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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에게

이 세상의 모든 산을 "지리산과 지리산이 아닌 산"으로 구별 짓는다고

했었습니다. 그만큼 지리산은 나에게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형도 매일반이지만... 요즘들어 우리들 소시적에 지리산에 미쳐 가면서

함께 키높이만한 베낭을 메고 고통을 사서 감내하던 때가 그리워 집니

다. 입산통제기간이 이어지고 있어 그동안 지리산을 찾지 못했습니다.

사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명분있는 일을 찾아서 입산허가를 받아 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입산통제이유가 단순한

산불경방에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리산의 산짐승을 비롯한 생태보호에

더 큰 이유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입산통제가 풀리기만 기다리기엔 너무 다급했습니다. 근간에 제

주변에 머리아픈 일들이 연달아 생겼고, 무언가 탈출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연히 지리산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능선이 통제되고

있어 갈곳이 마땅찮았습니다. 유일하게 가까이 있는 곳이 바래봉 정도인

데... 사실 그곳은 내가 썩 좋아하는 곳은 아닙니다. 형과 함께 갔었죠.

10여년전 한 여름 어느 날에... 정령치에서 출발하여 바래봉까지 지루한

능선길을 넘어서 바래봉을 거쳐 운봉리로 내려왔던 기억이 선합니다.

올라가던 길에 물이 떨어져서 죽을 고생을 했던 기억도 새롭구요. 그날

이후 산행길에 물 때문에 고생을 한 적은 없습니다. 워낙 고생을 해서인

지 언제나 식수부터 챙기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경험은 지혜의

어머니"라는 말이 생겨났나 봅니다.

바래봉에 가까이 갔을 때 곳곳에 스며있는 인간들의 흔적이 싫었습니

다. 산중에서 양(羊)을 치는 목장을 보았습니다. 곳곳을 파헤친 흔적은

머리부스럼 처럼 흉했고, 얼굴에 난 생채기 처럼 흉터가 되어 있었습니

다. 그날 이후 바래봉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산철쭉이

유명나고 너나없이 만춘의 계절을 음미하기 위해서 바래봉을 오른다지만

가기 싫었습니다. 그후 단체산행을 따라 딱 한 번 가보았으니까요.


모처럼 바래봉을 찾기로 하고 5월 8일 하루 짬을 내었습니다.

기점은 팔랑마을로 정해 놓고 새벽같이 달려 갔습니다. 어제 밤까지

비가 내려서 아스팔트길 위로 안개가 자욱합니다. 차창을 스치는 새벽공

기가 아직도 차갑습니다.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팔랑마을에 도착했습니

다. 차를 파킹하기 위해 이집저집 기웃거리는데, 마침 젊은이 하나가

집밖에서 분주한 손길을 놀리고 있길래 그리로 다가갔습니다. 도회에서

살다가 이곳에 들어와 살고 있는 26살의 학부출신 청년이었습니다. 꽃다

운 나이에 이런 두메산골에 제발로 걸어 들어온 젊음이 안타깝기도 하

고,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팔랑마을 7가구 중에 유일한 20대라는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한 때 지리산은 젊음이 바글거리던 현장이었지

만... 그렇고 보면 동란시절 빨치산과 국군이 총부리를 맞대고 싸웠던

그 때가 지리산의 전성기가 아닌지 모르겠네요. 이곳을 무대로 죽어나간

젊음이 있던 때, 분명 지리산의 황금기가 아니었을까요. 지리산이 우리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큰 역할은 바로 그 때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죠.

지금 팔랑마을 그 젊은이는 고사리를 채취하여 가용을 만들고 고로쇠물

을 팔아 저축한다고 합니다. 그에게 다가올 미래는 어떨까요. 나는 그가

머지않아 이곳을 떠날수 밖에 없을거라는 불안감에 일순 휩쌓였습니다.

고사리와 고로쇠물이 그의 꿈을 메꾸어 줄수 없다는 것은 너무 명약관화

하기 때문입니다. 지리산을 무대로 다른 젊은이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겠

다는 그이 야무진 꿈이 안타까웠습니다. 나는 그에게 청소년 야영장을

만들어 보라는 조언을 하였지만 내 스스로도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

만은 결코 지울수 없었습니다. 지리산이 수십년전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는 분명 회한의 현장이었지만, 지금을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희망의 땅이

자 사랑의 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 소망을 26살의 그 젊은이가 이루어

주기를 바라면서 다시 만나자는 철떡같은 약속을 하고 산행길을 재촉하였

습니다.


비온 뒤끝의 서늘한 기운에도 계절은 속일수 없습니다. 산속에는 싱그러

운 연록의 향취가 드높습니다. 꽃보다 풀이 더 아름답다는 계절이지요.

지지배배 울어대는 이름모를 산새의 지저귐이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길 곳곳이 작은 냇물을 이루고, 가녀린 계곡에는 거센 물살이 넘치듯

흘러 갑니다. 웅덩이 진 곳곳에는 송화가루가 노랗게 갖혀 있고, 곰취나

물이나 산두릎 같은 산나물이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조금 뜯어 볼까하

다 그만 두었습니다. 모두 산사람들의 양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가고 있는 사람이 꽤 여럿 보이는데 길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습니

다. 내가 앞장서 가게 되었고, 나의 발자국 하나하나가 그들의 이정표가

되고 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러워 집니다. 그들의 좌표가

되기 때문이죠. 백범 김구 선생의 글 중에 "눈길을 어지럽게 걷지 마라.

뒤따르는 사람의 이정표가 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연로하신 분들인

데, 내 발걸음을 놓치지 않고 잘도 따라 오고 있습니다. 그 분들과는 30

분 쯤 지나서 팔랑치와 바래봉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헤어졌습니다. 나는

바래봉으로 곧장 오르는 길을 택했고, 그분들은 팔랑치로 올라 가신다고

합니다. 나는 바래봉까지 올랐다가 팔랑치를 거쳐 하산하기로 했습니다.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산속은 이태리안글라스 목초가 뒤덮고 있습니다.

지리산에서 흔히 보는 풀들은 자취를 감추고 없습니다. 운봉목장의 풀씨

가 날아와 지리산 한자락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권력

자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곳에 목초씨앗을 뿌렸을까요. 이 땅을

영화 속의 ok목장 처럼 바꿀수 있다고 믿었을까요. 무슨 일이든지 "하면

된다"는 단순함이 빚은 오류인 성 싶습니다만, 그 폐해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을 다루는 일은 정말 신중해

야 합니다. 간간히 구석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원추리, 산죽, 얼레지, 옥

잠화 같은 풀이나 작은 나무들이 수줍은듯한 모습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결코 외국산 목초풀을 이기는 힘들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개망초, 달맞

이꽃 같은 풀들은 동란시절 미군들이 쏘았던 포탄에 풀씨가 붙어 우리의

산야에 퍼지게 되었다는데, 우리 손으로 직접 뿌린 풀씨는 더 멀리 퍼지

지 않겠습니까.


호젓한 산행이 이어지다가 운봉목장 옆을 지나면서 왁자지껄한 사람소리

가 들려 오기 시작합니다. 철쭉군락지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뜻이죠.

철쭉나무가 한 두 그루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동안 가파른 길이 이어지고 팔랑치와 바래봉을 잇는 능선에 도착하였습

니다. 붉은 빛깔의 철쭉꽃이 수도 없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띠를 이루기

도 하고, 무더기를 이루기도 하면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황홀할

만큼 아름답습니다. 목장을 만들면서 파서 던져놓은 철쭉나무가 밀생하

여 지금의 군락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높은 곳, 더 거친 땅에서는

분명 우리 것이 강하다는 증좌가 아닐런지요. 아래 쪽은 외산 목초풀이

주인이 되어 있지만, 높고 척박한 땅에는 우리의 산철쭉이 분명 지배자

가 되고 있습니다. 붉은 빛깔은 선혈이 되어 흐르고 있었습니다. 길섶으

로 계속 이어지는 철쭉군락이 "피의 강"을 이루고 있는데, 그 모습에서

수십년 전의 수많은 젊음들이 죽어가면서 흘렸을 뜨거운 피를 상상했다

면 나만의 도그마가 될까요. 분홍빛 꽃잎은 허망함을 느끼게 하고, 붉은

빛 꽃잎에서는 젊음의 열정을 느낄수 잇습니다. 정열을 바쳐 자신이 추구

했던 신념을 따랐는데도 결국 허무만을 느끼면서 하산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원혼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도 꽃잎은

피어나고... 가려진 햇볕을 받기위해 투쟁적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

다. 그렇게 5월의 지리산의 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붉은 꽃 때문인지 바래봉은 차라리 정상이라는 말

이 무색할 만큼 초라하게 보입니다. 지리산의 늦봄은 이렇듯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하산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높은 곳에서만

머무를수 없는 것이 현실이잖습니까. 이제 지리산에서 3시간여의 짧은

단상들을 차곡차곡 접어야 할 때인가 봅니다. 다시 26살의 젊은이가 사

는 집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 갑니다.

아침 일찍부터 일터로 향해야 하는 현실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5월이 가고 철쭉이 모두 사그러드는 날 형을 다시 찾아 가겠습니다. 차분

한 마음으로 형과 함께 지리산 능선을 따라가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 ?
    okdol 2002.05.11 08:55
    계속해서 산행기를 올리시는 님이 부럽습니다. 그리고 글들이 너무 아름답고 흡사 나 자신이 산을 오르고 있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 ?
    다예 2002.05.21 11:49
    잔잔한 가슴으로....결코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산을 대하는 아름다운 가슴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리며 항상 건강하십시오....
  • ?
    전경희 2002.05.22 15:11
    인터넷상에서 자주 만나는 이개호라는 이름이 반갑네요.산행기도 참좋구요.님의 지리산 사랑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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