸령을 지나칩니다.

임걸령에서는 당연히 그 옛날 초적 임걸년을 생각했죠. 그도 민초들을 위해 신

념을 가지고 이곳에서 산채를 지어 초적질을 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런 아

쉬움을 임걸령의 시원한 샘물에 삭혀 버립니다.


노루목을 지나고 반야봉에 오릅니다.

모처럼 다시 오르는 반야봉.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 올랐습니다. 정상에서 바

라다 본 세상은 너무도 작아 보였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지리산이 새삼스럽게

큰 산이구나하고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리산 사이로 구름이 떠내려 갑니

다. 토끼봉을 휘감고 도는 구름의 모습이 볼만합니다. 하지만 금새 흩어져 버리

고, 세상사가 그렇듯 덧없다는 교훈만을 남긴 채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고나니

하늘은 울음을 머금은 듯 찌뿌둥한 모습으로 변합니다.


반야봉을 내려와 삼도봉에서 삼도민이 세웠다는 조그만 동탑하나를 멀끄럽이

바라다 봅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는 그렇게 지리산을 셋으로 나누어 놓았습니

다. 그러함을 비웃는듯 주변은 온통 날파리 떼만 창궐해 있습니다. 그래도 많

은 이들이 동탑을 안고 돌았던가 봅니다. 위쪽 끝부분이 반질반질해져 있습니

다. 그들 모두가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 때문이겠죠... 아마도.


이제 내려갈 일이 아득하네요.

뱀사골로 내려 갈 겁니다. 9km에 달하는 긴 거리인데, 옛 시절 이곳을 무덤으

로 삼았던 우리의 젊음을 생각하면서 내려오니 금새 끝이 보입니다.

그나마 이 가을에 지리산에 대한 나의 간절함을 삭힐 수 있었다는 뿌듯함이 오

래 남을 듯합니다. 오후 4시 반선에 도착하니 벌써 땅거미가 져가고 있었습니

다.(끝)
  • ?
    솔메(松山)거사 2001.10.30 21:42
    내가 그곳에- 그리고 지나간 想念과 함께 서 있는듯한 산행기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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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희 2001.10.31 07:11
    호호..누렁개를 보셨군요^^ 님의 글을 읽으며 이번에 가지 못한 피아골의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호젓한 산행길이 눈에 선하네요. 다시 돌아온 현실.. 좋은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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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문 2001.10.31 09:16
    이개호님 정말 오랜만입니다.그 동안 바쁘셔서 지리에 못 오셨군요 이렇게 뵙게 되니 참 반갑네요.
  • ?
    정성균 2001.11.03 14:36
    묵묵한 산과 같은 사나이. 오랜만에 다시접한 지리의기록 2탄 , 11.5 나도 가 보련다. 조금 늦었지만. 여하튼 주말 오후 내일의 산행을 위해 기웃거리는 나에게 아주 낭보!!!
  • ?
    이개호 2008.07.14 16:10
    예로부터 우리 선인들은 삼각산을 천하의 명승으로 뽑는데 주저하지 않은 삼각산은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과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진관내동의 경계에 위치한다. 행정구역으로는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과 경기도 고양시 븍한동에 속한다. 북한산은 1983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예로부터 한산, 화산, 삼각산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왔으며 북한산이라 불리게 된 것은 조선조 중종 때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부터라고 추정된다. 북한산이란 이름은 “큰 산“ 이라는 뜻의 ”산“을 한자에서 차음 하여 쓴 한산(漢山)에다, 한강 남쪽의 남한산과 구분 짓기 위해 북쪽에 있는 방향을 고려하여북한산으로 이름지어졌다.

    북한산은 거대한 화강암 체로서 많은 봉우리들로 형성되어 있으며, 백운대를 정점으로 하여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 보현봉, 비봉, 원효봉 등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다. 최고봉인 백운대 (836.5m)를 비롯하여 인수봉(810.5m), 만경대(799.5m)를 일컬어 삼각산이라고 한다. 삼각산은 북한산을 멀리서 볼 때 세 개의 높은 암봉(岩峯)이 마치 뿔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는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신라시대의 명승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북한산에 들어와 수도를 하여 원효봉과 의상봉이라는 지명을 남겼으며, 원효대사가 상운사와 삼천사를 창건하였다. 이어 승가사와 도선사가 창건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수도 한양이 점령당하고 왕이 멀리 피신하는 사태가 발생된 이후 북한산성 축조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이에 대한 오랜 찬반양론 끝에 숙종이 1711년 전란시 피난처 및 방어지로 삼기 위해 단 6개월만에 7,620보(步), 약8.5 ㎞에 이르는 오늘의 북한산성을 축조하였다. 이어 북한산성의 외성으로 1713년 탕춘대성을 축조하기 시작했으나 신하들의 반대의견이 많아 완성을 보지는 못하였다.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는 독립운동 정신이 각인되어 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백운대 최정상 바닥 암반에 3.1독립운동의 정신, 민족의 얼이 69자로 새겨져 있다. '독립선언서는 기미년 2월10일에 육당 최남선이 썼고 3월1일 탑골공원의 독립선언만세는 전세용이 선도했다.'는 내용이 있다. 네 귀퉁이에는 경천애인, 즉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네 글자가 좀더 큰 글씨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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