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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詩
세석고원을 넘으며
- 고정희-
아름다워라.
세석고원 구릉에 파도치는 철쭉꽃
선혈이 반짝이듯 흘러가는
분홍강물 어지러워라.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고
발아래 산맥들을 굽어보노라면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산머리에 어리는 기다림이 푸르러
천벌처럼 적막한 고사목 숲에서
무진벌 들바람이 목메어 울고 있다.
나는 다시 구불거리고 힘겨운 길을 따라
저 능선을 넘어야 한다.
고요하게 엎드린 죽음의 산맥들을
온몸으로 밟으며 넘어가야 한다.
이 세상으로부터 칼을 품고, 그러나
서천을 물들이는 그리움으로
저 절망의 능선들을 넘어가야 한다.
막막한 생애를 넘어
용솟는 사랑을 넘어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저 빙산에
쩍쩍 금가는 소리 들으며
자운영꽃 가득한 고향의 들판에 당도해야 한다.
눈물겨워라.
세석고원 구릉에 파도치는 철쭉꽃
선혈이 반짝이듯 흘러가는
분홍강물 어지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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