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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기 (5) - 장터목에서 촛대봉으로

‘장터목대피소’가 정해진 이름이지만 사람들은 ‘장터목산장’이라고 부른다. 대피소가 피난민 수용소 같다면 산장은 무슨 말 못할 사연이라도 지닌 낭만 덩어리 같다. 해 떨어지기 전인데도 장터목산장은 이른 저녁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모두들 내일 새벽 3시면 천왕봉 일출을 맞이하러 갈 사람들이다.
“아저씨가 저녁 준비하는겨?”
“그럼요. 산에 오면 남자들이 하는 것 아닌가요?”
“뭐 하시는데요?”
“오늘 저녁 메뉴는 쇠고기 하이라이스랍니다. 인스턴트라 그냥 물에 데워 밥에 부우면 되는 건데요 뭘...”
부산서 왔다는 아줌마 둘이서 부러운 듯 쳐다보다가 냅다 남편을 불러댄다.
“여봇! 산에 오면 남자들이 밥하는 거라잖소.”
“니 지금 뭐라카나? 이 예편네가...”
잘 못 하면 괜히 부부싸움 일으킬 것 같아 얼른 거들었다.
“부산 사나이들 매력이 그런 것 아닙니까?”
“저 문디 양반 하루 종일 세 마디 하는데 ‘아아들은?’ ‘밥 도’ 그리고 ‘자자’ 하는 말이 다 아닙니껴. 징그럽십니더.”
남편이 산에서 먹는 수박 맛이 제일이라고 하는 바람에 수박을 껴 안고 올라오는 바람에 백무동에서 7시간 걸려 장터목까지 왔다는 부부 4명과 함께 저녁상을 차렸다.
“그눔의 수박 때문에 고생 엥간히 했십니더.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박만 아니문 천왕봉까지 갈끼라구 하데요. 호호호...”
“아니 그럼 수박을 들고 지리산을 올라왔다구요?”
“그러믄요. 그런데 그 수박 디게 무겁데요.”
“천왕봉은 내일 아침에 가실 건가요?”
“내일 새벽에 천왕봉 일출보고, 바로 내려가서 전주로 사슴피 먹으러 갑니다.”
“아니 맑은 공기 마시고 등산하시면 됐지 뭐 사슴피까지...”
“우린 뭐 그렇게 사는기라요.”
8시가 넘으면서 산장 하늘엔 수많은 별이 떠올랐고, 이내 사람들은 내일 아침 떠오를 태양을 꿈꾸며 자리에 들기 시작했다.
6월 7일, 새벽밥을 끓여 먹고 6시 반에 촛대봉을 향해서 첫발을 내딛었다.
지리산 종주라면 예전엔 화엄사를 출발하여 노고단과 천왕봉을 밟고 대원사로 내려가든가 아니면 그 반대 코스를 말했지만 요즘은 노고단과 천왕봉을 밟으면 종주라고 하게 되었단다. 우리의 종주는 천왕봉에서 노고단을 향한 것이었다.
지리산의 아침 공기를 마음껏 마시면서 촛대봉까지 단숨에 내리 달렸다. 가끔 등산객의 길잡이를 하여 준다는 하얀털의 진돗개 ‘백구’가 장터목산장에서부터 함께 따라 나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백구는 짖는 일 한 번 없이 우리를 안내했다. 무슨 생각으로 우리의 길을 안내할까?
장터목 산장에서 2.7km 떨어진 촛대봉에 도착하니 아침 7시 20분. 발 아래 세석평전이 펼쳐 있고 새로 지었다는 세석산장의 멋진 그림도 눈에 들어온다. 촛대를 세워두었음직한 촛대봉 주위에는 촛농이 떨어져 생긴듯한 바위들이 몰망졸망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며칠 전에만 왔더라도 지리산 10경에 들어간다는 ‘세석의 철쭉’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이미 철쭉의 계절은 끝나가고 있었다.
“촛대봉에 얽힌 이야기는 없어요?”
“이 근사한 풍광에 얽힌 이야기가 왜 없겠어.”
“어떤 얘기가 있어요?”
“지금은 수도꼭지가 달려 있지만 옛날 세석산장의 샘터는 음양수 샘터라고 하여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마시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했대.”
“그럴 듯한 이야기네요.”
“세석평전 남쪽에 대성리라고 있는데 옛날 그 대성골에 ‘호야’와 ‘연진’이라는 사랑하는 사람 둘이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자식이 없었다는구려.”
“그럼 음양수를 마시면 되었겠네요.”
“그걸 모르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 날 곰이 찾아와 연진에게 세석고원의 음양수를 마시고 산신령에게 기도를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알려 주었대.”
“그래서요? 아이를 가졌나요?”
“그럼 이야기가 안 되지. 연진이 음양수를 마시고 천왕봉 산신령에게 기도를 하고 있는데, 호랑이가 그 사실을 알고는 산신령에게 밀고를 했대요.”
“그래서요?”
“곰이 천기를 누설했으니 천왕봉 산신령은 화가 나서 곰을 토굴에 가두고, 연진은 세석고원 돌밭에서 평생 철쭉을 가꾸는 일을 하도록 했다지.”
“아이고 불쌍해라. 그 때나 지금이나 자식이 뭔지...”
“그 후 연진은 촛대봉 꼭대기에서 천왕봉 산신령에게 속죄를 빌다가 돌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야.”
“남편은요?”
“남편 호야는 칠선봉에서 세석평전으로 달려가다가 산신령이 막는 바람에 가파른 바위에 목을 매어 자살을 했다는 애달픈 전설이 있어요.”
“그래서 세석의 철쭉은 특별히 더 애련한 모습으로 피어나는 모양이군요.”
슬픈 전설의 촛대봉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고 세석산장으로 내려갔다. 그칠 줄 모르고 흘러 나오는 음양수 샘물을 마음껏 마셨다. 그리고 하나 가득 담아 가지고 영신봉으로 향했다.

  • ?
    나그네 2002.10.07 14:23
    세석산장에 있는 샘은 음양수샘이 아니고 세석에서 대성골방향으로 40분쯤 내려가다 보면 바위밑에서 두줄기로 흘러나와서 합쳐지는 석간수가 있는데 그 샘이 음양수샘 입니다.
  • ?
    나그네 2002.10.07 14:24
    그리고 세석평전이란 표현은 일본식 표기 인지라 세석고원이 맞을듯 싶네요. 좋은산행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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