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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2002.05.27 13:51

지리산과 지리망산

조회 수 229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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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면 지리산이 그리워 지리망산이 된 산이 있다.

날이 맑으면 지리산이 보인다는데... 나는 그 섬에 갔어도 지리산을 보

지 못했다. 나에게 지리산은 언제나 먼 곳에 있었다.

5월 25일 경남 통영의 사량도에 갔다. 오래 전 뱀이 많아 사량도(蛇良島)

라는 이름을 얻었다지만 지금은 지리산이 보고 싶어 사람들이 몰려 들고

있다. 일년 동안 50만명의 인파가 지리산이 그리워 사량도에 온다. 내가

갔던 날도 여전히 사량도는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나의 방식으로 이 세상의 산들을 "지리산과 지리산이 아닌 산"으로 구분

한다면 그 중간에 있는 산, 지리산은 아니지만 지리산 같은 산이 있다.

산세가 지리산을 닮은 산으로 백아산 처럼 작은 지리산이 있는가 하면,

지리산이 갖고 있는 의미를 함께 간직한 불갑산이나 화학산 같은 산도 있

다. 그런가 하면 거친 삶을 살았던 젊음의 흔적도 없고 산세도 닮지 않았

지만 지리산이 되고 싶어하는 산이 있다. 사량도의 지리산이 그런 산이

다. 사량도에 간 이유는 또 다른 지리산을 만나기 위해서 였다. 내가 그

섬에서 지리산에서 느낄수 있는 의미를 깨달을수 있을까. 사량도로 향하

는 철부선 속에서도 나는 그러한 몽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

면 나는 그러한 소망을 담고 사량도로 향했는지 모른다.


하룻밤을 사량도에서 보내고 26일 여명이 시작되는 시각, 지리산을 향했

다. 지리산이 주고 싶어하는 가장 큰 메세지는 간절함이다. 새로운 세상

을 향한 애끓는 기원이 그것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없는 절규를 외

치며 지리산의 산새가 되어 날아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늘까지 지리산

의 흙이 되어서도 이루지 못한 꿈을 꾸면서 지리산의 고혼으로 허공을 떠

돌고 있다. 지리산에서 토로하는 그들의 한숨은 지리산의 바람이 되었

다. 지금 그들의 페이지는 빛바랜 한 장의 편지처럼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안타까움만 더하고 있다. 사량도의 지리산은 지리산이 그리워

지리망산이 되었다. 지리산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느끼고 싶다면 지리

망산이 제 격일듯 싶었다.

지리산에서 느낄수 있는 소회의 두 번째는 치열함이다.

신념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수 있는 치열함... 명예도 돈도 사랑도 다 버

릴수 있는 용기는 쉽지 않다. 그들에게도 세상의 모든 가치들은 한창 여

름 날의 나무잎 만큼이나, 또 생솔가지 타오르는 새까만 연기 만큼이나

벗어 던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분명 더함이 없을 용기가 필요했을 터이

다. 또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지리산에 피를 뿌

려야 했고, 그들은 스스로의 신념을 위해서 피를 뿌렸다. 그러나 분명 목

숨을 지키기 위함도 신념을 지키기 위함도 모두 치열함의 소산이다. 두

부류의 젊음이 이제는 치열한 현장을 함께 살면서 투쟁햇던 공유만으로

도 이제는 하나가 되었으리라고 믿고 싶다.

그렇기에 지리산이 주는 세번째의 메시지는 화해와 사랑이다.

증오 속에서도 미운 정이 있다는 것을 지리산은 말하고 있다. 상대의 가

슴팍에 총부리를 겨누면서도 선뜻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감정의 다양성

은 사람이기에 가능하다. 동물적 삶의 본능보다도 인간의 감정은 더욱 복

잡한 것이기에 우리는 죽음으로 감정적 초탈을 만날수 있는 것이다. 생전

에 가슴 속에 품었던 칼날을 죽어서까지 안고 갈수는 없다. 지리산의 흙

이 되면서 그들은 이제 하나가 되었고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를 우

리에게 전하고 있다.


산을 오르면서도 나는 그런 생각 속에 침잠하여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째각째각 소리내며 돌아가는 시계의 초침처럼 나의 상념은 더욱 깊어가

고 있었다. 옥동마을 떠나 임도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성자암이라는

암자가 나온다. 석가모니불을 외치는 독경소리가 "침묵의 소리" 마냥 조

용하게 들려온다. 산자락을 휘감는 오솔길은 어쩐지 지리산의 격에 적합

하지 않다. 지리망산과 성자암, 그리고 불모산으로 향하는 삼거리를 지나

면서 지리망산의 치열함은 시작된다. 칼같은 바위길이 계속되고, 암벽타

기와 같은 아슬아슬함이 있기에 지리망산을 찾는 이들은 지리산에 왔다

고 믿게 된다. 오랜 세월 해풍에 시달리면서 바위산을 만들고 깍아지른

벼랑사이로 허리가 꺽인 채 아슬하게 살아남은 노송(老松)에게서 생명을

위한 투쟁과 삶을 향한 치열한 신념을 느낄수 있다. 능선길 아래로는 바

람을 타고 커다란 파도가 일렁거린다. 고개를 들면 한려수도의 맑은 물길

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 그 그림자가 지리산자락의 동구처럼 올망졸망하

다. 웅크린 바위는 기묘한 모습으로 세석의 번뇌에 울고 있다. 묏부리와

능선은 허망한듯 말이 없다.

불모산으로 오르는 길은 더욱 험하다. 일렁거리는 파도는 금방 산 위까

지 치솟아 오를 듯한 기세이다. 산길은 온통 칼바위로 이어진다.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데 아랫도리가 찌릿찌릿할 만큼 위태위태하게 내려 온다.

가마봉을 오르면서는 밧줄을 잡고 힘을 써야하고, 내려오는 길은 수직사

다리를 타야한다. 스스로 택한 길이고 이곳에서 아무도 도아주는 이는 없

다. 나의 힘만으로 나는 이 길을 건너야 한다. 이곳에 도달하고서야 지리

망산이 지리산을 그리워 할 자격을 가졌다고 믿었다.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치열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 눈을 부릎뜨고 앞으로 한발한

발 나아가야 하는 노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방구들 처럼 납작한 돌들

이 바닥에 깔려 있고, 걸을 때마다 발아래 자글거리는 소리는 지리산의

외침이다. 연지봉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옥녀봉을 행했다. 옥녀봉의 전

설은 분명 슬프다지만, 지리산의 고난과 비교하면 감정의 낭비일수 있

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기로에 놓인다면 여인의 정조는 무엇이 되는가.

죽음으로 지켜야 할 가치인가, 아니면 살기 위한 방편이 되어야 하는가.

지리산에서는 살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살아야 한다는 목표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고 믿는다. 옥녀봉에서 내려와 금평마을에 11시에 도착

했다.

지리망산은 오르지 못했고, 지리산을 바라볼수 있는 봉우리 몇개를 지나

왔다. 지리망산 마저도 지리산처럼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간직해야 하는

가 보다. 섬에서 나가는 배시간을 염두해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상이

라는 현실은 꿈보다 앞선다. 지리산을 꿈꾸면서도 지리산이 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산행후기))

평소 존경하는 분들과 동행이 되어 사량도 지리산을 찾아가는 기쁨은 두

배가 되었다. 허회장님을 비롯하여 박재순.임진택.임종문.이광형님들이

그들이다. 또 통영시청의 강석수 사량면장과 박영기 문화관광과장이 안내

를 모두 맡아주어 나는 몸만 있으면 되었다. 그리고 마음껏 지리산을 느

끼고 돌아 왔다. 동행과 안내, 모두 나에게는 소중한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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