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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기 (7) - 연하천의 밤

숲 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 줄기가 구름 속에서 흐르는 듯하다는 연하천((烟霞泉). 그곳에 작은 산장이 하나 있다. 이층으로 달아 매놓은 잠자리를 꽉 채우면 50명이 칼잠을 잘 수 있는 작은 산장이다.

산장 마당 한 귀퉁이에서 옥 같은 샘물이 흘러넘친다. 물맛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말이 모자란다. 샘물 한 바가지 퍼서 목을 적시고 또 한 바지 퍼서 발등에 부으니 이틀 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사라진다. 마당가 통나무 의자에 앉아서 머리도 마음도 몸도 모두 편안하게 쉬고 있는데 산장지기 노총각이 말을 걸어온다.

“아직 기력이 좀 남으셨어요?”
“그럼요. 그런데 왜요?”
“제가 경치 좋은 곳을 한군데 알려 드리려구요. 저기 계단으로 올라가다 왼편으로 아주 경치가 끝내주는 곳이 있어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인데...”
“그래요? 한 번 가봐야겠네요.”
“어떻게 찾아가죠?”
“계단이 시작되는 곳쯤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돼요. 가 보시면 정말 좋아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무한테나 알려주는 곳이 아니거든요.”

10여분 올라가다보니 계단이 끝나는 곳이 나왔다. 그 총각은 그곳을 계단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한 것을 보면 몸은 연하천에 있지만 아직도 마음을 사바세계에 두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쯤에서 올라가야 하는 것 같은데... 그런데 이 길은 ‘탐방로 아님’이라고 써 있네요?”
“그게 내 눈에는 ‘나 여기 안 숨었음’이라고 보이는데... 가보자구. 틀림없을 거야.”

점입가경(漸入佳境). 지리산의 경치는 바로 그것이었다. 일몰이 가까워 오는 저녁나절의 지리산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봉우리 가까이에 가자 인기척이 났다. 그리고 부시럭 거리는 소리쪽으로 눈을 돌리니 바위 위에 젊은 여인이 누워있다가 혼비백산하면서 일어난다.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
“여길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산장에서 알려 주었지요. 아가씨는...?”
“저도 산장 아저씨가 알려 주었어요. 전 어제도 하루 종일 여기 있었어요.”
“혼자요?”“네 혼자 왔어요.”
“이렇게 이쁜 아가씨가 혼자 다니면 위험할 텐데 괜찮아요?”
“같이 다닐 사람이 없어요.”
“어디서 왔어요?”
“서울서 왔는데요.”
“어디서 올라왔어요?”
“화엄사에서 올라왔어요.”
“그럼 종주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천왕봉엔 안 갈 건가요?”
“처음 생각은 종주하려고 왔는데 여기가 너무 좋아서 이틀째 연하천에서 머물고 있어요. 내일은 길을 떠나야지요.”
“여기가 무슨 산일까?”
“명선봉이라고 하던데요...”
“가만히 있어보자. 지도를 봐야지... 그래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명선봉(1586m)이구나. 사람들이 모두 그냥 지나치는 곳이라고 하더니만... 우린 참 운이 좋네.”
“명선봉이 뭐 그렇게 유명해요?”
“이 근처의 산세가 험한 만큼 경치도 절경이기도 하지만, 저 아래 빗점골이 빨치산의 마지막 보루였던 곳이지. 그 곳에서 마지막 빨치산 이현상이 사살되었던 곳이라고 하던데...”
지리산의 운해 속으로 떨어지는 붉은 태양은 이미 천왕봉에서 떠오르던 그 태양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남김 없이 모두 다 싸안은 후에 해탈을 하고 서방정토로 들어가는 구도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별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마당 한 가운데 내다 놓은 TV 속에서는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축구선수들이 월드컵을 향해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산장 주인 털보아저씨와 산장지기 노총각 둘 그리고 명선봉 처녀와 어울려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아저씨가 제일 나이 어린가봐...”
“아니요. 제가 몇 달 더 어려요.”
“그래도 나이가 꽤 든 것 같은데... 결혼들은 안 했어요? 아니면 식구들 버려두고 여기 사는 건가요?”
“우리 둘은 아직 총각이예요. 이 아저씨는 남원에 식구들이 있구요.... 따님이 판소리 공부하고 있어요.”
“장가갈 생각은 없어요?”
“산장에는 아픔이 많은 곳이랍니다. 자꾸 물어보지 마세요.”
“아가씨도 아픔이 많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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