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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기 (3)-백무동에서 망바위로

6월6일 06:00
“아줌마, 김밥 있어요?”
“김밥은 없구, 도시락 싸드릴 수 있어요. 금방 쌉니다.”
“도시락은 얼만데요?”
“4천원인데요.”
“하나만 싸주세요.”
상백무 삼거리의 허름한 음식점.
넓은 평상 위에는 아침 식사를 하는 열댓 명의 젊은 등산객들이 새벽부터 왁자지껄하였다. 해장술도 한 순배씩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젊음이 멀리 보이는 지리산 색깔만큼 싱그럽다.
“반바지 안 갈아 입어요?”
“음, 그래야지.”
식당 아줌마가 도시락을 준비하는 동안 뒤꼍으로 가서 반바지로 갈아입고 긴 스타킹도 꺼내 신었다. 등산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매는 등 지리산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다.

아줌마가 건네주는 도시락을 받아 넣고, 몇 걸음 걸어가니 바로 매표소가 나온다. 이 때쯤이면 북한산 국립공원의 매표소에는 표 받는 아저씨가 출근 전이라 1천3백원을 아낄 수 있는데, 지리산국립공원 매표소 아저씨는 부지런도 하다.

“아저씨, 몇 시에 나오셨어요?”
“여기서 어제 밤 새웠는걸요.”
“입장료 좀 아끼려고 일찍 왔는데... 아니, 야간 산행하는 사람도 있어요?”
“밤에는 입산통제를 해야 하니까요”

밤 새 좁은 매표소에서 근무한 탓인지 말투도 표정도 뚱하다.
매표소를 뒤로 하고 그리고 그리던 지리산으로 접어들었다.
깊은 숲이었다.
오른쪽 한신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우리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나뭇잎 새로 보이는 지리산의 하늘엔 털쌘구름이 깔려있었다.
어둑한 숲속 길에 언제 보아도 정초한 때죽나무 꽃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수줍어 수줍어/바로 못 보고/ 고개를 떨구고 땅만 보던/ 첫사랑의 그 여인/ 때죽나무꽃”(사봉, ‘때죽나무’)

기차에서 잠을 자느라고 애쓰기는 했어도 잠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걸음이 평소보다 느린 것을 느꼈다. 첫 번째 쉼터로 잡은 하동바위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 속도라면 하동바위까지 1.8km이니까 40분이면 도착해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인적 없는 숲 속 오르막길은 끝없이 계속되는 듯 하였다. 10분쯤 더 올라가니 저만치 10여미터 바위 절벽이 보인다. 매표소를 지난 지 55분 만에 하동바위에 도착했다.

“하동 땅도 아닌 곳에 웬 하동바위가 있지요?”
“하동이 엎어지면 코 닿을 때 있기야 하지. 저 바위가 하동 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하동바위라고 했다는 밋밋한 이야기도 있고, 믿거나 말거나 한 말이지만 예전에 하동의 어느 원님이 지리산으로 풍류를 즐기러 왔다가 그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는구먼. 그래서 그 바위를 하동바위라고 하는 전설이 있어.”
“옛날에도 멍청한 사람이 벼슬을 할 수 있는 길이 있었던 모양이네요.”

하동바위에서 10여분 숨을 고르고는 참샘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정표는 참샘까지 1.0km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조각난 바위들이 여기 저기 깔려 있는 등산로는 걷기에 편한 길은 아니었다. 30여분을 걸어 올라가니 등산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참샘이었다.

“샘 이름이 참샘인 걸 보니까 지리산에서 물맛이 제일 좋은 모양이지요?”
“지리산 물맛이야 어딘들 안 좋겠어? 하지만 임걸령 샘물을 제일로 치던데...”
“참샘 물맛도 정말 꿀맛이네요.”
“꿀맛을 보고 참샘 물맛이라고 해야 지리산 산신령이 기분좋아하시는 것 아닌지 몰라...”

샘물 마시고 앉아서 올려다본 지리산 하늘에는 어느새 털쌘구름이 거의 다 벗겨지면서 푸른 하늘로 변했다. 산중의 날씨가 예측불허라고는 하지만 상층운(上層雲)이 떠도는 하늘은 이미 우리에게 축복이었다. 날씨가 우리를 도우니 지리산 종주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인 듯 했다.

어느 산이나 능선과 연결된 마지막 오르막길은 숨이 깔딱거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깔딱고개’가 그리도 많은 것이 아니겠는가. 참샘을 지나면서 오르막길의 경사가 급해지고 숨이 턱에 차오르는 것을 보아 능선이 가까워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오른 첫 번째 작은 봉우리는 ‘소지봉(燒紙峰)’이었다. 해발 1312m의 소지봉이 애기 봉우리로 느껴지니 지리산의 장대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소지봉이 무슨 뜻이죠?"
"소지가 종이를 태운다는 뜻이지 뭐요."
"왜 산 속에서 종이를 태우는데요? 쓰레기장도 아니고..."
"소원을 적은 종이를 불살라 하늘로 올려 보내면 산신령이 그걸 들어 주는 거요. 그런 일을 하던 곳이니까 소지봉이라는 이름이 붙었겠지."
"알았어요. 제사 때 축문 불살라 공중으로 올리는 것과 같은 것이군요."

분명히 남원에서 우거지 해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했는데... 사탕 하나, 건빵 몇 개, 쵸콜릿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는 소지봉 봉우리에 신문지를 깔고 잠시 눈을 붙였다. 15분간의 토끼잠과 사탕으로 조금의 에너지를 더 보태고는 망바위로 향했다. 소지봉을 출발한지 한 시간. 이름 그대로 전망 좋은 망바위에 이르니 가슴속이 후련하여 온다.

“도저히 안되겠어요. 여기서 새참을 먹어요.”
“그러지 뭐.”
“그 아줌마 너무 엉터리다. 4천원짜리 도시락 반찬이 뭐 이래...”
“왜... 정말이네. 이게 뭐야. 정말 집에서 싼 도시락 같구먼... 멸치, 마늘장아찌, 김치가 다야...”
“그래도 꿀맛이네요. 지리산 망바위에 앉아서 먹는 새참 맛.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네요. 이럴 때 후식으로 사과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사과는 아니지만 오이 하나 드릴까요?”
40대 초반의 등산객이 웃으면서 배낭을 내려 놓는다.

“네? 아니예요. 괜찮아요.”
“많이 가져 왔으니 하나 드셔요. 산에서야 사과보다 오이가 더 낫지요.”
굳이 커다란 오이 하나를 넘겨주고는 건너편 바위에 걸터앉은 세 사람은 소주병을 꺼내면서 내게 한잔 권한다.
“어르신, 소주 한 잔 하시죠?”
“......”
“여보, 당신보구 어르신이라 그러네요.”
“......”
“한 잔만 하시죠? 어르신...”
“아닙니다... 제가 안주를 좀 드릴테니 어서 드세요.”

나는 멸치와 마늘장아찌 그리고 김치를 조금씩 담아서 소주 안주로 내 놓았다.
“어디서 오셨어요?”
“광주에서 새벽 5시에 출발했습니다. 어르신은 어디서 오셨어요?”

이런이런 내가 어르신이라는 호칭으로 불릴 나이란 말인가?
그들은 소주 한 잔씩 마시고는 이내 천왕봉을 향했다.
더 기력을 차려야 하는 ‘어르신’은 도리 없이 망바위에 앉은 채 뒤에 온 그들을 먼저 떠나 보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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