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저 달처럼 차오르는데
네가 쌓은 돌담을 넘지 못하고
새벽마다 유산되는 꿈을 찾아서
집을 수 없는 손으로 너를 더듬고
말할 수 없는 혀로 너를 부른다
몰래 사랑을 키워온 밤이 깊어가는데
꿈의 페달을 밟고 너에게 갈 수 있다면
시시한 별들의 유혹은 뿌리쳐도 좋다.
최영미'꿈의 페달을 밟고'
25일.
밤새 덜커덩 거리는 소리는 간간히 나를 잠에서 깨웠고,
심하게 부는 바람은 마치 장터목 산장을 한입에 삼켜 버릴 것 만 같았다.
산행 마지막으로 일출을 보고자 했던 바램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오전 내내 쏟아지는 눈보라로 우린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루만 더 있자.
내일이면 분명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눈꽃을 실컷 볼 수 있을꺼야.
오전 내내 고민 고민 하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맘이 편했다.
하루종일 발목이 묶인 우리는
간간히 방송을 통해서만 눈으로 인해 통제가 되고,풀리고를 반복한다는
소식을 들을 뿐 언제쯤 이 눈보라가 멈출지는 아무도 몰랐다.
답답하여 밖으로 나가는 용기를 내 보았다.
그 눈보라 어찌나 심한지 잠시도 서 있을 틈을 주지 않았다.
산장앞 낮게 하늘을 배회하는 새들도 날개를 펴는 용기를 내 보지만
바람을 이길 재간이 없나보다.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할뿐....
두사람은 낮잠을 청했고, 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하늘을 보면서
이번 산행을 생각 해 보았다.
길 위에서서 무얼 버렸고, 무얼 얻었는지...
'한번간 사랑은 그것으로 완성된 것이다. 애틋함이나 그리움은
저 세상에 가는 날까지 가슴에 묻어두어야 한다.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나고 싶거들랑 자기 혼자만의 풍경 속으로 가라
진실로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은 그 풍경 속의 가장 쓸쓸한 곳에
가 있을 필요가 있다'
작가 신현림씨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쓸쓸한 곳에 가 있을 날 상상하니
끔찍했다.
이미 흘러가버린 사랑앞에서 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방황하며
보냈었나, 사랑과 집착의 경계가 어디쯤일까를 놓고 마치 풀리지
않은 매듭을 놓고, 꼭 풀어내야만 하는 특명을 띈 것처럼
이십대를 보내 버리고 말았다.
여전히 풀지 못한 수학문제처럼 뒤끝이 찜찜하지만
이젠 그만 그 질긴끈을 놓고 싶다.
어느날 그사람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본 순간부터
모든걸 이제 그만 그 자리에 놓아 버리고 싶었다.
얼마쯤 이곳에 버리고 가고 싶었다.
한줌의 먼지도 남겨두지 않고 모두 날려버리겠다는 심산으로
부는 바람에 내묵은 미련도,집착도,사랑까지도 다.
다만 앞으로의 삶,
얼마나 또 강한 바람이 내 여윈 가슴을 흔들어 놓을 지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아주 꺾이지 않을 만큼만 불어줬음 하고 바래본다.
스스로 선택한 길에 후회없이 곧바로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달라며
보여주지 않는 섬진강 줄기에 빌고 또 빌어봤다.
26일.
우리 눈앞에 펼쳐진 장관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늘은 끝없이 맑았고, 떠오른 태양은 우리에게 꿈꾸라 한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몫이라면서....
너무나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우리네 삶이 단조롭고 건조한 이유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맘이 착해진다.
한없이...한없이....
*** 8일간의 지리산행. 지루하기도 했을법한 이 가니긴,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글들을 따뜻하게 봐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분들 다 해피하시고, 언제쯤 지리산 능선 어디에서
한번쯤 뵐 수 있는 인연이 되길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