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지리산 종주기 (8) - 연하천에서 노고단으로

지리산 종주 3일째.

아직 새벽 별이 반짝이는 연하천 산장 마당에 밥 냄새가 고소하게 퍼진다. 산장을 둘러싼 밤은 아름답지만 산장의 침상은 늘 괴롭다. 정원 50명의 산장에 100여명이 칼잠을 그렇다고 치고, 밤 늦도록 잠 안 온다는 아줌마들의 소곤대는 수다 소리와 밤새 이곳 저곳에서 우렁차게 들리는 코고는 소리는 여간 참기 힘든 것이 아니다. 물론 나도 코고는 아저씨 중에 하나이지만.

떠오르는 태양의 유혹을 어찌 뿌리칠 수 있겠는가? 3대를 거쳐 업을 잘 쌓아야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생명의 원천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을 볼 수 있는 행운은 누구에게나 흔한 일은 아니다. 혹시 일출을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새벽밥을 지어 먹고 어둠이 걷히는 연하천 산장을 뒤로하고 명선봉을 지나 노고단을 향했다. 기대를 많이 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행운은 오지 않았다. 태양은 운무 속에서 한참 뜸을 들이다가 붉은 옷을 벗어버리고 눈부신 흰옷 차림으로 구름 위에 솟아올랐다.  
            
연하천에서 3km 떨어진 곳에 토끼봉(1534m)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봉우리에 있는 바위가 토끼모양의 봉우리려니 했는데 토끼 모양이 아니다. 봉우리는 구상나무와 상록수들이 무리지어 서 있는 밋밋한 초원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에이, 봉우리에 있는 바위가 토끼 반도 안 닮았네요."
"토끼 닮아서 토끼봉이 아니야"
"그럼 산토끼가 많이 살았었나요?"
"그게 아니고, 반야봉을 중심으로 하여 묘방(卯方)에 있어서 토끼봉이라고 했다는구먼."
"묘방이 어느쪽이죠?"
"24방위 중에 묘방은 정동쪽(正東) 방향을 말하는 것지. 여기서는 저쪽 그러니까 서쪽을 바라 보면 반야봉이 보이게 되는 것이지."
"그렇군요. 이리 내려가면 화개재가 되네요."
          
토끼봉에서 숨을 고르며 한 30분 내려가니 화개장터가 내려다 보인다는 화개재가 나왔다. 화개재를 지나 다시 오르막길 30여분을 오르니 삼도봉(三道峰)이다. 경상북도, 경상남도, 전라남도 이렇게 3도에 걸쳐 있는 산이 지리산이라 삼도봉이 생긴 것이다. 한 동안 휴식을 취하고 반야봉으로 향했다.    
          
반야봉은 지리산 종주의 선택사양 품목이라고들 한다. 반야봉은 오르는 사람도 있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지친 산길에서 왕복 2km가 부담이 많이 되는 사람은 지나치게 마련이고 그래도 반야의 정기를 받고 싶은 사람들은 기운을 내어 반야봉을 오른다. 아직 오전이라 기운이 남았기에 우리는 반야봉을 들리기로 작정을 하고 나섰다. 삼도봉과 노루목 그리고 반야봉이 갈라지는 세 갈래 길 가에 배낭을 벗어 놓고 물병만 든 채 맨 몸으로 반야봉을 올랐다. 높이로 보면 천왕봉 북동쪽에 위치한 중봉(1875m)이 제2봉이지만 사람들은 높이와 상관없이 반야봉을 지리산 제2봉으로 꼽는다. 반야봉은 어디서 보나 꼭 여인의 엉덩이와 흡사하다. 엉덩이 한쪽은 주봉(1732m)이고 한쪽은 중봉이 각각 맡고 있다. 중봉쪽 엉덩이가 조금 작은 것이 재미있다.

“반야봉의 낙조가 지리산 10경 중에 하나라던데요?”
“그렇다고 저녁나절까지 앉아 있을 수가 없네.”
“반야봉에는 꽤 근사한 전설이 있을 법 하지요?”
“좀 엉터리 같은 전설이 있지. 지리산에 천신의 딸인 마고(麻古)할미가 살고 있었대요. 그런데 그 마고할미가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를 만나 결혼을 했대. 그래서 천왕봉에 살면서 딸 8명을 낳았다더두만.”
“그래서요?”
“반야는 가족과 떨어져 반야봉에서 도를 닦고 있었고, 마고할미는 그 남편을 그리워하면서 나무껍질로 옷을 만들었다네. 그동안 딸들은 팔도로 내 보내어 무당들이 되었고 마고할미는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지쳐서 자기가 만들어 놓은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는 숨을 거두었대요.”
“그래서 남편 반야가 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이라고 하고, 그 옷은 반야봉으로 날아가서 반야봉 풍란이 되었다고 하네.”
점점 태양이 작열하기 시작하니 앉아 있어도 땀구멍에서 땀이 송송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이미 뜨뜻하게 변한 물병에 물로 목을 적셔보지만 바로 해갈이 되지 않는다.              
태양이 중천에 떠오르니 점점 걷기가 힘들어 졌다. 임걸령에 가면 시원한 샘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곳까지 갈 에너지가 모자랐다. 결국 노루목을 건너지 못하고 점심을 펼쳐놓고 말았다.              
“뭐 이래 점심밥이… 먹을 것이 없잖아.”
“밥 있겠다. 고추장 있겠다. 깻잎도 남았어. 게다가 햄도 반 통이나 있는데.”
“김치가 없잖아요. 그러기에 김치를 두 봉지는 사라고 했더니만. 김치도 없이 찬밥을 어떻게 먹으라고.”
“이거라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먹어 둬. 나이 들면 밥심으로 산다고 했잖아.”
캔에 들어 있는 깻잎에서 모래가 아작아작 씹혔다. 결국 찬밥과 고추장과 햄으로 지리산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때워야 했다. 숟가락으로 햄을 조각내어 찬밥에 넣고 고추장을 부었다. 그리고 휘휘 저으니 붉은 색의 비빔밥이 되었다. 김치 없다고 반찬 투정하는 아내를 달래서 억지로 점심을 때웠다. 지치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게 마련이다. 몇 숟가락 떠 먹은 찬밥이 얹힌 모양이었다. 시원한 물만 있어도 체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소화제를 꺼내 먹고 뱃속이 조용해질 때를 기다렸다. 임걸령에 닿으려면 한 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
찬밥 한 덩이 먹고 기운을 차려 잠시 내려가니 노루목이다.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피아골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바위에서 저 아래 피아골 원시림을 감상하고 임걸령으로 향했다.
임걸경(1320m)이 반야봉에서 노고단을 잇는 8km 능선의 중간 지점이라니까 노고단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다시 힘을 내었다.

임걸령의 샘터는 아주 깨끗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젊어지는 샘물 생각이 났다. 시원한 물을 채우고 나니 기가 솟는다. 노고단의 돌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걸었다. 노고단 고개에 이르니 감개가 무량했다. 노고단 돌탑에 앉아 지난 3일을 회상하니 꿈결 같았다.

  • ?
    정경석 2002.08.05 11:40
    그길로 걷던 생각이 새록새록 피어나네요. 낼모레 다시 오릅니다..벌써부터 설레입니다. 글 잘 보았습니다.
  • ?
    오 해 봉 2002.09.15 14:38
    대단히 수고 하셨 읍니다 얼마나 정답고 좋은 산행인가요 매년 다른길로 종주하 십시요

  1. 지리산 산행기, 느낌글, 답사글을 올려주세요.

    Date2002.05.22 By운영자 Reply0 Views10004
    read more
  2. 성삼재 에서벽소령-다시 성삼재로

    Date2002.08.24 Bysun Reply1 Views2070
    Read More
  3. 지리산은 울부짖는다~

    Date2002.08.23 By김기철 Reply2 Views1845
    Read More
  4. 가족종주 시작..3..

    Date2002.08.19 By원추리 Reply2 Views2438
    Read More
  5. 가족종주 시작 2

    Date2002.08.18 By원추리 Reply0 Views2376
    Read More
  6. 홀로 처음간 지리산(화엄사 - 중산리)

    Date2002.08.17 By최상설 Reply2 Views2795
    Read More
  7. 가족 종주 시작.. 1

    Date2002.08.16 By원추리 Reply0 Views2694
    Read More
  8. 가지 않으려한 길 (뱀사골)

    Date2002.08.16 By정지연 Reply4 Views2156
    Read More
  9. 지리산 1박 3일 (8.11~8.13)

    Date2002.08.14 By동감 Reply6 Views2603 file
    Read More
  10. 2000년 8월 지리산에서 노숙하게 된 사연.. T.T

    Date2002.08.14 By대한청년 Reply6 Views2660
    Read More
  11. [re] 웃음이 묻어나는 젊은 순수성이 ..................

    Date2002.08.24 By황금 Reply0 Views1649
    Read More
  12. 가족의 지리산 종주기(성삼재-백무동, 2박3일)

    Date2002.08.13 By소진표 Reply15 Views3620 file
    Read More
  13. 진주에서 가다보니

    Date2002.08.08 By오세철 Reply0 Views2339
    Read More
  14. 밟아보지 못한 천왕봉.

    Date2002.08.07 By찬별 Reply2 Views2015
    Read More
  15. 아들과 함께 한 시간(중산리-법계사-천왕봉-장터목-법천골-중산리)

    Date2002.08.05 By박한규 Reply0 Views2866
    Read More
  16. [re] 아들과 함께 한 시간(중산리-법계사-천왕봉-장터목-법천골-중산리)

    Date2002.08.11 By최화식 Reply0 Views1689
    Read More
  17. 53살 부부의 지리산 종주기(8) - 연하천에서 노고단으로

    Date2002.08.04 By조진형 Reply2 Views3112
    Read More
  18. [re] 53살 부부의 지리산 종주기(8) - 연하천에서 노고단으로

    Date2002.08.07 By성희영 Reply0 Views1847
    Read More
  19. [re] 53살 부부의 지리산 종주기(8) - 연하천에서 노고단으로

    Date2002.08.08 By조진형 Reply0 Views1942
    Read More
  20. 53살 부부의 지리산 종주기(7) - 연하천의 밤

    Date2002.08.04 By조진형 Reply0 Views2235
    Read More
  21. 53살 부부의 지리산 종주기(6) - 촛대봉에서 연하천으로

    Date2002.08.04 By조진형 Reply0 Views2216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 59 Next
/ 59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