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에 처음 지리산을 종주했다. 그리고는 이곳에 '40세에 이룬 종주'란 이름으로 산행기를 썼다.새로운 글이 한편 두편 오를때 마다 뒤로 밀리어 지금은 까마득히 멀어져 있다. 그리고 나는 그뒤로 몇번 지리산을 종주했고 구간 구간 당일 치기로 다녀오기도 했다. 물론 다른 근교산도 거의 매주 가다시피 했다. 무릎이 아파 산행중에 무척 고생을 했지만 이전보다 산을 더 좋아할 계기가 된 소중한 추억이다.
사실 그때 그 산행기를 쓴 것은 우발적이었다. 준비하는 과정에 참고 할려고 여러분의 산행기를 읽었다. 좋은 글이 많아서 나도 이렇게 글을 쓸수 있으면 좋으리란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면면이 대단하신 분들이나 올리는 게시판으로 지레 작정을 했다. 갔다와서, 올린다는 생각은 않고 한번 적어본 것인데 처음 게시판에 글을 적어 시험삼아 이곳 저곳누르다가 덜컥 게시가 되어 버렸다. 밤이 깊었고 지우는 것을 잘몰라 다음날 지우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다시 열어보니 댓글이 달려 있었다. 격려와 박수에 약한 초보는 내리 삼일을 밤세워가면 산행기를 적었다. 힘든 산행만큼이나 힘들게 산행기를 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어도 멀어져간 나의 그 산행기를 찾아 읽기도 한다. 그러면 까마득해지던 그때의 내 의식이 생생히 되돌려진다. 그 누구의 글보다 내글이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왜나면 그때의 그 모습을 나만치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때 이후로 나는 세번의 종주를 했다. 이제는 제법 관록이 붙었다. 차분히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수준이라고 내심 판단한다.
산장예약...
나는 소위386이다. 전위를 자부하던 386은 어느듯 구식의 자리로 가버렸다. 산장을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불가능하다. 하는 일을 완전히 팽개칠 수가 없어 나름대로 스케줄을 짜야하는데 내가 시간이 나면 남도 시간이 나는지라 예약이 정말 어렵다. 작년 가을에는 미리 비박을 각오하고 장비를 잔뜩 짊어지고 갔다. 80리터 배냥의 무게는 부실한 중년의 상반신을 내리 눌렀어도 산장에 자리가 없으면 취사장등에서 해결하고 가다가 못가면 그자리서 비박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편했다.
산행에 들기 이틀전에 산청에 볼일이 있어 갔다. 무척 열심히 살고, 무척 일 벌이기를 좇아해서 제대로 수습을 못하고 고전하고 있는 내가 무척 사랑하는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다. 산청읍에 조금 못가서 좌측에는 천왕봉에서 중봉으로 써리봉에서 뻗어온 웅석봉이 있다. 그 산자락이 내 가슴을 흔들었다.
제일 앞의 산은 그 산빛 그대로, 그다음의 산은 회색 필터를 끼운 듯 약간 흐릿하게 그리고 또 그 다음의 산은 눈물이 나도록, 눈물 어린 눈으로 본 님의 모습처럼 흐릿하게 가슴이 떨리도록 흐릿하게 거기에 있었다. 그시간 이후로 나는 산만 생각했다. 머리속에서 산행장비가 줄줄이 오브랩되었다.
오늘 내일 하고 있는데 장마가 온다고 한다. 문득 폭우로 입산금지만 되지 않는다면 빗속 산행이 운치도 있을 것 같고 산장예약도 못한 경우엔 대기인수가 적어서 편할것 같았다. 일단 지리산 국립공원사무소에 확인을 하니 입산금지는 없었다. 부랴부랴 챙겨서 집을 나섰다.
하동농협에 친구가 있다. 지가 날 사랑하는지는 몰라도 나는 무척이나 사랑하는 친구이다. 만날 때 마다 지리산 가는길에 찾을테니 재첩국이라도 사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오라고 한다. 항상 내 머리속에는 하동까지 버스타고 가서 친구와 재첩국을 먹고 다시 구례화엄사에 내려서 종주를 시작하는 계획이 들어있다. 아직이루지 못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불쑥 지리산으로 떠나는 내 성향 탓에 아침일찍 준비를 못하고 항상 점심때 쯤에 떠나게 되는지라 상대적으로 가까운 산청이나 함양쪽으로 가게 된다.
이번에도 내오랜 숙원과는 다르게 함양으로 가서 거기서 지인의 차로 노고단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하동의 재첩국대신에 인월의 어탕국수를 맛보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실 그때 그 산행기를 쓴 것은 우발적이었다. 준비하는 과정에 참고 할려고 여러분의 산행기를 읽었다. 좋은 글이 많아서 나도 이렇게 글을 쓸수 있으면 좋으리란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면면이 대단하신 분들이나 올리는 게시판으로 지레 작정을 했다. 갔다와서, 올린다는 생각은 않고 한번 적어본 것인데 처음 게시판에 글을 적어 시험삼아 이곳 저곳누르다가 덜컥 게시가 되어 버렸다. 밤이 깊었고 지우는 것을 잘몰라 다음날 지우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다시 열어보니 댓글이 달려 있었다. 격려와 박수에 약한 초보는 내리 삼일을 밤세워가면 산행기를 적었다. 힘든 산행만큼이나 힘들게 산행기를 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어도 멀어져간 나의 그 산행기를 찾아 읽기도 한다. 그러면 까마득해지던 그때의 내 의식이 생생히 되돌려진다. 그 누구의 글보다 내글이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왜나면 그때의 그 모습을 나만치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때 이후로 나는 세번의 종주를 했다. 이제는 제법 관록이 붙었다. 차분히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수준이라고 내심 판단한다.
산장예약...
나는 소위386이다. 전위를 자부하던 386은 어느듯 구식의 자리로 가버렸다. 산장을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불가능하다. 하는 일을 완전히 팽개칠 수가 없어 나름대로 스케줄을 짜야하는데 내가 시간이 나면 남도 시간이 나는지라 예약이 정말 어렵다. 작년 가을에는 미리 비박을 각오하고 장비를 잔뜩 짊어지고 갔다. 80리터 배냥의 무게는 부실한 중년의 상반신을 내리 눌렀어도 산장에 자리가 없으면 취사장등에서 해결하고 가다가 못가면 그자리서 비박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편했다.
산행에 들기 이틀전에 산청에 볼일이 있어 갔다. 무척 열심히 살고, 무척 일 벌이기를 좇아해서 제대로 수습을 못하고 고전하고 있는 내가 무척 사랑하는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다. 산청읍에 조금 못가서 좌측에는 천왕봉에서 중봉으로 써리봉에서 뻗어온 웅석봉이 있다. 그 산자락이 내 가슴을 흔들었다.
제일 앞의 산은 그 산빛 그대로, 그다음의 산은 회색 필터를 끼운 듯 약간 흐릿하게 그리고 또 그 다음의 산은 눈물이 나도록, 눈물 어린 눈으로 본 님의 모습처럼 흐릿하게 가슴이 떨리도록 흐릿하게 거기에 있었다. 그시간 이후로 나는 산만 생각했다. 머리속에서 산행장비가 줄줄이 오브랩되었다.
오늘 내일 하고 있는데 장마가 온다고 한다. 문득 폭우로 입산금지만 되지 않는다면 빗속 산행이 운치도 있을 것 같고 산장예약도 못한 경우엔 대기인수가 적어서 편할것 같았다. 일단 지리산 국립공원사무소에 확인을 하니 입산금지는 없었다. 부랴부랴 챙겨서 집을 나섰다.
하동농협에 친구가 있다. 지가 날 사랑하는지는 몰라도 나는 무척이나 사랑하는 친구이다. 만날 때 마다 지리산 가는길에 찾을테니 재첩국이라도 사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오라고 한다. 항상 내 머리속에는 하동까지 버스타고 가서 친구와 재첩국을 먹고 다시 구례화엄사에 내려서 종주를 시작하는 계획이 들어있다. 아직이루지 못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불쑥 지리산으로 떠나는 내 성향 탓에 아침일찍 준비를 못하고 항상 점심때 쯤에 떠나게 되는지라 상대적으로 가까운 산청이나 함양쪽으로 가게 된다.
이번에도 내오랜 숙원과는 다르게 함양으로 가서 거기서 지인의 차로 노고단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하동의 재첩국대신에 인월의 어탕국수를 맛보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랑하고 좋아하니까 지리산 갈때마다 재첩국을 대접 하는것 아닌가
싶습니다,
나머지는 어떻게 전개되는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