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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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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지리산을 꿈꾸며

2002. 8. 20(화)
등산장비를 사러가기 위해 시내 출장 일정을 잡았다. 회사일을 마치고 사당역에서 3시에 만나 남대문 시장에 갔다. 등산장비전문점이 한 곳에 몰려있었다. 배낭, 등산화, 등산복별로 유명브랜드가 다 있고 그에 따른 가격차도 엄청나다. 비브람창에 고어텍스, XCR 등등 처음 접하는 용어들..
오늘 무척 많이 배웠다.

산 한번 가는데 무슨 수선인가 싶기도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등산이란 행위에 맞춘 가장 인체 공학적 기능성 위주의 제품들을 구경하면서 장인정신이 배어있는 전문브랜드가 주는 세월의 연륜과 역사가 읽혀지면서 왠지 모를 겸허함이 든다.

그 때문인지 몇 십만원을 호가하는 상의를 구입하면서 비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옷과 함께 할 앞으로의 시간들 가운데 내 삶에 성큼 들어설 '산'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앞선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장비구입은 단순한 쇼핑이 아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입문이다.

2002. 8. 23(금)
퇴근 후 지리산 종주를 꿈꾸며 늦은 쇼핑을 시작했다.
2박3일 동안 먹을 간편식들.
인터넷 사이트의 친절하고도 꼼꼼한 안내가 무척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말 가는 거구나. 이제야 실감이 난다.

지겹게까지 느껴지게 계속적으로 8월 한달 내내 내렸던 비 때문에 여름을 느끼지도 못한 채 지난 때문인가.
예년과 달리 가을을 노래하는 성급한 몸짓들이 서글프고 한편으론 은근한 반항이 생긴다.

8월 마지막날을 끼고 계획한 2박3일 일정은 이런 내 심경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배수진을 치고 싸웠던 카이사르처럼..
어쩌면 8월의 마지막이라는 배수진이 없었다면 난 올해도 또 지리산을 꿈꾸기만 하면서 보냈을 지도 모르겠다.

2002. 8. 26(월)
모두가 식사하러간 점심시간.
그동안 둘러봤던 각종 사이트를 참고삼아 지리산 2박3일 종주 산행계획을 짰다.
언제부터인가 품기 시작한 지리산.
30대를 보내며 왠지 모른 초조감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나이 40이 되기 전에 지리산 종주를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주섬주섬 인터넷 사이트를 돌며 '지리산'을 그야말로 학습(?)하기 시작했다. 지금 보니 2년 전부터 모으기 시작한 자료가 거의 책 한 권 분량이다. 이제 두 밤만 자면 드디어 가는구나. 마음이 설렌다.

산에서 이틀 밤이나 자면서 해야 한다는 종주. 휴일 근교 등산을 다닌 날도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일상에 파묻혀 살면서 까마득하고 이해조차 되지 않았던 '종주등산'이란 개념은 그동안의 학습을 통해 아주 친근하게 다가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설레는 한편으론 아직도 약간의 두려움이 앞선다. 이 해이해진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주말의 지리산 일기는 구름과 햇빛 그림인데 혹시 날씨가 나빠지기라도 하면?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치지는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지리산에 가려고 하는가? 산이 거기 있기에?  
몇주 전 지리산에서 진행된 KBS-TV 책을 말한다에 나온 한 전문산악인은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오늘 자 「사람 그리고...」에 백두대간을 51일만에 종주한 두 명의 여대생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그들은 종주소감을 '젊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했다. 산악인이라면 한번쯤 뒤적여 본다는 우에무라 나오미(1941-84)의 '내 청춘 산에 걸고'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했다. '왜 산에 오르느냐'는 우문(愚問)에는 '등산은 나의 고독을 밟고 지나가는 실존의 행위'라는 말처럼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죠.'라고 대답했다.

그렇담 나는 왜 지리산에 가려고 하는가?
'그냥 그러고 싶어서' 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게 다일까?
어쩌면 지리산은 내게 있어 일종의 '동경 이미지'일 것이다.
내 시간의 주체는 나인데,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아무리 밀어 올려도 끊임없이 내려오는 시지프스의 돌처럼 밀려오는 일상에 치여 꼼싹달짝 못하고 있는 현실의 내 모습. 삶의 주인이 나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지리산 종주'라는 게릴라 작업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2. 8. 27(화)
여행은 지도가 정확한 지 대조하러 가는 게 아니다.
지도를 접고 여기저기 헤매다 보면 차츰 길이 보이고,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곳곳에 숨어있는 비밀스러운 보물처럼 인생의 신비가 베일을 벗고 슬그머니 다가올 때도 있다. 어느 낯선 골목에서 문득 들려오는 낮은 음악처럼 예상치 못한 기쁨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김미진의《로마에서 길을 잃다》중에서 -

2002. 8. 28(수)
시내 출장으로 일정을 잡아 점심때쯤 회사를 나왔다. 시내에 들러 재빨리 일을 처리하고 오늘의 주요 목적인 종주산행 짐싸기를 위해 선배언니 집에 도착하니 오후 5시. 집에는 회사 출장이라고 해두었기에 모든 장비와 물품은 이미 옮겨두었다. 배낭 3개에 나누어 담아도 만만치 않은 물품의 대부분은 먹을거리다. 3일 동안 이렇게나 많이 먹다니..쌀만 해도 무게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35리터짜리 배낭이 작게 느껴질 정도..무게로는 10킬로가 넘는 것 같다.

드디어 모든 짐을 다 싸고 교회로 출발. 기드온 리더모임 참석 후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커다란 배낭을 멘 우리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은근히 즐겁게 느껴진다. 난 드디어 떠난다. 어쩌면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당신들과는 달리..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굳이 광고 카피를 인용하지 않아도 떠남의 일탈이 서서히 느껴지면서 설레이기 시작한다.

11시50분 구례구행 야간열차. 야간열차를 타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지리산에서

8월29일 목요일 산행 첫째날
구례→성삼재→노고단→임걸령→노루목→반야봉→삼도봉→화개재→뱀사골산장→토끼봉→연하천산장→형제봉→벽소령산장

새벽 5시
구례구역에 내리는 사람들은 모두 등산복 차림에 커다란 배낭을 멘 사람들뿐이다. 내리자마자 버스가 보인다. 열차에서 내린 등산복 인파가 다 타는 걸 보니 이 버스가 구례버스터미널에 가는가 보다. 버스가 금새 가득 차고 차는 바로 떠났다. 성삼재행 버스는 6시에 출발한단다. 터미널에서 벼르고 벼르던 지리산 지도가 그려진 스카프를 샀다. 처음 지리산을 꿈꾸던 시절, 회사 직원이 하나 가지고 있던 스카프를 빌려 목욕탕 타일벽에 붙이고 몇 번이고 종주코스의 낯선 지명을 읽고 외웠던 기억이 새롭다. (그 스카프 웬만하면 나 줄줄 알았는데...몇일 지나니 도로 돌려달라고 해서 속으로 얼마나 '짠돌이'라고 욕을 했던지..막상 내 것이 되고 보니 어쩌면 그 친구 또한 스카프가 아닌 추억을 돌려달라고 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7시 성삼재 도착
굽이굽이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지리산 자락이 정말 멋있다. 산자락으로 흐르는 구름들은 서울 근교 산에서는 보지 못하는 광경들이다. 버스 한 대 전체가 지리산행을 꿈꾸는 사람들만 태우고 있다는 사실도 참 신기하다. 한참 넋 놓고 있는데 버스가 서더니 진흙팩 색깔 옷을 입은 아저씨 두 사람이 우리가 앉은 맨 뒷좌석으로 다가와 표를 내민다. 아예 버스에 타서 지리산 입장료를 받는 약간은 진기한 풍경도 이곳이 지리산이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아침 7시 40분 노고단 산장도착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잘 닦여진 완만한 돌길 오르막이다. 이제부터 산행이 시작이다. 삼삼오오 걷는 사람들의 큼지막한 배낭에 비해 가볍긴 하지만 배낭 무게가 장난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일천한 등산경력에 배낭 메고 산행을 해 보는 것도 처음이다. 거의 맨손으로 오르면서도 헉헉대던 내 자신이 생각나면서 확실히 일을 저지르긴 저질렀구나 하는 새삼스런 상황 인식.. 머리 속은 약간 복잡해지는데 솜사탕 풀어진 것 같은 구름이 오가는 산은 평안하고 맑고 넉넉하다.

인터넷을 통해 대충 감을 잡긴 했지만 실제 산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지 궁금했는데 드디어 노고단 산장에 도착했다. 취사장까지 갖춘 깨끗한 붉은 벽돌집. 와 이 정도라니 꽤 훌륭하다. 햇반에 인스턴트 사골 우거지국으로 산에서의 첫 식사를 마쳤다. 부르스타 없이 어떻게 밥해먹나 했더니 터미널에서 산 가스에 뚝딱 몇 가지 간단한 장비만 얹으니 화력 센 가스버너가 탄생하는 걸 보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주 먼 옛날 석유버너로 야외에서 밥해먹던 기억이 새로운데...그러고 보니 이런 일들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승용차로 이동하고 콘도에서 밥해 먹는게 자연스러운 여행패턴으로 정착한 지 오랜 내 모습을 본다.


아침 9시20분 돼지령
산장을 떠나 30여분 걸으니 앞의 전망이 확 트이며 능선 평지길이 나온다. 멧돼지들이 종종 출몰한다고 일명 돼지령이란다. 잠깐 쉬고 다시 숲길을 걷는다. 종주라고 해서 사방이 다 보이는 능선을 따라 좌우 경치를 감상하면서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이건 영 아니다. 오르막인가 하면 다시 내리막이고 혼자서 간신히 빠져나갈만하게 나있는 좁은 숲길이 꽤나 이어진다. 심심치않게 피어있는 야생화가 참 소박하다. 파랑, 노랑, 분홍, 보라색 꽃들..이름은 전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처음 보는 꽃들이다.

아침 10시20분 임걸령
반대쪽에서 종주를 시작했는지..간간이 이쪽으로 오는 사람들과 부딪치게 된다. 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다 인사를 한다. 수고하세요. 안녕하세요. 누군지도 모르지만 모두들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없다. 임걸령 샘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시다보니 버스에서, 성삼재에서, 노고단산장에서 보던 일행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만나게 된다. 만만치 않아 보이는 배낭을 멘 3명의 여전사들은 모두 30대란다. 2박3일 종주 계획을 세우고 왔단다. 왠지 동지적 친밀감이 느껴진다. 초코바를 나누어 먹고 산행계획을 확인해 보았다.  임걸령이란 이름은 조선 명종 때의 초적두목 임걸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단다. 노고단에서 임걸령 4Km가 가장 편한 코스에 속한다는 설명을 읽으니 '아니 그 길이 편했단 말이야' 싶은 게 앞으로의 산행이 자못 걱정된다.

아침 11시 노루목 도착
생각나는 대로 흥얼흥얼 찬양도 부르고 노래도 부르고 야생화도 눈 여겨 감상하고 지금까지는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연속 이어지는 오르막길..'무겁던 배낭이 신체의 일부분으로 느껴져' 허세까지 부리며 기세등등했는데 이젠 배낭이 바위돌덩이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걸 줄이는 길은 오로지 먹어 없애버리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더 아득하다. 뺄래야 뺄 것도 버릴 수도 없다. 오로지 점심 먹기로 계획된 뱀사골까지 그저 걷고 또 걸을 수밖에...차츰 산길에 좀 익숙해진다 싶은데 처음으로 헷갈리는 삼거리가 나온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직진만 있었던 것 같은데..이곳이 노루목이란다. 노루가 많이 나와서 노루목인가 했더니..반야봉의 지세가 잠시 멈춰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암두를 이루고 있어 노루목이라 부른다고 한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앞에서 쉬고 있던 일행들이 한쪽 오르막길이 반야봉이란다. 자기들은 다녀오는 길이라고..그럼 가야지..

점심 12시 반야봉 정상
반야봉 오르는 길은 정말 급경사다. 조금 오르다 보니 누가 벗어놓은 배낭이 보인다. 배낭 메고 오르는 게 힘들어 벗어놓은 듯하다. 우리는 생각할 것도 없이 물론 배낭을 내려놓았다. 왠지 괜찮을까 싶은 마음도 드는데..하긴 자기 배낭도 무거운데 누가 남의 것을 집어가겠어? 그리 크지 않지만 탄탄한 모양과 편리함에 그새 정이 들어 버린 솔트렉 배낭-수 차례 장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장비도사이자 등산전문가인 재영이 권한 배낭이니 무지 좋은 배낭이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된 탓도 있다-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다 올라왔나 싶으면 또 올라가고, 보이는 나무들은 어느새 나즈막한 키가 대부분이다. 얼떨결에 오르기는 했지만 막상 올라 1732m란 표지판을 보니 지리산이 또 새롭다. 사방으로 거침없는 전망을 보니 해발 1000m 이상을 계속 걷는 종주가 실감난다. 오늘 지리산의 3대 주봉이라는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 중 3분의 2를 본 셈이다. -노고단 정상은 미리 예약을 해서 제한된 인원한테만 개봉된다는 안내판을 도중에 보고 왔지만 거의 정상이었다-

반야봉 정상 땅 밟기란 감격을 맛보고 나니 문득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진다. 구름 커튼을 가리워 따가운 햇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환상적인 맑고 쾌적한 날씨에 감탄 또 감탄하며 지리산의 넉넉하고도 평안한 능선을 감상하고 나니 이 행복은 오로지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란 깨달음이 들었다고나 할까. 산을 오르기로 계획한 것은 나 자신일지 모르지만 만일 이번 여름 지겹게 내린 비라도 뿌렸다면 도저히 올라올 엄두도 못 냈을 테고 결국 이 모든 상황의 주인은 내가 아닌 그 분이라는 생각이 걸을수록 새롭게 느껴진다.

오후 12시 20분 노루목 갈림길
♬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지리산이 주는 평안을 온몸으로 느끼며, 벅찬 감사와 기쁨을 가득 안은 채 걷는 길이었다. 마침내 배낭을 벗어놓은 곳에 이르자 갑자기 생각이 난다. 지갑을 확인했다. 아까 카메라만 챙기고 지갑은 잊어버린 채 배낭 외부 주머니에 넣고 와 찜찜했던 마음이 되살아난다. 지갑은 고이 제자리에...그럼 그렇지...이 산에 온 어느 누가 탐심을 느끼겠나..오히려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오후 12시40분 삼도봉 도착
전남 ,전북, 경남의 3도 경계에 있다는 삼도봉의 높이는 1,512m 일명 날나리봉이라고 불린단다.
전망이 정말 훌륭하다.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여기서 깨달은 교훈 한가지. 역시 경험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그 많은 지리산 산행기를 꼼꼼이 읽었어도 결국 지리산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지리산 종주를 어떻게 할 수 있는가만 '학습'했을 뿐..난 삼도봉에서 지리산을 가슴으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지리산을 다녀온 후 날마다 '지리산 밀어내기'를 하고 있다고 표현했던데...삼도봉에서 느낀 지리산을 밀어내기가 힘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예감대로 벌써 나흘이나 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날마다 지리산을 밀어내며 일상에 적응하고 있다-

오후 1시15분 뱀사골산장 도착 1시50분 출발
초보자를 위한 종주안내에 따르면 12시30분쯤 도착으로 되어있는데 삼도봉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래도 30여분 오차라니...충실한 일정이다. 그렇지만 시간을 줄이기 위해 밥 대신 스프와 생식으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끝냈다. 삼도봉에서 만난 부자-10살짜리 아들과 아버지-와 작별인사를 하고 부지런히 산장을 떠났다. 내려갈 때도 끝없이 느껴지던 나무계단이 올라갈 때는 더욱 괴롭다.

오후 2시50분 토끼봉 도착
점심을 먹어서일까? 계속되는 오르막 등산길이 힘겹게 느껴진다. 몇 발짝 떼어놓으면 쉬고 싶고...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쉬었다 갈까 하는 꾀가 생기기 시작한다. 역시 기초 체력 다지기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8월 한달 수영과 에어로빅으로 체력을 다지겠다 굳게 마음먹고 새벽반을 끊었건만, 딱3번 밖에 가지 못했던 창피해서 누구에게도 말못했던 사실이 몸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역시 몸은 정직하다.

산행 가이드에 충실하게 준비해왔던 간식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3명중 누구도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하지 않건만 우리가 준비한 것은 온통 인스턴트 일색이다. 초코바, 천하장사 소시지, 소금사탕, 흑사탕, 나초, 젤리, 육포와 다시마 말린 것은 그 중 낫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었건만 배가 고픈 줄도 모르겠다. 다만 시원한 과일 한조각이 그립다. 깜박 잊고 냉장고에 넣어두고 온 사과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과일을 준비하리라.

틈만 나면 쉬느라 휴식공간이 없는 길에서는 통로까지 점령하고 앉게된다.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 일행이 우르르 몰려온다. 비켜주어야지 싶은데 움직이기도 힘들다. 그 중 한 명이 쭈볏거리며 다가오더니 먹을 것 좀 달란다. 아무 준비 없이 반바지 차림으로 올랐단다. 그러고 보니 8명 모두가 맨손들이다. 사탕과 초코바를 나누어 주었다. 연신 고맙다며 인사하는 그들을 보니 무모하기도 하지만 무모할 수 있는 그 젊음이 부럽게도 느껴진다. 문득 20대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때도 사람들은 지리산 종주를 했을까? 난 무엇하고 있었나?

최루탄 가스로 얼룩졌던 캠퍼스에서 4년을 보내고 취직 준비를 하며 여상에 다니는 여고생들과 함께 타자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스친다. 대학 졸업 후 타자학원이라니...이번 종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터넷에서의 정보에 의존했다. 컴퓨터가 상용화 된 것은 직장에 다니고서도 한참 후부터였다. 인터넷과 타자. 사이버세대들이 타자기를 알기나 할까. 이제 486이라고나 할까. 올해부터는 386세대라고 부르기도 힘든 나이 40대가 되었다. 이제부터의 앞날에는 어떤 삶들이 펼쳐지게 될까.

오후 5시 연하천 산장 도착
연하천 산장에 이르는 계단식으로 정비해 놓은 길이 반갑게는 느껴졌지만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왼쪽 무릎에 이상징후가 느껴진다. 나아지겠지 하며 걷는데도 계속 통증이 짙어지는 게 심상치 않다. 생각해 보니 아까 뱀사골 산장 내려가는 나무계단에서 10살짜리 녀석과 경쟁하듯 계단을 뛰어 내려갔던 게 화근이다. 아무 생각 없이 동심의 세계에 빠졌던 것이 결국 무릎에 무리가 온 것이다.

아늑한 숲 속에 위치한 연하천 산장은 무척 소박하다. 그러나 산장분위기를 음미할 새도 없이 바로 떠나야했다. 7시전까지는 벽소령에 도착해야 인터넷으로 예약한 숙박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서둘러 떠나려는데 누군가 와서 꾸벅 인사를 한다. 아까 사탕을 나누어준 그 일행이다. 이곳에서 자기로 했단다. 산장아저씨로부터 코펠과 냄비를 빌리고 저녁식사 채비가 한창이다.
화엄사부터 올라왔다는 한 자매와 같이 연하천 산장을 떠났다. 커다란 배낭이며 차림새가 완전히 산꾼 냄새가 물씬 난다. 장비전문가 재영에 따르면 갖추고 있는 장비 또한 수준급이란다. 혼자 즐길 수 있는 산행의 경지에까지 이른 그녀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나 자신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여자 혼자만의 종주가 가능한 '지리산 문화'. 지리산이 더욱 마음에 들기 시작한다.

지리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왜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만나는 사람마다 격려하고 덕담을 나누고, 가진 것을 조금이나마 나누어주려고만 했다. 아무 준비 없이, 여럿이, 또는 혼자 단신으로 어떤 경우이든 '지리산' 에 속해 있다는 것으로 서로 기뻐했고 충만했다.

오후 6시40분 형제봉
넉넉잡아 두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던 벽소령산장까지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왼쪽 무릎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면서 특히 내리막길에서는 거의 구부리기가 힘들 정도였다. 나로 인해 계속 시간이 지연되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워진다.. 길은 왜 이렇게 험한지..두 서너 개의 작은 봉우리를 계속 오르내리고 바위길이 계속되는 너덜지대도 만만치 않다. 왼쪽 무릎의 하중을 되도록 오른쪽으로 옮기며 조금만 가면 되겠지하고 한참이나 온 것 같은데..거대한 바위 두 개가 눈앞에 보인다. 저게 형제봉인가 싶은데 그렇다면 벽소령은 아직도? 시간은 6시40분. 거의 두시간을 온 셈인데..

벽소령까지 가는 길
오후 7시전까지 산장에 도착하기는 틀린 것 같다. 뒤쳐지는 나를 기다리기보다는 한사람이라도 일찍 가는 게 낫다 싶다. 7시20분 재영이가 먼저 산장에 가기로 했다. 숙박 예약문제와 저녁식사를 먼저 준비하기로...한참 가던 재영이 다시 오더니 헤드랜턴을 주고 간다. 설마 해지기 전에야 도착하겠지 싶었는데 결국 결과적으로는 야간산행까지 하고야 말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 산행은 완전히 최초 기록 투성이다. 지리산도 처음, 산장에서의 잠도 처음, 배낭 메고 오래 걸은 것도 처음, 등산바지도 스틱사용도...게다가 야간 산행까지..모든 게 온통 처음 최초 기록이다.

어둑어둑해지는 산길에 막상 둘이 남고 보니 갑자기 막막해진다. 오르락내리락 계속 걷고 또 걸어도 금방 나오지 싶은 산장은 보이지 않고...그래 맞아...인간이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 한 분이신 것을..이젠 정말 뾰족한 수가 없다. 그저 빨리 도착하기를 바라며 부지런히 걷는 수밖에는..무릎의 통증은 온갖 다양한 포즈로 다 걸어봐도 별로 나아지는 기미가 없다. 하지만 나보다 더 긴장해 자신의 컨디션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짝 따르고 있는 성옥 언니를 보니 어쩌면 차라리 내가 불편한 게 나을 듯도 싶다. 드디어 언니가 내 손을 잡는다. 기도하고 가자.

조금만, 조금만 하며 도착한 어느 탁 트인 바위. 어느새 붉게 물든 하늘과 구름 사이로 펼쳐지는 지리산의 능선이 장관이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두 부부는 야간산행으로 천왕봉까지 직행해 일출을 보고 내려갈 계획이란다. 대단한 체력들이다. 꾸준히 산을 탄 경력이 있단다.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는 한 청년은 혼자 왔나 보다. 발걸음을 서둘러야 하는 사람은 우리건만 붉은 노을 산에서 눈을 떼기란 쉽지 않다.

다시 힘든 발걸음을 떼어놓는다. 너덜지대와 나무뿌리가 그대로 삐져 나온 길은 여전히 끝이 없다. 이제 사방은 완전히 캄캄해지고... 헤드랜턴을 꺼내 이마에 부착했다. 머리가 묵직한 게 무지 어색하다. 랜턴으로 비춰지는 좁은 불빛에 의지해 다시 내려가고 올라가고...어쨌든 벽소령산장까지는 가야 한다. 길이 점점 험해진다. 이번엔 이번엔 하고 산장 불빛을 기대하건만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평온을 유지하고 있던 마음이 흩어지고 있다. 스스로에게 짜증이 난다. 한 순간 그냥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스친다. 문득 이런 길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끈'을 놓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앞쪽에서 환한 불빛이 보인다. 누군가가 서 있다. 거기 누구세요? 대답이 없다. 두려워지는 마음.
저 아까 위에서 본 사람이에요. 전망바위에 있다 조용히 사라진 혼자 온 남자가 서 있었다. 가다가 아무래도 걱정이 되서요. 다행히 랜턴이 있으시네요. 전 랜턴이 없을 줄 알고...
회사를 이직하면서 생긴 휴가를 이용해 학교 때부터 꿈꾸어왔던 자전거여행 중이란다. 목포에서부터 왔는데 구례 쪽에서 남원으로 자전거를 부치고 시간이 남아 혼자 지리산에 올랐단다. 아까 제대로 얼굴도 못 본 사람인데 우리들 때문에 가던 길을 되짚어 왔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셨다. 얘' 성옥언니 말대로이다. 아픈 무릎이 싹 낫지도, 달라진 상황은 하나도 없었건만 그분은 우리를 그대로 두지 않으셨다. 순간순간 그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

자전거용 랜턴이 비추는 빛은 강력하다. 앞에 서서 이제는 거의 네발을 이용해 걷고 있는 우리를 비춰주며 기다리는 마음..그에게도 그분의 형상이 있을까? 나였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통증과 관계없이 머리 속에서는 온갖 질문이 오간다.
또 한참을 걸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형광색으로 빛나는 등산화 앞 등..신발끈이 야광이었다. 이런 데까지 신경을 썼구나. 사소한 마음씀이 귀하게 느껴진다. 마음이 통했나? 신발끈이 야광이네요. 네 저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야간산행 덕분이네요. 힘든 경우에도 모든 게 다 나쁜 건 아니다.  건네준 압박붕대까지 착용하고 나니 발걸음이 훨씬 부드럽다.

아직도 보이지 않는 산장. 초조해지며 미안해지는 마음이다. 아니 내가 이런 처지에 빠지다니..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말이야. 이런 민폐를 끼치다니.. 기초체력만 믿고 무리하게 추진했던 게 잘못이야. 역시 얼렁뚱땅 되는 건 없다. 정직한 대가를 요구받는 게 당연한 거지 뭐. 근데 산장은 언제 나오는 거야.
높지막한 바위 한쪽에 걸쳐져 있는 밧줄을 잡고 간신히 올라서는데..이제 다 온 것 같아요. 무슨 소리가 들려요. 난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데...앗 아니다. 산장 불빛이 보인다. 평평하게 펼쳐진 언덕 같은 곳에 사람들이 끼리끼리 둘러앉아 있었다. 드디어 다 왔구나. 종주 내내 거의 불통이라 시계 대용으로 쓰고 있는 휴대폰을 보니 8시다. 연하천 산장에서 3시간만에 도착한 것이다.

저녁 8시 벽소령산장 도착
재영이 미리 준비한 밥과 참치찌개를 먹고 있으려니 너무 행복하다. 성옥언니는 긴장이 풀린 탓일까 꼼짝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젠 안심이다. 산장에 부는 바람은 세차나 추울 정도는 아니다. 문득 쳐다본 하늘이 엄청나게 낮다. 솜사탕처럼 흩어진 구름, 그리고 그 사이에 박힌 별들...마치 솜털 이불 사이에 박힌 다이아몬드 보석 같다.
시골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쏟아질 것 같은 별과는 또 다른 맛이다.

스스로 기특히 여기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이번 산행 최대의 히트작은 '누룽지'다. 평소에 즐겨먹던 엄마가 만든 누룽지 한판을 넣어왔는데...커피대신 코펠에 끓여먹는 구수한 맛이 정말 일품이다. 샤워장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세면장은 정말 열악하다. 그냥 생략할까 하다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대는 발을 끌고 내려간 곳에는 졸졸 흐르는 샘터에 연결한 수도꼭지 딱 두 개뿐이다. 랜턴을 비춰가며 손발을 간신히 닦으면서도 지리산의 산장이 이 불편함을 끝까지 고수하길 빌었다. 사람의 편리를 위해 지리산을 아프게 하지 말기를..그리고 나를 비롯한 이곳을 찾는 우리 모두가 이 경험을 소중함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나무로 만들어진 산장. 배정된 숙소는 다락방 같은 느낌을 주는 2층이다. 모포 밑에 깔판을 깔고 누우니 온몸이 솜뭉치다. 온몸에 바른 맨소래담이 화끈거린다. 아프지 않은 근육이 없다. 내일 이 몸 상태로 계속 갈 수 있을까?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오늘은 일단 자야한다. 틈틈이 시간이 나면 읽어야지 하고 무거운 배낭사이로 굳이 밀어 넣었던 '체게바라'를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지리산에서의 독서라니.. 너무 낭만적인 상상이었던 것이다.

8월30일 금요일 산행 둘째날
벽소령산장→음정 백무동 하산→함양→서울

아침 6시기상
밤새 뒤척뒤척 깨다 자다 했다. 중간에 다시 맨소래담을 바르고..온몸이 또다시 화끈거린다.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에 잠을 깨어 보니 6시다. 태풍이 전 한반도를 강타해 천왕봉 쪽은 입산이 통제됐단다. 관리사무소에서 몇 명씩 무리를 지어 바로 하산하라고 했다는 소식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정말 좋은 날씨였는데..태풍이라니..실감이 나지 않는다.

산장 뒤쪽 야외에서 아침밥을 먹으며 바라보는 능선이 환상이다. 운해로 덮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다가 어느새 다시 또 드러나는 능선들... 없어졌다가 드러났다가 마치 마술 같다.
날씨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려가기로 결정을 하고 있었다. 관리사무소에서 아침부터 틀어주는 태풍속보 뉴스를 보니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다. 결국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종주를 하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운 말들과 덕담들이 오가는 가운데서도 전혀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충분하다는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자연에 대한 오만으로 산행을 감행할 욕심은 아예 없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지리산을 꿈꾸고 종주계획을 세웠다해서 내가 다하는 것이 아님을 어제 이미 온몸으로 배웠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포기'가 아닌 '수용'으로 지리산을 두고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하며 태풍마저 고맙게 느껴졌다.

아침 8시 하산 시작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일명 '벽소령 작전도로'를 걸어 음정으로 내려오는 하산길... 너무도 아름답다. 적당한 경사를 이루며 이어지는 내리막길..무식한 시절이었기에 이 같은 자연훼손이 이루어졌다는 말이 실감나기도 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산은 아름다웠다. 나무들, 작은 폭포, 이름 모를 야생화, 어스름 안개가 자욱한 숲길..이런저런 우리들을 둘러싼 여러 세상 이야기를 하면서 내려왔음에도 음정까지 내려오는 그 길은 정말 다른 세상이었다.

12시쯤 되어 도착한 산자락에서 보이는 인가를 보니그야말로 그동안  산만 보았다는 새삼스런 느낌이 든다. 어떠한 인간의 구조물도 서 있지 않은 산, 그런 산을 본 것은 그러고 보니 지리산이 처음이었다.-최초 아닌 것이 하나도 없건만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잠깐 서서 기다리니 바로 버스가 온다. 내려오며 간간이 보았던 일행들이 모두 버스에 타고 있었다. 시간에 맞춰 내려오지 못할 것 같아 걱정했다며 인사하는 3명의 여전사들은 종주를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칠선계곡 쪽으로 들렀다 가기로 했단다.

막상 서울로 떠나기로 했지만 순간 잠깐 마음이 흔들린다. 이제 나에게 있어 지리산은 더 이상 최초가 아니다. 그러나 최후 또한 아님이 예감되기에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서울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함양까지 가기로 했다. 눈을 부릅뜨고 창밖의 지리산을 계속 잡아두었지만 어느새 고개를 박고 있는 나를 본다. 가도가도 산이 끝나지 않는 풍경들...지리산이 품고 있는 마을들이 무척이나 정겹다.

단골 식당을 몸소 안내하는 기사아저씨의 친절-지리산 자락에 사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사나보다. 동서울터미날까지 태워주신 기사아저씨는 우리 대화 내용을 듣고 버스 시각표까지 일부러 주시는 과잉(?)친절로 또 한번 사람을 감동시켰다-로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함양터미널 화장실은 깨끗했다. 아침에 몽땅 생략한 세수와 칫솔질까지 화장실에서 해결하고 1시50분 동서울터미널행 버스에 올랐다.

오후5시20분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그래 꿈★은 이루어진다. 꿈꾸며 열심히 준비하고 정직히 노력하며 구할 때 하지 못할 것은 없는 것이다. 30대가 지나기 전에 이루고 싶었던 소박한 꿈. 지리산 종주. 그 과정을 준비하며 행복했었다.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에는산행 지도를 보며, 산을 떠올리며,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준비하고 알아가며, 체력단련을 위해 마라톤이라는 또 다른 세상을 맛보는 등..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출장이라는 형태로 실현된 시간적, 경제적 환경과 상황은 내 힘으로 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또 하나 가장 중요한 부분.. 지리산을 가장 아름다운 상태로 허락하신 날씨...그 것은 바로 내 마음의 꿈을 아시는 그 분이 계시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일부러 찾으려 하지는 않았다. 무슨 일에서건 교훈을 찾으려는 조급함이 오히려 '누림'을 방해할 수 있기에..그러나 이번 산행에서 또렷하게 떠오른 메시지 하나는 분명하다.
코람데오(CORAM DEO)
가장 필요한 것 외에는 나 아닌 모든 껍데기를 벗어야 하는 산에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 떠올랐다. '그 분 앞에 진실한 삶, 가리지 않는 삶' 완전하지 않아도 포장하거나 변명하며 피하지 않고 그대로 드리며 사는 삶. 내게 주시는 분명한 음성이었다.


에필로그. 루사 태풍 속의 서울에서
집에 들어가기 전에 사우나를 가야지 했다. 들어가는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꼼짝도 하기 싫은 아니 할 수 없는 내 마음과는 따로 노는 팔과 특히 다리들...생식 한 봉지 타먹는 걸로 저녁을 해결하고...뱀사골에 470밀리의 비가 내렸다는 뉴스를 들으며 와인을 진통제와 수면제 삼아  마시고 잠들어 버렸다.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공식적으로 인정된 토요일까지의 2박3일의 외박 일정. 8월31일 마지막날 하루는 정직하게 반응을 나타낸 나의 신체를 정상으로 만드는데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을 다해야만 했던 비 오는 8월의 마지막 토요일이 되었다.


  • ?
    부도옹 2002.09.05 23:59
    종주중 '반야봉'에 오른 산행기는 첨인듯 합니다. 비록 계획된 일정을 마치지 못했지만 "수용"했으니 담을 기약 할 수 있네요. 건강한 날들 되십시오.
  • ?
    단순.. 2002.09.06 12:38
    우와...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네요. 넘 감동지게 잘 읽었어요. 자연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맘이 가득하네용.^**^ 부럽ㅅㅡㅂ ㄴㅣ ㄷㅏㅇ.
  • ?
    오해봉 2002.09.09 16:55
    다음에는 준비운동도 충분히 하시고 주간일기예보도 점검하여 꼭 종주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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