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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조회 수 201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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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잠들어 있는 청년을 뒤로한채 삼층폭포 맨위로 올랐다.
차가운 폭포수로 세수를 하고 가부좌를 틀었다.

나를 주시하는 순간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가장 절실하게 떠오르는 그것,
그것은 지난해 칠선을 함께 올랐던 아들 강산이의 똑박,똑박한
발걸음이었다.

훗날 아들은 가족을 등진채 산으로 들어와 사는 이 애비를
어떻게 생각할까?
둘째딸 도현이가 사춘기를 거치면, 오빠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던 두지터에서의 7개월을 어떻게 생각할까?

남매가 장성한후 어느 여름방학때 스스로 두지터로 온다면 나는
낡은 장롱속에서 남매의 고운 등산복 한 벌을 살포시 내놓고 싶다.

그리고 남매와 함께 이 칠선골을 따라 천왕봉에 오르면서
그들의 고뇌와 삶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고 싶을 뿐이다.

*****

삼층폭포 계곡위의 길은 청년의 칠선 초행이라는 이유로
정규등산로로 택해졌다.
철계단을 정점으로 칠선길이 끝나고 금지 철책을 넘어서는 순간
청년의 환희는 최고조에 다다렀다.

자신의 금기된 불안을 끝내는 순간 얼마나 기쁠까?
오랜 전 벽송사 능선 옆 허공다리골로 내려오다가 공단직원에게
붙잡힌 이유로 그는 비지정 등산로의 산행을 힘들어 했다.

그것도 국가 공무원 시험을 본 직후라 그 불안은 더 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지리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항상 청년의 화두는
비지정 등산로를 바라보는 여러 시각에 대한 물음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답변을 회피했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오늘, 칠선을 스스로 선택한 그가 자신의 결정을
다음 단계로 승화해 나가길 바랄뿐이다.


천왕봉을 거쳐 제석봉에서 제석당으로 가는 길을 확인하고,
장터목 산장에 잠시 배낭을 내리고 제석당을 다녀왔다.

정확히 삼년전 제석당에서 한 청년의 시체가 텐트안에서 발견된 직후
나는 텐트를 들고 들어가 제석당에서 한달여를 보낸적이 있었다.

한달여를 지낸곳,...
장터목 근처에 오면 항상 즐겨 사용하던 비박지였던 곳이라
나에겐 별다른 감홍이 없었지만 역시 청년에게 감탄의 대상이 되었다.

제석당을 거쳐 이제 세석으로 향하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모두 청학연못으로 모아졌다.

4박5일 산행중 청년이 가고 싶었던 몇군데 중 유일하게
내가 가장 궁금해 왔던 청학연못을 앞두고,...

나는 청학연못의 긴 화두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

<청학동의 시작은 몇천년 전으로 부터 찿아라>

“청년아”  “왜요?”

“청학동이 어디였을까?”

“남부능선 삼신봉 밑에 청학동 있잖아요?”

청년는 바로 나에게 엄청 깨졌다.

“전설속의 청학동 말이다. 이바보야,
천명 이상이 농사를 짓고 이상향의 세계를 꿈꾸고
신선처럼 살았던 지리산속의 청학동 말이다.“

"그곳이 어딘데요?"

"많은 사람들이 몇곳을 후보지로 꼽고있지"

"그 몇군데는 어디 어디에요"

"많은 사람들이 청학동 후보지로 세석고원, 덕평고원, 의신,
불일폭포, 악양, 현재의 청학동등을 후보지로 꼽고있지"

"덕평고원은 우리가 내일 갈꺼니깐,
나두고 오늘은 세석고원을 이야기해보자"

"그리고 야! 너 공부 좀 해라 알았나"

"자료를 주십시오?, 자료를 "

"하하하 너 죽을래,.."  "잘못했습니다. 스승님!"

"청년아!  이제부터 우리는시공을 뛰어넘어
몇천년 전의 세상으로 가보자."

우리는 농을 넘어 서서히,...
인간이면 누구나 꿈꾸어온 이상향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었다.

청학동을 이야기 하기 전 먼저 우리는 농업을 이야기 해야한다.
해발 1500고지 위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현재 많은사람들이 대부분 이 대목에서 이해할수 없다는 투로
고개를 흔들고 우리의 청학동 찾기 의지는 단절되곤 하지

하지만 여기 광활한 세석 고원 전체가 논밭으로 이루어져 있고
1천호 넘는 집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농업의 시작은 누구였는가?

바로 대략적으로 6천년전 농업의 신으로 불리는
염제 신농씨로부터 출발해야한다.

그 당시 우리가 짐작해보면 광활한 대지보단 이보다
더 높고 개간되지 않은 고원에서 그것들이 가능했다는거지
아울러 염제 신농은 약초의 신으로 불리던 인물인데
약초하면 바로 산 아니니,..

그러니깐 산위 고원에서 농사가 가능했단 추론,
최소한 우리가 우리 나라의 기원을 찾기 위해선, 우리 민족의 발원을
연구해야 하는데 염제 신농은 중국의 조상이 아니라 바로 중국이
그토록 역사 왜곡에 신경썼던 동이족의 조상이였다는데 있지,..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상황이 다른 나라와 달리 적어도 2 천년 동안
외래 세력 (중국 사대주의와 일제 강점기)에 밀려
우리의 역사를 바로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주의
깊게 봐야 할것이다.

"동이족요?"

"그래 큰 활을 당기며 살았던 배달민족 환인, 환웅, 단군의 기원이지"

환인7대(3301년의 역사), 환웅18대(약1565년역사),
단군 47대의(2096년의 역사)역사를 찾아간다면 우리 민족의 기원은
바로 9천년 전 으로 거슬러 간단다.

"허정님 이런 기록의 자료는 어디있나요?"

신라시대 안암로라는 사람이 쓴 삼성기에도 나오고,
지금 현재 가장 많이 읽히는 책으론 "환단고기" 라는 역사서가 있지,..

세석 촛대봉에서 땀을 훔치며 배낭을 내려놓고서야
청년은 청학연못의 진지함속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시공을 뛰어넘어 몇 천년전 세상으로 가기위해 ,..

나는 지리99 유적탐사 방에서 복사한 " 청학연못 길찾기" 자료를
빼어 들고 있었다.



청학동의 신비를 풀어줄 단서 청학연못
  • ?
    능선샘 2005.07.03 20:38
    아주 특별한 산행...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상향'으로 숨어 있는 듯한
    그 고요함이 느껴져 신비스럽습니다.
    언제나 가 볼 수 있을지?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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