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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조회 수 2049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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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번의 인연 검은옷의 남자 >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랑은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 가에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순식간에 안개가 몰려왔다.
  강한 바람이 불었지만 정지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 견딜만 했다.
  연하봉 바위틈에 대충 바람을 피할만 한 곳을 찾아
  보온병에 담아온 유자차를 마시면서  위태롭게 버티고 서 있는 고사목에게서
  강한 연민을 느꼈다.
  언제 쓰러져 버릴지 모르는 저것들을 담아놔야 할텐데....
  그래서 그리울때쯤 한번씩 꺼내어 허기를 채워야 할텐데..
  촛대봉까지 우리가 만난 사람이라고는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네 몇분 뿐
  지리산은 그렇게 조용히 쉬고 있었다.
  촛대봉에 올랐을때 휘몰아치는 안개뿐.. 상상만으로 세석산장을 내려다 보았다.
  함께한 일행중 한명은 이번이 지리산 두번째 산행이라 궁금한게
  너무나 많았다. 어디쯤이 산장인지.. 얼마쯤 가면 되는지..
  촛대봉에 한번 올라 서 보지 않겠냐고 했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뭐...
  하며 아쉬워 한다.
  
  바위에 올라서서 허공을 바라다봤다.
  내게 보여줄 수 있는건 안개뿐이라지만, 안개뒤에 숨어 있는 널 충분히 볼 수 있다.
  손만 뻗으면 그리움들이 물결처럼 내 손가락을 스치며 흐르겠지만
  그것으로는 이 허허로움을 채울 수 없다는걸 알아버린 것일까
  빈가슴으로 그냥 그렇게 서 있었다.

  세석산장은 외로웠다.
  처음이다 사람들이 없는 세석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산장지기도 겨우 두사람 뿐이었다. 그것도 벽소령 아저씨가 급파 해 온것이란다.
  너무나 반가워 하신다. 그러면서 눈길은 언니를 찾는 것 같았다.
  먼저 원래 계획은 함께 오기로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요.
  너무나 아쉬워 하셨다. 미쳐 제대로 고맙다는 얘기도 못했는데 하시면서...
  지난여름 언니의 신발이 어처구니 없이 밑창 전체가 날아가버리는 사건이 터졌었다.
  그때 아저씨가 자신의 등산화를 선뜻 내어주시면서
  종주 꼭 하시라고... 그때 그분 아니였으면 벽소령에서 우린 하산해야 했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그후,
  언니는 신발과 양말 그리고 책을 보냈었는데,
  그다음 또 벽소령을 가게되어 인사하러 갔더니 글쎄 소포보다 우리가 먼저 도착했단다.
  얼마나 웃었던지...
  언니는 또 아저씨께 드릴게 있다면서 배낭에서 뭔가를 꺼냈는데  찻잔이었다.
  우리가 사는곳이 도자기가 유명한 곳이라서 지리산까지 찻잔을 매고 온것이다.
  나같아도 감동 감동 했을것이다.
  몇겹을 싸고 또싸고 그것이 깨어질까 옷속에 담아서 그렇게 가져왔으니 말이다.
  아저씨는 어쩔줄 몰라 당황까지 하셨지만 기분은 정말 좋으셨단다.
  그런 언니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했다면서 안타까워 하셨다.
  
  저녁이 되어도 산장은 썰렁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요함이다.
  산장은 한곳에 남녀를 몰아놓고, 윗층은 여자, 아래층은 남자로 구분시켰다.
  우린 저녁을 해먹고,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내일 코스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사진을 찍을것인지, 산행을 할 것인지...
  아직 눈 사진을 제대로 찍어보지 못한 상태라 다들 아쉬움이 컷다.
  오늘밤에 눈이내리는걸 보고, 내일 상황봐서 움직이자 합의하고
  산장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고요한 세석에 쉴세없이 바람소리가 들렸다.
  시간은 이제겨우8시를 넘어서고 있었고... 누구하나 잠들지 못하며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는것이다.
  '자?'
  '아니....'
  술이 얼마나 남았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선다.
  한겨울 긴긴밤을 옛날 사람들은 어찌 보냈나몰라...
  밖으로 나가 술잔 몇번 부딪히니 세석에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사는게 재밌니?' 하고 묻는다.
  '아니'
  '이곳 지리산에 있음 재밌어'
  '넌 완전히 미쳤구나,왜 자꾸 고립될려고 하는거냐.. 현실도피 뭐 이딴거에 취미 붙이지마라'
  그런가....
  '그래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어, 뭐든 적당히 하는게 좋아'
  '미치지 않고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나....'
  '그래, 하하  맞는 말이다,것도 적당히 미쳐야지'
  '근심 한가운데 고립된 행복감' 이라는말 있지? 지리산에 있으면 그 말이 실감나'
  '그래도 사람사는 마을에 가서 싸우고,울고 그렇게 살아야해, 그러다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나처럼 흘러온다.'
  36, 31, 29.... 먹어버린 나이가 짐 궤짝처럼 무겁게만 느껴진다.
  내려라 내려... 쏟아져 봐라 한번.
  펑펑 내려서 어디 한번 묻혀보자.

  24일... 메리크리스마스.

  밤사에 내린눈은 제법 쌓였다.
  허나 하늘은 열리지 않았다.
  언니가 선수친다.
  메리크리스마스야.....
  지리산에서 카드를 받아보다니, 이런 세상에....
  아침을 해먹고, 커피 한잔을 마셔도 하늘은 열어주지 않았다.
  눈이 이제 더이상 내리지 않는데 안개를 걷힐 기미가 전혀 없다.
  서서히 온몸이 간지러워 지기 시작한다.
  머리도 가렵고...미치겠다.
  머리에 잠깐이라도 손이 갈라치며 두사람은 기겁을 한다.
  그래서 모자로 가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6일째다, 손발과 세수만 하면서 이렇게 버티어 보긴 또 처음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그렇다고 머리를 감을수도 없는노릇.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지킬수 있는 자연이란 없다고 했다  
  치약을 쓰는것도 조심스러운데 어쩌겠어. 참아야지.
  점심때쯤 잡자기 촛대봉이 보이기 시작했다.
  벽소령으로 넘어가려고 채비를 다 했는데 어떻하나... 어떻하지?
  서로의 눈치만 보고 가만 서 있는데 안개가 다시 휙~
  한번 본게 죄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보여줘 보여줘 제발...한번이라도 널 보고 가보자'
  또다시 하늘이 열렸다.
  자꾸 자꾸 열린다.
  에이~ 몰라 하면서 언니 뛰기 시작한다.
  촛대봉으로.....
  
  촛대봉에서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고...우린 또다시 장터목으로 향했다.
  



  • ?
    珍 元 2003.01.12 23:18
    어느 쪽이 그 인연의 남자 인지요? [웃음]
  • ?
    들꽃 2003.01.13 10:31
    아, 그리고 보니 검은옷을 입은 남정네가 참 많군요.^ ^ 쪼기 간판옆 붉은 자켓입은 남자분 옆 모자쓰고 계신..뒷모습의 남자가 세번째 인연입니다.
  • ?
    별리... 2003.01.15 16:23
    위에 사진 어딘가요...넘 멋있군요...
  • ?
    般若 2003.02.06 19:01
    와.........하...우우우雲海.....@.@^^ 많이 많이 직어 남겨 주세요. 그해 연하천 가는길 취나물군락을 이루던 습지가 사라져 얼마나 가슴 아팠던지. 반야 아프다고 삐대러 갔다가 아픈 지리산 도로 안고 내려 왔습니다. 습지가 돌아 올 날이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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