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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조회 수 2176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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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쯤 왔을까 이제 어디쯤 왔을까
창 밖엔 낯선 어둠이 서성거리는데
저 시름없이 잠든 이들은
다들 갈곳이 있는걸까
새벽 기차의 고단한 침묵 속에서
때묻은 수첩 하나 꺼내 뒤적거리지만
마음이 춥구나
온기 없는 방처럼 마음 썰렁하구나
내가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가지려 애쓰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저 끝없는 철길을 달려가는
바람 같은 것은 아니였을까

어디로 가는걸까 나는 어디로 가는걸까
창에 지친 얼굴이 나를 보고 있는데
누구일까, 슬픈 눈의 저 사내는
어느 세상의 나그네일까
새벽기차의 외로운 질주 속에서
까맣게 잊혀진 이름들이 스쳐가는데
마음이 춥구나
겨울 묘지의 시든 꽃처럼 마음이 스산하구나
내가 꿈꾸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저 차가운 철길에 부서지는
바퀴소리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백창우 '새벽기차'

읍내 작은 버스 터미널의 새벽 기운은 '단단히 먹은 내 맘을'
무참히 짓밟아 버릴만큼 충분히 쓸쓸했고,몇 되지 않는 사람들이
오가며 건네 준 바람이 뺨을 스치는 순간 ,
소스라치게 놀라는 내 자신을 느끼며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이런 생각들이 대책없이 밀려 들면서 후회가 되더라
돌처럼 무거운 배낭을 아무렇게나 버려두고 300원짜리 커피 한모금 마시며
널직히 떨어져 있는 배낭을 남의 일처럼 쳐다본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이른 새벽의 정적을 깨면서
내게 혼자임을 느끼게 한다.
'정말 왔구나 너 혼자서'
사람이 이렇게 외로울 수 도 있구나 하는 서글픔이
순식간에 내 이성을 빼앗아 버렸다.

정확히 작년이맘때 처음 혼자 겨울 지리산을 찾으면서 메모 해 두었던
수첩을 다시보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때도 갔었잖아.... 속으로 중얼 거리며
그래도 누군가 '잡아주기만 하면' 못이기는 척 따라가려 하는 심정 외면하기 어렵다.
대원사행 첫 버스에 온몸을 구겨넣고  창밖으로 의미없는 시선을 보낸다.
삑삑 울리며 신새벽 문자 메세지가 온다.
'무서우면 중산리로 와라' 한줄기 글에 왕소금 만한 눈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대원사를 지나 윗새재에서 치밭목 표시기로 접어 들었다.
겨울산행 혼자 한다는거 상상도 못해봤는데 어찌.... 이렇게 중얼거리며
화엄사 초입으로 들어설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번엔 겨울 산행도 모자라 사람을 만나기 힘든 곳을 선택해서 오다니....
어떤 이들에겐 별게 아닐수도 유난을 떠는 내가 요란스럽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겐 그리 별게 아닌게 아니다.
제집보다 더 자주 드나드는 지리산이 되어 버렸지만
늘 지리산은 날 거부 했었다.
처음 찾았을때 칠선계곡에서 물에 휩쓸려 죽을뻔 했었고, 두번째 여름엔 선비샘에서 급체 해
세석산장 화장실에서 쓰러졌었고, 그이후로 늘 체력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체하기 일쑤였고
산아래에서 먹을양의  약 전부를 산위에서 매끼마다 달고 살았었다.
손가락이며 발까락까지 피를 보게 했던 지리산을 찾으면서 울기도 참 많이 울었었다.
이런 '수난시대'를 거치면서도 무엇이 나를 또다시 찾게 만드는 것일까 에 대한 답은
아직도 결론 내리기 힘들지만
한가지 정확히 말 할 수 있는건 '충분히 가치 있음이다'
또하나 참 다행인것은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 이라는 점이다.
산위에서 있었던 것들 산 아래 내려와 회상 해 보면 힘들었던 것들은
단지 부산물처럼 스쳐가는 것일뿐 내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
행복했던 그 느낌만 남을 뿐이다.

'미쳤군, 미쳤어 이제는 아주 발악을 하는구나,
제발 좀 날 이해시켜줘봐' 하면서 입에 거품물고 흥분하는 친구에게 녹음기를 틀어 놓듯
또다시 반복한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는 결코 이해하지 못해'

배낭을 메고, 신발끈을 질끈 묶으면서 내 마음도 단단히 묶었다.
그렇게 망설이고 망설이던 길 위에 이제 섯음이야.
등에 맨 배낭의 무게가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줄어들 듯이
내 마음에 닮겨 있는 삶의 무게도 이 길위에 얼마쯤 버려지기를
스스로가 선택한 길을 후회없이 걸어갈 수 있도록 바래고 또 바래본다.  
치밭목으로 오르던 길은 가을과 겨울의 중간쯤이었다.
가을이 채 가기도 전에 겨울이 와버린 탓일까  나뭇가지에 낙엽은 제 색깔도 다 내지 못하고
얼어버려 그 모습 안타깝다.
길위에 조금씩 깔려 있는 눈들이 오로지 겨울임을 알려준다.
생각보다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다.
내 귓가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내 발자욱소리와 조금씩 힘들어 보이는
숨소리, 그리고 끊임없이 흘러주는 개울 물소리뿐...
새소리조차 없이 적막하기만 하다.
나무 사이로 비추는 햇살은 잠시 기대어 있는 내게 졸음을 줬다
간밤에 내려오면서 기차에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탓이리라

'이대로 잠시만 눈 좀 붙였음 좋겠다'
그 유혹 간절했지만 그럴수야 없지.
정신을 가다듬고 걸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육중한 그 몸이 보일 듯 말듯, 저것이 혹여 무재치기 폭포일까?
이렇게 쉽게 만났단 말인가?
허둥대며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마도 무재치기 폭포 까지면 거의 다  왔다는 생각을 내가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나도모르게...
저 도도함을 누가 감히 흉내내랴.
내 허리통만한 물줄기들이 흘러 내리다가 얼음이 되어 버렸고
얼어붙은 그 옆으로 마치 아무일 없다는 듯 유유히, 그리고 도도히 흐르고 있는 저 물줄기.
'물은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이 있는 곳으로 흐른다'는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넌 무엇이 그리워 어디로 흐르는거냐'

치밭목산장 바로 앞 몇미터엔 눈이 무릎까지 쌓여 있었다.
거의 기다시피 해서 올라선 산장엔 누런개가 날 반겼다.
니가 보리구나, 녀석 참 잘도 생겼다.
치밭목에서 본 하늘은 파랗다 못해 시퍼랬다.
세시간이 조금 넘었나보다.
배낭을 탁자위에 올려놓고 산장을 쳐다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오는것을 그걸 그렇게 망설였니?
내 맘을 온갖 동네에 다 들키고 난 그 창피함이란 어디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허나, 난 대견했다. 내 자신이....
'내가 바로 여기,
치밭목에 서 있는거라구' 잘봐.  

점심을 준비 하는 듯 한 아저씨 세분과, 산장지기 인 듯 한 아저씨..
커피잔을 손에 들고, 한쪽 입을 치켜 올리며 웃을까, 말까 하는 표정으로
지켜보고계신다. 무엇이 그리 재미 있으실까...내 모습이??
진주에서 오셨다는 세분이 청국장에 돼지고기를 넣었다면 함께 점심 하기를 권하길래
예의상 거절했다. 두번거절하고보니  미안하기도 하던차에 산장지기 아저씨 한마디에
수저와 소주를 들고 다가서는 내 모습에 모두들 한바탕 웃으신다.
'서울 사람들은 입이 아니라 주둥이야' 하시는 아저씨 말에...
술한잔 들어가니 오장육부가 놀라면서 온몸의 긴장을 여기 다 내려놓으라 한다.
난 그렇게 하루를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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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가 2002.12.30 21:14
    병태형님의 입담이 그대로 묻어 나는것 같군요~! 다음편 빨리 올려 주세요~! 기대... 제가 태워 드릴 수도 있었는데...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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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유화 2002.12.30 21:46
    그림이 그려지네요. 정말 귀한 걸음과 사색의 시간이셨네요. 들꽃님 때문에 꾹꾹 눌러놓은 병이 다시 도질려고 합니다. 후속편 속히 올려주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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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 2002.12.31 08:57
    멋진 산행기네요...커다란 대리만족을 느끼고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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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양지 2002.12.31 09:18
    새날들에도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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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비 2002.12.31 09:49
    정말... 글을 잘 쓰시네요. 잠시나마 지리산이 눈 앞에 펼쳐지고 제가 들꽃님이 되어 지리산을 오르는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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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3.01.01 09:26
    어제(30일)11:00시경 치밭목에 들러 민병태씨랑 점심을 먹고 왔습니다. 장터목. 천왕봉. 중봉. 유평, 대원사까지 눈길에 무척 힘이 들던데 참 대단하시고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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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의천사 2003.01.08 23:12
    대단하셔요. 눈덮힌 지리산을 밟아 보고 싶은디... 겁이나요.두렵구요. 정말 가고 싶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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