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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조회 수 195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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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고 가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미래' 고정희.
  뱀사골 어디쯤에서 추락사 했다는 시인은 죽음의 끝자락에서 어쩌면
  웃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은 10시를 이미 넘어서고 있는데 사람이라고는 찾을 길 없고,
  다만 언제쯤인지 모르는 발자국만이 유일한 길임을 알려줬다.
  걸을 수록 점점 힘이 들었다.
  아이젠을 하기엔 눈이 너무 없고, 그냥 걷기엔 두 다리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스틱 하나에 의존하면서 걷는데까지 걸었다.
  아이젠을 해서 발에 무리가 가는 것 보다는 차라리
  몇번 미끄러지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한쪽발이 미끈하다 싶으면 제빨리 다른발에 힘을주는 순발력이 필요했다.
  때론 가랑이를 크게 벌리고 엉금엉금 기어가기도 하면서
  써리봉에 다다를 쯤 눈꽃을 제대로 감상했다.
  나무엔 흰 눈꽃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길위엔 발목정도의 눈이 쌓여 있었다
  마른 가을처럼 갈증이 났었는데 이제서야 겨울산행 맛이나는구나.
  난 능선위에 올라 양팔을 벌리며 '내가 원한게 바로 이런거라구~ ㅎㅎㅎ'
  소리치면서 미친척도 해 보았다.
  
  거칠것 없는 풍경위에 외로이 서 있는 고사목을 보았다.
  막아주는이 아무도 없이 홀로 서 있는 나무는 '나두 견디고 있는걸요'
  라며 마치 내게 속삭이는 듯 했다.
너무나 쓸쓸해 보여 내 옷이라도 벗어 감싸주고 싶은맘이 들 정도로
그모습 애잔스럽고 위태로워 보였지만 결국,
견디고 있는 자의 몫이구나 하는 생각,
어차피 혼자 걸어야 할 삶이라면 버티어 보라고...
살아가는 동안 약하고 강한 바람들이 얼마나 자주
내게 불어 닥칠지 모르겠지만 아주 꺽이지 않을 만큼만 바람아 불어다오

카메라에 담고 싶어 잠시 배낭을 내려놓았다.
사진을 찍는다는 빌미로 잠시 쉴 수 있어 좋았다.
나무에게 좀 더 다가가 앵글에 담아 보려고 발아래 눈을 보니 아직
어느 누구 에게도 헤쳐지지 않았는지
밤사이 내린 눈처럼 곱게 쌓여 있었다.
생각 없이 그냥 밟을까하다 바위 위라서 조금 망설여졌다.
바위사이 허술한 구멍이면 어떻하지...조심스럽게 살짝이 발을 내려보니
그 끝 어딘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귀찮았지만, 스틱을 가져와/ 말어 하는 사이에서 잠시 갈등을 하고
그래도 안전빵이 낫겠지 싶어 스틱으로 짚어보니
어머나!!!  힘주어 짚었던 스틱에 윗몸까지 빨려 갈 정도로 깊었다.
화들짝놀라  숨까지 거칠어 지면서 순간 얼굴에 열이 오른다.
스틱으로 눈을 헤쳐보니,
내 몸 하나는 족히 빠져나갈 구멍이 뚫어져 있는게 아닌가
사진을 찍다보면 조금만더, 조금더 가까이 이러다 보면 찍고 난 후 뒤를
돌아보면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놀랄때가 가끔있다.

이쯤에서  언니의 깊은 배려에 감사함을느낀다.
스틱을 사용 해 본적이 거의 없기때문에 오히려 거추장 스러울때가 많다.
건망증도 그중에 하나인데, 배낭외에 손에 드는것은 어디를 가든지 늘,
한가지씩은 흘리고 오는 버릇이 있다.
스틱도 그렇게 해서 두번씩이나 잃어버려 아예 들고 다니지를 않는데
혼자하는 산행 러셀해야 하는 위험도 있고하니 가져가라며
같이 산에 다니는 언니가 건네 준 배려이다.
원래 22일날 만나기로 한 사람들과 함께 올라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공무원이다 보니 갑자기 일이 생겨 이번 산행을 함께 하지 못하게됐다.
얼마나 속상해 하셨는지....
이 언니에 대한 고마움은 산행내내 계속되었다.
한번쯤 풀어 놓을 생각이다.

두시간이 훨씬 넘었는데 한사람도 만나질 못했다.
힘이 들어 입에선 단내가 난다.
중봉거의 다다를때쯤 언덕배기 어디쯤이였을까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헉헉거리며 온몸으로 오르고 올라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
'어머 놀래라!!' 라는 괴성같은 소리가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다.
  그 소리에 위에서 내려오던 분 더 놀라고, 무안했던지 눈이 커진다.
  길위에 사람이 있는거 당연하건만,
  오지 못할때 오기라도 한듯 무안을 줬으니...
  미소로 때우고 인사를 했다.
  '혼자 오셨어요?'
  '네'
  산행 조심히 잘 하라는 말 외엔 건네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혼자 온 산이 정말 좋다며 말을 건네도 됐을법 하지만
  젊은 남녀는 고립된 산 아래서 더이상 아무말도 건네지 못했다.
  범상치 않은 배낭을 등에 메고 사라지는 저사람...
  이길을 혼자서 걸어가는 저사람은
  그 어떤 허술한 가슴이 있어 눈 오는 산길을 혼자서 넘어갈까
  중봉이다 드디어...
  아무것도 내게 보여주지 않았다.
  안개와 강한 바람만이 날 맞아줄뿐....
  그 순간,
  꿈적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면서
  봉우리가 보인다.
  천왕봉이....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오면서
  그자리에서 방방뛰고 미친듯이 소리도 질렀다.
  어떻게...어떻하면 좋아.. 를 연신 남발하면서 주체를 하지 못했다.
  아, 사진...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허겁지겁 카메라를 꺼내고 정확히 봉우리에 갖다 댔지만
  안개는 심술이라도 부리듯이네 천왕봉을 감춰버렸다.
  기다렸다 그 순간을 담기 위해서...

'산다는 것은 때로 까닭 모를 슬픔을
부여안고 떠나가는 밤열차 같은 것
안 갈 수도, 중도에 내릴 수도,
다시는 되돌아올 수도 없는 길.
쓸쓸했다. 내가 희망하는 것은
언제나 연착했고, 하나뿐인 차표를
환불 할 수도 없었으므로
기차는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버릇처럼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이정하'

여전히 넌 그자리에 없었다.
한번쯤 마주칠 날이 있겠지, 우연처럼 길을 가다 만날날이 있겠지..
인연이라면 말이다....
우린 정말 인연이 아닌가봐 하고 포기 할때즈음...
영화처럼 마주쳤는데...그사람 옆에 다정하게 웃고 있는 한사람을 보는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당연하겠지, 삼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안그래?
하면서도 한쪽가슴이 아려오는건 이기심때문이었을까.
저리도 행복해 하는 모습을 내 본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드는건 분명 이기심때문 이었을것이다.
눈이 마주쳤었고, 어색하고, 당황스러워 어떻게 그 길을 지나왔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그후, 올해가 가기전에 한번 봤음 한다는 편지에
답장을 보내지 못한 채 산으로 도망치듯 와 버렸다.
이 산행이 끝날때 쯤이면,
당신을 앞에 온전히 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기다린지 한시간을 넘어서고 있지만 단 한순간도 하늘은 열리지 않았다.
그 모습 조금 보일라치면, 또다른 안개가 무섭게 몰려오고,
몸은 점점 굳어지는 느낌.. 나무아래 잠깐 기대어 바람을 피해봤지만
이러다 일나겠다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본능이 이성을 지배해옴을 온몸으로 느낀다.
'옷걸이에 떨어지는 옷처럼 그만 그 자리에서 허물어져 버리고 싶은생'
이라는 황지우의 시처럼 툭하면 읊어대던 그 말들은 다 어디로 던져버리고
살고자 배낭을 다시 메는가.

중봉에서 천왕봉까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였지만
얼음처럼 딱딱해진 눈때문에 힘들었다.
아직까지 아이젠을 하지 않고 버티어 온 나와 어디까지 견디나 두고보자며
심술을 부리는 듯 한 길과의 싸움처럼 우린 팽팽했다.
그랬던 것이, 천왕봉 바위를 보는 순간 미끄러졌다.
잠깐의 방심은 금물이야.... 아이쿠...

'한국인의 기상이 여기에 서다'
그 매서운 눈보라 다 내게 오라 하며 꿋꿋이 버티어 내고 있는 모습을
담고 싶었지만,
바람은 날 한순간도 날 그 위에 있게 하지 않았다.
천왕봉위에서 바라본 지리산은 마치,
영화<와호장룡>에서 보면 다리 위에서 여인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거침없이 날아오르던 그 모습과 견줄 만 했다.
살 수만 있다면, 살아 낼수만 있다면 한번쯤 새처럼 날아보고 싶었다.



  • ?
    목가 2003.01.04 23:51
    재밌네요~! 그리구...날지는 마세요~!ㅋㅋ
  • ?
    般若 2003.02.06 18:13
    못됐죠^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쯤...에야 그토록 기다리는 것이 오니...삶도 사랑도 준비란 없는 거 같아요. 님의 귀가기 그 이후가 궁금하네요. 반야는 아직 기다리지 않으면 온다고 했으니...기다리지 않으마. 이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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