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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

일요일 아침. 부산에서 08:30, 버스를 타고 구례 화엄사로 향했다.

화엄사에서 내린 사람은 나, 그리고 종주를 준비한 듯한 무거운 등산 가방 아저씨 두 분.

그 분들과 화엄사 입구에서 비빔밥을 먹고, 서울에서 내려오는 내 친구들과 합쳐

다섯은 험하디 험한 화엄사 코스로 종주를 시작했고,

--- 저와 부산에서부터 함께 오신 아저씨 두 분, 혹시나 이 글을 보신다면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네요~

5시 무렵이 되어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다.

깐깐한 산장지기. 그리고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서서히 쏟아붓는 비.

지리 초행길에 너무 험한 길을 선택했나 하는 후회도 잠시. 함께 올라온 아저씨 두분과 우리 셋,

또 역종주로 마지막 밤을 맞은 서울내기 아저씨와 함께 술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웠다.



8/11

몹시 뒤척이다가 잠에서 깬 비오는 아침. 궂은 날씨에 다들 지쳤다보다. 아저씨 두 분은 아직 주무시는지 보이지 않고,

서둘리 아침을 준비해 밥을 먹었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는데... 서울에서 온 친구들 배낭을 팽개치면서 이거 원 무거워서 못올라가겠다는 둥 버럭 화를 내고

자기 가방에서 먹을 것들을 다 가지고 가라며 소리치고는 훌쩍 내려가버리다.

뜬금없이 대판 싸우게 돼 막막해진 나.

먹을 것들을 주섬주섬 가방에 구겨넣어 노고단을 출발.

빗줄기와 더불어 서러운 눈물이 또 한 비를 이룬다. ㅜ.ㅜ

한시간여쯤 홀로 걸었을까... 강원도에서 오셨다는 우리 아버지어머니뻘 되시는 분들과 합류

삼도봉까지 함께 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서러움을 잠시 잊고,

"재미있게 종주해요~^^"라고 격려해주시는 아주머니 말씀에 힘이 솟았다.

토끼봉쯤 해서 그 분들과 헤어지고 연하천으로 든다.

잠시 개인 날씨. 연하천에서 라면을 먹고 잔반이 생겨 화장실에 버리려는데

연하천 산장지기 아저씨~~ "딱 걸렸어 그만~ 딱걸렸어. 아가씨, 내가 방금 화장실에 잔반 버리지 말라고 경고해부렀는데 아가씨가 딱 걸려부렀네~"라고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혼내시길래 그 때 연하천에서 밥먹던 분들 모두들 다 쳐다보시게 되었다. 에구 쪽팔려~

넘 심하게 혼내시길래 안그래두 친구들로부터 버림받아서 서러운데 닭똥같은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에구~ 다시 연하천에 갈 일이 있으면 무슨 낯으로 가지? ㅋㅋㅋ

연하천 산장지기님께 쌀과 김치, 그리고 부식 몇가지를 죄송스러운 마음을 대신해 드리고,

역시 홀로 연하천에서 출발. 경치좋은 봉우리에 다다랐을 때 인상좋으신 오라버니들을 만나다.

석경 오라버니, 무현 오라버니. 이 분들과 하산할 때까지 계속 함께했다.

정말 악천후였다. 눈앞이 안보이는 비바람에 서서히 떨어지는 체력. 아까 연하천에서 별로 먹은게 없으니 당연하지... 쯧쯔~

먹은게 없으니 오라버니들께 뻔뻔스럽게도 행동식좀 나눠주세요! 힘없는데 뭐 먹을꺼 없어요? 라고 부탁 아닌 강요를 했으니

참 맹랑한 아가씨를 만나 그 분들도 고생 꽤나 하셨을꺼다.

아마 나라면 버리고 가지 데리고 안갔을 텐데 참으로 오라버니들 고마운 분들이다.

오후 2시 40분. 풍광 좋은 벽소령에 다다라 물도 뜨고 엽서도 샀다.

지리산 종주기념 스탬프를 찍은 엽서에 사랑하는 지인들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 넣고 잠시 흐뭇~

벽소령~세석 구간은 가장 힘든 마의 코스로 무려 3시간 반이나 걸린다는 얘길 듣고

용기를 충전하여 오르다.

정말 힘들었다. 다리에 힘이 없고(당근~ 먹은게 없으니... ㅜ.ㅜ) 무릎이 저려와 도저히 걸을 수 없는데도 오라버니들은 선비샘까지 빡시게 걷게 하셨다.

그 땐 정말 몸이 힘드니까 막 짜증내고 힘들어하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잘못한 듯... ^^" 오라버니들이 더 힘드셨을텐데 미안해요~~~

힘이 들 때 힘들다는 말을 아껴두는 것도 중요한 훈련인 듯 하다.

정말 추웠던 선비샘에서 사과를 나누어먹고,

중간에 무릎 부상을 입은 서울에서 온 오라버니를 또 만나 넷은 합류하여 세석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도착하니 벌써 오후 6시 40분경.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저께는 1,600명이 와서 다들 앉아서 자고 비박도 많이 했다는데

오늘은 한산한 분위기다. 역시 궂은 날씨 탓에 단체팀들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둘러 자리를 받고 식사를 준비하는데

그렇게 맛있는 카레밥이...!!! 아마 가방 무겁다고 던져놓고 성삼재로 하산해버린 친구들은 모를꺼다.

오라버니들이 그러는데 가방 무겁다고 지리산 종주를 포기한 사람은 처음 들어봤다고들 한다.

난 그래도 세석까지 무사히 왔으니...! 암튼 뿌듯했다.

생각컨데 홀로 산행이 보다 좋은님들을 많이 뵈올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덕분에 나보다 나이 많은 오라버니들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도 나누고 힘든 산행길에 있어서 좋은 보호자가 돼 주기 때문이다.



8/12

세석에서 느직하게 자고 아침을 거하게 먹은 뒤 부른 배를 달래 촛대봉까지 올라 사진을 찍다.

하늘이 맑게 개었다.

이리도 좋은 선경은 아마 다시 볼 수 없을 듯. 역시나 오라버니들 말씀대로 종주길은 힘이 들지만 반대로 이렇게 산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다고!!!

여기서부터는 이제 좋은 경치들을 감상하며 무리없이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세석부터 천왕봉까지는 예전에도 종종 다녀보던 길이었지만 다시봐도 예쁘다.

이 선경들을 혼자보기 아까워 많이 찍어다가 엽서크기 사진으로 뽑아서 지인들에게 보낼 예정이다.

나 종주 했다고~~^^*

장터목에 도착해 스승님께 엽서 한장 써부치고,

아이고 나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천왕으로 가는 길을 더듬어

하늘에 통하는 문을 지나 마침내 천왕봉에 다다르다.

네번째 만나보는 천왕봉은 만원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야유회 오신듯 구성지게 가락도 뽑으시고,

'한국인의 기상 이곳에서 발원하다'는 비석에서 서로 사진을 찍으려고 줄서있고 ㅎㅎ

좀 쉬다가 우리는 가장 단시간의 하산코스인 법계사로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가는게 더 힘들다. 무릎에 무리가 오기 때문이다.

폴짝폴짝 뛰어다니다가 그만 계단에서 몇번 미끄러지기까지 하고,

로타리에서 라면과 햇반을 먹고, 칼바위에서 발담그고 좀 쉬다가

하산하니 어느덧 오후 5시 20분.

차시간이 빠듯해(5시 40분) 소원하던 동동주를 맛보지 못하고 히치하이킹을 해 진주행 버스를 타는데 성공하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니 서부산 톨게이트다.

문득 아까 오라버니가 주신 명함을 보면서 생각. 사법시험 합격하기 전까지는 연락하지 마세요~ ㅋㅋ

물론이다. 종주를 결심한 것도 힘든 고시의 여정을 이겨낼 힘이 과연 나에게 있는가 하는 것을 테스트해보기 위한 것이었으니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서서히 오른다. 두려움이라도 없으면 자만해 미끄러지기 쉽기에.



--- 지리산에서 저를 만나셨던 모든 분들 무사히 종주 마치셨길 바랄께요~

처음 종주였는데도 노고단에서 세석까지 하루만에 주파할 수 있었던 것은 저를 도와주신 좋은님들 덕택이었습니다.

종주할 때는 무지 힘들었는데 내려오고나니 다시 가고프네요~ ㅎㅎ

모두들 건강하시고 또 산에서 뵈어요!!!



  • ?
    오 해 봉 2003.08.14 01:42
    왕초보 11.12.13.이라고해서 그런줄 알았더니 선수네요.
    여자혼자 그것도 날궂을때면 프로로 간주되고
    고시도 무난할것 같습니다.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 ?
    우주인 2003.08.18 21:33
    님의 용맹에 감탄! 저도 용기가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 ?
    진경선 2003.08.20 11:25
    왕초보 아니시네요~ 노고단에서 세석까지 하루만에...헉~
    연하천까지도 힘겹게 도달했던 저는... 부끄럽습니다...흑...
  • ?
    먼곳의 물 2003.10.10 01:20
    우왕~ 셤 잘보셔요~~저는 진짜진짜 왕초본데 나홀로 종주 해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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