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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2002.05.20 23:49

속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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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1,075m 충북 보은군 사내리)

화북매표소-(2시간)-문장대-(30분)-신선대-(10분)-경업대-(20분)-금강휴게소-(30분)-비로산장-(10분)-세심정휴게소-(40분)-법주사

도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는데
사람이 도를 멀리하려 하고
산은 세속을 여의치 않는데
세속이 산을 여의려 하는 구나
道不遠人 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

고운(孤雲) 최치원은 관직을 떠나 말년을 많은 곳에서 생을 보내며 살았다. 그 중 속리산(俗離山)에 내려와 느낀 바를 이 한편의 시로 표현하고 있는데 조선팔경의 한 곳인 속리산의 고결한 모습이 담겨진 시라고 느껴진다. 속리산의 옛 이름은 광명산(光明山), 지명산(智明山), 구봉산(九峯山), 미지산(彌智山), 형제산(兄弟山), 소금강산(小金剛山), 자하산(紫霞山), 등 8개의 이름으로 불리었고 내석문(內石門), 외석문(外石門), 상환석문(上歡石門), 상고석문(上庫石門), 상고외석문(上庫外石門), 비로석문(毘盧石門), 금강석문(金剛石門), 추래석문(墜來石門)이라는 8개 석문이 있고 문장대(文藏臺), 입석대(立石臺), 경업대(慶業臺), 배석대(拜石臺), 학소대(鶴巢臺), 신선대(神仙臺), 봉황대(鳳凰臺), 산호대(珊瑚臺)라는 8개의 대도 있다. 뿐만 아니라 속리산은 8개의 봉우리 천황봉(天皇峯), 비로봉(毘盧峯), 묘봉(妙峯), 길상봉(吉祥峯), 문수봉(文殊峯), 보현봉(普賢峯), 관음봉(觀音峯), 수정봉(水晶峯) 등이 있어 작은 산군 속에서도 저마다의 암봉미를 자랑하며 아기자기한 산세를 이루고 있다.

속리산은 문장대의 높이가 1,054m이고 천황봉이 1,057m이므로  천황봉이 상봉이다. 하지만 현재 천황봉 코스는 춘계 산불 방지 기간으로 통제가 되고 있고  속리산을 찾는 탐방객은 대체적으로 문장대를 상봉으로 알고 또 문장대 코스를 많이 찾는데 문장대를 가장 빠르고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은 장암리마을이 있는 화북매표소에서 오르는 코스이다. 화북에서 문장대를 오르는 길은 법주사를 안고 있는 속리산의 앞쪽 보다 산행하는 사람이 비교적 적은 곳으로 한적하며 조용한 산행을 즐길 수가 있는 길이다. 맑은 계곡 물소리와 함께 문장대를 향해 시작 되는 산행은 거의 2시간을 가까이 오르는 문장대 바로 아래까지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 속리산은 비록 산이 높지 않고 계곡도 깊지는 않지만 작은 암봉들과 계곡이 어우러진 풍성한 숲을 가진 아름다운 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등산로는 오래전에 돌계단으로 축조가 된 것으로 보이나 계단의 높이가 보폭에 알맞게 만들어져 있어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산행을 할 수가 있었다. 세속을 떠나 있는 산이라 하여 속리산(俗離山)라 하였던가 하지만 나는 속리산을 산행 하면서 세속의 정과 사람의 정을 듬뿍 느꼈다.


산행 전날 민박한 장암리마을 식당 아주머니의 준비 해준 인정미 넘치는 새벽식사와 도시락에서 또 화북분소(홍대의분소장)의 지원으로 산행에 동행하며 카메라 배낭을 지어준 김종진씨, 나는 산행 내내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산 조차 세상을 떠나 있어도 사람의 정은 떠나 살 수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네 가족용으로 쓰는 것이라고 깨끗이 싸두었던 도시락을 꺼내 정성스럽게 밥과 반찬을 담아 도시락을 준비해 주고 행여 새벽 산행에 허기가 질까 새벽밥까지 챙겨 주고는 단지 고향사람에 대한 정이라며 밥값 조차 제대로 받지 않는다. 밤잠 설쳐 가면서 산행에 동행해 준 산불감시원 김종진씨,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와는 동갑 나기 이다. 52년생 용띠로 나는 작년 한해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잘 되지가 않았고 몸까지 아파서 수술을 해야 하는 어려운 한해였다고 하니 김종진씨 자신도 서울에서 하던 일이 잘 되지 않아 지금 임시로 고향에 내려 와 있다는 것이다. 12지신상 조각이나 그림에서 보면 어디 용띠 만큼 화려하고 멋있는 띠가 있나 만 오늘 만난 용띠 두사람 지난 한해 운수가 그리 좋지 못해 형편이 좋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용이 두마리니 쌍용이다 혹 쌍용이 이른 새벽부터 산을 오르니 비라도  내리지는 않을까 날씨가 걱정이 되어 산을 오르면서 자꾸만 하늘을 쳐다 본다.
새벽에 산행을 처음 시작 때에는 분명 안개 속으로 트인 하늘에서 별들이 반짝 그렸다. 그런 아침이라면 사진이 좋겠다 싶었는데 자꾸만 하늘을 쳐다봐도 반짝이는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문장대에 도착한 시간이 일출 전, 아직도 5시가 조금 못되었고 여명이 밝아 오는 동쪽으로 카메라를 차리니 수줍은 듯 떠오르던 해가 잠깐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구름속으로 숨어 버렸다. 운해가 출렁이고 햇살이 신록에 부서지는 아름다운 속리산의 진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조선팔경의 맛을 느낄 수있는 사진 두어장은 찍은 것 같다.

7시가 넘어서 겨우 촬영을 끝내고 문장대 휴게소로 내려와 식당집 아주머니가 준비해 준 도시락과 휴게소 측에서 제공하는 우거지 국으로 이른 아침식사를 하였다. 문장대는 세조의 꿈속에 월광태자가 가르켜준 이 곳에서 오륜(五倫)과 삼강(三綱)을 읽으며 신하들과 강론을 하였다고 하여 이 봉을 문장대(文藏臺)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또 한편으로는 정상이 언제나 구름과 안개에 가려 있는 봉이라 해서 운장대(雲壯臺)라고 불리기도 한다.
문장대에서 신선대로 가는 능선길은 평탄하여 비교적 수월하게 걸을 수 있는 길로 약30분 정도가 소요 된다. 신선대에서 직진하면 입석대와 비로봉을 지나 천황봉으로 가는 코스인데 현재 이 코스는 춘계산불 방지기간으로 통제가 되고 있다. 신선대에서 우회전 하여 밑으로 10여분 내려서면 임경업장군이 무예 연마와 수도를 하였다는 경업대이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비운에 쓰러진 명장의 일생을 영웅화한 역사소설 임경업전의 대충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임경업은 충청도 충주 달천촌에서 태어나 25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백마강 만호가 되고, 천마산성 중군이되어 산성을 축조한 뒤 사신 이시백을 따라 중국에 들어간다. 이때 마침 호국이 가달의 침략을 받고 명나라에 구원을 청한다. 명나라에는 마땅한 장수가 없어서 조선의 임경업이 청병대장이 되어 출전하여 호국을 구원한다. 귀국 후에 호국이 강성해져서 다시 조선을 침략하고자 하니, 조정에서는 임경업을 의주부윤으로 삼아 호국의 침입을 막도록 한다. 임경업의 용맹을 두려워한 호국은 의주를 피해서 함경도로 돌아 도성을 공격하여 인조의 항복을 받고 회군을 한다.
의주에 있던 임경업은 이 소식을 듣고 회군하는 호국군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인질로 잡혀 가던 세자와 대군의 만류로 할 수 없이 길을 열어 준다. 호왕은 명나라를 치겠다고 조선에 청병을 하면서 임장군을 대장으로 보낼 것을 요구한다.
김자점의 주청으로 조선 조정에서는 임경업을 호국으로 파견을 하였는데, 임경업은 명나라와의 옛 의리를 생각해서 명나라로 하여금 거짓 항서를 올리게 하고 귀국을 한다. 이 사실을 안 호왕은 다시 임경업을 호국으로 보낼 것을 요청하지만, 임장군이 호국의 계획을 미리 알고 호송하던 호병을 죽이고는 중이 되어 명나라로 도망한다. 임장군은 명군과 합세하여 호국을 정벌하고자 하였으나, 승려 독보의 배신으로 호군에게 잡히게 된다. 이러한 임장군의 위엄과 충의에 감복하여 호왕은 오히려 세자의 일행과 임장군 모두 본국으로 송환하도록 한다. 임장군의 귀환소식을 들은 김자점은 자기의 죄를 숨기고자 왕을 알현하고 나오는 임장군을 암살한다. 왕은 꿈속에 나타난 임장군의 억울함을 간과하고 김자점을 잡아 처형하고는 임장군을 포상한다는 내용이다.

임경업장군의 기상이 느껴지는 경업대에서 금강 대피소로 내려오는 길은 제법 가파르며 돌 계단도 높아 천천히 내려 오는 것이 좋다. 20여분 이렇게 내려서면 금강휴게소가 나오는데 속리산은 등산로 곳곳에 휴게소가 많이 자리하고 있어 구태여 간식거리나 식량을 준비하지 않고도 산행을 할 수가 있으니 편리해서 좋은 것인지 휴게소가 너무 많아 자연환경을 헤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계곡을 따라 계속하여 30여분을 내려오면 비로산장이 맑은 계곡물을 산장 앞으로 흘러 보내며 마치 선인(仙人)이라도 살고 있는 듯이 적막하게 자리하고 있다. 속리산의 계곡은 지리산이나 설악산과 같이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래쪽으로 내려 오면 수량이 점점 많아져 제법 계곡의 모습을 갖춘다. 비로산장에서 10여분 내려오면 세심정(洗心亭)휴게소이다. 마음을 씻는 곳이라고 하니 어느 시인의 싯귀 한 구절이 생각난다. "세속에 젖은 사랑과 마음의 때를 씻고 山으로 가리다" 세심정에서는 山을 오를 때 마음을 씻어야 하는 것인지 山을 내려 올 때 마음을 씻어야 하는 것인지! 세심정휴게소의 이상기님이 권하는 생수로 목도 마음도 모두 시원하게 씻고 도로를 따라 법주사로 내려 온다.

곤륜산 아뇩달지의 정기가 흘러 백두산에 천지를 이루었고, 그 기운이 아래로 내려 금강산과 오대산, 태백산을 타고 속리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 흐름 중심부의 기운이 모여진 곳에 절을 세웠으니 그 절을 법주사라 하였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 A.D553년에 건축이 되었고 동국여지승람과 조선불교통사 등에는 법주사 설립에 대한 짧은 설화를 남기고 있다. 당시 의신이라는 스님께서 천축국에서 오래 동안 많은 공부를 마치고,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귀국을 하였다고 한다. 스님께서는 불법을 전할 마땅한 절을 지을 터를 찾아 다니시던 중 스님께서 타고 가던 노새가 현재의 법주사 터에 이르러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노새의 기이한 행동에 스님께서는 자리에서 멈춰 사방을 둘러 보니 산세가 빼어 나고 수려하여 이 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절의 이름도 노새의 등에 싣고 다니던 경전 즉 부처님의 법이 이 곳에 머물렀다는 뜻으로 법주사(法住寺)로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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