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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2002.07.16 18:32

조회 수 291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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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산행기입니다.
게으름이, 또는 무엇인가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그것 때문에, 오래 묵혔습니다.
일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금은 정리된 듯도 하지만,
아직도 그 길에 대한 저의 감정은 '오리무중'입니다.


* 산행일지
∙일시: 2001. 6. 1 ~ 3
∙경로: 쌍계사-의신마을-대성골-영신대-세석산장(1박)-한신주계곡-백무동
∙세부일정
[]6/1(금)
23:20 서울역 출발(→ 구례구역, 무궁화호)

[]6/2(토)
04:39 구례구역 도착(->터미날 이동, 버스)
05:00 터미널 도착, 아침식사
06:10 쌍계사행 출발(버스 첫차)
06:40 쌍계사 입구 정류소 도착, 절집 방문
09:20 쌍계사 출발(->자동차 이동)
09:40 의신마을 도착
10:20 관리공단 매표소 통과, 산행시작
10:40 능인사터 삼거리(10분 휴식)
11:20 대성골 마을(30분 휴식, 행동식)
12:28 작은세개골(15분 휴식)
13:10 큰세개골 다리(40분 휴식)
14:10 큰세개골(-세석산장) 이정표 통과
14:15 대성골 숨은 길 초입
14:40 대성골 본류(20분 휴식)
15:20 협곡 통과
15:45 첫 번째 암봉(대성폭포)
16:00 마지막 암봉(20분 휴식)
16:50 계곡 삼거리(10분 휴식)
17:00 막다른 계곡 오른편 오르막 소로길
18:20 영신대 도착(10분 휴식)
18:50 영신대 이정표
19:05 세석산장 도착(1박)

[]6/3(일)
06:00 기상
09:00 산장 출발, 산행시작
09:45 계곡 돌계단 통과(15분 휴식)
10:50 한신폭포 이정표 전 마지막 계곡(25분 휴식)
11:25 한신폭포
11:50 오층폭포
12:05 가내소폭포 이정표
12:20 첫나들이 폭포
12:40 백무동 야영장 도착, 산행 마침, 점심식사
15:00 백무동 출발(남원행, 버스이동)
16:00 남원도착
16:54 남원역 출발(→서울역, 무궁화호)
21:30 서울역 도착




1. 떠나는 길 위에서 - 서울

명수형의 새로 나온 책 <지리산>을 손에 쥔 순간부터 대성골로 올라야겠다는 생각이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러나 그 길 떠남이 이처럼 빨리 가능하게 될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바로 일주 전 장당골의 비경과 적막감을 맛본지라 어느 정도 그 곳에 대한 갈증을 잠복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득 일상의 일들이 어긋나 버렸고, 그 어긋남은 나를 또 다시 지리로 향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먼저 지리에 가자고 손을 내밀어준 마음 깊은 동행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리로 향했다. 다시 돌아와 ‘정면 돌파’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렇듯 지리에 가자고 결정한 것은 분명 급작스러운 일이었고, 운행준비 역시 그러했다. 우선 주말 기차표 예약이라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최선의 준비를 하는 것이 지리에 오르기 위한 최소한의 미덕이라 생각하고, 준비물 계획서를 짜고, 산행 일정표를 그려보고,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자료를 빠르게 모아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장비를 점검하고, 꼭 필요한 것들을 구입할 요량으로 출발 시간 전에 틈을 내어 종로 장비점에 나갔다. 제 값어치 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발휘한 나의 낡고 오래된 릿지화를 버리고 새것을 하나 구입했다. 결과적으로 이 새 신발의 존재는 대성골 계곡 등반 내내 값있게 드러나 주었다.

막차를 타기 위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역 대합실은 무척 혼잡스럽다. 지난주와는 다르게 등산객들도 눈에 띠게 늘어나 보였다. 이미 구례구행 좌석은 매진된 상태였지만, 나는 마치 우리를 위해 준비된 표가 있다는 양 철도예약부스 옆에 서서 단체 등산객들의 예매취소를 기다렸다. 경험한 바대로 바로 눈앞에서 예매취소가 발생했고, 지체없이 이를 건져내었다. 이럴 때 드는 순간적 생각은, 어찌되었던 출발이 순조롭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리를 향하는 발걸음인 이상 이러한 ‘요행성’ 순조로움에 마음이 마냥 편하기는 어려웠다.

2. 두 갈래의 물길 - 쌍계

구례에 도착하여 아침을 챙겨 먹고 올라탄 쌍계사행 첫 버스는 화엄사 앞 삼거리를 지나 오른편 국도 19번 길을 달린다. 편도차선 마냥 좁아졌다 넓어지는 굴곡 진 그 길은 지리의 연봉을 하늘에 이고, 다른 한편으로 섬진강을 옆구리에 끼고 부드럽게 흘러 들어간다. 그 이른 아침 길은 길옆에 바짝 패인 황금빛 보리 싹들의 출렁이는 물결과 강어귀를 떠가는 나룻배의 한가한 모습을 품에 안는다. 행객들만 차지한 버스 안으로 아침 일을 나가는 동네 아낙들이 하나 둘씩 올라탔다. 이들은 모두 서로를 잘 아는 냥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고, 가내 안부를 살갑게 묻는다. 그렇게 그 길을 따라 전라도 아낙들이 경상도의 일터로 매일 오고 간다. 국도 19번. 이 길이 단순히 기능적 차원의 ‘도로’나 ‘길’이 될 수 없는 까닭은 이처럼 전라도땅 구례와 경상도땅 하동을 삶의 본질로써 강건히 잇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례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하동으로 내려다가 처음 나오는 마을이 화개이다. 차는 잠시 화개 장터 앞에 머무르다 방향을 바꿔 왼쪽 지리연봉을 향해 뻗은 1023번 지방도로로 접어들었다. 여기서부터 쌍계사 입구까지가 그 유명한 ‘십리 벚꽃길’이며 ‘차(茶)들의 낙원’이다. 버스는 벚꽃이 투명하게 진 그늘막 길을 따라 오르다, 쌍계교 앞 가게에서 행객을 내려놨다. 이곳에서 의신마을로 향하는 첫 버스를 타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택시를 부르거나 의신마을로 올라가는 차들을 운좋게 잡아 이용할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우리는 당초 계획대로 쌍계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리를 넘어 왼편으로 돌아가니, 마치 여염집의 안마당처럼 둥그렇게 들어앉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 지형이 새삼스러워 사위를 연신 둘러보고 있는 내 옆에서 동행은 문득 무릎을 친다. “이렇게 두 물줄기 사이에 있어서 쌍계구나‘. 16세기 당대의 성리학자이며 은거지사였던 남명 조식이 말한 대로 ‘쌍계’는 의신에서 흘러오는 서쪽 물길과 청학동에서 흘러오는 동쪽 물길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두 물줄기를 뒤로 한 채, ‘쌍계’와 ‘석문’이라는 글자가 각기 새겨진 커다란 자연석 두개가 나란히 서있다. 구불퉁한 나무 지팡이 모양으로 깊이 패인 거대한 글씨를 보고 조선 초기의 사림파 선비인 김일손은 아동이 습자한 것 같다고 평가했지만, 사실 이 글씨는 최치원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말을 믿자면, 이 돌의 나이는 이미 한 세기를 훨씬 넘긴 것이다.

이 절집의 역사는 유구하다. 최치원과 진감선사 등 그 인연의 끈은 깊고 길다. 하지만 쌍계사의 역사적 값어치와 의미라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지적 장식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나는 그 절집들의 고즈넉한 구조와 위치에 마음이 쏠렸다. 절집의 모든 건물은 서로를 쉽게 드러내지 않도록 위치 지워져 있다. 건물 입구의 문들 또한 그 내부를 훤히 드려다 볼 수 있게끔 중앙에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쪽으로 치우쳐 나있다. 절집 구석을 도는 동안 불연 듯한 만남을 기대하게끔 만드는 이 ‘은폐적인 미학’은 쌍계사의 고즈넉함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자상하고 넉넉한 마애불과 대웅전 뒤편에 아름다운 돌담, 그리고 돌담 앞의 서 있는 소박한 굴뚝이 이 절집의 진정한 주인들이다.

느린 걸음으로 절집의 아침을 모두 둘러봤다고 생각한 동행과 나는 이제 절집 문밖을 나가기로 결정하고 발걸음을 돌리던 차였다. 대웅전 왼편 길로 들어서는 돌계단을 보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 수행자들의 안거처이기도 한 절집의 ‘금당’은 대게의 경우 일반인의 출입을 불허하지만, 오늘따라 그 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다. 나는 그 문을 따라 들어갔고, 그 곳에서 한 시간여 동안, 졸지에 문짝뜯는 보살이 되어 창호지 두 짝을 뜯고서야 산중 문을 벗어날 수 있었다. 부처에게 드린 미미한 보시 덕분에, 우리는 의신마을까지 절집 스님의 차에 동승할 수 있었다. 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절집은 이틀 뒤에 시작될 하안거를 준비하느라 부산하다고 했다. 쌍계의 절집에는 지상의 것들 보다 그렇게 빠른 여름이 와 있었다.

3. 산길이 마을 - 대성동

의신마을 앞에서 다시 행장을 챙긴다. 이제 우리의 육체와 땀을 통해서만 지리와의 만남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 사람에게 길을 물어 파란 지붕 민박집 옆을 지나 논둑길을 걸어 숲길로 들어섰다. 그렇게 숲길 소로를 따라 오르는데 문득 작은 통나무 상자집이 나타났다. 국립공원 매표소이다.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우리의 발걸음이 그 앞을 스쳐지나갈 즈음, 마주 다가오는 관리공단 직원과 만났다. 가방 깊숙이 챙겨 넣은 지갑을 꺼내 입장료를 지불하는 사이, 나는 영신대 초입을 물어봤다. 관리공단에서 꺼려하는 비공식 등산로를 오르면서 그렇게 당당하게 초입을 물어보는 내 모습은, 어찌 생각하면 어이없기까지 한 일이다. 어찌되었던 우리가 그 숨어있는 길에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분명한 설명이 아니었으면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성교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능인사터 삼거리를 지나자 길은 갑자기 내리막으로 바뀌고, 마을과 가까워지면서 다시 돌길 오르막으로 변했다. 어느 틈에 가까워진 계곡 물소리를 향해 걷는 대성동 가는 길 위에서 동행이 손에 쥐어준 작디 작은 오디열매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시큼함이 몸을 타고 번지는 사이, 내 손톱 틈새로 검붉은 열매의 흔적이 고스란히 잠긴다. 후박나무의 푸르고 넓은 이파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대성동 마을의 정오는 한가롭다. 마을은 둥그런 서낭당 나무를 중심으로, 그리고 울퉁불퉁한 밭데기 사이사이로 오가지 않는다. 다섯 가구가 움쭉 달싹도 못하게 일렬로 박혀 이룬 그 마을이 곧 대성골로 향하는 산길이다. 그러니깐 산길을 가자면 나란히 늘어선 마을 집들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는 일이다. 그 마을의 끝집 나무 평상에 걸터앉아 감자알로 배를 채운다.

4. 흐르는 길 - 영신대

대성동 마을을 뒤로하고 다시 산길로 접어들었다. 초입에 위치한 검은 석문을 통과하자마자 돌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처음 건너는 계곡이 나타났다. 작은 세 개골이다. 사실 대성동 마을을 통과하면서부터 적지 않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오늘 오르려는 길이 대성동 본류를 지나 영신대를 향해 오르는, 전혀 낯선 길이기 때문이다. 원시계곡이 펼쳐질 것이라는 짐작 뿐, 앞으로 우리 앞에 어떤 모양의 길과 풍광이 펼쳐질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작은 세개골을 지나 20여분 정도 더 오르자 깊이 있는 계곡이 우리의 머리 위로 쭉 뻗어있다. 큰 세 개골이다. 이 계곡을 따라 오르더라도 다시 계곡을 한 번 건너야 한다. 다리를 선택해 건너기로 했다. 그러나 그 시원한 물의 유혹을 견뎌낼 재간이 없는 우리로서는 또 다시 신발끈을 풀고 물가로 바짝 다가앉았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경사급한 언덕배기 등산로가 나타났다. 곧 이어 큰 세개골 이정표도 눈에 들어왔다. 이제 우리는 ‘숨은 길’을 찾아야만 한다. 이정표에서 5분 정도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작은 소로가 보인다. 다행히도 리본이 달려 있어 이 길이 바로 우리가 찾는 그 길임을 알 수 있었다. 영신대 초입은 이 길 조금 위에 붙어 있는 <등산로 아님> 표지기를 넘어 서 있는 길과도 바로 만나고 있다. 이제부터 우리는 산죽소로와 돌무더기 길을 번갈아 가로지르며, 아무런 인적도 없는 길로 깊이 깊이 접어들었다. 한동안 계속되는 편안한 오솔길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정막하고 한산하기만 하다.

얼마나 오솔길을 걸었을까. 지계곡을 건너자마자 나타난 집터 흔적을 지나고 또 다시 산죽길과 오솔길을 번갈아 오르고, 그러다가 드디어 대성계곡 본류와 만났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계속 왼쪽으로 반원을 그리듯이 움직였다. 계곡을 끼고 또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또 얼마나 지났을까. 그러던 중 내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양쪽 암벽 사이로 길고 섬세한 협곡이 나타난 것이다. 도대체 지리에 이러한 협곡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지리의 길은 어느 것 하나도 같지 않다는 말을 늘 마음에 담고자 했지만, 이 협곡만큼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어느 덧 지리를 내 안에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육체가 닿지 않은 수많은 지리를 관념으로 묶어두었다는 사실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비스럽기까지 한 계곡길을 빠져나가며, 나는 몇 번이나 발을 멈췄는지 모른다. 왠만하면 산행 중간에 카메라를 빼지 않는 편이지만, 그 광경을 담고 싶은 마음에 샷타를 넘기는 욕심을 부리기까지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이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믿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 지독한 모순 속에서 그렇게 서늘한 협곡을 지나갔다.

협곡을 통과한 후 20여분 계곡을 오르다 암봉을 만났다. 먼저 말하자면, 나는 이곳이 대성폭포인줄 당시로서는 알지 못했다. 협곡의 서늘함에 정신이 빼앗긴 상태인데다가, 그 암봉을 만나면서 어떻게 올라야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선등자가 갈 길을 잘 짚어나가고 있어서 오르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그렇게 오르면서도 협곡에서부터 계속된 계곡미에 계속 넋을 빼놓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산을 가는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물을 보는 것이고, 물만 보면 환장하는 터라 별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암봉들을 하나씩 지나다가 마침내 거대한 암벽을 만났다. 참 난감한 노릇이었다. 동행과 갈 길을 찾고 있는데, 문득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암봉 위에 사람이 서 있었다. 계속 놀랄 일만 벌어진다. 우리 앞에 사람이 간 흔적이 없으니 올라간 양반 같지는 않았고, 그렇다면 하산 길 일터인데 도대체 이 계곡을 어떻게 역으로 내려간단 말인가. 순간적으로 무모하거나, 이 길을 잘 아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동행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왼편에 소로가 있으니, 그리로 돌아 올라오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도움을 받아 올라간 암릉 위. ‘대’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넓고 평평한 상단 위 한 구석에, 초여름 햇살을 받으며 나와 동행, 그리고 등산객 한분이 앉았다. 마을 분이셨다. 가끔씩 이 길을 오른다고 하시면서, 어려운 길을 오르느라 고생을 한다고 소박하게 말을 건네셨다. 암릉 가운데로 떨어져 내린 물줄기가 고여 내려가는 돌머리 사이로 녹푸른 이끼와 이름모를 노란 들풀이 번져 있었다. 카메라 앵글에 그 잔잔한 모습을 넣으면서, 나중에 인화되어 볼 풍경에 가슴이 설레였다.

마지막 암봉을 지나면서부터 체력이 급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어 섰다. 생각해보니, 아침식사와 오후 나절 두어 개의 감자만 먹고 점심식사를 하지 못한 것이다. 왜 그런 실수를 한 것일까. 우리는 무엇인가 시간계산을 잘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점심을 해먹자는 말을 두 사람 중 누구도 꺼내지 않았다. 어쩌면 두 사람 모두 그 순간, 이 길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졌었는지도 모른다. 당장 칼로리를 올릴 수 있는 간식거리만 입으로 가져갈 뿐이었고, 그 만큼 쉬는 시간이 많아졌다. 다리는 분명 앞으로 가는 것 같은데, 좀처럼 바위와 바위는 좁혀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나를 향해 동행은 좀 더 집중을 하라는 말만 할 뿐이다. 마침내 계곡 삼거리 갈림길을 만났다. 종종 길이 분명치 않을 때마다 고맙게 나타난 표지기와 준비해간 자료 덕분에 여기까지 잘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갈림길만큼은 선택을 어렵게 만들었다. 지형상으로 봤을 때, 산사태가 난 자리마냥 어지러운 경사 급한 오른쪽 계곡 길이 분명 영신대 방향이었다. 그러나 자료에는 왼쪽길로 가야 된다고 정리되어져 있었다. 어느 길이든 이제 택해야만 한다. 내가 왼쪽 길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길로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마른 계곡의 바위를 타고 계속 오르다보니, 마침내 계곡의 끝과 마주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계곡은 딱 막혀 있었다. 적어도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제부터 영신대로 바로 올라가는 소길만 찾으면 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생각보다 길은 쉽게 눈에 들어왔다. 유심히 보니 오른쪽으로 경사 급한 길이 하나 뚫려 있었고, 길 사이로 큰 나뭇가지가 방향표시기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표시를 하느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몸은 고되고,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우리가 온 길이 아주 틀린 길은 아니라는 심리적 위안이 생겼다. 그래도 마음 한켠에서는 왜 이렇게 운행이 늦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고 있었다. 영신대로 가는 마지막 길 조차 쉽지는 않았다. 사력을 다해 올라가는 양, 몸에 남아있는 모든 에너지를 발끝으로 모으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문득 만난 영신대. 지리산 최대의 기도처라는 그 곳. 그 명성답게 길옆 바위 틈 안으로 양초니, 촛대니 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움푹 들어간 지형하며, 뒤로 막히고 앞으로 틔어있는 모양새하며, 일정한 목적 하에 이 곳을 찾는 사람에게는 그 의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내게는 왜 그 곳이 안쓰럽고 마음 닿지 않았을까. 그래서 결국 오래 머물게 하지 않았을까. 이미 영신대로 향하는 길, 나와 지리 사이에서 흐르고 흐른 그 길이 내게는 고행의 길이요, 기도의 길이요, 낮음의 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길 위에서 지리의 어머니와 해후했다.

5. 지상과 만나는 길 - 한신

지상 위 세석은 여전하다. 때로는 정신의 위안처고, 때로는 육체의 안식처인 그 곳에서의 하루는 평안했다. 지리와 만나기 위해 세석을 향하고, 지리로부터 내려오기 위해 세석을 떠나기에 그 곳에 서 있는 세석이 미더웠다. 어제의 고단함도, 욕심도, 아쉬움도 다 여기다 두기로 한다. 그렇게 세석에 머물렀고, 그곳을 등졌다.

내려오는 길은 시간적으로 여유로웠지만, 초여름의 매마른 햇살과 땅기운에 발걸음이 마음과는 다르게 재촉된다. 무덥다는 것. 그것은 전혀 다른 욕심을 품게 했다. 비에 젖은 길의 그리움으로 연결된 것이다. 아마도 지난 가을의 비속 하산 길의 시원함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아니면 대성 계곡의 서늘함이 내 육체에 깊숙이 각인되어 떠날 줄을 몰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신길을 내려오면서 원인모를 짜증에 내 자신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제의 서늘함과 육체와 정신의 곤욕스러움이 겹쳐 들어와 있었다. 그러면서 그 감정을 이 한신에다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속에는 이미 세석의 평안함도 지워져 있었다. 그렇게 세석을 건너뛴 대성과 한신이 맞서 있었다. 이 길이 올바른 것인가. 적어도 지리 속에서 어느 한 길에 대한 갈망이 다른 길에 대한 아쉬움으로 대체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길에 대해 갖는 이 미숙하고 편협한 사고에도 불구하고 한신은 꿋꿋했다. 나는 한편으로 그 길이 고마웠다.

나는 지금도 내가 영신대로 향하는 길, 대성골을 올랐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 내 육체의 땀과 힘이 길을 밀고 나가게 했음에도 그렇다. 그냥 지리의 어느 한 모습만이 환영처럼 내 머리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나의 이 지독한 모순을 아는 양, 카메라 속에 담아두었던 그 곳의 모습은 하나도 물화되지 못하였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계곡의 포말과 서늘함도, 낙수의 아름다움도 모두 지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처음부터 그것은 지상의 것이 아니라는 양, 그렇게 말이다. 언젠가 이 길을 다시 올라야 할 이유와 욕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 결정이 손쉽게 내려지지 않으리라는 짐작만이 가능하다. 지상에서의 욕망이 지리의 길로 이어지는 것을 더 이상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나의 이번 지리의 길은 지상에서부터 어긋나 있었다. 아니 냉정하게 말하자. 도망치듯 떠났었다고. 그러기에 길을 간다는 것, 그것은 새삼 다시 어려운 일로 내게 다가와 있었다. 원점이다. 지리로 가면서 이렇게 도망치듯 밀려서 가는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 ?
    선유동 2002.07.17 22:28
    깊은 물길을 헤어오르는 님의 글 읽으며 지리냄새를 맡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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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02.07.06 By김용대 Reply17 Views5018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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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나의 슬픈 산행기

    Date2002.07.02 By키르히호프 Reply1 Views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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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지리산 종주 산행기(2박4일)

    Date2002.07.02 By고요나라 Reply0 Views4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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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re] 지리산왕복종주

    Date2002.07.08 By허약남 Reply1 Views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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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골짝 산행-2

    Date2002.06.23 By산사나이 Reply0 Views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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